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劉馥)은 자가 원영(元潁)이고 패국 상현(相縣) 사람이다. 난리를 피해 양주에 있다가 건안 초에 원술의 장군인 척기(戚寄)ㆍ진익(秦翊)을 설득하여 사람들을 인솔하여 함께 조조가 있는 곳으로 가도록 했다. 조조는 그를 좋아하여 사도에서 불러 속관으로 삼았다. 

후에 손책이 임명한 여강태수 이술(李述)이 양주자사 엄상(嚴象)을 공격하여 죽였을 때, 여강의 매건(梅乾)ㆍ뇌서(雷緖)ㆍ진란(陳蘭) 등이 장강과 회화 일대에서 수만 명을 모아서 일어났으므로 군과 현은 파괴되었다. 조조는 막 원소와 싸워서 형편이 어려웠으므로 유복이 동남쪽의 일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곧 양주 자사로 임명했다.

유복은 임명을 받고 혼자의 몸으로 말을 타고 합비(合肥)의 빈 성으로 가서 주의 관소를 세우고, 남쪽으로 뇌서 등을 위로하여 그들을 안정시켰으므로, 그들이 바친 공물(貢物)은 계속 이어졌다. 몇 년간 유복이 은혜와 교화를 대대적으로 시행하자, 백성들은 그의 정책을 좋아하였으며 밖으로 떠돌던 백성들 중에서 강과 산을 넘어 귀순하는 자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유복은 유생들을 모아 학교를 세웠으며 둔전을 넓히고, 백성들이 다스리는 작피(芍陂) 및 가피(茄陂)ㆍ칠문(七門)ㆍ오당(吳塘)의 여러 제방을 건축하고 수리하여 논에 물을 대었으므로 관리와 백성들은 축적됐다. 또 성벽과 보루를 높게 만들고, 나무와 돌을 많이 쌓았으며, 풀 수천만 더미를 엮었고, 물고기 기름 수천 석을 저장하여 전쟁 시 방비 용품으로 삼았다.

건안 13년(208)에 유복은 죽었다. 손권이 10만 병사를 이끌고 합비 성을 백여 일간 포위하여 공격하였는데, 그 당시 비가 계속 내려 성이 붕괴되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적으로 성벽을 덮었고, 밤에는 물고기 기름을 태워 성 밖의 적군을 감시하고 수비했으므로, 결국 적군은 무너져 도주했다. 양주의 관원과 백성들은 더욱 유복을 추모하였고, 동안우(董安宇)가 진양(晋陽)을 지켰을지라도 유복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방에서의 이익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황초 연간, 황문시랑에서 유복의 아들 유정(劉靖)이 여강태수로 승진하였는데, 조서에서 말했다.

― 그대의 부친은 옛날 이 주를 다스렸고, 지금은 그대가 이 군을 다시 관할하게 되었으니, 족히 부친의 사업을 이어 짊어질 수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소. ―

유정은 하내(河內)로 전임되어 상서로 승진됐으며,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받았고, 지방으로 나가 하남윤이 되었다. 산기상시 응거(應璩)가 유정에게 편지를 써서 말했다.

― 당신은 조정으로 들어가서는 납언(納言 ; 상서의 옛 이름)의 일을 하고, 밖으로 나와서는 수도를 관할하는 직책(하남윤이 된 것)을 맡았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는 방법은 긴 세월을 필요로 합니다. 울타리를 높게 하여 담을 뚫으려는 도적의 욕망을 단절시키고, 다섯 가지 곡물을 분별하여 자라게 하도록 물이나 불의 재해를 멀리 하십시오. 농기구를 반드시 갖추어 시기를 잃는 과실이 없게 하십시오. 보리를 양잠의 덮개로 사용하도록 준비하여 비나 습기의 걱정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조정에서 규정한 기한 내에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관리를 없게 하십시오. 늙고 아내가 없는 사람, 늙어서 남편이 없는 사람. 어린데도 부모가 없는 사람,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모두 창고의 재물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게다가 당신은 분명하게 범죄를 적발하여 법령에 의거해 일을 처리하고 굽히지 마십시오. 담당 관리는 천자의 명령을 받들어 잇고 백리 사방(지방관의 통치지역)에는 고개를 숙여 경이로운 마음으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비록 옛날에 조광(趙廣), 장창(張敞), 세 명의 왕씨(王氏 ; 王尊ㆍ王章ㆍ王駿)ㆍ왕준(王駿)의 정치가 있을지라도 당신과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유정이 정치를 하는 것은 이와 같았다. 처음에는 비록 자질구레하고 세밀했지만, 결국에는 백성들에게 좋은 점이 많았는데, 대부분 유복이 남긴 풍모였다. 유정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후에 대사농(大司農) 위위(衛尉)가 되었고, 작위가 올라 광육정후(廣陸亭侯)로 봉해졌으며, 식읍은 3백 호였다. 유정은 상소하여 유학교육의 근본에 관해 진술했다.

― 무릇 학문이라는 것은 혼란을 다스리는 법칙이며 성인이 행하는 커다란 가르침입니다. 황초 이래로 태학을 숭상하여 창립한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학문을 완성한 자는 적습니다. 대체로 박사 선발이 신중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부역을 피해 태학으로 들어가며, 귀족 자제들은 자신들과 같은 부류가 아님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학자가 길러지지 않은 것입니다. 비록 태학이라는 명칭은 있지만 태학에 적합한 인물은 없고, 비록 유학의 교화를 세웠지만 그 공적이 없습니다.

응당 박사 선발의 기준을 높이고, 사람들의 사표가 될 만한 품행을 갖춘 사람을 취하고, 학문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여 국자(國子 ; 태학의 학생) 교육을 담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고대의 법에 따라 2천 석 이상의 자손 중 나이가 열다섯 이상 되는 자를 모두 태학에 입학시키도록 하십시오. 승진ㆍ추방ㆍ영예ㆍ치욕의 길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경전에 밝고 품행이 단정한 사람은 그들을 선발하여 덕을 숭상하도록 하고, 교육을 황폐하게 하고 학업을 버린 사람은 추방하여 악을 징벌하고, 성적이 좋은 자를 등용하여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권하면 허황되고 경박한 교유는 금지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실됩니다. 

커다란 교화를 넓혀 복종하지 않는 자를 어루만지면 천하 사방 사람들이 감화를 받아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귀순해올 것입니다. 이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며, 태평스러운 시대에 이르는 근본입니다. ―

후에 승진하여 진북장군이 되었으며, 가절도독하북제군사(假節都督河北諸軍事)로 승진됐다. 유정은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중요한 법령은 지켜 방어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백성들과 오랑캐 사이에 구분이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변방 수비를 처음으로 확립하고, 험하고 중요한 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병사들을 주둔시켰다. 또 누릉거(?陵渠)의 큰 제방을 수리하여 넓혀 계현(縣)의 남북 쪽에 물을 대었다. 유정은 3년에 한 차례씩 농사를 짓지 않는 방법으로 벼를 심도록 하였는데, 변방의 백성들은 그 이익을 받았다.

가평 6년(254)에 세상을 떠나자, 정북(征北)장군으로 추증하고, 작위를 승진시켜 건성향후(建成鄕侯)로 봉했으며, 시호를 경후(景侯)라고 했다. 그의 아들 유희(劉熙)가 뒤를 이었다.[1]

[1] 유희의 동생으로 유홍(劉弘)이 있는데, 그는 진(晉)나라 세조(世祖 ; 무제 사마염)와 동년배이며 같은 낙양의 영안리(永安里)에 살았으며, 옛날 은혜로 높은 지위에 올랐다. 유정으로부터 유홍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서진 말, 유홍은 거기대장군 개부(開府)ㆍ형주자사ㆍ가절도독형교광주제군사(假節都督荊交廣州諸軍事)가 되었고, 신성군공(新城郡公)으로 봉해졌다. 

그가 장강과 한수 일대에서 살고 있었을 때, 왕실은 큰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정치와 군사를 도맡았으며,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을 다하였다. 부하들은 진심으로 믿고, 공정한 도의를 갖고 독려했으며, 재판과 형벌을 간략하게 하고, 농업과 양잠을 진흥시키려고 노력했다. 매번 백성들을 징발할 때면 군(郡)과 국(國)에 손수 문서를 써서 보내어 성의를 다했다. 때문에 모두들 감격하고 기뻐하여 달려갔다. 모두 

"유공의 편지 한 통을 얻는 것은 열 명의 종사를 파견하는 것보다 효과가 있다" 

고 했다. 그 당시 황제는 장안에 있었는데, 유홍에게 부하 장수를 뜻대로 선발하여 기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조정의 부름을 거절한 처사 무릉(武陵)의 오조(伍朝)는 고상한 삶의 방식을 갖고 있었고, 아문장(牙門將)의 피초(皮初)는 장강과 한수 지역에서 공훈이 있었는데, 유홍은 오조를 영릉(零陵)태수로, 피초를 양양태수로 임명한다고 글을 올렸다. 조서가 내려와 양양은 중요한 군인데 비해 피초의 자질과 명성이 적으니 유홍의 사위 하후척(夏侯陟)에게 양양을 다스리도록 했다. 유홍은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천하와 마음을 같이하고, 한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한 나라를 위하여 내실 있는 자를 추천해야 합니다. 저는 형주의 열군을 통치하고 있지만, 어찌 열 명의 사위를 얻은 연후에 다스리겠습니까!' 

라고 했다. 그리고 표를 올려 

'하후척은 친척으로, 옛날 제도에 의거하여 감독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피초는 공훈이 있으니 당연히 맡을 수 있습니다.' 

라고 했다. 그래서 허락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그의 공정함과 타당함에 탄복했다.

광한태수(廣漢太守) 신염(辛冉)은 천자가 몽진(蒙塵)을 하자 사방이 소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유홍을 찾아와 함께 천하를 도모하자고 했다. 유홍은 화를 내며 그를 즉시 참하고 말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유홍의 처사를 옳다고 칭송했다.

진제공찬(晉諸公贊)에서 이르길:
당시에 천하가 동란에 휘말렸지만, 형주만은 안전했다. 유홍은 유경승(劉景升; 유표)이 강한에 웅거했던 뜻을 지키면서 태부 사마월(司馬越)에게 기울지 않았다. 이 일로 사마월은 유홍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얼마 후에 유홍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유번(劉璠)은 북중랑장이 되었다.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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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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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2
17:31:28
(*.104.141.18)
주석 추가했습니다.

무명

2013.11.03
15:37:05
(*.39.89.204)
광한태수(廣漢太守) 신염(辛冉)은 천자가 몽진(蒙塵)을 하자 사방이 소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유홍을 찾아와 함께 천하를 도모하자고 했다. 유홍은 화를 내며 그를 즉시 참하고 말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유홍의 처사를 옳다고 칭송했다. 이 사건에 대해 《삼국지 위서 유복전》의 주에서 인용한 《진제공찬(晋諸公贊)》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더했다.

“당시에 천하가 동란에 휘말렸지만, 형주만은 안전했다. 유홍은 유경승(劉景升)이 강한에 웅거했던 뜻을 지키면서 태부 사마월(司馬越)에게 기울지 않았다. 이 일로 사마월은 유홍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얼마 후에 유홍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유번(劉璠)은 북중랑장이 되었다.

출처 :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logId=1497922&userId=baramo9898

코렐솔라

2013.11.03
18:03:51
(*.166.245.132)
흠냐 밑에 번역 안 된 한자에 대한 번역이군요. 제보 감사합니다. 요즘 토탈워 DLC 하느라 정신 없어서 답변이 늦었습니다. 바로 반영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11.03
18:02:26
(*.166.245.132)
유복의 자 원영에 있는 한자를 이삭 영에서 강 이름영으로 바꿉니다. 이건 솔직히 ctrl+f 안 하면 안 보이는 수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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