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혼(鄭渾)은 자가 문공(文公)이고 하남군(河南郡) 개봉현(開封縣) 사람이다. 그의 고조부 정중(鄭眾)과 정중의 부친 정흥(鄭興)은 모두 저명한 유학자였다.[1]

[1] [속한서]에 이른다. 정흥(鄭興)의 자는 소공(少贛)이라 하고, 간의대부직에 있었다. 정중(鄭眾)의 자는 자사(子師)라 하며, 대사농이었다. 

정혼의 형 정태(鄭泰)는 순유(荀攸) 등과 동탁을 주살할 계획을 세워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었으나 일찍 죽었다.[2] 

[2] 장번의 [한기]에 이른다. [[정태전]]으로 분리

그때 정혼은 정태의 작은 아들 정무(鄭袤)를 데리고 회남(淮南)으로 피난갔는데, 원술(袁術)은 손님의 예로써 매우 후하게 대접했다. 정혼은 원술이 반드시 패할 것임을 알았다. 그 당시 화흠(華歆)이 예장태수(豫章太守)로 있었는데, 본래 정태(鄭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정혼은 곧 장강을 건너 화흠에게 투항했다. 태조는 정혼의 행위가 돈독함을 듣고 불러서 연(掾)으로 삼았고, 후에 또 하채현(下蔡縣)의 장(長)과 소릉현(邵陵縣)의 령(令)으로 승진시켰다. 그때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며 백성들은 모두 경박하였으므로 생산이나 번식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은 아이를 낳아도 기를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기르지 않았다. 정혼은 임지에서 백성들 수중에 있는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는 기구를 빼앗아 밭을 갈고 뽕을 따도록 하는 동시에 또 밭을 개간하도록 하고, 자식을 고의로 버리는 행위에 대해선 무거운 법령을 적용시켰다. 백성들은 처음엔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였으나 후에 생활이 점점 윤택해졌기 때문에 낳은 아이를 기르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낳아 기른 자녀들은 대부분 정혼의 성씨인 정(鄭)을 사용하는 이가 많았다. 정혼을 불러서 승상의 연속(丞相掾屬)으로 임명했으며, 또 좌풍익(左馮翊)의 태수로 승진시켰다.


당시 양흥(梁興) 등은 좌풍익 지역 내에서 관리와 백성의 5천여 집을 약탈했다. 여러 현은 방어할 수 없었으므로 모두 두려워하였고, 역소를 군의 성 아래로 옮겼다. 논의하는 자는 모두 역소를 험준한 곳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다. 정혼이 말했다.

“양흥 등은 산산이 흩어져 산속의 험한 곳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비록 따르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대부분 협박당하여 그렇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협박당하여 따르는 자들을 위해 투항의 길을 열어주고, 그들에게 조정의 은총과 믿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험준한 요충지를 찾아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약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관리와 백성들을 함께 모아 성곽을 수리하고 성의 역소를 지킬 준비를 했다. 마침내 백성들을 움직여 적을 쫓게 하여 상과 벌을 밝히고, 그들과 맹약을 맺어 포획하는 것의 10분의 7을 상으로 주기로 했다.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모두 적을 잡기를 원하였는데, 대부분 부녀자와 재물을 획득했다. 적 가운데에서 처자를 잃은 사람을ㄴ 모두 돌아와 투항을 구했다. 정혼은 그들 또한 다른 사람의 부인과 딸을 잡아오도록 한 연후에 처자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다른 적을 향해 공격했다. 적의 무리는 매우 빨리 흩어져 와해되었다. 정혼은 또 관리와 백성들 중에서 은혜와 신의가 있는 자를 파견하여 산의 계곡 일대로 들어가 깨우치도록 하자, 나와 투항하는 자가 앞뒤로 서로 이어졌다. 정혼은 여러 현의 장리(長吏)로 하여금 각기 자기의 본래 현으로 돌아가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모으도록 하였다. 양흥 등은 이런 형세를 보고 매우 두려워하였으며, 남아있는 무리들을 인솔하여 녹성(鄜城)에 집결했다. 태조는 하후연(夏侯淵)에게 군수를 도와 적을 공격하도록 하였고, 정혼은 관리와 백성들을 인솔하여 우선 적의 성에 올라 양흥과 그의 지파를 참수했다. 또 적 근부(靳富) 등은 하양현(夏陽縣)의 장(長)과 소릉현(邵陵縣)의 령(令)과 그들 관리와 백성들을 협박하여 애산(磑山)으로 도망쳐 들어가도록 했다. 정혼은 또 근부 등을 격파시켜 두 현의 장리를 구출하고 적에게 약탈됐던 관리와 백성의 재물을 모두 돌려주었다. 조청(趙青)의 용(龍)이라는 자가 좌내사(左內史) 정휴(程休)를 죽였다. 정혼은 이 소식을 듣고, 장사를 파견하여 그의 머리를 베어 내걸었다. 앞뒤로 적 가운데에서 나와 투항한 자는 4천여 호가 되며, 이로부터 산적은 모두 소탕되어 평정되었고, 백성들은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였다. 정혼은 상당태수(上黨太守)로 전임되었다.

태조가 한중(漢中)을 정벌할 때, 정혼을 기용하여 경조윤(京兆尹)으로 삼았다. 정혼은 백성들이 새로 막 모였으므로 집을 옮겨 거주하는 것에 관한 법령을 제정했다. 가족을 갖고 있는 자와 독신인 자를 한 조로 하고, 온정과 신의가 있는 자와 고독하고 나이가 많은 자를 짝이 되게 하였으며, 그들 모두 농경에 힘쓰도록 하였고, 법령을 밝혀 나쁜 일을 적발하였다. 이 이후로 백성들은 농업에 안착했으며 도적들은 소멸됐다. 태조의 대군이 한중으로 들어왔을 때, 정혼이 군량미 수송에 있어 제일의 성적을 보였다. 또 정혼은 백성들을 한중으로 보내 경작에 참여시켰는데, 도망치는 자가 없었다. 태조는 정혼에게 더욱 감동하여 또 승상의 연(丞相掾)으로 임명했다. 문제가 즉위한 후에는 시어사(侍御史)로 임명되었고 부마도위(駙馬都尉)의 관직이 더해졌으며, 후에 또 양평(陽平)과 패군(沛郡)의 태수(太守)로 승진되었다. 그가 관할하는 군의 경계지대의 땅은 저습하여 수해 걱정이 있었고,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고통받았다. 정혼은 소(蕭)ㆍ상(相) 두 현의 경계지역을 선정하여 제방공사를 시작하고 밭을 만들기로 했다. 군 사람들이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자, 정혼이 말했다.

“이 땅의 형세는 낮고 습하여 관개(灌溉) 사업에 적합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물고기와 쌀을 오랫동안 계속생산할 수 있는 이로움이 있을 것이니, 이것은 농민이 부유해지는 근본인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 관리와 백성들을 인솔하여 공사를 시작했는데, 겨울 한철에 모두 완성했다. 이듬해에는 풍부한 수확을 거두었고, 논의 면적은 점점 증가했으며, 조세 수입은 평상시의 두 배나 되었고, 백성들은 그 이익에 의지하였으며, 정혼의 공을 돌에 새겨 그를 노래했으며, 호를 정피(鄭陂)라고 했다. 정혼은 산양(山陽)과 위군의 태수(魏郡太守)로 전임되었지만, 그의 통치는 거기에서도 효과가 있었다. 그는 또 군(郡) 안의 백성들이 목재 부족으로 고통을 받자, 집마다 느릅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만들고, 울타리 안쪽으로는 다섯 그루의 과일나무를 심도록 감독하였다. 오래지 않아 집집마다 느릅나무가 모두 울타리가 되었으며, 다섯 그루의 과일 나무에는 과실이 풍부했다. 정혼이 다스리는 위군(魏郡) 지역은 촌락이 하나같이 정제되어 있고, 백성들은 모두 풍족한 재원과 넉넉한 물건을 얻었다. 명제는 이 소식을 듣고 조칙을 내려 표창했으며, 천하에 알렸다. 아울러 정혼을 장작대장(將作大匠)으로 승진시켰다. 정혼은 청렴하고 소박한 관리로서, 마음은 공적인 일에만 있었으며, 그의 처자식은 항상 배고픔과 추위를 면하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아들 정숭(鄭崇)을 낭중(郎中)으로 임명했다.[3]

[3] [진양추]에 이른다. 정태의 아들 정무()는 자를 임숙(林叔)이라 한다. 정태는 화흠, 순유와 사이가 좋았는데, (두 사람은) 정무를 보고 [정공업은 죽지 않았구나!]라고 말했다. 처음에 임치후(조식)의 문학이 되었고, 이후 승진하여 광록대부에 이르렀다. 태시7년(271), 정무는 사공이 되었으나 고사하고 받지 않았고, 집에서 임종하였다. 그 아들 정묵()은 자를 사현(思玄)이라 한다.


[진제공찬]에 이른다. 정묵은 가업을 준수하고, 도타운 행동으로 평판이 높았으며, 관위는 태상에 이르기까지 승진하였다. 정묵의 아우 정질(質), 정서(), 정후()는 모두 구경의 자리에 올랐다. 정묵의 아들 정구()는, 청렴하고 정직하고 이론, 지식이 있었으니, 상서우복야가 되어 인사를 담당했다. 정구의 아우 정여()는 상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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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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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9
09:15:54
(*.52.89.88)
정무의 자 재숙->임숙으로 수정합니다.

코렐솔라

2013.07.22
18:42:21
(*.104.141.18)
주석이 다 있네요.

코렐솔라

2019.11.19
12:02:18
(*.112.38.51)
정묵의 아우 내용이 진제공찬이 아니라 본기 내용처럼 적혀있기에 주석으로 색깔 처리해서 소속을 명확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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