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건(呂虔)은 자가 자각(子恪)이고 임군 사람이다. 

조조가 연주에 있을 때, 여건이 담력과 지모가 있다는 것을 듣고 종사로 삼아 기병을 인솔하여 호육을 지키도록 했다. 

양분교위 두송의 부하 백성, 경모 등이 반란을 일으켜 창희와 결탁했다. 조조는 여건으로 하여금 두송의 직무를 대신하도록 했다. 여건이 임지에 도착한 후, 경모 등 두목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수십 명을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나누어 주고, 한편으로는 용감한 사병들을 선발하여 옆에 매복시켰다. 

여건은 경모 등이 모든 취한 것을 살피고 나서 복병들로 하여금 그들을 전부 죽이도록 했다. 그 나머지 무리들은 진무하였으므로, 많은 적들은 곧 평정됐다. 

조조는 여건에게 태산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태산군은 산에 의지하고 바다에 이어져 있었으므로 세상에 동란이 일어나자, 이것을 듣고 백성들이 많이 숨어들었다. 

원소가 임명한 중랑장 곽조와 공손독 등 수십 무리들이 산을 차지하고 약탈을 일삼자 백성들은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여건은 기병을 이끌고 군에 도착하여 은혜와 신뢰를 베풀었으므로, 순조 등은 모두 투항하여 귀순하고, 산속으로 달아나 숨은 백성들도 모두 나와서 편안히 일에 종사하였다. 또 튼튼하고 건장한 남자를 선발하여 싸우는 병사를 보충하였으므로, 태산군에서는 이로서 정예병이 있게 되었고, 주군에서 가장 유명했다. 

제남군의 황건군 서화 등은 도처에서 관리를 죽이고, 성읍을 공격하여 점거했다. 여건은 병사를 이끌고 하후연과 연합하여 그들을 공격했는데, 앞뒤로 수십 차례 싸워 머리를 베거나 포로로 잡은 수가 수천 명이나 됐다. 조조가 그를 보내 청주의 각 군의 병사를 지휘하여 동래의 여러 적인 이조 등을 토벌하도록 하자, 그는 전공을 세웠다. 조조는 명령을 내렸다. 

"뜻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의 사업을 성취할 수 있고, 열사는 모두 이 때문에 몸을 바쳤소. 그대가 군으로 온 이래, 간사한 적을 잡고 포악한 무리들을 토벌하여 백성들은 안전을 얻었으며, 몸소 화살과 돌을 나르고 정벌하는 곳마다 모두 이겼소. 과거 구순은 여, 영 일대에서 공을 세웠고, 경흡은 청주, 연주에서 계책을 건의하였는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소." 

무재로 천거하고, 기도위의 관직을 더하였으나, 여전히 태산군을 다스렸다. 여건은 태산에서 10여 년 재임하였는데, 위엄과 은혜가 대단했다. 

문제가 왕의 자리에 오른 후, 비장군이 되었고 익수정후에 봉해졌으며, 서주자사로 승진시키고 위로장군의 칭호를 더했다. 낭야군의 왕상[1]을 그의 별가로 삼기를 청하여 민간의 일에 관한 일은 모두 그에게 위임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가 어진 사람을 임용할 수 있다고 칭찬했다. 

[1] 손성(孫盛)의 잡엉(雜語)에 이르길: 왕상(王祥)은 자가 휴징(休徵)이고, 지극히 효행스러웠으므로, 계모가 가혹하게 학대하고 해치려고 하였지만, 항상 친근한 얼굴로 대하며 효성스럽게 모시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주 추운 겨울에 계모가

"나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고 싶다."

라고 하자 문밖으로 나가 왕상은 옷을 벗어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는데 단단한 얼음이 녹아 물고기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그것을 잡아 받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왕상의 효성에 감응하여 물고기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성실함과 순수함으로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계모를 삼십년간 봉양하고, 계모가 죽은 뒤에야 출사하였다. 왕상의 성심은 당대에 중히 여김을 받은 바 되었다.

왕은의 진서(王隱晉書)에 이르기를: 왕상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출사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곧 사예교위로 전임되었다. 고귀향공이  입학한즉 왕상을 삼로(삼국지 위서 삼소제기의 배주에 보면 周대에 늙어 퇴임한 관원을 삼로, 오경이라 하여 황제가 이를 부형의 예로써 대하였다고 한다고 합디다.)에 임명하고, 사공, 태위로 직을 올렸다. 사마문왕이 진왕이 된 때, 사공 순의는 왕상에게 (사마문왕에 대해) 경의를 표하라 하였으나, 왕상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 건은 (위서) 삼소제기에 기술되어 있다. 진의 무제가 제위에 오르자, 왕상을 태보에 임명하고 수릉공에 봉하였다. 진시4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왕상의 아우 왕현은 자를 현통이라 하며 광록대부였다. 진제공찬은 왕현을 '솔직소박하고 행실이 올바랐다'고 하였다. 왕현의 자손은 번영하여 많은 현자 재자가 나왔으니, 그 가문의 성함이 고금에 비할 바 드물었다.

왕상은 지천명(50세)의 나이를 지나서 관직에 나섰는데 얼마 후에 사례교위로 옮겼다. 고귀향공(조모)이 태학에 들어와 왕상을 삼로로 삼았으며, 사공 태위로 승진시켰다. 사마문왕이 진왕이 되었을 때 사공 순유가 왕상에게 경의를 다하라고 했지만 이를 듣지 않았다. 진나라 무제가 제위에 오르자 왕상을 태보에 임명하고 저릉공으로 봉했다. 태시 4년(268), 89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성의 반역한 무리들을 토벌하여 머리를 베고 포로를 잡아 공을 세웠다. 

명제가 즉위하자, 만년정후에 봉해졌고, 식읍 2백호가 더해져 이전 것과 합쳐 총 6백호가 되었다. 

여건이 죽자 아들 여번이, 여번이 죽자 아들 여계가 작위를 이었다

이통, 장패, 문빙, 여건은 주군을 지키고, 모두 위엄과 신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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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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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9
07:50:42
(*.52.89.87)
왕상 관련 부분이 심하게 빠져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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