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기(杜畿)는 자를 백후(伯侯)라 하며 경조(京兆) 두릉(杜陵) 사람이다.[1] 


[1] 《부자》에 이르기를, 두기는 한의 어사대부 두연년(杜延年)의 후예이다. 두연년의 부친 두주(杜周)는 남양에서 무릉으로 이주하였고, 두연년이 두릉에 이주하였고, 자손은 대대로 이곳에 거주하였다 한다.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계모가 그를 괴롭혔으나, 효행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십세에 군의 공조가 되고, 정현 현령직을 대행했다. 현에는 투옥자가 수백명 있었으나, 두기는 직접 옥을 돌아보고 그들의 죄의 경중을 판단하여 판결을 내렸다. 모두 타당한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군민들은 그가 나이가 어림에도 요점을 집어내는 것에 주목했다. 효렴으로 추거되어 한중부(漢中府) 승(丞)에 서임되었다. 그 무렵 천하에 혼란이 일었으므로 그대로 관직을 버리고 형주에 도망하여 건안연간이 되어 귀향하였다. 순욱이 그를 태조에게 추천하였으므로 [2] 태조는 두기를 사공사직으로 삼고 호강교위에 전임시켜 사지절로서 서평태수를 겸직시켰다.[3]


[2] 《부자》에 이와 같이 이른다. 두기는 형주에서 귀향한 후, 허에 가서 시중 경기(耿紀)를 만나, 밤을 세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상서령 순욱과 경기는 저택이 인접하였으므로 순욱은 한밤에 두기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훌륭한 인재로 여겨 사람을 보내 경기에게 물었다.


"나라의 훌륭한 선비가 있음에도 추천치 않다니, 귀공은 자신이 왜 관직에 있는지도 모르는건가?"


두기와 만난 후 순욱은 그를 이해하기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처럼 하였다. 결국 두기를 조정에 추천하게 되었다.

[3] 《위략》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기는 어린시절부터 큰 뜻을 품고 있었다. 형주에 수년간 있으며 계모가 죽은 후, 삼포로 통하는 길이 개통되었으므로 어미의 유체를 등에 지고 북으로 귀향하였다. 그 도중에 도적을 만나 약탈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도주하였으나, 두기만은 그대로 있었다. 도적은 그를 활로 쏘았다. 두기는 도적에게 간청하기를

"경은 재물이 필요하겠지요. 지금 나에게는 가진 짐도 없는데, 어찌 나를 활로 쏘는 겁니까?"

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도적은 곧 이를 멈추었다. 두기가 고향에 도착하였을 때, 하동사람인 장시는 경조윤이었는데, 그는 두기와 옛 친분이 있었으므로 그를 공조로 삼았다.
 어느 때인가 장시는 두기가 활달하고, 여러 일에 뜻을 두어 자신을 제대로 보좌하지 않음을 싫어하며, 이 자는 조야한 인물로 제멋대로 구니 공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두기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공조에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하동태수에는 어울린단 말이다."

태조가 하북을 평정한 뒤, 고간이 병주를 이끌고 반역했다. 

당시 하동태수 왕읍은 중앙에 불려와있었으므로, 하동의 위고, 범선은 겉으로는 왕읍의 귀환을 청원하였으나, 속으로는 고간과 모의를 함께하였다. 태조는 순욱에게 말했다.

"관서의 제장은 험준함과 말을 의지하고 있으니, 정벌하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오. 장욱은 효, 민 일대를 어지럽히고, 남쪽으로 유표와 교통하고 있고, 위고 등은 그를 의지하고 있으니, 나는 그들이 막대한 손해를 불러올까 두려워하고 있소. 하동은 산으로 둘러쌓이고 옆에는 강이 흐르며, 근린 사방에서는 변사(반란)이 많으니 작금의 천하의 요지라고 할만하오. 군이 나를 위해 소하, 구순(광무제때 명신. 지방관으로 이름을 날림)같은 이를 추천해주면 그로하여금 진압케 합시다."

순욱은 말했다.

"두기가 그러한 인물입니다."[1]

[1] 《부자》에 이르기를, 순욱은 두기의 용기는 큰 곤란에 맞서기에 충분하고, 지혜는 변화에 응하는 것이 가능하니, 그를 시험삼아 써봐야 한다고 칭찬했다.

이로써 두기는 하동태수직을 받게 되었다. 

위고 등이 병력 수 천을 이끌고 섬진을 차단하였으므로 두기는 도착해서도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태조는 하후돈을 파견하여 그들을 토벌케 하였으나, 그 군은 아직 도착치 않았다. 순욱이 두기에게 말했다.

"적은 대군을 이끌고 있을 것이네."

두기는 답하여 말했다.

"하동에는 삼만호가 있으나 모두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군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우리에게 적대치 않는 자들도 주도자가 없으므로 두려워하며 위고의 말하는 바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위고 등의 세력이 일체가 되면 필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것입니다. 혹여 이를 토벌하여 승리치 못하면 근린 사방이 그들에 호응하여 천하의 변란이 정돈되지 않을 것입니다. 혹여 정벌에 성공한다면, 이는 일 군의 민중을 학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위고 등은 아직 왕명을 거부한다고 표명치 않고, 상표하여 전임자(왕읍)을 요청하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으니 필시 신임자를 살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수레 한 대에 올라 그들의 생각지 못한 바를 찌르겠습니다. 위고는 사람됨이 계략이 많은 반면 결단력이 없으니 필시 저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제가 군에 한 달간 있으면 계략으로 그들을 옥죄어 버리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즉좌에서 뒷길을 빠져나와 두진에서 황하를 건넜다.[2]

[2] [郖]의 음은 [豆]라 한다.

《위략》에 이르기를, 당초 두기와 위고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모욕하는 사이였는데, 위고는 늘상 두기를 경멸하였다. 

어느때인가 두기는 위고와 내기를 하여 과거 두기가 위고에게 '중견(위고), 나는 나중에 하동태수가 될거다'라고 말하며 다투었다. 위고는 옷자락을 걷어 제치며 그를 매도했다.
 두기가 하동태수의 관직에 취임함에 이르자 위고는 군의 공조가 되었다. 장시는 본래 경조(윤)에 임명되었었다. 두기가 사예교위(종요)를 마중하던 때, 장시와 화음에서 조우했다.
 
장시와 두기는 서로 마주보며 의례에 따라 각각 명함을 주고 받았다. 

장시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지난날의 공조가 이제는 군의 장군이 될줄이야!'


범선은 두기를 죽여버리고 여러 사람들을 위협하고자 생각하고 [3] 우선 두기의 태도를 관찰하였는데, 성문 아래에서 주부 이하 삼십여인을 참살하여도 두기의 거동은 태연자약하였다.

[3] 《부자》에 이와 같이 말한다. 범선은 '호랑이가 되고는 싶어하나 사람을 잡아먹기는 싫어한다니, 그러면 호랑이가 될 수 없소. 지금 죽이지 않으면 필시 이후에 재난이 될 것이오.'라고 말했다.

이에 위고가 말했다.

"그를 죽이더라도 적에게 손해를 주지는 못할 것이며, 그저 오명만을 얻을 뿐이다. 지금 그를 제어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 아닌가?"

이리하여 그를 추대하게 되었다. 두기는 위고, 범선에게 말했다.
 
"위, 범은 하동의 덕망가들이고, 나는 이제 막 도착한 자요. 그러나 군신에는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 성공과 실패를 함께 하며 중대사는 함께 공평히 논의를 하도록 합시다."

이에 위고를 도독으로 삼아 군승의 직무를 행하게 했고, 공조를 겸임시켰다. 장수와 관병 삼천여는 모두 범선에게 감독시켰다. 위고 등은 기뻐하며 형식적으로 두기를 섬기며, 두기의 본심을 의심치 않았다. 위고가 대대적으로 병사를 징발하려하므로 두기는 이를 걱정하여 위고를 설득하였다.

"여러가지 대업을 이루려면 민중의 마음을 동요시켜서는 안됩니다. 지금 대대적으로 병력을 징발하려 하십니다만, 민중은 필시 동요하게 될 것입니다. 천천히 돈을 들여 병사를 모으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위고는 과연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이에 따라 조금씩 돈을 내며 징발하게 하여 징병은 수십일간에 마무리되었으나, 제장은 탐욕스러워, 모집에 응한 자는 많았으나, 병사를 (위고에게) 헌상하는 것은 매우 적었다. 또한 관사에 들어가 위고 등을 설득하여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본래 자기 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 장수들과 속관들을 나누어 휴식케 합시다. 위급한 때에는 그들을 불러들여 대비하면 어려운 일 따윈 없겠지요."
 
위고 등은 민중의 마음에 거스르는 것을 싫어하여 또한 그 말에 따랐다. 이에 의해 선인(조조에게 호응하는 자)은 밖에서 은밀히 자신을 돕게 하고, 악인은 분산하여 각기 집에 돌려보내니, 이에 민중은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마침 (장)백기가 동원을 공격하고, 고간이 호택에 침입하고, 상당군의 여러 현이 장관들을 살해하고, 홍농군이 군태수를 인질로 잡았으나, 위고 등은 은밀히 병사를 징발하고 있었으므니 아직 (충분한 병력수에 달하지 않아 무도한 짓을 이르기에) 이르지 않았다. 두기는 여러 현이 자신에게 가담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에 출진, 홀로 수천기를 이끌고 장벽에 나가 방어진을 굳히자, 관민의 다수가 성을 들어 두기를 원조하였으니, 수십일만에 사천여 병력을 얻었다. 

위고 등과 고간, 장욱은 힘을 모아 두기를 공격하였으나 이를 격파하지 못했고, 이에 여러 현을 약탈하였으나 손에 넣은 것도 없었다. 

이때, 대군(하후돈군인가?)이 도착하여 고간 장욱은 패퇴, 위고 등은 주살되었다. 그들의 잔당은 모두 사면되어 그 생업으로 돌려보내졌다. 이때,천하의 군현에서는 모두 파괴가 일었으나, 하동은 가장 빨리 평정되었으므로 피해가 적었다.

두기는 이곳을 통치할 때, 관용과 은혜를 제일로 삼아, 민중에게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느때인가 주민들 가운데 송사를 일으켜 서로 고소하는 자가 있었는데, 두기는 스스로 이들을 만나 대의를 설명하고 돌아가 반성토록 하고, 혹여 마음에 남은 것이 있다면 다시 관청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향리의 어른들은 모두 성내며 꾸짖었다.

"태수께서 이러한 분이신데 어찌 그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것이냐!"


이후로 송사는 적어졌다. 

관하의 속현에 효자 열녀 착한 손자를 추천케 했고, 또 그들의 부역을 완화시켰으며, 기회가 있으면 그들을 위로하고 권면했다. 주민에게는 암소, 말을 기르는 의무를 조금씩 부과했고, 아래로는 닭, 돼지에 이르기까지 가축을 키우는 규칙을 정했다. 농업을 권장한 결과 백성들은 윤택해졌다. 이에 두기가 말했다.
 
"백성이 부유해졌으니, 이제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후 겨울에는 무구를 익히게 하여 무술을 강의하였고, 또한 학문소를 열어 스스로 교전을 손에 쥐고 강의하였으니, 이에 군 내의 사람들이 교화받았다.[1]

[1] 《위략》에 이르기를, 박사 낙상은 두기에 의해 승진되었다. 지금도 하동에 유학자가 특히 많은 것은 두기의 덕이다.

한수, 마초가 반역한 때, 홍농 및 풍익에서는 많은 현읍이 거병하여 그들에게 호응하였다. 하동은 역도들에 인접한 곳이었으나, 주민 가운데 다른 마음을 품은 자가 없었다. 태조는 서정에 나서 포판에 도착하였을때, 적도와는 위수를 사이에 두고 착진하였는데, 군량은 오로지 하동에서 보급해 오는 것에 의존하였다. 적도들이 격파되었을 때, 비축된 잉여 군량이 이십만석에 이르렀다. 

태조는 포고를 내려 말했다.

"하동태수 두기는 공자가 말했듯 '우에게는 내가 비난할 바가 없다'라 할만하다. 봉록을 중2천석으로 가증한다."

태조가 한중 정벌에 나섰을 때, 오천명을 파견하여 운송을 담당시켰는데, 운송을 맡은 자들은 스스로 권면하며 말하였다.

"사람은 그저 한 번 죽을 뿐이다. 우리 부군(태수)께 등을 돌려선 안된다."

결국 한 사람의 도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인심을 얻은 것이 이러했다. [1]

[1] 《두씨신서》에 이른다. 평로장군 유훈은 태조와 친한 사이로, 그 고귀함은 조정을 진동시켰다. 어느때인가 두기에게 커다란 대추나무를 구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두기는 그 땅(하동)의 사정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유훈은 이에 승복하였고, 태조는 그의 편지를 받아보며 감탄했다.

"두기는 부엌에 아첨치 않는[不媚於灶] 자라고 해야 겠구나!"


두기의 공적을 칭찬하며 이를 여러 주, 군에 돌려 보였다.

"과거 중니는 안자에 대해서, 안자가 입을 열때마다 감탄치 않은 바 없었다고 한다. 또 말을 끌어들이려면 준마를 먼저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지금 짐은 여러 사람들이 높은 산을 앙망하며 선행에 힘쓰기를 바란다. (두기를 본받으라)"

위국이 건국되었던 때, 두기를 상서로 삼았다. 근무를 마치자 다시 (그에 대한) 포고가 내렸다.

"과거 소하는 관중을 다스렸고, 구순은 하내를 다스렸는데, 경은 그들과 같은 공적이 있으니, 이전에 경에게 납언(상서)의 일을 맡게 했었으나, 돌이켜 생각하건대 하동은 우리 군의 고굉(과 같이 중요한)의 군이며, 물산이 풍부한 땅이니, 천하를 제압하기에도 충분한 곳이다. 그러한즉, 얼마간 경을 번잡스럽게 하는 일이 되기는 하겠으나, 자면서도 (하동땅을) 진정시키도록 하라." 

두기는 하동에 착임한 16년간 늘 천하 제일의 성과를 거두었다.

문제는 왕위에 즉위하자, (두기에게) 관내후 작위를 내리고, 조정에 불러들여 상서로 삼았다. 황위를 이어받은 후에는 풍락정후로 올리고, 식읍을 백호로 하였으며[1] 사예교위를 대행케 했다. 

[1] 《위략》에 이와 같이 이른다. 처음 두기가 군에 있었을 때, 명령서를 받아 이에 따라 과부를 올려보냈다. 이때, 각지에서는 남편이 있는 자라 해도 조정의 명이라고 하며 여인을 빼앗아 진상했으므로 길마다 울음 소리가 울렸다. 두기만은 (진짜) 과부를 취하여 올려 보냈으므로, 그 수가 적었다. 조엄이 두기를 대신(하동태수직을)함에 이르러, 보내는 과부 수가 늘어났다. 문제는 두기에게 물었다.


"이전에 군(두기)이 보내던 수는 어째서 적었는가? 지금은 어째서 이리 수가 많은가?"

두기가 답하여 말했다.

"신이 이전에 올려 보낸 과부들은 모두 남편이 죽은 여인들이었으나, 지금 조엄이 보내는 자들은 남편이 살아있는 여인들입니다."
 
황제는 좌우의 신하들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황제는 오 정벌에 나설 때, 두기를 상서복야로 삼아 유수의 일을 통괄케 했다. 이후 황제가 허창에 순행하자, 두기는 다시금 유수의 일을 맡았다 조칙을 받아 누선을 만들고, 도하에서 배를 시험하다가 풍랑을 만나 침몰해 죽었다. 황제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2]

[2] 《위씨춘추》에 이른다. 과거 두기는 어떤 동자를 만난 적이 있다. 동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사명이 나를 보내어 아이(두기)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두기는 목숨을 구걸하자, 동자가 말했다.

"이제부터 군을 위해서 대신할(죽을) 자를 찾아오겠습니다. 군께서는 이를 남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말이 끝나자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후로 이십년이 경과한 후, 두기는 그 일을 다른 이에게 말하였는데, 그 다음날 사망했다. 이때가 그가 62세때이다.

황제가 조칙을 내려 말했다.

"과거 명은 그 직무를 다하다가 물 속에서 죽었다. 직은 백곡의 재배에 힘쓰다가 산중에서 죽었다. [3]

[3] 위소의 [국어] 주에 [모시전]을 인용하여 말했다.

"명은 계의 육세 손이다. 하나라의 수관이었는데, 그 직무를 다하다가 물 속에서 죽었다. 직(농경신 후직)은 주의 기이다.(주나라의 전설상의 시조인 기) 백곡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하다가 흑수의 산에서 죽었다."

상서복야 두기는 맹진에서 배를 시험하다가 배가 뒤집혀 죽었구나. 그 큰 충심을 보였다. 짐은 이를 안타깝게 여긴다."

태복의 직을 추증하고 시호를 대후라 하였다. 아들 두서가 뒤를 이었다.[4]

[4] 《부자》에 이른다.

두기와 태복 이회, 동안태수 곽지는 교제가 있었다. 이회의 아들 이풍도 준걸들과 교우를 맺었고, 재지에 의해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곽지의 아들 곽충은 내실은 있었으나 외관이 좋지 않아 근방에 칭찬하는 자가 없었다.

두기가 상서복야가 되었던 때, 두 사람은 각기 아들을 데리고 두기를 만나러 왔다. 그들이 나간 후에 두기는 탄식하며 말했다.
 
"이회에게는 아들이 없구나. 그저 아들이 없을 뿐 아니라, 가문도 없어지겠구나. 군모(곽지의 자인가)는 죽지 않겠구나. 그 아들은 그의 업적을 잇기에 충분하니."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두기가 무엇을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했다. 이회가 죽은 후 이풍은 중서령이 되었으나, 이후 부자형제가 모두 주살되었다.

곽충은 대군태수가 되었고, 결국 부친의 업적을 잇게 되었다. 세간에서는 그제서야 두기의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에 감복하였다.

《위략》은 이풍의 아비의 이름을 이의라고 하고 있으니, 이와는 다르다. 이의는 아마도 이회의 별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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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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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주석이 다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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