장범張范은 자가 공의(公儀)이고 하내군(河內郡) 수무현(脩武縣) 사람이다. 조부 장흠(張欽)은 한(漢)나라의 사도가 되었다. 부친 장연(張延)은 태위(太尉)가 되었다. 태부 원외(袁隗)는 딸을 장범에게 시집보내려고 생각했지만, 장범은 사양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성품이 평온하고 조용하여 노장(老莊)의 가르침을 즐겨하고, 영리에 무관심하여 관청에서 불러들여 임명하려 했으나 나가지 않았다. 동생 장승(張承)은 자가 공선(公先)이고 역시 이름이 알려진 인물로서 방정(方正 : 관리 추천 과목)에 초빙되었으며, 의랑에 제수되었고 이궐(伊闕)도위로 영전하였다. 동탁(董卓)이 난을 일으키자, 장승은 무리를 소집하여 천하 사람들과 더불어 동탁을 주살하려고 생각하였다. 장승의 동생 장소(張昭)는 이 당시 의랑(議郎)이 되어, 때마침 장안(長安)으로부터 와서 장승에게 말했다.

“지금 형님은 동탁을 주살하려고 하지만, 무리가 적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루아침의 계책으로 일을 일으켜 밭을 가는 농민을 이끌고 싸움을 하려고 합니다. 사졸은 평소에 훈련도 없었고, 군사들도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동탁은 군사들을 고달프게 하고 도의를 무시하므로 진실로 오래 지속될 수 없으니, 귀순하는 자들 중에서 선택하여 때를 기다려 행동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 연후에 생각대로 따르십시요.”

장승은 그의 생각을 옳다고 여겨 관직을 나타내는 인수(印綬)를 풀어놓고 사잇길로 몰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장범과 더불어 양주(揚州)로 피난하였다. 원술은 예의를 갖추어 초청하였다. 장범은 질병을 핑계대고 가지 않았으나, 원술도 그에게 복종하도록 강구하지는 않았다. 장범이 장승을 보내어 원술과 서로 만나게 하니 원술이 물었다.

“옛날에 주나라(周) 왕실이 쇠퇴하였을 때, 제나라의 환공(桓公)과 진나라의 문공(文公)의 패업(霸業 : 무력에 의한 지배)이 있었으며, 진나라가 그 정치를 잃어버리자 한나라가 뒤를 이어 정권을 잡았습니다. 지금 저는 영토가 넓고 사졸과 민중들도 많음을 이용하여 제환공과 같은 좋은 운을 구하고, 고조의 사직을 따라가 보려 하는데 어떠합니까?”

장승이 대답했다.

“이 일은 백성들에게 인덕(人德)을 실행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지, 세력의 강대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체로 인덕을 이용하여 천하 사람들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것은 비록 필부의 자질로부터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패왕(覇王)의 위업을 이루는 것은 어려움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참람되게도 제왕을 흉내내면서, 시세(時勢)를 거역하여 어지러운 때를 이용하여 행동하면 결과는 민중들에게 버려지게 될 뿐인데, 누가 능히 그것을 일으키겠습니까?”

원술은 듣고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때 태조가 기주를 정벌하려고 하자, 원술이 다시 장승에게 물었다.

“지금 조공(曹公)이 피폐한 병졸 수천 명으로 10만이나 되는 대군을 상대하고자 하니, 스스로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승이 이에 말했다.

“한(漢)왕조의 덕이 비록 쇠퇴해가고 있지만 천명(天命)은 오히려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 조공은 천자를 끼고 천하에 호령하므로, 비록 백만의 군중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원술은 안색을 바꾸며 유쾌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고, 장승은 곧 그를 떠나갔다.
태조는 기주(冀州)를 평정하고 나서, 사신을 보내어 장범을 영접했다. 장범은 질병 때문에 팽성(彭城)에 남아 머물고 장승을 보내어 태조를 만나게 했다. 태조는 상주하여 장범을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삼게 했다. 장범의 아들 장릉(張陵)과 장승의 아들 장전(張戩)이 산동(山東)의 도적들에게 체포되었다. 장범은 직접 도적을 만나 자식들을 청하니, 도적은 장릉을 장범에게 돌려보냈다. 장범은 감사해 하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아들을 나에게 보내준 것은 두터운 정의(情意)인 것이오. 대체로 사람 마음이란 비록 그 자식을 사랑하지만, 나는 장전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애석해하오. 청컨대 장릉을 그와 바꾸도록 해주시오.”

도적들은 장범의 말에 의로움을 느껴 모두 장범에게 돌려보냈다. 태조가 형주(荊州)로부터 돌아온 후에 장범은 진군(陳)에게 태조를 만났는데, 태조는 그를 의랑(議郎)으로 삼고 승상(丞相)의 군사(軍事)에 참여시켰으니, 매우 존경받고 중용된 것이다. 태조는 정벌하러 갈 때, 항상 장범을 병원(邴原)과 남도록 하여 세자(世子 : 조비)와 함께 수도를 지키게 했다. 태조는 문제에게 말했다.

“행동거지는 반드시 이 두 사람(장범과 병원)에게 자문을 구하도록 하라.”

세자는 장범과 병원에게 아들과 손자로서의 예의를 갖췄다. 장범은 궁핍한 사람들을 구제했으므로 집안에는 남아 있는 재물이 없었으며, 도성 안팎의 고아들과 과부들도 모두 그에게 귀의하였다. 대체로 보내온 물건을 거스르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떠날 때 물건을 모두 돌려보냈다.
건안(建安) 17년(212)에 장범이 세상을 떠났다. 위나라가 처음에 건국되었을 때, 장승은 승상참군좨주(丞相參軍祭酒)의 관직에 있으면서 조군태수(趙郡太守)를 겸임했는데 정치와 교화가 크게 추진되었다. 태조는 서쪽을 정벌하려고 하면서, 장승을 초빙하여 참군사(參軍事)로 삼았다. 장승은 장안(長安)에 도착하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서: 위문제가 즉위하자, 장범의 손자인 장참(張參)으로 랑중(郎中)으로 삼았다. 장승(張承)의 손자인 장소(張邵)는 진나라때 중호군(中護軍)이 되었고, 나중에 양준(楊駿)과 함께 피살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진서(晉書)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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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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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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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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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하나 추가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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