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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공찬>

양패(楊沛)는 자가 공거(孔渠)이다. 풍익의 만년(萬年) 사람이다. 초평(初平: 190-194)연간에 공부(公府)의 영사(令史)가 되었고, 신정(新鄭)의 장(長)이 되었다. 흥평(興平: 194-196) 말년에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일 때 양패는 뽕나무의 열매를 따서 말리고 야생의 콩을 걷어 들이도록 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의 것으로 부족한 사람의 것을 메우게 하여, 이렇게 해서 모든 천여 석을 모았고 작은 창고에 넣어 저장했다.

조조가 연주자사(兖州刺史)로 있을 때 천자를 영입하였고, 이때 조조의 1천여 명의 병사들은 모두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이 신정 마을을 통과할 때, 양패가 조조를 만나, 이내 곧 마른 뽕나무 열매를 모두 바쳤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였다.

조조가 조정을 보좌하게 [輔政] 되자, 양패를 장사(長社)의 현령으로 승진시켰고, 이때 조홍(曹洪)의 빈객(賔客)이 현 경계 근처에서 세법에 어긋나면서 세금을 거두었으므로, 양패는 우선 그 사람의 다리를 두드려 꺾고, 곧 죽이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계속해서 구강(九江), 동평(東平), 낙안(樂安)태수가 되었으며, 모두 치적을 세웠다.

독군(督軍)하고 사사로이 싸웠던 것 때문에 장형(髠) 5년형을 받았다. 그 당시 조조는 워정 중에 초(譙: 문루)에 들어갔는데, 업(鄴) 성의 아래에는 금지령을 [科禁] 지키지 않는 자가 많다는 것을 듣고, 유능한 관리를 뽑아서 업령(鄴令)으로 뽑았지만, 엄격함과 능력 면에서 양패 정도의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비록 아직 형기를 끝내지 않은 상태였지만, 양패를 현령으로 삼았다.

조조는 임명을 끝마친 후에 그를 접견해서 

"어떻게 업성을 다스릴 생각이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몸과 마음을 바쳐 완수해 명령을 받들고 법을 집행하겠습니다.". 

조조가 

"좋습니다."

하고 말하고서는 옆을 돌아보며 

"여러분도 이 양패라는 사람을 만나면 조심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에게 노비 10명과 비단100필을 하사했지만, 이것은 그를 격려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예전에 뽕의 열매에 대한 감사 표시이기도 했다.

양패가 물러나와 업성으로 되돌아갔는데,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군중호우(軍中豪右) 조홍(曹洪)과 유훈(劉勳)등은 양패를 무서워해서, 각자 사람을 자기 가족들에게 파견해서 자기 가족들의 행동거지를 점검하게 하고 단속하게 했다.

양패는 수년 후에 공적에 따라 호강교위(護羌都尉)가 되었다.

건안 16년(211년), 마초가 반란을 일으켜 대군이 서쪽으로 와서 마초를 토벌할 때, 양패도 따라서 종군했는데, 맹진(孟津)에서 병사들의 황하를 건널 때, 이를 감독하였다. 조조가 먼저 강을 건너, 아직 건너지 못한 사람이 더 있었을 때, 먼저 건넜던 중황문이 마침 행헌(行軒)을 빠뜨리고 왔기 때문에,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여, 관리들에게 작은 배를 요구해 혼자서 먼저 건너려 했다.

관리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황문은 말싸움을 시작했다. 양패가 황문에게 물었다. 

"도강 허가증을 가지고 있습니까?". 

황문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양패가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이 탈영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곧 양패는 그 사람을 시켜 그의 머리를 붙잡게 하고 지팡이를 건네주고는 그를 때리게 했다. 황문이 양패로부터 풀려났을 때는 이미 옷이고 모자고 모두모두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곧 그는 조조에게 가서 호소했다. 조조가 말했다. 

"당신은 죽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오.".

이때부터 양패의 이름은 더더욱 알려졌고, 관중(及關)의 마초는 패하고 달아난 이후, 장기(張旣)의 후임으로 양패가 경조윤(京兆尹)이 되었다.

황초(220-227)년간에 유학의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대거 승진하게 되자, 본래 사무의 유능함에 의해서 임용되고 있던 양패는 결국에 의랑(議郎)이 되어 (밀려나? 쓸쓸히?) 한가한 시골거리를 거닐었다. 양패는 그동안 오랫동안 군현의 장으로 있었지만, 개인적인 이득에는 관심이 없었고, 또한 고귀한 사람들을 모시는 것도 관심이 없어서, 은퇴했을 때는 자기 집에 쌓여있는 재산이 없었다.

집에서 질병을 치료했지만, 관사(官舎)로부터 빌려온 심부름꾼 아이 말고는 그 이외의 노비는 없었다. 나중에 하남(河南)의 석양정(夕陽亭)에 쓸모없는 밭[荒田] 2경(頃)을 사서, 과우려(瓜牛廬)를 세우고, 그곳에서 자고 일어나며 살았다. 처자는 추위와 굶주림에 괴로워했다. 양패는 병으로 죽어 죽었고, 고향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옛 관리들, 옛 백성들이 찾아와서 장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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