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육(龐淯)은 자를 자이(子異)라 하며 주천군(酒泉郡) 표씨현(表氏縣) 사람이다. 당초 양주의 종사로 파강현(破羌縣)장의 일을 맡아 했었다. 그 무렵, 무위태수 장맹(張猛)이 반역하여 자사 한단상(邯鄲商)을 살해하였는데, 장맹이 포고를 내려 말하기를 

[한단상의 장례를 치르는 자가 있으면 용서치 않고 죽이겠다.]

라 하였다. 방육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관직을 버리고 밤낮을 도와 달려 유체가 있는 곳에 가 곡소리를 냈다. 장맹의 문에 들어가 비수를 숨기고는 장맹을 죽이고자 하였다. 장맹은 그가 의사임을 알고는 그를 죽이지 말라고 명했다. 이로써 그의 충렬함이 알려지게 되었다.

[1] 

[1]위략에 이른다. 장맹의 병사는 방육을 잡아들이려 하였다. 장맹은 그것을 듣고는 한탄했다.

[장맹은 자사를 죽여 죄악을 행했는데, 이 사람은 충성을 다하여 공명을 날리는구나. 혹여 그를 죽인다면 어찌 주 내에 훌륭한 선비들을 포섭하겠는가!]

결국 상을 치르게 허락하였다. 

[전략]에 이른다. 장맹(張猛)은 자를 숙위(叔威)라 하며 본시 돈황 사람이었다. 장맹의 아비 장환()은 환제 시대에 출사하여 군수(태수), 중랑장, 태상을 역임하였고, 화음에서 거주하다가 임종을 맞아 장례를 치렀다. 건안연간 초엽, 장맹은 (홍농?)군에 출사하여 공조가 되었다. 그 무렵, 황하서안의 네 개 군은 양주의 역소(관청)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해적에게 차단되어 있었으므로 상서하여 별도의 주를 설치하도록 청하였다. 

조칙에 의해 진류사람 한단상이 옹주자사가 되어 별개의 4개 군을 통치하게 되었다. 당시 무위태수가 결원이 되어 있어서 장맹의 아비가 과거 황하서안에서 위명을 떨쳤던 고로 장맹을 조칙으로 보임하여 한단상, 장맹은 함께 서방으로 이동하였다. 장맹과 한단상은 같은 나이였으므로, 과거에는 서로 농치고 깔보던 사이였다. 함께 관직에 오르게 되어, 같이 임지로 떠나게 되었는데 도중에 점점 서로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임지에 도착하자 한단상은 장맹을 주살하려고 하였는데, 장맹은 그 계획을 알아채고는 결국 병사를 이끌고 한단상을 공격했다. 한단상의 정청은 장맹의 정청의 바로 옆에 있었다. 한단상은 군세가 도착했다는 것을 듣고는 두려워하며 지붕에 올라서 장맹의 자를 부르며 

[숙위여! 너는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냐? 허나 내가 죽더라도, (귀신이 되어) 너를 죽이고 말테다. 화해하자. 아직은 화해할 수 있지 않느냐?]

라 하였다. 이에 장맹이 소리쳤다. 

[내려오너라!] 

한단상은 지붕을 타고 내려와 장맹에게로 갔다. 이에 장맹이 그를 질책하고, 말을 마치자 한단상을 독우에게 인계했다. 

독우는 한단상을 조사하여 청사에 구류하였는데, 이후 한단상이 도망가려 하다가 발각되어 결국 죽임을 당했다. 이 해는 건안 14년이었다. 

다음해에 장군 한수(韓遂)가 스스로 상주하여 장맹을 토벌하려 했으므로 장맹은 군세를 동원하여 동쪽 방면을 방비했다. 그 관리 민중은 한수를 두려워하여 배반하여 한수와 더불어 장맹을 공격하였다. 

당초에 장환이 무위태수가 되었을 때, 장맹은 어미 뱃속에 있었다. 어미는 장환의 인수를 가지고 누각에 올라서 노래를 부르는 꿈을 꾸었다. 아침이 되어 장환에게 이를 고하니, 그가 점술사에게 이를 묻자 

[부인은 사내아이를 출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아이는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와 필시 관직에 있는 채로 죽게 될 것입니다.]

라 하였다. 

장맹은 자신이 공격당하여 결국은 죽게 될 것을 알고는 말했다. 

[죽은 자에게 지각이 없다면 그걸로 끝이겠지. 혹여 지각이 있다고 하면, 나는 머리를 화음이 있는 동쪽으로 향하여 아버님의 묘소에 참배나 할까나?] 

그리고는 누각에 올라 스스로 불을 놓고 죽었다. 

태수 서읍(徐揖)이 청하여 그를 주부로 삼고자 하였는데, 이후 군민 황앙(黃昻)이 반역을 일으켜 성을 포위하였다. 방육은 처자를 버리고 밤중에 성벽을 넘어 포위망을 벗어나 장액(張掖)과 돈황(燉煌) 두 군에 급변을 알렸다. 두 군에서는 처음에 의심을 품어 군세를 내려고 하지 않았으나, 방육이 칼로 자신을 찌르려고 하며 자기의 말을 증명하자, 두 군에서는 그의 의기에 감동되어 병사를 일으켜 구원했다.

군세가 아직 도착하기 전에 군의 성읍은 이미 함락되어 서읍은 죽고 말았다. 방육은 서읍의 유체를 수습하여 본군에 보내고 삼년간 복상하고 돌아왔다. 태조가 이를 듣고는 불러들여 연속으로 삼았다. 문제가 제위에 오르자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삼고 서해(西海)태수로 옮겨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다. 이후 다시 중앙에 불러들여져 중산대부(中散大夫)에 임명되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 방증(龐曾)이 뒤를 이었다.

[[방아친전]]으로 분리

진수의 평: 방육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거꾸로 하여 스스로를 찌르려 하였으니 그의 진실된 성의는 이웃 나라까지 감동시켰다.
분류 :
위서
조회 수 :
4209
등록일 :
2013.05.04
10:52:57 (*.148.47.205)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2521/b03/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2521

코렐솔라

2013.07.19
08:08:48
(*.52.89.87)
주석 고유명사에 한자 조금 추가

포증

2013.09.26
20:53:56
(*.150.114.168)
장육이 검 위로 엎드려지려(자살)하자 그의 의기에 감탄하며 결국 군세를 서둘러 보냈다. -> 장육을 방육으로 고치고, '자살'이라는 글자를 빼야 하지 않나요?

아래에 '방육은 서읍의 유체를 수습하여 본군에 보내고 삼년간 복상하고 돌아왔다. 태조가 이를 듣고는 불러들여 연속으로 삼았다.' 라는 내용이 있으니 자살한 것은 아닌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것 같습니다.

코렐솔라

2013.09.26
21:18:33
(*.166.245.166)
방육의 자도 자이인데 자기라고 되어있고-_-;;; 수정할게 꽤 있는 것 같군요 제보 감사합니다. 수정들어가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촉서 촉서 목차 링크 재원 2013-07-08 172207
공지 위서 위서 목차 링크 [1] 재원 2013-06-29 180057
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8 130706
270 위서 진태전 [3] 재원 2013-05-04 6704
269 위서 진군전 [2] 견초 2013-05-04 6290
268 위서 환계전 [3] 견초 2013-05-04 4316
267 위서 부하전 [1] 견초 2013-05-04 4821
266 위서 유소전 [1] 견초 2013-05-04 4551
265 위서 유이전 [1] 견초 2013-05-04 4202
264 위서 위기전 [3] 견초 2013-05-04 4631
263 위서 왕찬전 [9] 견초 2013-05-04 5443
262 위서 무문세왕공전(조조, 조비 아들들, 조충전 등) [6] 견초 2013-05-04 8636
261 위서 소회왕웅전(조웅전) [1] 견초 2013-05-04 3936
260 위서 진사왕식전(조식전) [3] 견초 2013-05-04 7881
259 위서 임성위왕창전(조창전) [10] 견초 2013-05-04 6137
258 위서 염온전 [1] 견초 2013-05-04 4496
» 위서 방육전 [3] 견초 2013-05-04 4209
256 위서 방덕전 [1] 견초 2013-05-04 8098
255 위서 전위전 [2] 견초 2013-05-04 7713
254 위서 허저전 [1] 견초 2013-05-04 6681
253 위서 여건전 [1] 견초 2013-05-04 4550
252 위서 문빙전 [1] 견초 2013-05-04 6490
251 위서 장패전 [1] 견초 2013-05-04 6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