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蔣濟)는 자가 자통(子通)이고, 초국(超國) 평아현(平阿縣) 사람이다. 벼슬길에 나와 군의 계리(計吏)와 주의 별가가 되었다.

건안 13년(208)에 손권이 병사들을 인솔하여 합비성을 포위했다. 그때, 위나라 대군은 형주를 정벌하고 있었고, 역병이 유행했다. 오직 장군 장희(張喜)만을 파견하여 단신으로 기병 천 명을 인솔하도록 하고, 여남을 지날 때 그곳의 병사들을 통솔하여 포위망을 풀도록 했는데, 이때 많은 사람이 역병에 전염되었다. 장제는 곧 비밀리에 자사에게 말하여, 정희의 편지를 받은 것처럼 위장하고, 장희가 이끄는 보병과 기병 4만 명이 벌써 우루(雩婁)에 도착하였으니 주부를 보내 정희를 맞도록 하라고 말했다. 세 조(條)의 사자가 편지를 갖고 성안의 수비대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 중 한 조는 성으로 들어갔지만, 두 조는 적에게 체포되었다. 손권은 그것을 믿고 긴급히 포위했던 진영을 불태우고 달아났으므로 성은 무사했다.

다음해, 장제는 사자로서 초현으로 나왔는데, 태조가 장제에게 말했다.

“옛날 내가 관도에서 원본초(원소)와 대치하고 있었을 때, 연(燕) 땅과 백마(白馬)의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는데, 백성들은 도주하지 않았고, 적 또한 감히 침략하지 않았소. 지금 회남의 백성들을 이주시키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오?”

장제가 대답했다.

“그때 조정의 병사들은 약하고 적은 강성했으므로, 그곳의 백성들을 이주시키지 않았다면 반드시 그들을 잃었을 것입니다. 원소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유성을 제압하고, 남쪽으로는 장강과 한수를 향하고, 형주가 항복한 이후로 위세는 천하에 떨쳤으며, 백성들은 다른 나라로 가려는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옛 땅을 연연해 하지만 실제로는 이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마음속으로는 반드시 불안해 할 것입니다.”

태조는 장제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장강과 회수 일대의 10여 만 호의 백성들은 모두 놀라 오나라로 도주했다. 후에 장제가 사자로 업현에 갔을 때, 태조가 마중을 나와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본래는 단지 적을 피하도록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들을 모두 쫓을 줄이야.”

장제를 단양태수(丹陽太守)로 승진시켰다. 대군이 남쪽으로 정벌갔다가 돌아왔고, 온회를 양주자사(揚州刺史)로 임명하고, 장제를 별가(別駕)로 삼았다. 사령(辭令)에서 말했다.

- 계자(季子 : 춘추시대 오왕 壽夢의 막내 아들로 현자로써 명성이 높음)를 신하로 삼으려고 한 것은 오나라에 군주가 있었음이다! 지금 그대가 양주에 왔으니, 나는 걱정할 일이 없다.

백성들 중에서 장제가 반란을 주도했다며 무고한 자가 있었는데, 태조는 이것을 듣고, 이전의 사령을 가리키며 좌장군(左將軍) 우금(于禁)과 패상(沛相) 봉인(封仁) 등에게 말했다.

“장제가 어찌 이런 일을 했겠소! 그가 이 일을 했다면, 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오. 이것은 반드시 어리석은 백성이 혼란을 좋아하여 그를 골탕먹이려는 것뿐이오.”

담당 관리에게 그를 풀어주도록 재촉했다. 태조는 장제를 초빙하여 승상주부서조속(丞相主簿西曹屬)으로 임명했다. 사령에서 말했다.

- 순은 고요(臯陶)를 임명하여 사용했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멀리 내쫓았다. 관리의 포상과 처벌을 함에 있어 알맞게 하는 것이 내가 현명한 그대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관우가 번성과 양양(襄陽)을 포위했다. 태조는 한 헌제가 허창에 있어 적과 가까운 거리였으므로 수도로 옮기려고 했다. 사마선왕과 장제가 태조에게 권하여 말했다.

“우금 등은 홍수에 빠져 죽었는데, 결코 공격하여 싸운 과실이 아니므로 국가의 원대한 계획에 손해될 것은 많지 않습니다. 유비와 손권은 겉으로 친하지만 속으로는 소원합니다. 관우가 생각한 바를 얻는 것을 손권은 반드시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파견하여 그 배후를 습격하도록 권하고, 장강 이남지역을 분할하여 손권을 봉하도록 허락하면 번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태조는 그의 말대로 했다. 손권은 이것을 듣고, 즉시 병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여 공안(公安)과 강릉(江陵)을 습격하였으며 관우는 결국 붙잡혔다.

문제가 왕위에 오르자, 장제는 상국장사(相國長史)로 전임되었다. 제위에 오른 후에는 또 장제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 동중낭장(東中郎將)이 되도록 했다. 장제가 수도에 남기를 청했으므로 조서를 내렸다.

- 고조는 노래를 만들어 ‘어떻게 용맹한 무사를 얻어 사방을 지킬까?’라고 했다.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현명한 신하들은 변방지역을 지켜야만 된다. 만일 어떤 일도 없다면 패옥을 울리며 돌아와도 늦다고는 할 수 없다.

장제가 만기론(萬機論)을 올리자 문제는 매우 좋아했다. 수도로 들어와 산기상시가 되었다. 당시 조서가 있었는데, 조서는 정남장군(征南將軍) 하후상에게 내려졌다.

- 그대는 나의 심복이며 긴요한 장수로서, 특별한 임무를 받았다. 내가 그대에게 베푼 은덕은 그대로 하여금 죽을 수 있게 하였고, 내가 그대에게 받은 은혜는 염두에 둘만 하다. 아래 신하들에게 형벌을 행하고 은혜를 베풀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리도록 하라.

하후상은 이것을 장제에게 보였다. 장제가 수도에 도착하자 문제는 그에게 물었다.

“그대가 듣고 온 천하의 풍속과 교화는 어떻소!”

장제가 대답했다.

“신은 어떤 것이 선정(善政)인지 보지 못했고, 단지 망국의 소리만을 들어 보았을 뿐입니다.”

문제는 노여워서 안색을 바꾸고 그 이유를 물었고, 장제는 하나하나 대답하고는 이어서 말했다.

“무릇 ‘위엄을 행하고 은혜를 편다(作威作福)’는 것은 상서에 보이는 교훈적인 말입니다. ‘천자에게는 농담의 말이 없다(天子無戲言)’라는 것은 옛 사람들이 신중히 했던 것입니다. 오직 폐하만이 이것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노여움을 풀고, 즉시 사람을 보내 이전에 하후상에게 보냈던 조서를 찾아 갖고 오도록 했다.
황초 3년(222) 대사마(大司馬) 조인(曹仁)과 함께 오나라를 정벌하고, 장제는 따로 선계(羨谿)를 습격했다. 조인이 유수(濡須)의 중주(中州)를 공격하려고 하자, 장제가 말했다.

“적병은 서쪽 해안을 점거하고 배를 상류에 나란히 진열시키고 있는데, 우리 병사들은 주중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지옥 속으로 들어가고, 위험과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조인은 장제의 말에 따르지 않았고, 과연 패했다. 조인이 죽고, 다시 장제를 동중랑장(東中郎將)으로 임명하여 그의 병사들을 대신 인솔하도록 했다. 조서가 있었다.

- 그대는 문무의 자질을 겸하였고, 강개한 기상과 절개가 있으며, 항상 강호를 넘어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장한 뜻이 있다. 그러므로 다시 그대에게 장수의 중임을 수여하겠다.

오래지 않아 그를 불러 상서(尚書)로 임명했다. 문제의 수레가 광릉(廣陵)으로 행차하려 하자, 장제는 표를 올려 물길이 통행하기 어렵다고 말했고, 또 삼주론(三州論)을 올려 문제를 풍자했다. 문제는 장제의 건의를 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군용 배 수천 척이 모두 멈춰 나가지 못했다. 논의하는 자들은 이 기회에 병사를 남겨 놓고 둔전하도록 했는데, 장제는 동쪽으로는 호수를 가까이 두고 있고, 북쪽으로는 회수에 직면하고 있으므로 물이 많은 시기에는 적이 침략하기 쉬워 안정되게 둔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말을 따랐고, 수레를 즉시 출발시켰다. 정호(精湖)로 돌아오니, 물이 점점 다했으므로 배를 전부 남겨 장제에게 주었다. 배는 본래 수백 리 사이에 배열되어 있었으므로, 장제는 땅을 파서 너댓 개의 수로를 만들어 배를 밀어 모이도록 했다. 동시에 그는 사람들에게 우선 제방을 수리하여 호수를 끊도록 하며 배를 당겨 모두 뒤로 하고, 한번에 열어 회수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문제는 낙양으로 돌아가며 장제에게 말했다.

“일을 깨닫지 못할 수는 없을 것이오. 나는 산양지(山陽池) 안에서 배의 절반 정도를 태워 버리기로 결심했는데, 경은 뒤에 남아 이것을 보냈고, 대략 나와 함께 초현에 이르렀소. 또 매번 진술한 것을 얻었는데, 실은 나의 생각을 말한 것이었소. 지금부터 적을 토벌할 계획을 세워 잘 생각하고 의견을 서술해 주시오.”

명제(明帝)가 즉위하자, 관내후(關內侯)의 작의를 하사했다.

대사마(大司馬) 조휴(曹休)가 군사를 통솔하여 완성으로 향하였을 때, 장제는 상주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조휴가 적지로 깊이 들어가 손권의 정예병사와 대치하면, 상류 지역에 있는 주연(朱然) 등이 조휴의 배후를 칠 것입니다. 신이 보기에 이 싸움은 유리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완성에 도착하자, 오는 병사를 안육(安陸)으로 내보냈다. 장제는 또 상소를 올려 말했다.

- 지금 적은 서쪽에서 병력을 과시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병사들을 집결시켜 동쪽을 도모하려고 할 것입니다. 긴급히 병사들에게 조서를 내려 조휴를 구원하도록 해야 합니다.

당시 조휴의 군대는 이미 패배하여 무기와 군수품을 버리고 퇴각하여 돌아오고 있었다. 오나라는 협석(夾石)을 끊으려고 했는데, 마침 위나라 구원병이 왔기 때문에 관병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장제는 승진하여 중호군(中護軍)이 되었다. 당시 중서감 유방(劉放)과 중서령 손자(孫資)가 전권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장제가 상소를 올려 말했다.

- 대신의 권위가 지나치게 무거우면 나라는 위험하고, 주위에 있는 자들을 지나치게 신임하면 몸에 해롭습니다. 이것은 고대에서도 엄격히 경계했던 것입니다. 지난날 대신들이 정치를 장악했으므로 안팎에서 동요가 있었습니다. 폐하가 즉위하면서 분명하게 독립되어 스스로 모든 정무를 열람하였으므로 숙연하지 아니함이 없었습니다. 대신들은 충성스럽지 않은 자가 없지만, 권위는 아래에 있으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대신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필연적인 세태입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대신들을 살펴 보셨지만, 주위에 모시는 사람이 있음을 있지 마십시오. 주위에서 모시는 사람들은 충성스럽고 정직하며 생각이 깊으므로, 반드시 대신들에 비해 현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편벽됨을 틈타 아첨하고 취합하는 데 이르면 누구라도 힘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 밖에서 하는 말로는 중서(中書)라고 부릅니다. 비록 폐하께서 그들로 하여금 공손하고 신중하게 하여 감히 외부와 교제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이런 별명은 있을 것이고, 세인들의 의혹은 사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실제로 국가의 중요한 부분을 장악하면서 날마다 폐하의 눈앞에 있습니다. 설령 그들이 폐하께서 피곤한 사이에 국가에 대해 어떠한 제재를 가하더라도, 신하들은 이들이 국가의 일에 대해 추이(推移) 할 수 있음을 볼 것이며, 또 시기를 잡아 그들에게 의탁할 것입니다. 일단 이러한 서단이 있으면 조정의 신하들은 궁궐 안에 말을 대신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으로 자기 말을 하게 하고 사사로이 초대하여 교제를 맺으며, 그를 위해 안쪽에서 지원하도록 합니다. 만일 이와 같다면 가부(可否)나 비난과 칭찬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이고, 공로와 과실에 대한 포상과 벌은 분명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바른 도를 받들어 행하고 덕이 높은 사람이 배척받게 될 수 있고, 주위에 아부하는 자는 오히려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폐하의 주위 사람들은 매우 작은 일로도 폐하의 마음속으로 파고들 수 있고, 폐하의 겉모습에 나타난 것으로 뜻하는 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폐하가 마음속으로 그들의 허망한 행위를 누르면 다시는 시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폐하의 성지(聖智)로 응당 일찍 들었어야만 되는 것 입니다. 폐하께서 밖의 일에만 마음을 두면 주위 형체는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간혹 조정의 신하들은 말이 부합되지 않음을 두려워하여 주위의 원망을 받기도 합니다. 신하들이 상주하는 것을 유념하십시오. 신이 사사로이 생각해보니, 폐하께서는 잠재된 정신력ㆍ깊은 사고력으로 공정하게 듣고 살피고 있습니다. 만일 이전의 일이 이치를 다하지 않았거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다면, 폐하께서 곡조를 고친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폐하께서는 멀리로는 황제ㆍ당요와 공덕을 비교하고, 가까이로는 무제와 문제의 치적을 밝혀야만 합니다. 어찌 근세의 습속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군주는 만천하의 일을 모두 자기가 밝힐 수 없으니, 응당 의탁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삼공은 한 신하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고, 주공단 같은 충신이 아니거나 또 관이오 같은 공이 아니라면 기관을 농락하고 관직을 무너뜨리는 병폐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국가의 기둥과 돌이 되는 선비는 비록 적지만, 행동은 한주에서 빛나고 지혜는 한 관직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충의와 신임은 명을 다할 수 있으며, 각자 그들의 직책을 받들 수 있습니다. 그들을 모두 채찍질하여 달려가게 하면 폐하의 성명한 조정으로 하여금 전리(專吏)라는 오명을 듣지 않게 할 것입니다.

명제가 조서를 내렸다.

- 골겹의 신하는 군주가 의지하는 바이다. 장제의 재능은 문무를 겸비하였고, 충절을 다해 맡은 일을 하며, 매번 국가와 군사의 큰 일이 있으며 상주하여 의견을 서술하고, 충성을 떨쳤다. 나는 그를 매우 격려하는 바이다.

즉시 승진하여 호군장군(護軍將軍)이 되었고, 산기상시(散騎常侍)를 더하였다.


사마표의 전략에서 이른다. 태화(太和) 6년에 명제는 평주자사(平州刺史) 전예(田豫)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게 하고, 유주자사(幽州刺史) 왕웅(王雄)에게는 육로를 이용하여 요동(遼東)을 협공하도록 했다. 장제는 이렇게 간했다.


"무릇 서로 병탄하려는 나라가 아니거나, 침략하여 반란을 일으킨 신하가 아니라면 마땅히 가볍게 토벌하지 않아야 합니다.(광무제가 두융에게 보낸 편지) 이를 토벌하다가 제압하지 못하면 그들을 몰아서 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호랑이나 이리가 길을 가로막고 있으면 여우나 살쾡이를 잡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큰 해가 되는 것을 없애면 조금 해가 되는 것은 스스로 그치고 맙니다.


지금 바다 밖의 지역은 여러 세대에 걸쳐 위질(委質)하면서 매해 회계를 보고하고 효렴을 추천하며, 공물을 모자라지 않게 바치고 있어서 의논하는 자들은 그곳을 먼저 꼽고 있습니다. 바로 한 번에 이겨서 그 백성들을 얻는다 하여도 나라에 이익이 되기에는 모자라며, 그 재물을 얻는다고 하여도 부유하게 되기에는 모자랍니다. 만약에 뜻대로 되지 아니하면 이는 원한을 맺게 되고 신뢰를 잃게 됩니다."


황제가 듣지 아니하였다. 전예 등이 갔다가 모두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하였고, 조령을 내려서 군사를 철수시켰다.


경초(景初) 연간, 밖으로는 정벌과 노역이 계속 이어졌고, 안으로는 궁전을 건축하는 데 힘을 쏟았으므로, 원망하는 남녀가 많았으며 수확이 나빠 곡물도 적었다. 장제가 상소를 올려 말했다.

- 폐하께서는 지금 이전 시대의 사업을 확충하고 존중하고, 선조의 유업을 발휘하여 성취해야만 합니다. 진실로 이런 시대에 베개를 높이 하고 편안히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12주를 다스리고 있지만, 백성들의 수는 한나라 시대의 커다란 한 군에 불과합니다. 두 도적은 아직 토벌되지 않았으므로 변방에는 군사들이 오랫동안 주둔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경작하고 한편으로는 싸움을 하니, 사람들의 원망이 해마다 쌓이고 있습니다. 종묘와 궁실 등 각종 사무는 곤창기에 있으며, 농업과 양잠하는 사람들은 적고,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사람은 많습니다. 지금 가장 긴급한 것은 백성들을 소모시키는 것을 멈추어 폐해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피곤하고 피폐한 백성들은 설령 다시 수재와 한재가 있다고 하여 백만의 무리가 모일지라도 국가를 위해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무릇 백성들을 사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농한기를 기다려야지, 농작시기를 빼앗아서는 안됩니다. 공업을 크게 일으키려는 군주는 먼저 그 백성의 힘을 헤아리고 먼저 휴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구천(句踐)은 태아를 양육하여 성년이 될 때를 기다렸다가 사용했고, 소왕은 병든 백성을 어루만져 적으로부터 받은 모욕을 씻었습니다. 그러므로 약한 연나라로 강한 제나라를 굴복시키고, 약체인 월나라를 갖고 강력한 오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지금 두 적은 공격하지도 않았고 멸망하지도 않았으므로, 방치해두면 즉시 침입할 것입니다. 당대에 그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들은 백 대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폐하의 성명함과 신비스러운 무예 및 계책으로 급하지 않은 일은 버리고 적을 토벌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신의 생각으로는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또 남녀의 즐거움에 탐닉하면 맑은 정신을 해치게 됩니다. 정신을 너무 사용하면 고갈될 것이고, 몸이 너무 피로하면 피폐해집니다. 원컨대 현명하고 아름다운 후궁을 대대적으로 간택하여 ‘백사남(百斯男 : 백 명의 아들)’을 낳아 기르도록 하십시요. 기타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여자는 잠시 모두 궁궐 밖으로 내보내 청정함을 구하는데 힘쓰도록 하십시오.

조서에서 말했다.

- 호군(護軍)이 없었다면, 나는 이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주1]

[주1] 《한진춘추(漢晋春秋)》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하고 있다.

공손연(公孫淵)은 위장이 토벌을 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칭신을 하며 병력을 빌려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황제는 장제에게 이렇게 물었다.

“손권이 과연 요동을 구하러 나설 것인가?”

장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우리 군의 대비가 충분하기 때문에 별로 이득을 얻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깊이 개입하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고, 가볍게 접근하다가는 공연히 고생만 하고 얻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손권은 자신의 자제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에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그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위해 자칫하면 치욕을 당할 짓을 하겠습니까? 지금 겉으로 이러한 말이 떠도는 것은 사람들을 속여서 우리에게 의심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기지 못하면 나중에 공손연에게 생색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공손연이 있는 먼 곳으로 갔다가, 만약 대군이 서로 대치를 하게 되어 일이 빨리 결정되지 못하면, 손권은 얕은 수작을 부려서 가볍게 무장한 군사들에게 기습을 하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왕(齊王 : 조방)이 즉위한 후, 영군(領軍) 장군으로 전임되었고, 작위를 창릉정후(昌陵定侯)로 봉하였고, 태위(太尉)로 승진했다. [주2]

[주2] 《열이전(列異傳)》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제가 영군(領軍)이 되었을 때 그의 아내는 죽은 아들이 꿈에서 나타나 울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삶과 죽음은 다른 길입니다. 저는 살아서 경상(卿相)의 자손이었지만, 지금은 지하에서 태산의 오백(伍伯)이 되었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것을 이루 말로 다하지 못합니다. 지금 태묘(太廟)의 서쪽에 가시면 노래를 흥얼거리는 손아(孫阿)라는 선비가 있을 것입니다. 그를 불러서 태산령으로 삼아주십시오. 어머니께서 백후(白侯)에게 부탁을 드리면 손아가 저를 좋은 곳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 어머니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다음 날 꿈 이야기를 했더니 장제는 이렇게 말했다.

“꿈이란 그런 것이오.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소.”

다음 날 저녁에 장제의 아내는 다시 꿈속에서 아들을 만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 신군(新君)을 맞이하려고 태묘 아래에 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얼마 후에 돌아가야 합니다. 신군은 내일 정오에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지금 떠나면 많은 일이 있을 것이므로 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영원히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기가 너무 강하셔서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십니다. 어머니께서 어떻게 하면 믿으시겠느냐고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려주십시오.”

아들은 손아의 모습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 다음 날 어머니는 다시 장제에게 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꿈이 조금도 이상할 리가 없지만 너무 생생합니다. 어떻게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장제는 마지못해 태묘로 사람을 보내어 손아라는 사람을 찾았더니, 과연 꿈에서 아들이 설명한 모습과 똑 같았다. 장제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제는 아들의 말을 믿겠구나!”

장제는 손아를 불러서 그간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손아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태산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장제가 믿지 않을까 염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장구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제가 평소에 바라는 바입니다. 아드님께서 어떤 직분을 바라는지는 아시지 못합니까?”

장제는 민망해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지하에서 그대와 함께 즐겁게 지내고 싶다고 한다네.”

손아가 기꺼이 따르겠다고 하자 장제는 후한 상을 내리고 돌아갔다. 빨리 결과를 알고 싶었던 장제는 영군문에서 태묘에 이르기까지 열 걸음마다 사람을 배치하고 손아로부터 소식이 오기만 기다렸다. 신시가 되자 손아가 심장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사시가 되자 더욱 심해졌다고 했다. 드디어 정오에 손아는 사망했다. 그 소식을 들은 장제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이 불행에 빠진 것은 가슴이 아프지만 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처음으로 알았다.”

몇 달 후가 되자 아들이 어머니의 꿈속에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미 녹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초에 시중 고당륭(高堂隆)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교사(郊祀)에 관한 일을 논의하면서, 위(魏)를 순(舜)의 후예로 간주하고, 순을 받들어 하늘에 제사지내고자 했다. 장제는 순의 본성이 규(嬀)이고, 그의 후예는 전(田)씨이므로 조(曹)씨의 선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문장을 지어 고당륭에게 힐문했다. [주3]

[주3] 신 송지가 보건데 장제의 《입교의(立郊議)》에서 거론한 《조등비문(曹騰碑文)》에 따르면, 조씨 일족은 주(邾)에서 나왔다고 했으며, 《위서(魏書)》에서도 역시 조씨의 유래에 대해 같은 기록이 있다. 위무제가 쓴 《가전(家傳)》에서는 스스로 조숙진탁(曹叔振鐸)의 후예라고 하였다. 진사왕(陳思王)은 《무제뢰(武帝誄)》에서 목무황(穆武皇)은 직(稷)의 후예라고 하였는데 이는 앞에서 말한 것과 다르다. 경초(景初)에 이르러 명제는 고당륭의 견해에 따라서 위를 순(舜)의 후예라 하였다. 그러다 나중에 위는 《선진문(禪晋文)》에서 “옛날 우리 조상은 우(虞)였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더욱 다른 견해와 달랐다. 장제가 고당륭의 견해를 반박한 것은 상서 무습(繆襲)과 같은 견해였으며, 이는 모두 합리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이 쓴 여러 글에서는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장제도 역시 조씨의 조상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언급을 않았으나, “위는 순의 후예가 아니므로 종족과 함께 나란히 제사를 올릴 수는 없으므로 태조를 끌어내려서 하늘과 함께 제사를 올리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때 장제가 조씨의 시조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장제는 또 정현(鄭玄)이 《제법(祭法)》에서 ‘유우(有虞)는 덕이 높았으므로 조종과 함께 제사를 올려야 한다. 그것은 덕이 있는 사람을 함께 받드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하대(夏代) 이래로 이미 그 성씨들은 거의 소멸되었다.’라고 말한 것에 다음과 같이 반박한 바 있었다.

“대체로 규룡(虯龍)은 수달보다 신령스럽지만 제사를 지낼 때 수달을 앞자리에 두고 규룡에게는 제사를 올리지 않습니다. 기린과 백호는 승냥이보다 어질지만 제사를 지낼 때 승냥이를 앞자리에 두고 기린과 백호에게는 제사를 올리지 않습니다. 정현의 학설은 유우는 이미 상고시대의 사람이라고 했으니, 승냥이나 수달에 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신은 정현이 《제법》에서 말한 것을 보니 학자로서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정현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해석에만 급급했습니다.”

장제가 승냥이와 수달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지만 그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이때, 조상이 정치를 전담하고 있었고, 정밀과 등양 등이 경솔하게 법도를 고쳤다. 마침 일식의 변화가 있었으므로 신하들에게 그 변화의 득실에 관해 물었다. 장제가 상소를 올려 말했다.


- 옛날 위대한 순임금은 황제를 보좌하여 다스릴 때 무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경계하였고, 주공은 정치를 보좌할 때 그 친구들과의 관계를 신중히 했으며, 제후(齊侯)가 재난을 물을 때 안영은 은혜를 펴는 것으로 대답했고, 노군(魯君)이 이상현상에 관해 물었을 때 장손(臧孫)은 역무를 느슨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뜻에 응하여 변화를 막는 것은 실로 인간이 할 일입니다. 지금 두 적은 멸망되지 않았고, 장수들이 변방 밖에서 있은지 벌써 수십 년이 되었고, 남녀는 원망하고, 백성들은 가난하여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법도를 만드는 것은 오직 세상을 다스릴만한 뛰어난 재주가 있어야만 그 나라의 기강을 펼쳐서 후세에 남길 수 있습니다. 어찌 중간이나 낮은 재주를 갖고 있는 관리가 바꿀 수 있겠습니까? 결국에는 정치에 이익이 없고, 백성들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바라건대, 문무 신하들로 하여금 각자 그 직책을 지키도록 하고, 서로 이끌어 맑은 정치가 되도록 하시면, 조화로운 기운과 상서로운 징조를 감응되게 하여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부 사마선왕을 수행하여 낙수의 부교(浮橋)에 주둔하고, 조상 등을 주멸하고, 승진시켜 도향후로 봉했으며, 식읍 7백 호를 주었다. 장제가 상소를 올렸다.

- 신은 윗사람의 총애를 입었는데, 조상은 감히 화근이 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이 임무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부로 떨쳐 일어나 독단적으로 계획을 실행하였으며, 폐하가 그의 충절을 밝혔습니다. 죄인들이 처벌을 받은 것은 사직의 복입니다. 영지와 상은 반드시 공이 있는 자에게 주어야 합니다. 지금 계략을 논하면, 신은 먼저 알지 못합니다. 전투에 관해 말하면, 신은 인솔할 바가 못됩니다. 그러나 위에서 그 제도를 잃는다면, 아래에서 그 병폐를 받게 됩니다. 신은 재상의 한 사람으로 백성들이 우러르는 고관이 되겠습니다. 진실로 두려운 것은 상을 받는 기풍이 이로부터 일어나고, 겸양하고 기풍이 이로부터 폐지되는 것입니다.

간곡히 사뢰였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손성이 이르길: 장제가 영지를 사퇴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어(成語)에 ‘이익을 위해서 돌아가지 않으며, 도의에 부끄러운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장제는 이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이 해에 사망했으며, 시호를 경후(景侯)라고 했다. 아들 장수(蔣秀)가 뒤를 이었다. 장수가 죽자 아들 장개(蔣凱)가 뒤를 이었다.

함희 연간에 다섯 등급의 작위제도를 설치하였는데, 장제가 선제의 시대에 훈공이 탁월했으므로 바꾸어서 장제를 하채자(下蔡子)로 봉했다.


세어에 이르길: 당초 장제가 사마의를 수행하여 낙수의 부교에 주둔했을 때, 조상에게 편지를 보냈다. ‘오직 면직될 뿐입니다’라고 하며 사마의의 생각을 서술했는데, 조상은 주살되었다. 장제는 자신의 말이 신의를 잃었다며 앓아 누워 있다가 죽었다.

분류 :
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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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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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09
16:13:56
(*.104.141.18)
모든 주석을 추가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09
22:43:37
(*.52.89.88)
흠냐님의 제보에 따라 10여만 명->10여만 호로 수정합니다.

코렐솔라

2013.08.20
00:20:23
(*.52.91.73)
장제가 왕웅, 전예로 협공하는 것에 대해 간하는 주석 번역을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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