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덕(龐德)은 자를 영명(令明)이라 하며 남안 환도현 사람이다. (훤자의 음은 환이라 읽는다.) 젊어서부터 군리, 주종사를 역임하였다. 초병연간에는 마등을 따라 반란을 일으킨 강, 저족을 무찌르며 누차 공을 세웠기에 차제에 승진하여 교위가 되었다. 

건안연간, 태조가 여양에서 원담, 원상을 토벌하자, 원담은 곽원, 고간 등을 보내어 하동군을 공략케 하였다. 태조는 종요로 하여금 관중의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이를 토벌케 하였다. 방덕은 마등의 아들 마초를 좇아 평양에서 곽원 고간과 대치하였는데, 방덕은 군의 선봉이 되어, 나아가 이들을 크게 격파하고, 직접 곽원의 목을 베었다.[1] 

[1][위략]에 이른다. 방덕은 스스로 수급 하나를 베었으나, 그것이 곽원인줄은 알지 못했다. 싸움이 끝난 후, 사람들이 곽원이 죽었으나, 그 목이 없다고 하였다. 곽원은 종요의 조카였다. 방덕이 뒤늦게 와서는 활통에서 수급 하나를 꺼내자, 이를 본 종요가 큰 소리로 울었다. 방덕이 종요에게 사죄하자, 종요가 말했다. 

[곽원은 내 조카이기는 하나 국가의 적이다. 어찌 경이 사과할 필요가 있겠는가.] 

중랑장의 관위를 받고 도정후에 봉해졌다. 

이후 장백기가 홍농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방덕은 또한 마등을 좇아 정벌에 나서 양효 사이에서 장백기를 격파했다. 전장에서 늘상 적진에 돌격하여 적군을 격퇴하였으니, 무용이 마등군에서도 수위였다. 이후 마등은 조정에 불러들여져 위위가 되었고, 방덕은 그대로 남아 마초를 섬겼다. 

태조가 위남에서 마초를 격파하자, 방덕은 마초를 좇아 한양군으로 도망하여 기성에서 수비를 굳혔다. 이후 또 마초를 좇아 한중으로 나가 장로를 따랐다. 태조가 한중을 평정하니, 방덕은 사람들과 더불어 항복하였다. 태조는 본래부터 그의 무용을 들었으므로 입의장군의 관직을 내리고 관문정후로 봉하여 식읍 300호를 내렸다. 

후음, 위개 등이 완성에서 모반하자, 방덕은 수하를 이끌고 조인과 더불어 완성 공략에 나서 이 둘을 참하고 그대로 남쪽으로 진군, 번성에 주둔하고 관우를 토벌했다. 번성에 있던 여러 장수들은 방덕의 형이 한중에 있었으므로 이를 의심하였다.[2]

[2][위략]에 이르기를, 그의 사촌형의 이름을 방유()라 하며, 이때 촉에 있었다. 

 방덕은 거듭 말하기를

[나는 국은을 입은 몸이니, 죽음으로 의를 다하겠소. 내가 직접 나서서 관우를 치고자 생각하고 있소. 올해 안에 내가 관우를 죽이지 못하면, 관우의 손에 죽겠소.]

라 하였다. 

이후 직접 관우와 교전하여 관우를 노리고 화살을 날려 그 이마에 적중시켰다. 그 무렵, 방덕은 항상 백마를 타고 다녔으니, 관우의 군중에서는 그를 백마장군이라 부르며 모두 두려워하였다. 조인은 방덕을 번성에서 북으로 십리 떨어진 곳에 주둔시켰으나, 십여 일 계속된 비에 한수가 범람하여 번성의 평지는 5, 6장 정도 수몰되었으므로 방덕은 여러 장수들과 더불어 제방에 올라 물을 피해다. 관우가 배를 타고 이를 공격해왔는데, 큰 배에서 사방으로부터 제방 위에 화살을 쏘아댔다. 방덕은 갑주를 몸에 두르고 활을 잡고 나섰으니, 쏘는 화살마다 빚나가는 것이 없었다. 장군 동형董衡, 부곡장 동초董超 등이 항복하려 하였으므로, 방덕은 그들을 붙잡아 베어 죽였다.

일출시부터 전력을 다하여 정오가 지나도록 싸웠으나, 관우의 공격은 점점 격렬해졌다. 방덕이 가진 화살이 다 떨어졌으므로 도검을 쥐고 단병접전을 벌였다. 방덕은 독장 성하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양장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도망치 않고, 열사는 절개가 꺾이면서까지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이 내 제삿날이니라.] 

방덕은 막하의 장수 한 명, 오백(오장) 두 명을 거느리고 활을 당기며 작은 배에 올라 조인의 진영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물결에 배가 뒤집혀 활과 화살을 잃고 말았다. 

전복한 배에 매달려 물속에 있던 중에 관우의 포로가 되었으나, 당당히 서있었다. 관우가 말했다. 

[경의 형은 한중에 있소. 나는 경을 장수로 세우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 빨리 항복하지 않았소?] 

이에 방덕은 관우를 질책하며 말했다. 

[꼬마야, 어찌 항복 따위를 논하느냐! 위왕께는 정병 백만이 있으며, 위의를 천하에 떨치고 계신다. 네 유비 따위는 범재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대적이나 가능할 줄 아느냐! 나는 나라를 위해 귀신이 될 생각이니, 적의 장수 따위가 되지는 않을 셈이다.] 

결국 관우에게 죽임을 당했다. 태조는 이를 듣고 슬퍼하며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의 두 아들을 열후에 봉하였다. 문제가 왕위에 오르자 방덕의 묘에 사자를 보내 시호를 내렸다. 그 책(사령)에 이와 같이 말한다. 

[과거 선진은 머리를 잃었고, 왕촉은 다리를 잘렸다. 몸을 훼손하여 절의를 구한 것은 전대에 이를 찬미하였다. 생각건대 그대는 전장에서 과감하게 나갔으며, 곤란을 뛰어넘어 공명을 날렸다. 명성은 당시에 차고 넘쳤으며, 의로운 마음은 고금에 높았다. 과인은 이를 애달프게 여겨 시호를 장후라 내린다.] 

또 아들 방회 등 네 명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리고, 소령을 각기 100호로 하였다. 방회의 용렬함은 아비에 버금갔으니, 관위는 중위장군까지 올랐고, 열후에 봉해졌다.[3] 

[3] 왕은의 [촉기]에 이른다. 종회는 촉을 평정한 때에 전후에 북과 피리를 울리고 방덕의 유체를 맞이하여 조문하고 업에 보내 장례케 하였는데, 묘 안의 머리와 몸이 마치 산 사람 같았다.

신臣 배송지裴松之가 상고하길 : 방덕은 번성에서 죽었고, 문제가 즉위해, 다시 사자를 파견해 방덕의 묘소에 이르게 했으니, 즉 그의 주검은 응당 촉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왕은의 헛소리입니다.  

신 송지가 생각하건대, 방덕은 번성에서 죽었고, 문제가 즉위한 후 사자를 방덕의 묘소에 보냈다 합니다. 결국 그의 유체는 촉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왕은이 헛된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수의 평: 방덕은 죽을 각오로 싸우고 적을 꾸짖었으니, 주가(周苛 ; 전한 초기에 항우에게 살해된 장수)의 절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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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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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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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집해에서 왕은의 헛소리란 것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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