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고원님 - 고원님 블로그 
 


장료(張遼)의 자는 문원(文遠)이고 안문(雁門)군 마읍(馬邑)현 사람이다. 본래 섭일(聶壹)의 후예인데 원한을 피하기 위해 성(姓)을 바꾸었다. 
 
(※ 섭일은 마읍의 호족으로 한 무제 때 흉노에 거짓투항하여 흉노 선우를 속여 마읍으로 유인했던 인물. 즉 흉노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성씨를 바꾼 것) 
 
젊어서 군리(郡吏)가 되었다. 한나라 말, 병주자사 정원(丁原)은 장료의 무력(武力)이 보통사람을 뛰어넘는다 여겨 불러서 종사(從事)로 삼고, 군을 이끌고 경도(京都-수도)로 가게 했다. 하진은 장료를 하북(河北-황하 이북)으로 보내 모병(募兵)해 천 여 명을 모았다. 경도로 돌아온 뒤 하진이 패망하자 군을 이끌고 동탁에 속했다. 
 
동탁이 패망하자 군을 이끌고 여포에 속했고 기도위(騎都尉)로 관위가 올랐다. 여포가 이각에게 패하자 여포를 좇아 서주로 달아났다. 노상(魯相-노국의 상. 군국제에서 국의 장관이 상相)에 취임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태조(太祖-조조)가 하비에서 여포를 깨뜨리자 장료는 자신의 군을 이끌고 투항했다. 중랑장에 임명되고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다.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비장군(裨將軍)으로 관위가 올랐다. 원소를 깨뜨리자 별도로 장료를 보내 노국(魯國-예주 노국)의 여러 현들을 평정하게 했다. 
 
하후연과 함께 동해(東海-서주 동해군)에서 창희(昌豨)를 포위했는데, 여러 달이 지나 군량이 소진되자 회군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장료가 하후연에게 말했다,


“며칠 사이 매번 포위된 곳을 순시할 때마다 창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들이 화살을 쏘는 일이 드물었소. 이는 필시 창희가 마음속으로 망설이는 게 있어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이오. 내가 그와 얘기를 나눠볼까 하는데 어쩌면 그를 달랠 수도 있을 것이오.”


이에 창희에게 사자를 보내


‘공(公-조조)께서 남긴 명이 있어 장료를 통해 전하게 했다’


고 말했다. 
 
그러자 창희는 과연 성 아래로 내려와 장료와 대화를 나누었다. 장료가 창희를 설득하며 말했다,


“태조께서 신무(神武)하시고 바야흐로 그 덕으로 사방을 품으시니 먼저 귀부한 자가 큰 상을 받았소”


이에 창희는 투항을 허락했다. 이에 장료는 단신으로 삼공산(三公山)에 올라 창희의 집으로 가 그의 처자식에게 예를 갖추었다. 창희가 매우 기뻐하여 장료를 따라가 태조를 배알했다. 
 
태조는 창희를 돌려보내고 장료를 꾸짖으며 말했다,


“이는 대장(大將)의 법(法)이 아니오”


장료가 사죄하며 말했다,


“명공의 위신(威信-위엄과 신망)이 사해(四海)에 떨치고 있고 저 장료가 성지(聖旨)를 받드는데 창희가 감히 저를 해치지는 못하리라 여겼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 대장의 법이 아니라는 것은, 대장의 신분으로 혼자 몸으로 적진에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한 데 대해 조조가 질책한 것) 
 
태조를 수행해 여양(黎陽)에서 원담, 원상을 토벌했고 공을 세워 행(行) 중견장군(中堅將軍)에 임명되었다.
 
태조를 수행해 업(鄴) 의 원상을 공격했는데 원상이 굳게 지키자 함락시킬 수 없었다. 태조는 허도로 돌아갔는데, 장료를 보내 악진과 함께 음안(陰安-기주 위군 음안현. 업현도 기주 위군에 속함)을 함락케 하고 그 백성들을 하남(河南-황하 이남)으로 이주시켰다. . 
 
다시 업(鄴) 을 공격할 때 태조를 수행해 업을 깨뜨렸다. 장료는 별도로 조국(趙國-기주 조국), 상산(常山-기주 상산군)을 공략하고 여러 산적들과 흑산적 손경(孫輕)을 불러 투항케 했다. 태조를 수행해 원담을 공파했다. 별도로 해안지대를 공략하고 요동적(遼東賊) 유의(柳毅) 등을 격파했다. 업으로 돌아올 때 태조가 친히 나가 장료를 맞이하며 함께 수레를 탔다. 장료를 탕구장군(盪寇將軍)으로 임명했다.
 
또한 별도로 형주를 공격해 강하(江夏-형주 강하군)의 여러 현들을 평정하고 돌아와 임영(臨潁-예주 영천군 임영현)에 주둔했다. 도정후(都亭侯)에 봉했다.
 
태조를 수행해 유성(柳城)에서 원상을 정벌했다. 갑작스럽게 노(虜-오랑캐 또는 적군)와 조우하자 장료는 태조에게 싸울 것을 권하며 기백을 심히 떨쳤다. 태조가 이를 장하게 여겨 자신이 소지한 대장기를 장료에게 주었다. 마침내 원상을 공격해 대파하고 (오환)선우 답돈(蹋頓)을 참(斬)했다. (주1)
 
(주 1) [부자傅子]에서 이르길 – 태조(太祖-조조)가 장차 유성(柳城)을 정벌하려 하자 장료가 간언했다,


“무릇 허(許)현은 천자의 도읍입니다. 천자는 허현에 계시는데 공은 멀리 북쪽을 정벌하시니, 만약 유표가 유비를 보내 허현을 습격하고 이에 근거해 사방에 호령하면 공의 세력이 꺾일 것입니다.” 태조는


'필시 유표가 유비에게 일을 맡기지는 못할 것’


이라 하고는, 마침내 북쪽을 정벌했다.
  
형주가 아직 평정되기 전, 다시 장료를 보내 장사(長社-예주 영천군 장사현)에 주둔하게 했다. 막 출발하려고 할 때 군중에서 반란을 꾀하는 자가 있어 밤중에 난을 일으키고 불을 지르자 일군이 모두 동요했다. 장료가 좌우에 말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이는 한 군영 전체가 모반한 것이 아니라 필시 변고를 꾀하는 자가 있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군중에 영을 내려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자는 조용히 앉아 있으라 했다. 장료는 친병(親兵) 수십 명을 이끌고 진(陳) 중으로 들어가 섰고 그 얼마 후 반란의 주모자를 붙잡아 죽였다. 
 
진란(陳蘭), 매성(梅成)이 저(氐)족의 육현(六縣-여섯 개 현 or 여강군 육안현?)을 들어 반란을 일으켰다. 태조는 우금, 장패 등을 보내 매성을 치도록 하고, 장료는 장합, 우개(牛蓋) 등을 이끌고 진란을 치도록 했다. 매성이 우금에게 거짓으로 항복하여, 우금이 돌아가자 그 군을 이끌고 진란에 합류해 첨산(灊山-여강 일대 지명)으로 들어갔다. 첨산에는 천주산(天柱山)이 있는데 높이가 20여 리에 달했고 길이 험하고 협소해 걸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진란 등은 그 위에 보루를 쌓았다. 
 
장료가 진군하려 하자 제장(諸將)들이 말했다,


“병사는 적고 길이 험하므로 깊이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장료가 말했다,


“이는 소위 말하는 한 명 대 한 명의 싸움(一與一)으로, 용맹한 자라면 가히 전진할 만 하오.”


이에 진군하여 산 아래 도착하여 영채를 내리고 공격해 진란, 매성의 머리를 베고 그 무리들을 포로로 잡았다. 
 
태조가 제장들의 공을 논하면서 말했다,


“천산(天山)의 험준한 곳에 올라 진란과 매성을 죽인 것은 탕구(盪寇-탕구장군 장료)의 공이다”


식읍을 늘리고 가절(假節)했다.
 
태조는 손권을 정벌하고 돌아온 뒤, 장료를 보내 악진, 이전 등과 함께 7천 여 명을 이끌고 합비(合肥-양주 구강군 합비현)에 주둔케 했다. 태조가 장로를 정벌할 때 호군(護軍) 설제(薛悌)에 교서를 주었는데 서신의 겉봉에는


“적이 도착하면 뜯어보라”


고 적혀 있었다.
 
갑작스럽게 손권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합비를 포위하자 (215년의 일) 함께 뜯어보았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만약 손권이 오면 장료, 이전 장군은 출전하고 악진 장군은 수비하고 호군(護軍-호군 설제)은 싸움에 참여하지 마시오.” 
 
제장들이 모두 의심스러워 하자 장료가 말했다,


“공께서는 원정하느라 바깥에 계시므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적군이 우리를 깨뜨릴 것이 분명하오. 이 교서의 뜻은, 적이 미처 집결하기 전에 역격(逆擊-요격.영격)해 그들의 예기를 꺾어 군심을 안정시켜야 하며 그 연후에 가히 지켜 낼 수 있다는 것이오. 성패의 관건이 이 일전(一戰)에 달려 있는데 제군들은 어찌 의심하시오?” 
 
이전 또한 장료와 의견이 같았다. 이에 장료는 밤중에 감종지사(敢從之士-용맹히 뒤따를 군사들) 8백 명을 뽑고 소를 잡아 장사(將士)들에게 먹였다. 그 다음날 큰 전투가 있었다. 
 
새벽 녘 동틀 무렵, 장료는 갑옷을 입고 극(戟)을 들고 선두에 서서 적진을 함몰시켰다. 수십 명을 죽이고 2명의 장수를 베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보루를 뚫고 들어가 손권의 대장기 아래에까지 이르렀다. 손권은 크게 놀랐고 주위의 사람들은 당황해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손권은 달아나 고총(高塚-높은 무덤) 위로 올라갔고 장극(長戟)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장료가 손권을 욕하며 내려와 싸우자고 했으나 손권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장료가 이끄는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군사들을 모아 장료를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장료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 급히 공격해 포위를 뚫었다. 휘하의 수십 명을 이끌고 포위를 벗어나자 뒤에 남은 군사들이 외쳤다,


“장군은 우리를 버리십니까!”


장료는 다시 포위망 안으로 돌입해 남은 군사들을 구했다. 손권의 병사와 말들은 모두 피미(披靡-초목이 바람에 휩쓸리듯 무너져 내림)해 그를 대적할 자가 없었다. 
 
새벽부터 낮까지 계속된 싸움으로 오인(吳人)들의 예기를 꺾었고 (합비로) 돌아가 수비를 강화하자 군심이 안정되고 제장들은 모두 탄복했다. 손권은 합비를 10여 일 간 공략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군을 이끌고 퇴각했다. 장료는 제군(諸軍)을 이끌고 이를 추격해 또 다시 손권을 거의 사로잡을 뻔 하기도 했다. 태조는 장료를 매우 장하게 여기고 정동장군(征東將軍)에 임명했다. (주2)
 
(주 2) 손성(孫盛)이 말했다 – 무릇 병(兵)은 실로 궤도(詭道-속임수)이니 기(奇)과 정(正)을 함께 써 서로 보완해야 한다. 장수에게 출정을 명해 그 권한을 맡기는데 있어 때로는 솔연지형(率然之形)에 의지하고 때로는 기각지세(掎角之勢)에 의지하기도 하나 여러 장수들이 불화하면 곧 통수의 도를 저버리는 것이다. 합비에서 수비하던 일을 보면, 외떨어져 미약하고 구원군도 없었으므로 오로지 용자(勇者)에게만 맡겼으면 싸움을 좋아해 우환을 낳았을 것이고, 겁자(怯者-겁쟁이)에게만 맡겼으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적군의 수는 많고 아군은 적었으므로 (적군은) 필시 공을 탐하는 마음을 품었으리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던지는 군사로 공을 탐하는 군사를 공격하니 이는 필승의 형세로다. 싸움에서 이긴 후에 수비하면 그 수비는 필시 확고한 법이다. 이 때문에 위무(魏武-위무제 조조)가 방원(方員-네모와 원? 서로 다른 성격의 장수를 골고루 임용한 것을 비유한 듯)을 뽑아 함께 쓰며 밀교(密敎)를 내려 그들을 적절하게 쓴 것이다. 사태가 닥쳐 이에 응했으니 묘하게 맞아떨어졌도다!

건안 21년(216년), 태조가 다시 손권을 정벌하는 길에 합비에 도착했는데, 장료가 싸운 곳을 순행하며 실로 오랫동안 탄식(歎息)했다. 이에 장료의 군사를 늘려주고 제군(諸軍)을 남겨 거소(居巢-양주 여강군 거소현)로 옮겨 주둔케 했다.
 
관우가 번(樊) 에서 조인을 포위했고 때마침 손권이 칭번(稱藩-스스로 번국으로 칭함)했으므로 장료와 (그에게 남겼던) 제군(諸軍)을 불러 조인을 구원하게 했다. 장료가 미처 도착하기 전, 서황이 이미 관우를 격파해 조인에 대한 포위가 풀렸다. 장료는 태조와 마피(摩陂)에서 회합했다. 장료군이 도착하자 태조는 수레를 타고 나가 그 노고를 위로했다. 되돌아가 진군(陳郡-예주 진군)에 주둔했다.
 
문제(文帝-위문제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220년) 전장군(前將軍)으로 전임했다. (주3) 봉지를 나누어 장료의 형인 장범(張汎)과 아들 한 명을 열후에 봉했다.
 
손권이 다시 모반하자 장료를 합비(合肥)에 주둔하게 하고 도향후(都鄕侯)로 올려 봉했다. (도정후→도향후) 장료의 모친에게 수레와 병마(兵馬)를 보내 장료의 가족이 장료의 주둔지로 가는 것을 전송하게 하는 한편, 모친이 도착할 때 수행원들을 이끌고 영접하도록 명했다. 장료가 이끌던 제군의 장리(將吏-장수와 관원)들이 모두 도로변에 늘어서서 장료의 모친에게 배례했는데, 지켜보는 자들이 이를 영예로운 일로 여겼다.
 
문제(文帝)는 황제가 되자 장료를 진양후(晉陽侯)에 봉하고, 식읍을 1,000 호 늘려 예전과 합해 모두 2,600호가 되었다.
 
황초 2년(221년), 장료는 낙양궁(洛陽宮)에서 문제를 배알했는데, 문제는 장료를 건시전(建始殿)으로 불러 접견하고 오(吳)를 격파할 때의 상황에 관해 친히 물었다. (답변을 듣고난 후) 문제는 탄식하며 좌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 사람이 또한 옛적의 소호(召虎-주 선왕 때의 용장)로구나”


장료를 위해 저택을 짓고 또한 특별히 장료의 모친을 위해 전(殿)을 만들었으며, 장료를 수행해 오군(吳軍)을 격파한 보졸(步卒)들을 모두 호분(虎賁-궁정 숙위군)으로 삼았다. 
 
(주3) [위서魏書]에서 이르길 – 왕(위왕 조비)은 장료에게 비단(帛) 1천 필과 곡식 1만 곡(斛)을 하사했다.
 
손권이 다시 칭번(稱藩)하자 장료는 옹구(雍丘-연주 진류군 옹구현)에 주둔했는데 병을 얻게 되었다. 문제는 시중(侍中) 유엽(劉曄)를 보내 태의(太醫)를 데리고 가 장료의 병증을 살펴보게 했는데, 그 소식을 전하는 호분(虎賁)들이 도로에 연이었다. 
 
문제는 장료의 병이 낫지 않자 행재소(行在所-궁성 밖에 임금이 머무는 곳)로 맞아 들이고 거가(車駕-임금의 수레)를 타고 친림해 장료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고, 어의(禦衣-임금의 옷)를 하사하고, 태관(太官-음식을 담당하는 관원)은 매일 어식(禦食-임금의 음식)을 보내도록 했다. 병이 다소 차도를 보이자 주둔지로 돌려보냈다.
 
손권이 다시 모반하자(222 년의 일. 이릉대전에서 吳가 승리한 직후), 문제는 장료를 보내 배를 타고 조휴와 함께 해릉(海陵)에 이르러 장강 가에 주둔하도록 했다. 손권이 이를 매우 두려워하여 꺼리며 제장들에게 명했다,


“장료가 비록 병들었다 하나 쉽게 대적할 수 없으니 신중히 대처하시오!”


그 해, 장료는 제장들과 더불어 손권의 장수 여범을 격파했다.
 
장료는 병이 깊어져 마침내 강도(江都)에서 죽었다. 문제는 눈물을 흘렸고 시호를 내려 강후(剛侯)라 했다. 아들 장호(張虎)가 후사를 이었다.
 
황초 6년(225년), 문제는 장료와 이전(李典)의 합비에서의 공을 추념(追念)하며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합비전투에서 장료와 이전은 보졸 8백으로 적군 10만을 깨뜨렸으니 예로부터 용병(用兵)함에 있어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오늘날까지 적의 전의를 잃게 만들었으니 가히 나라의 조아(爪牙-발톱과 이빨. 용맹한 무장을 비유)라 이를 만하도다. 장료와 이전의 식읍 중 각각 1백 호를 떼어내 그들의 아들 한 명 씩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리도록 하라”
 
장호는 편장군(偏將軍)에 임명되었다. 장호가 죽자 그의 아들인 장통(張統)이 후사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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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201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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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비의장문원 어찌 위나라에명장이아닐수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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