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녕전]]에서 분할
 
왕렬(王烈)의 자는 언방(彦方)이며, 당시 그의 명성은 병원이나 관녕보다 높았다. 그가 요동으로 피난왔을 때, 공손도의 장사(長史)로 임명하려 하자 사양하고 장사를 하며 스스로를 더럽혔다. 태조가 그를 승상(丞相)의 속관과 징사(徵事)에 임명하였으나 가지 않았고, 바다의 저쪽(요동지방)에서 죽었다.


주:《선현행장(先賢行狀)》에는 왕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왕열은 여러 가지 지식과 도에 통달했지만, 의가 아니면 돌아보지도 않았다. 영천(穎川)의 진태구(陳太丘)를 스승으로 받들었으며, 스승의 두 아들과 친구로 지냈다. 당시에 영천에는 순자명(荀慈明), 가위절(賈偉節), 이원례(李元禮), 한원장(韓元長)과 같은 사람들이 모두 진태구에게 배움을 청하로 왔으나, 그 가운데 왕열의 기량이 워낙 출중하여 모두가 감복하며 따랐다. 그의 이름은 해내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영천에서 도와 덕을 이룬 그는 고향의 초려로 돌아왔으나 마침 조부의 상을 당해 3년 동안 눈물을 흘렸다. 마침 대기근이 닥쳐서 굶주린 사람들이 길을 메우자, 왕열은 자신의 창고에서 먹을 것을 풀어 읍민들을 구했다. 종족들은 그를 효자라 불렀으며, 읍민들은 어질다고 했다. 전적을 공부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으며,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념하여 학교를 세우고 상서(庠序)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가 사람들을 이끄는 방법은 성품과 기질을 잘 파악하여 도에 합당하도록 깨우쳐주고, 선을 따르고 악을 멀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교화를 철저히 하자 모두가 소중한 인재로 바뀌었다. 그의 문인들은 출입을 할 때 용모를 단정히 했으며, 시정에 있을 때에는 걸음걸이마저 다른 사람과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왕열의 문인들임을 구분했다. 고을에 이러한 풍조가 생겨나자 모두가 선한 사람으로 변했다.


당시에 소를 훔친 사람이 있었는데 소의 주인이 따라가서 그를 잡았다. 도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무래도 무엇엔가 홀렸나봅니다. 이후로는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지금 저를 용서해주시더라도 제발 왕열선생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어떤 사람이 그 사실을 왕열에게 알렸더니, 왕열은 도둑에게 베 한 단을 주었다. 어떤 사람이 도둑은 선생님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오히려 왜 베를 주느냐고 물었다. 왕열은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에 진목공(秦穆公)은 그의 준마를 훔쳐서 잡아먹은 사람에게 술을 주었다. 나중에 그 도둑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목공을 위기에서 구했다. 지금 저 도둑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으며, 나에게 그 소문이 들어갈까 겁을 먹었다고 하니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착한 마음도 생겨난다. 내가 저 사람에게 베를 준 것은 착한 마음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그 해에 어떤 노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대신 집을 지고 집까지 왔다가 지고 왔던 짐을 잘 두고 돌아갔다. 노인이 이름을 물었지만 그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무렴 그 노인이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칼을 잃어버렸다. 나중에 길을 가던 사람이 칼을 보고 그것을 그 자리에 그냥 두고 가려고 하다가, 뒤에 오는 사람이 칼을 가지고 가면 주인이 다시는 칼을 찾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으며,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여 다시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칼을 지키고 있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칼의 주인이 돌아와 보니 전에 대신 짐을 져다 준 사람이었다. 노인은 그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이렇게 물었다.

“전에는 대신 짐을 져주고도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더니, 이번에는 내 칼을 길에서 지켜주셨소이다. 그대와 같이 어진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이름을 가르쳐 주시오. 내가 왕열선생에게 알리겠소.”

노인은 그의 이름을 듣고 왕열을 찾아가 그 사실을 알렸다. 왕열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어진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만난 적이 없소.”

왕열이 사람을 시켜 그 사람을 따라가 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전에 소를 훔쳤던 사람이었다. 왕열은 이렇게 탄식했다.

“소악(韶樂)은 9가지 음이 어우러지고, 우(虞)의 빈객들은 화목하게 지낸다더니, 사람을 감동시키면 이러한 경지까지 이르는구나!”

왕열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그를 남달리 대했다.

당시에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다툴 일이 있으면 왕열을 찾아가다가, 막상 왕열의 초려가 보이면 도로 돌아갔다. 다투던 사람들은 서로 당신이 옳았다고 말하면서 자기들이 다툰 사실이 왕열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라의 일을 맡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친히 마차를 타고 왕열의 집을 찾아서 정령(政令)을 물었다. 효렴으로 천거하자는 논의가 잇달았으며, 삼부에서 모두 왕열을 정중히 모시고자 했지만 그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동탁의 난이 발발하자 요동으로 피난을 갔던 그는 그곳에서 몸소 농기구를 잡고 일을 했으며, 사민(四民)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는 포의(布衣)을 입고 소박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즐겁게 살았다. 동성(東城)의 사람들은 그를 군주처럼 받들었다.

당시에는 세상이 몰락하여 참된 지식인이 별로 없었으며, 붕당을 이루어 서로를 비방하는 일이 만연했다. 이러한 세상을 피해 동국으로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러한 일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왕열과 함께 살면서는 조금도 그러한 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왕열이 있을 때 요동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없었으며,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경우도 없었다. 장사군들도 시장에서 물건을 팔 때 함부로 가격을 배기거나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없었다. 조조가 그를 여러 차레 불러서 요동에 대한 문제를 풀고자 했지만 차마 요동으로 보내지는 못했다. 건안(建安) 23년에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워 있다가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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