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전(典韋傳) 

전위(典韋)는 진류군(陳留郡) 기오현(己吾縣) 사람이다. 용모가 우락부락하고 근력은 다른 사람들을 뛰어넘었으며, 곧은 의지와 절개와 협기가 있었다. 양읍(養邑)의 유씨(劉氏)는 저양(雎陽)의 이영(李永)과 원수지간이었는데, 전위는 유씨를 위해 복수했다. 이영은 과거에 부춘현(富春縣)의 장(長)을 역임했으므로 집안을 매우 삼엄하게 경계했다. 전위는 수레를 타고 닭과 술을 싣고 방문객으로 가장해서 문을 열게 한 후,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 이영과 그의 아내를 죽인 연후에 조용히 수레 위의 칼과 화극을 갖고 걸어 나왔다. 이영의 집은 저자 가까이에 있었는데, 시장 사람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 그를 추격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 되었으나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고, 4, 5리 쯤 달려가서야 그의 동료를 만나 태도를 바꿔 싸우면서 탈출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호걸로 인식되었다. 

초평(初平) 연간에 장막(張邈)이 의병을 일으켜, 전위를 사병(士兵)으로 삼아 사마(司馬) 조총(趙寵)에게 소속시켰다. 아문(牙門 ; 대장의 軍門)의 깃발이 매우 컸으므로 일반 사람들은 들 수가 없었는데, 전위는 단 한손으로 깃발을 일으켜 세웠으므로, 조총은 그의 재주와 힘을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다. 후에 하후돈에게 귀속되어 여러 차례 적을 죽이고 공을 세웠으므로 사마로 임명됐다. 조조는 복양으로 가서 여포를 토벌했다. 여포는 복양에서 서쪽으로 4, 5리쯤 되는 곳에 부대 하나를 주둔시켰는데 조조가 밤에 여포의 주둔군을 급습하여 날이 밝을 때를 기다렸다가 적을 격파시켰다. 미처 돌아가지 않았는데, 마침 여포의 구원병이 도착하여 삼면에서 조조 군대를 공격했다. 이 당시 여포는 직접 격투에 참가하여 아침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쌍방이 대치하여 수십 차례 교전을 벌이고 격렬하게 싸웠다. 조조가 적진을 뚫고 나갈 병사를 소집하자, 전위가 제일 먼저 참가하여 응모한 수십 명을 통솔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두꺼운 옷과 두 겹의 갑옷을 입고 방패도 들지 않고, 단지 긴 창과 화극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때 서쪽에서 또 긴급하게 고하자 전위는 병사를 이끌고 적을 감당했는데, 적은 화살과 쇠뇌를 어지럽게 쏘았고, 화살은 비가 내리듯 쏟아졌으므로, 전위는 바라볼 수도 없어 병사들에게 말했다. 

"적군이 열 발짝까지 접근해오면 나에게 보고하라." 

병사가 말했다. 

"열 발짝 입니다." 

또 명령했다. 

"다섯 발짝일 때, 다시 보고하라." 

병사들은 두려워하며 긴급하게 외쳤다. 

"적이 왔습니다." 

전위는 손에 십여 개의 화극을 들고 큰소리로 고함지르며 일어났다. 화극이 닿은 적은 고꾸라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여포의 군대는 퇴각했다. 마침 날이 저물었으므로 조조는 병사를 인솔하여 떠났다. 조조는 전위를 도위로 임명하고, 자기 옆에 두고 친위병 수백 명을 다스리게 하고 항상 큰 천막을 돌게 했다. 전위는 건장하고 위용이 있었으며, 그가 통솔하는 장수들은 모두 사졸들 중에서 선발되어 매번 전투에서 항상 먼저 적의 진영을 함락시켰다. 전위는 교위(校慰)로 승진했다. 그는 성품이 충성스럽고 근신하며 항상 날이 새면 하루종일 서서 모시고, 밤이 되면 큰 장막 부근에서 잠을 자고, 집으로 돌아가 자는 때가 드물었다. 술 마시고 음식 먹기를 좋아하였는데, 주량이 보통 사람의 배나 되었다. 조조는 매번 앞에서 음식을 내려 많이 먹고 마시게 하고, 좌우의 몇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게 하였다. 조조는 그의 호방함을 좋아했다. 전위는 큰 쌍극(雙戟)과 칼 등의 병기를 갖고 다니기를 좋아했으므로 군중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장막 아래(조조의 막하) 장사 중에 전군(典君)이 있는데, 팔십근의 쌍극을 든다."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고 완성에 도착한 후 장수(張繡)가 투항했다.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장수와 그의 장수들을 영접하여 주연석을 만들어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조조가 술을 돌아가며 줄 때 전위는 큰 도끼를 들고 뒤에 서 있었는데, 도끼 날이 한척이나 되었다. 조조가 한 사람 앞으로 가면 전위는 즉시 도끼를 들고 그를 주시했다. 주연이 끝난 후, 장수와 그의 장수들은 감히 그를 우러러보지 못했다. 십여 일 후, 장수가 또 모반하여 조조의 군영을 습격하였으므로, 조조는 나가서 맞아 싸웠으나 형세가 불리하여 가볍게 무장한 기병을 이끌고 물러났다. 전위가 성문 가운데서 맞아 싸웠으므로 적군은 들어올 수 없었다. 적군은 흩어져 다른문으로 공격하여 들어왔다. 당시 전위의 부하는 십여 명이었는데 모두 죽을 각오로 싸워 한 사람이 열 명을 감당해냈다. 적군은 앞뒤로 점점 많아졌고, 전위는 긴 화극으로 좌우를 공격하였는데, 치고 들어가면 십여개의 창이 부서졌다. 그의 부하는 대부분 죽거나 부상당했다. 전위도 수십 군데 상처를 입었고, 길이가 짧은 무기를 쥐고 접전을 벌였으므로 적이 앞으로 와서 그를 잡으려 했다. 전위가 두 명의 적을 양 겨드랑이에 끼워 쳐 죽이자, 다른 적군들은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전위는 또 적군에게 돌진하여 몇 명을 죽였으나, 상처가 더욱 심해져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죽었다. 적은 그제서야 감히 앞으로 나가 그의 머리를 베었고, 전군이 돌려가며 그의 시체를 보았다.

조조는 퇴각하여 무음(舞陰)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전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으며, 그의 시신을 훔쳐온 사람을 모으고, 친히 그곳으로 가서 그를 위해 곡을 했다. 

사람을 보내 전위의 시신을 양읍(襄邑)에 안장하도록 했다. 그의 아들 전만(典滿)을 낭중(郎中)으로 임명했다. 조조는 매번 양읍을 지날 때마다 중뢰(中牢)로 그를 제사지냈다. 조조는 전위를 추념하고, 전만을 사마로 임명하여 자기 옆에 두었다. 문제가 왕의 자리에 오른 후, 전만을 도위로 임명하고 관내후의 작위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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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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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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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27
12:15:13
(*.104.28.55)
처사군님의 번역에 따라 어깨로 죽였다는 것을 쌍으로 끼고 죽였다고 정정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19
07:54:33
(*.52.89.87)
배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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