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온(閻溫)은 자를 백검(伯儉)이라 하며, 천수군 서성현 사람이다. 양주 별가직에 있으며 상규현령직을 겸하였다. 마초가 상규에 도망하여 온 때, 임의 등 그 군의 사람들이 군세를 들어 그를 맞이하였다. 염온은 이를 막으려 하였으나, 이들을 제압치 못하였기에 양주의 치소로 퇴각하였다. 

마초가 양주의 치소인 기성을 포위하여 극히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주에서는 염온을 은밀히 탈출케 하여 하후연에게 위급을 알리도록 하였다. 적의 포위는 몇겹에 이르렀으나, 염온은 밤중에 물 속에 숨어 탈출하였다. 다음날, 적도들은 (염온이 포위를 벗어난) 흔적을 발견하고, 사람을 풀어 그를 쫓게 하여, 현친현의 경계에서 염온을 발견하여 이를 붙잡아 마초에게로 끌고 돌아왔다. 

마초는 그 포승을 풀어주며 말하였다.

[이제 승패의 향방이 보이겠지. 족하는 고립된 성의 구원을 요청하고자 하였다가 우리 손에 붙잡혔는데, 어떠한가. 의로운 마음을 발휘할만한 여지가 있는가? 혹여 내 말에 따르고자 한다면 곧 성에 돌아가 성중에서 이르기를 동방으로부터 올 원군이 없다고 말하도록 하라.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이리 행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대를 죽일 것이다.] 

염온이 거짓으로 이를 승낙하였기에 마초는 염온을 수레에 태워 성 아래쪽에 다다랐다. 염온은 성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했다. 

[대군이 삼일 내에 도래할 것이오. 모두 힘내시오!] 

성중에서는 이를 보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쳤다. 

마초는 노하여 그를 책망하여 말했다. 

[족하는 목숨을 어찌 이리 가벼이 여기는 것인가!] 

염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마초는 장기간 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치 못하였기에 그를 회유하여 뜻을 바꿀 수 있을까 기대하였다. 

이에 또다시 염온에게 말하기를 

[성중의 연고자 가운데, 내게 동조하려 하는 자가 있소, 없소?] 

염온은 또한 답하지 않았다. 결국 엄히 그를 책하였으나, 염온은 이렇게 말하였다.

[장부가 군주께 사관함에 이르러서는 죽어도 두 마음을 갖지 않는다 하오. 헌데 경은 장자(어른이란 뜻으로도 덕있는 사람이란 뜻으로도 쓰이는데, 걍 염온의 나이가 좀 많았다고 생각하면 적절하지 않을는지.)에게 의롭지 못한 말을 하게끔 하려는 구려. 내 어찌 삶을 탐하는 자이겠소?] 

결국 마초는 그를 죽였다. 

이보다 전에, 하우(황하 우편, 즉 황하 동편을 말하는 듯)에 혼란이 일어 교통이 단절되었던 때, 돈황태수 마애(馬艾)가 재관 중에 사망하였는데, 역소에는 승(차관)을 두지 않은 상태였다. 공조 장공(張恭)은 본시 학문과 선행이 있었기에 군의 사람들은 행장사사(장사의 직무를 대행 장리는 오기)를 맡도록 추천하였으니, 이에 은애와 신의가 크게 드러났다. 장공은 아들 장취(張就)를 동방으로 보내어 태조께 입조하여 태수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당시 주천의 황화(黃華), 장액의 장진(張進)이 각 군에 할거하여 장홍 마애의 세력을 병합코자 생각하고 있었다. 장취가 주천에 이르자, 황화는 이를 억류하고 날붙이로 그를 위협하였다. 장취는 최후까지 태도를 바꾸지 않았으며, 은밀히 장공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였다. 

[대인은 돈황을 통솔하고 격려하여 충의를 떨치고 있습니다. 어찌 장취가 곤궁에 처하였다 하여 충의와 이(아들 장취의 목숨)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악양은 자식을 잡아먹었고, 이통은 가문을 깨부수었습니다. 정사를 행하는 신하된 자가 어찌 처자의 일을 생각하겠습니까? 대군이 곧 (돈황에) 도래할 것입니다. 오로지 병력을 들어 그들을 막아야 할 뿐,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범인의 자식사랑에 따라 움직이지 마시어, 부디 황천길을 가는 아들에게 한을 남기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이에 장공은 사촌아우 장화(張華)를 보내어 주천의 사두, 건제의 두 현을 공격케 하였고, 장공도 병사를 거느려 장화의 뒤를 좇아 선진과 후진이 서로 보조하는 진형을 갖추었다. 동시에 철기 200기를 파견하여 관리를 맞이하게 하여 주천 북쪽의 요새에서 길을 따라 동진, 곧바로 장액의 북쪽으로 나가 황하에 다다라, 태수 윤봉을 맞이하였다. 이때 장진은 황화의 원조를 의지하고자 하였는데, 황화가 그를 돕고자 생각하였으나 서쪽에 장공의 병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배후로부터 기습당할 위험이 있어 결국은 금성태수 소칙에게 가서 항복하였다. 장취는 이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무사하였고, 윤봉도 무사히 태수직에 착임하였다. 황초이년, 상찬의 조칙이 내려와, 장공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리고, 서역무기교위에 임명하였다. 수년후에는 중앙으로 불러들여져 시신?의 관직을 내리고, 아들 장취로 하여금 장공의 전직을 맡게 하도록 하였는데, 장공은 돈황까지 이르렀을 무렵에 중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양하였다. 태화연간에 세상을 떠났고, 집금오의 관직이 추증되었다. 장취는 이후 금성태수가 되었고, 부자의 명성이 서방의 주에 널리 떨쳤다.[1]

[1] [세어]에 이른다. 장취의 아들 장효(張斅)는 자를 조문(祖文)이라 하며, 도량이 있고 의지가 강하며, 엄정한 인물로 진 무제(사마연) 시대에 광한태수가 되었다. 왕준이 익주에서 병력을 모아 오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호부가 없었다. 장효는 왕준의 종사를 체포하여 상표하였는데, 이 일로 장효가 소환되었다. 황제가 장효를 문책하여 말하였다.


[어찌 은밀히 고하여 일을 해결치 아니하고, 곧 종사를 체포하였느냐?]


장효가 답하여 말했다.


[촉한의 땅은 험준하고 멀어, 당초 유비는 이를 이용하였습니다. (왕준의 반역을 의심하여) 이를 속히 체포하였는데, 신이 너무 가벼이 생각한 모양입니다.]


황제는 그의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관위가 올라 흉노중랑장에 이르렀다. 장효의 아들 장고는 자를 원안이라 하며 장효의 풍격을 이어 황문랑이 되었는데, 요절하였다. 장효의 이름을 어느 책에서는 장발이라 적고 있다.

[위략 용협전(魏略勇俠傳)]은 손빈석, 축공도, 양아약, 포출 등 네 명을 거론하고 있다. 빈석이 한대의 인물임에도 어환이 편찬한 [위서(위략)]에 기재된 것은 시기적으로 위대에 가깝고, 사적이 위대와 이어진 때문일 것이다. 그 (네 사람의) 행동과 절의를 논하자면 모두 방육과 염온과 동류이다. 이 가운데 축공도는 [가규전]에 그 이름이 보인다.


[[손빈석]]전으로 분할.

[[양아약전]]으로 분할.

[[포출전]]으로 분할.

어환이 말한다. 과거 공자는 안회에게 감탄하며 석 달을 지내도 인에 어긋남이 없는 자라 하였다. 이는 그의 마음을 관찰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 손, 축(손빈석, 축공도)이 안색을 살피고(아마 조중태를 시장에서 발견해 구한 일을 말하는 듯) 뇌옥을 깨뜨린 것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본시 한양의 주씨가 (계포를) 숨겨주려 하지 않았고, 노의 주씨가 실정을 의심치 않은 것은 어찌 된 일인가? 화가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 마음이 불안했던 것이리라. 그럼에도 태사공(사마 내시님)은 그들이 최후까지 계포를 피하게 해 준 것을 귀히 여긴 것이다. 

두 현인(손, 축)이 의를 다한 일이 어찌 소소한 일이겠는가? 멀리는 손, 축을 본받고, 가까이는 양, 포를 기록하여 그들에 대한 기억이 어지러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경박한 풍조를 바르게 하려는 것이다. 포출의 경우, 예의 교화에 물들지는 않았으나, (어미가 납치되어) 마음이 아파 뜻을 세우고는 분연히 일어난 것이었으니, 비록 초야에 묻힌 자이기는 하나, 그 도타움이 열렬한 군자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양아약의 경우에는 젊어서는 임혐을 칭하며 양아치질을 하였으나, 성년이 되어서는 의를 실천하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리며 절의에 거스르는 자를 격파하였으니, 용자이면서도 인이 있는 자라 말할 만 하다.


* 평하여 말한다. ― 이전(李典)은 유학의 아정함을 숭상하고 공(公)을 위해 개인의 복수를 잊었으니 인품이 정말로 훌륭하다. 이통, 장패, 문빙, 여건은 주군을 지키고, 모두 위엄과 신의가 있었다. 허저와 전위는 조조의 곁에서 무용을 발휘하였는데, 이들 역시 한나라의 번쾌와 상당한다. 방덕은 죽을 각오로 싸우고 적을 꾸짖었으니, 주가(周苛 ; 전한 초기에 항우에게 살해된 장수)의 절개를 갖고 있다. 방육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거꾸로 하여 스스로를 찌르려 하였으니 그의 진실된 성의는 이웃 나라까지 감동시켰다. 염온은 성안을 향해 크게 소리쳐 춘추시대의 해양(解楊)과 전한의 제로(齊路)의 열렬함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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