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任峻은 자를 백달(伯達)이라고 하며 하남 중모 사람이다. 한말에 우란이 있어 관동이 진동하였을때, 중모의 현령 양원(楊原)은 이를 두려워하여 관직을 버리고 달아나려 했다. 임준은 그를 설득하며 말했다. 

“동탁이 혼란을 주도하고 있으나, 천하에 이를 흘겨보지 않는 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나서는(동탁에 맞서는) 자가 없는 것은 그런(동탁에 저항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세가 부족한 까닭입니다. 명부께서 혹여 그들을 잘 이끈다면 필시 호응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양원이 말했다. 

“그리하려면 어찌하여야 하겠소?” 

임준이 말했다. 

“지금 관동에는 십여개의 현이 있고, 병 수가 일만보다 덜하지는 않습니다. 혹여 단독으로 하남윤의 직무를 대행하고, 그들을 통괄한다면 어찌 이루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양원은 그 계략을 좇았고, 임준을 주부로 삼았다. 임준은 양원를 위해 하남윤의 직무를 대행하고자 하는 상표를 올렸고, 여러 현의 방비를 굳건히 하고 병력을 일으켰다. 마침 그때, 태조가 관동에서 거병하여 중모의 현경계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누구를 따라야할는지 알지 못했다. 임준만이 같은 군 출신의 장분과 더불어 군을 통째로 들어 태조에게 귀복해야한다고 제의했다. 

또 임준은 일족과 빈객등을 모아 낭당을 결성 수백인을 별도로 모아 태조를 따르기를 (태조에게) 청했다. 태조는 크게 기뻐하며 상표를 올려 임준을 기도위로 삼고, 사촌여동생을 아내로 주고, 대단히 관심을 두고 신뢰하였다. 태조가 정벌에 나설때마다 임준은 항상 본거를 지키며 군의 보급을 담당했다. 

그 무렵 기근과 메뚜기떼가 일어났으므로 병량이 부족하여 영천출신의 우림감 조지(棗祗)는 둔전을 실시할 것을 건의하였다. 태조가 임준을 전농중랑장으로 삼아 수년 후, 곳곳마다 곡식이 쌓였고, 창고는 꽉 들어차게 되었다. 관도의 싸움에서는 태조는 임준에게 군의 무구, 병량의 수송을 담당시켰는데, 도적들이(賊자를 썼는데, 원소군을 뜻한다고 보여짐) 종종 수송로를 차단하여 약탈을 행했다. 이에 치중거 수천대를 한 부대로 삼아 횡 십열을 나란히 하여 행군하였고, 또 2중의 진형을 짜서 이를 경호케 하였으므로 도적은 근접할 수 없었다. 

군대나 국가(조조의 영토)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둔전제를) 조지가 입안하고 임준이 실행한 때문이다.[1] 태조는 임준의 공적이 다대함을 인해 상표하여 도정후로 봉하고 삼백호를 내렸으며 장수교위로 전임케 했다. 

[1] [위무고사]에 적힌 포고령에 이와 같이 말한다. 

[전임 진류태수 조지棗祗는 천성이 충성스러우며 재능이 있는 자였다. 그는 당초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정벌에 종사하였다.이후 원소는 기주땅에 그(조지)가 필요하다 여겨, 그를 얻고자 하였으나, 조지는 깊이 짐에게 의지하여왔으므로 동아 현령으로 임명하였다. 여포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연주는 모두 반역하였으나 오직 범현과 동아현만은 무사하였던 것은 조지가 군세를 일으켜 성을 지킴에 있어 진력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대군의 병량이 떨어졌을 때, 동아현에서 군량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지의 공적이다. 황건적을 격파하고 허를 평정함에 이르러서는 적도의 물자를 손에 넣었다.(이를 통해 식량난을 해결했다.) 둔전사업이 흥한 이후, 당시의 논자들은 모두 소의 수량을 점고하여 곡물을 수송해야한다고 말하였으므로 그러한 전과(둔전에 관한 법조)를 정하였다. 시행 후, 조지가 건의하기를 소를 빌려 곡물을 수송하는 경우, 수확이 많은 때라 하여도 (수송이 어려운 고로) 곡물을 늘리기 어렵고, 수해나 메뚜기 등의 재해가 일어나는 때에도 크게 불편할 것이라 말하였다. 거듭 이렇게 말하였으나, 그럼에도 짐은 종래대로 행하도록 하고, 수확이 맣은 때에도 방침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지는 거듭 이 건을 상주하였으나, 짐은 어찌해야할지 알 수 없었던 고로 순영군(순욱)과 함께 논의케 하였다. 그 무렵, 전 군제주 후성(侯聲)이 이렇게 말했다. 

“둔전의 법조를 따라 관청의 소를 계수케 하고, 관전의 계산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조지의 제안은 관가에는 좋더라도 (둔전에 종사하는) 객에 있어서는 적절치 않을 것입니다.” 라 했다.

후성은 이러한 자설을 가지고 논하여 순영군을 고민케 하였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조지는 자신을 갖고 계획을 기초하여 다시 건의하여 전지를 나누는 방법을 상주하였다. 짐은 그 건을 보고 그에게 찬성하여 둔전교위로 삼고 농업을 시행케 하였다.그 해 수확이 많았고, 이후에 이를 인해 전지의 증대가 이루어졌고, 군수가 충족되었으며, 무리를 이룬 반역자의 무리들을 격파하여 천하를 평정하여 왕실을 흥성케 할 수 있었다. 

조지는 그 공적을 높게 세웠으나 불행히고 요절하고 말았으므로 군수의 관을 추증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급이 아직 그의 공적에 상당치 못한 듯 하다. 지금 거듭 이를 생각하니 조지는 봉토를 받음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봉작을 받음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아직까지 이를 행하지 못한 것은 짐의 불찰이다. 조지의 아들 조처중에게 봉토와 작위를 더하여 조지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것을 불후의 사업으로 해야할 것이다.] 

[[문사전]]에 이와 같이 말한다. 

조지棗祗의 본래 성은 ‘극(棘)’씨였으나, 그의 선조가 난을 피해 조씨라 개칭한 것이다. 손자 조(棗據)는 자를 도언(道彦)이라고 하며 진의 기주자사였다. 조거의 아들 조숭(棗嵩)은 자를 대산(臺産)이라 하며, 산기상시였다. 이들 모두 재능과 명성이 있었고, 저술 또한 많았다. 조숭의 형 조전(棗腆)은 자를 현방(玄方)이라 하며 양성태수를 지냈고, 또한 문장에도 뛰어났다. 

《진서(晉書)》「열전(列傳) 62권」의 <조거전(棗據傳)>를 확인해 보면 조전(棗)의 관직은 '양양태수(襄陽太守)'이 아닌 '양성태수(襄城太守)'로 되어 있다.



임준은 관용이 있고, 온후하며 도량이 있었고,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의견을 진술하면 태조가 이를 높이 평가하는 일이 잦았다. 기근이 있을 때에도 벗의 고아를 받아들여 길렀으며, 내(친가)외(처가)에 곤궁한 자가 있으면 급히 이를 처리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니, 그 신의가 칭찬받았다. 건안9년(204년)에 서거했으니, 태조는 한참을 눈물을 흘렸다. 아들 임선이 가문을 이었고, 임선이 죽자 그 자식이 없었으므로 그 봉토는 국가로 환원되었다.문제(조비)는 거슬러 올라가며 공신을 기록케 하였는데, 임준에게 성후라는 시호를 내렸다. 또한 임준의 둘째아들 임람을 관내후로 삼았다. 

일문 번역/연인ㅈ님

분류 :
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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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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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본초

2013.05.04
00:53:57
(*.22.9.13)

엄준 -> 임준 으로 고쳐주세요 ^^

나무개구리

2013.05.04
00:55:24
(*.252.232.44)

눈에 익은게 무섭군요.. 수정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5.27
14:31:09
(*.0.203.80)
조처를 조거로 수정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22
18:15:54
(*.104.141.18)
주석은 다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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