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전]]에서 분할


위략에서 이르길 - 


당시의 은자 가운데에는 하동 출신으로 자를 효연(孝然)이라 했던 초선(焦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중평(中平) 말년에 백파(白波)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 때 20여세였던 초선은 같은 군에 있는 후무양(侯武陽)과 친하게 지냈다. 후무양은 나이가 어렸으며 초선과 함께 어머니를 모셨다. 백파의 난이 일어나자 후무양은 양주(揚州)로 피신했다가 그것에서 아내를 얻었다. 건안 초에 서쪽으로 돌아온 후무양은 대양(大陽)의 점호(占戶)를 찾아갔지만 초선은 섬계(陝界)에 남았다. 건안 16년에 관중(關中)에서 난리가 일어나자 가족을 잃은 초선은 홀로 황하(黃河)와 저수(渚水) 사이를 헤매면서 풀을 뜯어먹고 물을 마시며 옷과 신발도 없이 살았다. 당시에 대양장 주남(朱南)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도망친 사대부라고 하며 선박을 보내어 잡아오려고 했다. 후무양은 미친 사람이라고 하여 그를 호적에 넣었다. 그는 창고에서 하루에 5되의 식량을 지급받을 수가 있었다.


나중에 역병이 돌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현에서는 그에게 죽은 사람을 매장하도록 하자 어린아이들이나 천한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그를 도왔으므로 쉽게 일을 처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길을 걸을 때에는 구불구불한 길이나 샛길을 따라서 걷지 않고, 반드시 천맥(阡陌)12)을 따라서 걸었다. 떨어진 곡식을 주우려고 했지만 그리 많이 줍지 못했다. 굶주렸지만 먹을 것이 없었고, 추웠지만 입을 옷이 없었기 때문에 풀을 엮어서 옷 대신 입고 다녔으며, 관이나 두건을 쓰지 못해 맨 머리로 다녔다. 과우려(瓜牛廬)13)를 짓고 깨끗이 청소를 한 다음 그것에서 살았다. 나무로 침상을 만들었으며, 풀을 그 위에 깔고 잤다. 외출을 할 때 여자들을 만나면 숨었다가 그들이 가고난 후에 다시 가던 길로 갔다. 날씨가 추워지면 호깨나무에 불을 붙여서 몸을 데웠으며, 혼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배가 고프면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었으며, 배가 부르면 나머지를 두고 그냥 돌아왔다. 외출을 했을 때 사람들과 만나면 길 아래로 숨었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초려에 사는 사람은 여우나 토끼와 마찬가지라오.”

태화(太和)와 청룡(靑龍) 년간에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황하의 얕은 곳을 골라서 남쪽으로 건너간 적이 있는데, 혼자서 건널 수가 없다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가 미치지 않은 사람이라고 의심했다. 가평(嘉平) 연간이 되자 태수 가목(賈穆)이 부임하고 처음으로 그의 초려를 지나갔다. 가목을 본 초선은 두 번 절을 했다. 가목이 말을 걸었으나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먹을 것을 주어도 먹지 않았다. 가목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가에서는 나에게 경을 군자로 만들라고 해서 왔는데, 내가 경에게 먹을 것을 주어도 경은 먹지 않으려고 하고,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내가 경을 군자로 여길 수가 없소이다. 지금 가겠소이다.”

그러자 초선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찌 그렇게 했겠습니까?”

이듬해 군사를 크게 일으켜 오를 정벌하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몰래 초선을 찾아와 지금 오를 토벌하고자 하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이냐고 물었다. 초선은 거기에 응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알 듯 말 듯한 노래를 불렀다.

“축뉵축뉵(祝衄祝衄), 비어비육(非魚非肉), 본심위당살장양(本心爲當殺牂羊), 경살기고력야(更殺其羖#邪)”

군민들은 누구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 여러 군사들이 대패를 하자 호사가들은 장양은 오를 가리켰으며, 고력은 위를 가리켰다고 추리했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가 진정한 은자임이 증명되었다고 말했다. 하동 출신으로 의랑이었던 동경(董經)은 특히 그의 절조를 남다르게 여겼으며, 초선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몰래 그를 살펴보려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동경은 그가 이미 흰 수염이 난 것을 보고 옛 친구를 대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선(阿先)은 잘 있었는가? 함께 백파의 난을 피했던 시절이 생각나지 않는가?”

초선을 그를 한참 동안 보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경은 그가 전에 후무양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알고 있었으므로 다시 이렇게 말했다.

“무양은 생각나지 않는가?”

초선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미 그의 은혜를 갚았다오.”

동경이 다시 그의 말을 끄집어내려고 일부러 이런저런 말을 걸었지만 그는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선은 나중에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사전》에는 초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다른 기록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초선이 언제 태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후한 말에 태어나 섬서에서 대양으로 옮겨갔으며, 부모나 형제, 처자도 없이 살았다고 한다. 한왕실이 망하자 그는 스스로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위(魏)가 선양을 받자 그는 풀을 엮어서 초가를 짓고 황하의 지류인 미수(湄水)에서 홀로 지냈다. 여름이나 겨울을 막론하고 항상 옷을 입지 않고 지냈으며, 누울 때는 자리를 깔지도 않았다. 또 풀로 엮은 돗자리 하나도 깔지 않고 맨 땅에서 지냈으므로 그의 몸은 진흙을 발라놓은 것처럼 더러웠다, 온 몸을 드러내고 지냈으므로 사람들이 있는 곳은 가지 않았다. 몇 일에 겨우 한 끼를 먹고 지냈으며, 밥을 먹고 싶으면 반드시 일을 하고 얻어먹었다. 사람들이 좀 더 넉넉하게 주면 그는 자신이 일을 한 만큼만 받았고, 한 끼 식사를 하고는 곧 가버렸으며 몇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을 때도 있었다. 길을 갈 때에는 좁은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말을 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놀라운 일을 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또 먹고 남은 음식을 받지 않았다.

하동태수 두서(杜恕)가 옷을 가지고 그를 맞이하러 갔지만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사마사(司馬師)가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안정태수 동경을 시켜서 그를 찾아가 살펴보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서는 그를 대현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들판에 불이 나서 그의 초가가 몽땅 타버렸다. 초선이 잠자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겨울에 큰 눈이 내렸지만, 그는 아무 것도 덮지 않고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가 죽었을까 걱정하여 가서 살펴보았더니 병 하나도 걸리지 않았으므로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을 때 이미 100살이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황보밀(皇甫謐)에게 초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황보밀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를 알 능력이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어야 대략이라도 말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항상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고, 그 형체는 옷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몸은 자신이 사는 집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입으로는 하지 못하는 말이 없으며, 마음으로는 자신의 친척과 끊지를 못합니다. 초선은 이미 맛있는 음식을 버렸으며, 옷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집과 방에서 떨어져 버렸으며, 친착들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게다가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밝은 곳에 있을 때는 천지를 집으로 삼고, 어두운 곳에 있을 때는 지고지선의 도와 합치되었습니다. 나올 때는 온갖 형체가 드러나며, 들어가서는 오묘하고 고요한 곳에서 그윽하게 지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그의 생각을 가늠이나 하겠습니까? 아무리 넓은 사해(四海)라도 그의 진면목을 담지 못할 것이므로, 그 오묘함은 삼황(三皇)과 같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승(結繩)을 한 이후로 감히 누구도 그와 같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 그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가늠이나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절대로 다니지 않으니 감히 감당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더위와 추위도 그의 본성을 해치지 못하고, 광야에서 살더라도 자신의 몸이 망가질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놀랍고 위급한 경우를 만나더라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그의 마음은 영욕과는 이미 멀어졌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도 그의 눈과 귀를 더럽히지 못합니다. 발로는 잘못된 곳을 디디지 않고, 몸은 홀로 자유로운 곳에 거처하니 세월이나 나이도 이미 그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제가 그를 높이고자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복희(伏羲) 이래로 그와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위씨춘추에서 이르길:

양주자사(梁州刺史) 경보(耿黼)는 초선을 신선이라고 말했으며, 북지(北地)의 부현(傅玄)은 성품이 금수(禽獸)와 같다고 했으니 그만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는 증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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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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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엑, 순서가 잘못됨, 초선이 호루보다 위에 있어야하는데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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