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엽(劉曄)은 자가 자양(子揚)이며 회남군 성덕현 사람이다. 동한 광무제 유수의 아들 부릉왕(阜陵王) 유연(延)의 후예이다. 부친의 이름은 유보()이고 어머니는 수()씨인데, 유환(渙)과 유엽을 낳았다. 유환이 아홉 살때, 유엽은 일곱살이었으며, 그들의 어머니는 병이 심각했다.

"너의 부친의 시비는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해치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내가 죽은 이후에 반드시 우리 집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 걱정된다. 너희들이 장성하여 능히 그를 없애버릴 수 있다면 나에게는 유한이 없겠다."

유엽의 나이 13세 때, 형 유환에게 말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유환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유엽은 즉시 방으로 들어와 시비를 죽이고 곧장 문을 나와 그의 어머니 묘에 참배하였다. 집안 사람들은 크게 놀라 유보에게 알렸다. 유보는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유엽을 추격하게 했다. 유엽은 집으로 돌아와 사죄하여 말했다.

"죽은 어머니가 남기신 말씀이므로 감히 함부로 주살하는 정벌을 받을수는 없습니다."

유보는 마음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여기며 마침내 그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여남군의 허소(許劭)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양주 땅에까지 피신해 왔는데, 유엽을 일컬어 세상을 보좌할 인물이라고 했다. 양주의 선비들은 대부분 경솔하고 무예를 좋았으며, 교활하고 오만했다. 정보(鄭寶), 장다(張多), 허건(許乾)과 같은 무리들은 각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정보가 가장 날쌔고 과감하여 재능과 힘이 다른 사람을 능가하여, 한쪽 사람들에 의해서 거리낌을 받았다. 그는 백성들을 내몰고 핍팍하여 장강을 건너 강남으로 가게 했는데, 유엽은 높은 가문의 명사이기 때문에 유엽을 핍박하여 그를 다신하여 이런 계획을 제창하도록 하려고 했다.

유엽은 당시 스물 살 남짓이었고, 마음속으로는 내심 이를 우려하였으나, 연유를 알지 못했다. 때마침 조조가 사자를 파견하여 주에 오게 하여 몇 가지 사정을 물어보았다. 유엽은 앞으로 나아가 사자를 뵙고 이 주에서 일어난 이러한 사건의 행세를 논하고는 그와 자신이 함께 돌아가 며칠 동안 머물자고 했다. 정보는 과연 수백명의 백성을 거느리고 쇠고기와 술로 사자를 대접하러 나왔다. 유엽은 가동과 그 무리들을 좌중의 문밖에 서있도록 하고 술과 밥을 차려 주었다. 유엽 자신도 정보와 함께 그의 내당에서 술자리에 참석했다.

유엽은 비밀리에 건장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그가 술잔을 따라주는 틈을 이용하여 정보를 베어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정보는 성품이 술을 좋아하지 않아 술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사자를 만났을 때 정신이 매우 멀쩡하였으므로 술잔을 돌리는 틈을 이용하여 그를 베는 계획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유엽은 이로 인하여 직접 정보의 머리를 베어 그가 데리고온 군대에게 호령하여 말했다.

"조공의(조조) 명령이 있으니 감히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정보와 마찬가지로 다스리겠다!"

무리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 하면서 군영으로 달아났다. 군영에는 정병 수천명을 감독하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들이 혼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했다. 유엽은 즉시 정보의 말을 빌려 타고 가동 몇 명을 데리고서 정보 진영의 문 앞에 가서 그 두목에게 소리쳐 화복을 비유하여 설명하니,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고 문을 열고 유엽을 받아주었다. 유엽이 그들을 달래주고 편안하게 하니 모두들 기뻐하며 복종하여 유엽을 주인으로 추대했다.

유엽은 한나라 왕실이 점점 쇠미해져 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한나라 왕족의 지파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사사롭게 병사들을 인솔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막 거두어들인 부하들은 여강태수 유훈(劉勳)에게 위촉하게 되었다. 유훈이 그 까닭을 이상하게 여기자 유엽이 말했다.

"정보는 법과 제도도 없었고 그의 무리들은 평소에 노략질하는 것으로써 이로움을 삼았소. 내 집에는 그들에게 대줄 자금도 없으니 내가 만일 그들을 정돈하여 재편하려고 하면 반드시 나에게 원한을 품게 되어 오래 버티기가 어렵소. 따라서 그들을 당신에게 넘기는 것이오."

이때 유훈의 병사들은 장강과 회수 사이에서 세력이 막강했다. 손책(孫策)은 그것을 두려워 하여, 사자를 파견하여 말을 낮추고 페백을 후하게 하여 글로써 유훈을 설득했다.

- 상료 지역의 종족과 백성들은 몇 차례에 걸쳐 내나라를 기만해 왔고, 나는 그들에게 노여워한 지 몇 해가 되었소. 내가 그들을 공격하려 하지만 길이 불편했고 원하건데 당신의 큰 나라를 빌려 그들을 정벌하려고 하여, 상료지역은 아주 풍족하여 그것을 얻으면 나라를 풍부하게 할수 있소. 정컨데 병사를 내어 밖에서부터 구원해 주기를 바라오. -

유훈은 손책을 믿었으며, 진주, 보옥, 갈포 등의 선물을 얻고 매우 기뻐했다. 내외의 모든 관리들이 모두 가서 유훈을 축하했는데, 유엽만은 유독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훈이 이상하게 여겨 유엽에게 묻자, 유엽은 대답하여 말했다.

"상료는 비록 작지만, 성은 견고하고 못이 깊어 공격하기는 어렵고 막기는 쉽습니다. 만일 열흘안에 공략하지 못하면, 병사들을 지치고 국내는 텅 비게 됩니다. 손책이 만약 이를 틈타서 우리를 공격해오면 후방을 어떻게 지킬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장군께서는 전진하려다가 적에게 굴욕을 당하고 물러날 곳조차 잃어 버리게 됩니다. 만일 장군께서 손책의 말을 듣고 군대를 출동시키면 재난은 바로 닥칠것입니다."

그러나 유훈은 듣지 않고 군대를 일으켜 상료를 토벌하러 갔다. 손책은 과연 유엽의 말대로 그들의 후방을 공격했고, 유훈은 조조에게로 달아났다.

조조가 수춘에 이르자, 그 당시 여강군의 경계에 진책(陳策)이라는 산적이 무리 수만명을 데리고 험준함을 근거지로 삼아 막고 있었다. 이전에 편장(부대장)을 보내 주살하도록 했으나 사로잡을 수 없었다. 조조가 막하의 여러 사람에게 토벌할 수 있는지를 다그쳐 묻자, 모두가 말했다.

"이곳의 산은 험준하고 높고 계곡은 깊으며 좁아 수비하기에 유리하고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곳이 없어도 그다지 손해를 볼것이 없으며 이곳을 얻는다 해도 이로울게 없습니다."

그러나 유엽은 말했다.

"진책 등은 별 볼일 없는 놈이었지만, 혼란을 틈타 험준한 곳으로 달려와 드디어 서로 의지하여 강해졌을 뿐입니다. 그들은 조정의 봉록과 임명 위신 등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서로 죽일 뿐입니다. 지난번에 편장의 자격이 미미하여 중원은 평정되지 않았으므로 진책 등이 감히 험준함에 의거하여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천하가 거의 평정되어 가고 있으니, 나중에 복종시키려면 먼저 주살해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은상으로 달려가는 것은 어리석은 자이건 지혜로운 자이건 한결 같습니다. 때문에 광무군은 한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그의 위세와 명성이 충분하여 먼저 명성을 쓰고 나중에 병력을 동원하여 이웃나라를 복종시켰다고 합니다. 하물며 명공의 성덕으로써 동방을 정벌하면 서쪽이 원망하게 되니 은상을 먼저 주어 항복할 것을 호소하고 많은 병력을 그들에게 나아가게 하면 명령이 선포되는 날에 군문이 일단 열리고 적들은 스스로 무너지게 될것입니다."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적당하오!"

드디어 날랜 장수를 앞세우고 대군은 뒤에 있게 하고 도착하여 진책을 쳐부쉈는데 모두 유엽이 예상했던 바와 같았다. 조조는 돌아와 유엽을 불러 사공창조연으로 삼았다.


부자에서 이르길: 조조는 유엽 및 장제(蔣濟), 호질(胡質) 등 다섯 사람을 초빙했는데, 모두 양주의 명사였다. 그들은 수도로 향하는 도중 역에서 투숙하게 되었는데, 안으로는 출신지의 과거의 현명한 인물들, 적을 방어하면 굳건히 수비한 것, 군대를 출동시켰을 때의 전진과 철수의 적절함 등에 대해서 논의하였고, 밖으로는 적의 변화, 적과 우리의 허실, 전투 기술 등을 추론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의론으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유엽은 혼자 수레 안에 누워 있으면서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장제가 괴이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묻자,


“현명한 군주를 대할 때, 정신이 그르면 받지 못합니다. 정신은 배워서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대답했다. 조조를 만나자, 조조는 과연 양주의 선현, 적의 형세에 관해 질문했다. 네 사람은 다투어 대답하여, 순서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이와 같은 회견이 두 차례 있었는데, 조조는 매번 기뻤지만, 유엽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그 일을 웃었다. 후에 회견할 때는 조조가 입을 다물고 묻지 않았는데, 유엽은 처음으로 심원한 말을 하여 조조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조조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일이 세 번 있었다. 그 취지는 심원한 말은 정신에서 구해지는 것이므로, 한 사람하고만 회견할 때 기인함이 충분한 것이지, 좌담을 하면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조는 그 마음을 알았으므로 회견을 끝냈다. 후에 네 사람을 현령으로 임명했는데, 유엽에게는 충복의 임무를 주었다. 의문 나는 일이 있으면 항상 봉함한 서간으로 유엽에게 질문했고, 하룻밤에 7,8 차례 질문이 오갈 때도 있었다.


조조가 장로(張魯)를 정벌할 때, 유엽을 전임시켜 주부로 삼았다. 이미 한중에 이르렀는데 산이 험하여 오르기 어려웠고 군량미도 거의 바닥 났다. 조조가 말했다.

"이곳은 요망한 나라일뿐이니 이것을 가지고 있건 없건 간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우리 군대는 식량이 적으니 속히 돌아가는 것이 낫겠소."

그리고는 대군을 이끌고 돌아가려고 하고, 유엽으로 하여금 후방의 모든 군대를 감독하게 하여 군대를 차례차례 빠져 나가게 했다. 유엽은 장로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고는 식량 수송로를 끊어버렸다. 군대가 비록 빠져 나왔으나, 모두 목숨을 보전할 수는 없었기에 말을 달려 조조에게 말했다. 

“공격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조조는 마침내 군대를 나아가게 하고, 궁수를 많이 뽑아 장로의 진영으로 화살을 쏘게 했다. 결국 장로는 달아났고 한중은 평정되었다. 유엽이 진언했다. 

“명공께서 보병 5천을 거느리고 동탁(董卓)을 주살시키고, 북쪽으로는 원소(袁紹)를 쳐부수고, 남쪽으로는 유표(劉表)를 정벌하여 중국의 9개 주(州)와 1백 개의 군(郡)의 10분지 8이 병탄되었으니, 위업은 천하에 진동하며 위세는 나라 밖까지 떨치고 있습니다. 이제 한중을 공략하자, 촉나라 사람들은 풍향을 바라보며, 담(膽)이 깨지고 막아내는 데 실패할까 두려워하고 있으니, 이전 것을 미루어 진격하시면, 촉나라는 격문(檄文)만 전해도 평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비(劉備)는 인걸(人傑)로서 도량이 있고 계략도 있지만, 촉나라를 수중에 넣은 지 얼마 안되므로 촉나라 사람들은 아직 믿고 의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제 한중을 깨뜨렸으므로 촉나라 사람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그 형국은 자연스럽게 기울어지게 됩니다. 귀신과 같은 명공의 통찰력을 이용하여, 그들이 기울어지는 것을 틈타 무너뜨리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들을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두어 제갈양(諸葛亮)은 다스리는데 밝아 재상이 되고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는 삼군(三軍)을 뒤덮을 만한 용맹으로 장군이 되고, 촉나라 백성들이 이미 안정되었다면, 험준한 곳을 거점으로 하여 요충지를 지켜도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 공격해서 취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조조는 듣지 않고,[주] 대군을 데리고 돌아갔다. 유엽은 한중으로부터 돌아온 이후에 행군장사(行軍長史)가 되어 영군(領軍)의 직책을 겸하였다. 


[주]부자에서 이르길: 조조의 군대가 촉나라에 머문 지 7일이 되었는데, 촉나라에서 항복해 온 자가 말하기를


“촉나라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동요가 있어, 유비가 그들을 베었지만 안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라고 했다. 조조가 유엽을 불러 물어 보기를


“지금 오히려 공격하면 어떨까?”


라고 하자, 유엽은


“지금은 다소 안정되어 있으므로 공격하면 안됩니다”


라고 대답했다.

연간 원년(220)에 촉나라 장수 맹달(孟達)이 무리를 이끌고 항복했다. 맹달은 용모와 재능과 견해가 있어 문제는 그를 매우 중시하여 그를 신성(新城)태수로 삼게 하고 산기상시를 더했다. 그러자 유엽이 주장했다. 

“맹달에게는 구차하게 요행을 얻으려는 심리가 있고, 재능을 믿고 권술(權術)을 좋아하여 반드시 은혜를 느껴 의리를 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신성이란 곳은 오나라와 촉나라의 연접되어 있으므로, 만일 사태가 변하게 되면, 그는 국가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끝까지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나중에 맹달이 모반하여 위나라를 그르치게 했다.


부자에서 이르길: 조조가 다스릴 때, 위풍(魏諷)이 높은 평가를 받자, 공경과 재상 이하의 모든 관리가 그에게 마음을 쏟고 사귀려 했다. 그 후에 맹달이 유비를 떠나 문제(조비)에게 귀환하였을 때, 논의하는 자들은 그를 일컬어 전국시대의 연(燕)나라 재상이었던 악의(樂毅)의 재주가 있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유엽은 위풍과 맹달을 단 한 번 만나보고 그들을 모두가 모반할 것이라고 했는데, 결국 이 두 사람은 유엽이 말한 대로 모반했다.

황초 원년(220), 유엽을 시중으로 삼고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다. 손권이 관우를 주살한 후에 문제는 조칙을 내려 모든 신하들에게 물어 유비가 관우를 위하여 오나라에 보복하려는지 않으려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모두들 논의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말했다. 

“촉나라는 작은 나라일 뿐이며, 명장(名將)으로는 오직 관우만 있었습니다. 관우가 죽고 군대는 무너졌으며, 나라 안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다시 출동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유엽만은 혼자 이렇게 말했다. 

“촉나라가 비록 국토가 좁고 세력도 약하지만, 유비는 권모로는 위엄과 무략으로써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있으며, 세력은 반드시 병력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넉넉한 것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할 것입니다. 또한 관우와 유비는 도의상으로는 군신(君臣) 관계지만, 은혜는 마치 부자(父子)의 관계입니다. 관우가 죽었는데 군사를 일으켜 적에게 복수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 사이의 평생의 정분(情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유비는 과연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는 모든 국력으로 유비의 군대에 대응하였으며, 위나라에 사자를 파견하여 번국(蕃國)이라고 일컬었다.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축하했으나, 유엽은 홀로 말했다. 

“오나라는 격절되어 장강과 한수의 바깥에 있으며, 속으로는 신하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비록 덕망이 유우(有虞:순임금)와 같지만, 오나라는 더러운 성질이 있어서 감동한 바가 없습니다. 오나라는 재난을 당했기 때문에 신하이기를 구한 것이므로 반드시 믿기 어렵습니다. 저들은 반드시 외부로부터는 핍박받고, 내부로는 힘겨워진 연후에 이런 사신을 보냈을 뿐이니, 그들의 곤궁함을 틈타 공격하면 그들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무릇 하루라도 적을 내버려둔다면, 몇 세대의 근심을 남기게 되므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비의 군대가 패하여 달아나자, 오나라는 위나라에 대해서 예의와 경의를 바꿔 그만두었다. 문제가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유엽은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고 말했다. 

“저희들은 뜻을 막 얻었으며, 위아래가 마음이 일치되어 있으며, 강과 호수가 가로막혀 있으므로 갑작스럽게 공략하기는 반드시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는 듣지 않았다. 


부자: 손권이 사자를 보내 항복을 하려한다고 하자 문제는 그것을 유엽에게 자문했다. 유엽은 말했다.


"손권이 이유없이 항복을 하는 것은 그것은 국내에 비상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지요. 손권은 이전에 관우를 습격해 죽였고 형주의 네 개의 군을 빼앗았으므로, 분노한 유비가 반드시 성대하게 토벌을 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국외에 강적이 있어 사람들이 마음은 불안하게되어 게다가 중국이 그틈에 정벌하고 오는 것은 아닐까 무서워서, 토지를 버리고 항복을 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중국의 병사(조비의 군사)를 방어하고, 두 번째로 우리들의 원군을 빌려 그것에 의해 자군을 강하게 하고, 적병에게 유혹하려 하고 있습니다. 손권은 용병에 교모하고 책략 변화를 알고 있는 있으므로, 이번의 그의 항복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지금 천하는 삼분으로 나뉘어 중국이 10개 중에 8개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각각 오나라와 축나라가 차지하고 있으면서, 각각 산을 방패로 삼고 강에 의지해 있는데, 이들은 위급한 일이 생기면 필히 서로 돕습니다. 그런데 현재 자기들 서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하가 그들을 망하게 할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부디 대군을 일으켜 즉시 장강을 건너 그들의 심장부를 습격하시시오. 촉이 오의 바깥쪽을 공격할때 우리가 그 안쪽을 습격하면 오나라는 1개월 이내에 망할 것입니다. 오나라가 망하면 촉나라는 외톨이가 됩니다. 만약에 오의 반을 잘라냈다고 해도 촉은 혼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하물며 촉이 그 오의 바깥쪽을 먹고 우리가 안쪽을 먹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황제가 말했다.


"타인이 신이라고 칭하면서 항복하고 있는데, 그것을 토벌한다면 천하 중 항복하려는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이니, 그것은 두려워해야할 일로 불가합니다. 또 내가 오나라의 항복을 받은 후에 촉나라를 습격하는 것은 어찌 불가능하겠는가?"


유엽이 대답했다.


"촉은 멀고 오는 가깝습니다. 또 중국이 촉을 정벌하러 간다는 소문을 들으면, 촉나라는 곧바로 군대를 되돌릴 것이니, 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유비가 화가 잔뜩 났으므로 병사들을 일으켜 오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오를 공격한다면 오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알고 더더욱 기뻐하며 진격해, 우리와 함께 오나라를 반분하는데 열심일 것으로, 필시 마음을 바꾸어 분노를 억제해 가며 오나라를 돕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는 유엽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곧 황제는 오나라의 항복을 받았고 손권을 오왕(吳王)으로 봉했다. 유엽이 또 말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선제(조조)께서 정벌에 나서 천하의 십분의 팔을 차지하여 위엄이 전국에 걸쳐 있고, 폐하께서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르자 그 덕이 천지에 퍼지고 명성이 사방에 미치고 있어, 이것은 말이 아닌 진짜 현실로서, 이는 비천한 제가 아부할려고 하는 소리가 절대로 아닙니다. 손권은 비록 영웅의 자질이 있기는 하나 한나라 표기장군 남창후(南昌侯)일 뿐으로, 관직이 낮고 세력은 미약하여, 백성이나 관리들이 우리 위나라를 두려워하고 있고, 감히 우리에 대하여 나서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장군의 호를 높여 10만호의 후로 봉하십시오. 그러나 왕으로는 봉하지 마십시오. 그가 왕이 된다면 천자와 한단계 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그의 복식이나 의복이나 거마가 천자와 비슷해 질 것입니다.


손권은 아직 작은 후(侯)에 불과하고, 강남의 새대부와 백성들은 아직 그에 대해서 군신의 의리를 맺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의 거짓항복을 믿고 그 작위와 칭호를 높여주면, 그들의 군신관계를 결정해주는 것으로, 그것은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입니다. 만약에 손권이 왕위를 받은 후에, 촉병을 쫓아내고 난 뒤에는, 겉으로는 위나라에 예를 다하는 것처럼 행동하여, 자국 영내의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무례하게 굴어 폐하를 노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때 폐하께서 노하시어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게 해도, 이내 자기네 백성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온몸을 바쳐 중국을 섬겼다. 진귀한 보물과 재화를 아끼지 않고 시도때도 없이 공헌했으며, 감히 신하의 예를 잃을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도 나를 벌하는 것은 필시 나의 국가를 멸하고 나의 백성들의 자녀들을 붙잡아 종이나 노예로 삼기 위한 것일 것이다.'


오나라 사람들은 그말을 믿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오나라 백성들은 분노하여 위아래로 한마음이 될 것이고,그럼 전력은 열 배로 증가될 것입니다."


황제는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았고, 손권을 오왕으로 봉하였다. 손권의 장수 육의(陸議; 육손)은 유비를 크게 격파하고, 유비의 병사 8만여명을 죽였고, 유비도 목숨을 구해 분주히 도망갔다. 손권은 표면적으로는 예를 다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손해졌으며, 결국에 유엽의 말처럼 되었다.


5년(224)에 문제는 광릉(廣陵)의 사구(泗口)에까지 친히 행차하여 형주와 양주의 모든 군대가 나란히 진격하도록 명했다. 문제는 모든 신하들을 모아놓고 물어보았다. 

“그대들이 보기에 손권은 당연히 영접하기 위해 스스로 오지 않겠소?” 

모두들 대답했다. 

“폐하께서 친히 정벌하시니, 손권은 두려워하면서 반드시 나라를 바치고 호응할 것입니다. 또한 감히 이렇게 대규모의 군대를 신하에게 위촉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병사를 이끌고 직접 올 것입니다.” 

그러나 유엽은 이렇게 말했다. 

“손권은 폐하께서 만승(萬乘)의 귀중함으로써 자신을 견제하려고 하고, 강과 호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은 다른 장군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군대를 이끌고 후방에 남아서 진격도 후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가 사구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지만, 손권은 과연 오지 않았으며, 곧 군사를 돌려야 했다. 군사를 돌리기 전에 말했다. 

 “그대의 계책이 옳았소. 내가 두 적(오나라와 촉나라)을 멸망시킬 수 있도록 염두에 두었다면, 단지 그들의 사정을 아는 데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오.” 

명제가 즉위하자, 유엽은 승진하여 동정후(東亭侯)에 봉해졌으며, 식읍을 3백 호 받았다. 조칙이 내려졌다. 

----- 조상과 선조를 존경하는 것은 효도를 숭상하고 행위를 기리는 바고,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 시조를 공경하는 것은 교훈을 돈독히 하고 감화를 입게 하는 것이다. 이로써 성탕(成湯:殷나라 초대 천자)․문왕․주왕(周나라 초대 천자)이 실제적으로 상(商)․주(周) 때에 《시경》과 《서경》의 교의(敎義)를 만든 사람이고, 직(稷:周나라 시조)․계(契:殷나라 시조)를 거슬러 존중하다 보면, 유융(有娀:超의 모친)과 강원(姜嫄:稷의 모친)의 사적(事迹)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위대한 덕의 원류를 밝힌 것이고, 천명을 받았던 유래를 설명한 것이다. 우리 위나라 왕실은 하늘이 정한 질서를 계승하여 이미 고황제(高皇帝)와 태황제(太皇帝)에게서 사절이 발현되었고, 그 공적은 무황제(武皇帝)와 문황제(文皇帝)에서 융성하였다. 고황제의 부친인 처사군(處士君:관직이 없는 사람)에 이르러서는 덕행과 겸양을 몰래 수양하였으며, 행동은 신과 같은 명석함이 있었으니, 이는 곧 건곤(乾坤:천지)이 내린 복이요, 빛나는 신령이 따라 내려온 바이다. 그러나 정신은 유원(幽遠)하고 호칭은 기억하기 어렵고, 이른바 효를 숭상하고 근본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공경 이하에게 명령하노니 모두 모여 호칭과 시호에 대해 논의하라. 

유엽이 상주하며 말했다. 

----- 폐하께서 성스런 황제와 효성스런 자손이 되어 선조를 기리고 존중하려는 것은 진실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친근과 소원함의 정도와 멀고 가까운 항렬이라도 대체로 예법과 기강이 있는 것이므로, 사사로운 감정을 잘라 끊어 버리고 공공의 법령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만세(萬世)의 법식(法式)이 되는 것입니다. 주왕이 후직과 같은 먼 조상을 받들었던 이유는 그가 당요(唐堯)를 보좌한 공적이 있고, 이름이 제의(祭儀)의 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초기에 이르러 선조에게 시호를 추증한 의로움은 한 고조의 부친에 불과합니다. 위로 주나라 왕실에 비유한다면, 위대한 위나라는 사적의 출발점이 고황제로부터 비롯되고, 아래로 한씨를 논한다면 시호를 추증한 예의가 그 조부에게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진실로 지나간 시대에 완성된 법식이며 현재에 이르러서도 명백해야만 되는 예의입니다. 폐하께서 마음속으로부터 효도할 생각을 하는 것은 진실로 부득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군왕의 거동에는 반드시 기록이 있게 되므로, 예법과 제도에 대해서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선조를 추존하는 예의는 마땅히 고황제와 일치시키면 될 뿐입니다. 

상서(尙書) 위진(衛瑧)과 유엽의 상주문이 같았으므로, 일은 이 두 사람의 견해에 따라서 시행되었다. 요동태수 공손연(公孫淵)이 숙부(公孫恭)의 태수 지위를 빼앗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태수 자리에 오르자, 사절을 파견하여 상황을 상주하도록 했다. 유엽은 생각했다. 

‘공손씨는 한나라 시대부터 임용되어 그 이후로 대대로 관직을 서로 이어주었다. 수로(水路)로 가려 하면 바다가 있고, 육로(陸路)로 가려 하면 산으로 막혀 있는 까닭에 만족(蠻族)이 살고 있는 멀고 끊어진 곳이라서 제압하기 어려워 대대로 권세를 잡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금 만일 그를 주살시키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근심이 생길 것이다. 만일 다른 마음을 품고 군대를 동원하여 막은 후에 주살시키려 하면 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가 이제 막 태수가 되었으므로,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무리도 있고 원수도 있을 것이니 그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선수 쳐서 군대를 그에게 이르게 하여 은상(恩賞)을 설치하고 항복을 유도하면 군대를 힘들이지 않고도 그를 평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공손연은 결국 모반했다. 

유엽은 조정에 있을 때, 당시 사람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유엽이 대답했다. 

“위 황실은 세워진 지 얼마 안되어 새로운 사람을 숭상하고 있소. 지혜로운 사람은 운명을 아는데, 속세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것 같소. 나는 한나라에서 지엽(支葉)이 되었으나, 위나라에 대해 충성할 마음을 갖추었소. 나와 같은 사람은 무리도 적어 마땅히 어떤 근심도 없을 것이오.” 

태화 6년(232), 그는 질병이 있어서 한직에 속하는 태중대부로 제수되었다. 얼마 지나서 대홍려가 되었으며 자리에 있은 지 2년 만에 자리를 물려주고, 다시 태중대부가 되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시호를 경후(景侯)라고 했으며 아들 유우(劉㝢)가 뒤를 이었다.


부자(傅子): 유엽이 명제(조예)를 섬길때, 황제의 커다란 심임을 받았다. 황제가 촉한을 치려하자 조정 안팎의 대신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아직 안됩니다."


이에 황제가 유엽을 불러 이 문제를 상의하자, 유엽이 말했다.


"촉을 정벌할 수 있습니다."


유엽이 밖으로 나와 조정대신들과 의논하면서 말했다.


"아직 어렵소."


유엽은 대담함과 지략이 있어 가벌과 불가벌 모두 일리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중령군 양기(楊暨)는 황제의 총신 중 한명이었는데 그 또한 유엽을 중히 여겼다. 그는 가장 강력하게 불가벌의 입장을 견지했는데 매번 궁에서 나와 유엽을 찾아갈 때마다 유엽은 불가벌의 견해를 피력했다. 후에 양기가 황제를 따라 천연지(天淵池)에 갔을때, 촉한을 치는 문제를 논하다가, 양기가 극간하자 황제가 발끈하여 말했다.


"경은 일개 서생 출신으로 어찌 군사를 안다고 하는 것이오"


양기는 송구해하며 변명하여 말했다.


"신은 그냥 유새의 말단의 출신입니다만, 어쩌다 폐하의 인정을 받아, 많은 신하들 중에서 저를 뽑아주셔서, 6군의 위에 세워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신은 사소한 것이라도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 말씀이 못 믿어우시면, 선제(先帝)의 모신이었던 유엽 역시 늘 불가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유엽은 나에게 가벌이라고 했소."


양기가 말했다.


"유엽을 불러 신과 대질할 만합니다."


이에 하조하여 유엽을 불러 황제가 묻자 유엽이 시종 말을하지 않았다. 후에 따로 황제를 독대하게 되자 유엽이 황제를 책하여 말했다.


"한 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국가의 대사입니다. 신은 국가의 기밀을 논의하는 데 참여한 까닭에 늘 미몽(잠꼬대)으로라도 누설되어 신의 죄가 더해질까 두려웠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다른 사람에게 이를 말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무릇 용병의 요체는 궤사(詭詐)에 있으니 군사행동은 시작이 없는 법이고 군사계획은 비밀스러우면 비밀스러울수록 더욱 좋은 것입니다. 폐하가 현연(顯然)히 이를 드러내니, 신은 적국이 이미 들었을까 두려울뿐입니다."


이에 황제가 미안함을 표시했다. 유엽이 밖으로 나와 양기를 만나 질책하여 말했다.


"무릇 낚시하는 사람이 한 마리 대어를 낚으면 줄을 풀어 주어 같이 따라다니다가 능히 제압할 수 있을때에 다시 끌어당기는 것이오. 그리하면 가히 얻지 못하는 것이 없는 법이오. 그런데 군주의 위엄으로 말한다면 어찌 한마리의 대어에 불과할 뿐이겠소. 그대는 참으로 정직한 신하이기는 하나 계모(計謨)가 채납할 만하지 못하오. 다시한번 자세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이에 양기도 그에게 사과했다. 유엽이 상황에 따라 쌍방으로 대처하는 모양은 이와 같았다.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유엽을 비난하여 말했다.


"유엽은 충성스럽게 진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위의 뜻을 엿본 후 이에 영합하는 데 능한 자입니다. 폐하가 한번 시험해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유엽과 얘기할 때 전부 반대의 뜻으로 그에게 물어 만일 그가 폐하의 질문에 상반되게 대답하면 그는 늘 폐하의 뜻에 영합하는 셈이 되빈다. 만일 매 질문마다 그가 찬동하게 된다면 유엽은 영합하려는 의도를 감출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황제가 그의 의견을 좇아 시험을 해보니 과연 유엽이 영합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이에 황제가 그를 소원하게 대하자 유엽이 마침내 발광(發狂)하여 대홍려(大鴻臚)의 자리를 내놓고 우울증에 빠진 후 이내 죽게 되었다.


옛부터()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교묘한 사술은 졸렬한 성의만 못함)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참으로 사람들을 신복케하는 말이다. 만일 유엽이 자신의 명지(明智)와 권계(權計:임기응변의 계책)로써 덕의(德義)를 굳게 지키고 충신(忠信)으로써 행동했으면 설령 고대의 뛰어난 현인조차 어찌 그를 넘을 수 있었겠는가.그러나 유엽은 단지 자신의 재지(才智)만을 믿고 성각을 돈독히 하지 않아 안으로는 군주의 신임을 잃고 밖으로는 세상의 압력에 군색하게 되어 끝내 자신을 해치게 되었으니 어찌 가석치 않다고 하겠는가."



<자치통감의 구절>

시중 유엽이 황제로부터 커다란 총애를 받게 되었다. 황제가 촉한을 치려하자 조정 안팎의 대신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아직 안됩니다."

이에 황제가 유엽을 불러 이 문제를 상의하자 유엽이 말했다.

"촉을 정발할 수 있습니다."

유엽이 밖으로 나와 조정대신들과 의논하면서 말했다.

"아직 어렵소."

유 엽은 담략과 지략이 있어 가벌과 불가벌 모두 일리가 있다고 말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중령군 양기는 황제의 총신 중 한명이었는데 그 또한 유엽을 중히 여겼다. 그는 가장 강력하게 불가벌의 입장을 견지했는데 매번 궁에서 나와 유엽을 찾아갈 때마다 유엽은 불가벌의 견해를 피력했다. 후에 양기가 황제가 촉한을 치는 문제를 논하다가 양기가 극간하자 황제가 발끈하여 말했다.

"경은 일개 서생 출신으로 어찌 군사를 안다고 하는 것이오"

양기는 송구해하며 변명하여 말했다.

"신의 말이 실로 가납키 어렵다 하더라도 시중 유엽 역시 선제의 모신으로 늘 불가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의아해 하며 반문하여 물었다.

"유엽은 나에게 가벌이라고 했소."

양기가 놀라 말했다.

"유엽을 불러 신과 대질할 만합니다."

이에 하조하여 유엽을 불러 황제가 묻자 유엽이 시종 말을하지 않았다. 후에 따로 황제를 독대하게 되자 유엽이 황제를 책하여 말했다.

"한 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국가의 대사입니다. 신은 국가의 기밀을 논의하는 데 참여한 까닭에 늘 미몽(잠꼬대)으로라도 누설되어 신의 죄가 더해질까 두려웠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다른 사람에게 이를 말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무릇 용병의 요체는 궤사(詭詐)에 있으니 군사행동은 시작이 없는 법이고 군사계획은 비밀스러우면 비밀스러울수록 더욱 좋은 것입니다. 폐하가 현연(顯然)히 이를 드러내니 신은 적국이 이미 들었을까 두려울뿐입니다."

이에 황제가 미안함을 표시했다. 유엽이 밖으로 나와 양기를 만나 질책하여 말했다.

" 무릇 낚시하는 사람이 한 마리 대어를 낚으면 줄을 풀어 주어 같이 따라다니다가 능히 제압할 수 있을때에 다시 끌어당기는 것이오. 그리하면 가히 얻지 못하는 것이 없는 법이오. 그런데 군주의 위엄으로 말한다면 어찌 한마리의 대어에 불과할 뿐이겠소. 그대는 참으로 정직한 신하이기는 하나 계모(計謨)가 채납할 만하지 못하오. 다시한번 자세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이에 양기도 그에게 사과했다.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유엽을 비난하여 말했다.

" 유엽은 충성을 다할 생각은 하지 않고 위의 뜻을 엿본 후 이에 영합하는 데 능한 자입니다. 폐하가 한번 시험해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유엽과 얘기할 때 전부 반대의 뜻으로 그에게 물어 만일 그가 폐하의  질문에 상반되게 대답하면 그는 늘 폐하의 뜻에 영합하는 셈이 되빈다. 만일 매 질문마다 그가 찬동하게 된다면 유엽은 영합하려는 의도를 감출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황제가 그의 의견을 좇아 시험을 해보니 과연 유엽이 영합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이에 황제가 그를 소원하게 대하자 유엽이 마침내 발광하여 대홍려의 자리를 내놓고 우울증에 빠진 후 이내 죽게 되었다.

이에 대해 <부자(傅子)>에 이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교묘한 사술은 졸렬한 성의만 못함)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참으로 사람들을 신복케하는 말이다. 만일 유엽이 자신의 명지(明智)와 권계(權計:임기응변의 계책)로써 덕의(德義)를 굳게 지키고 충신(忠信)으로써 행동했으면 설령 고대의 뛰어난 현인조차 어찌 그를 넘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유엽은  단지 자신의 재지만을 믿고 성각을 돈독히 하지 않아 안으로는 군주의 신임을 잃고 밖으로는 세상의 압력에 군색하게 되어 끝내 자신을 해치게 되었으니 어찌 가석치 않다고 하겠는가."


유엽의 어린 아들 유도(劉陶) 또한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품행이 경박하였으므로 관직은 평원(平原)태수에 머물렀다. [주]

주: 부자에 이르길 : 유도의 자는 계치(季冶)로, 명성과 칭송이 훌륭했으며, 뛰어난 구변이 있었다. 이때 조상이 선부랑(選部郎)으로 삼았고, 등양의 무리가 그를 이윤, 여상이라 하며 칭송했다. 이때, 이 사람의 뜻은 청운(青雲)마저 능멸하여, 부현(傅玄)에게 말하길 '공자는 성인이 아니오. 어떻게 (내가) 그걸 아느냐? 현명한 자는 나라를 도모하오. ; 천하에 흘러넘치는 바보들을 (상대하는 건), 손 안의 구슬을 갖고 노는 것과 같은데도, (공자는)천하를 얻을 수 없었소.' 부현이 그 말에 크게 당혹해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부현이) 그에게 말하길 '천하의 본질이라는 게, (늘) 변하는 것이고 일정치 않소. 이제 그대가 궁지에 빠진 것을 볼것이오!' 조상이 패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리하여 그 말이 지나쳤음을 사과했다.  

간보의 진기에 이르길 : 관구검(毌丘儉)이 기병하자, 대장군(사마사)가 유도에게 물었는데, 유도의 대답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일정치 않았다(依違). 대장군이 화를 내며 말하길 '그대는 평생 나와 더불어 천하의 일을 논하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도 아직 다 못한 것이오?!' 이에 평원태수로 내쫓았고, 또 쫒아가 그를 죽였다.

분류 :
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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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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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09
16:38:03
(*.104.141.18)
유엽전도 모든 주석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사냥꾼님의 이글루 알토란 삼국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L

2013.11.20
14:41:05
(*.65.131.125)
유엽 아들 유도 관련 배주인 부자의 기록 말인데, 해당 열전에서는 유도의 공자 관련 논쟁 상대가 하후현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권중달 자치통감에서는 부현이라고 하네요. 둘 다 이름이 똑같은 현玄이라 혼동된 것 같기는 한데, 어느 쪽이 올바른 번역인지 궁금합니다. (출처가 부현의 저서인 부자라는 걸 고려하면 하후현이 아닌 부현이 맞지 않나 싶긴 합니다만.)

코렐솔라

2013.11.20
15:24:23
(*.0.203.145)
부현으로 수정하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푸른미르

2014.03.04
01:34:58
(*.214.44.212)
뛰어난장수로는 → 명장

으로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원문에 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venne

2014.04.14
01:54:21
(*.111.14.48)
않아씅므로 ㅡ 오타 제보

재원

2014.04.15
15:11:45
(*.53.109.73)
오늘은 잠깐 시간이 나서 들렸는데 제보 감사합니다. 둘다 수정하였습니다.

코렐솔라

2016.08.02
14:57:33
(*.46.174.164)
양주의 선비드은->양주의 선비들은
핍ㄱ바->핍박
슴루->스물
도아가->돌아가
좌주으이->좌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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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버하며->기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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