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위왕창전(조창)  

임성위왕 조창(曹彰)은 자가 자문(子文)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수레몰이를 잘 하였으며, 근력이 다른사람들보다 뛰어나 맨손으로 맹수와 격투했으며,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하지 않았다. 여러차례 조조를 따라 정벌에 나섰는데, 의지가 강개함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조조는 일찍이 그 점을 비판하며 말했다. 


"너는 독서에 전념한다거나 성현의 도를 흠모하는 것은 하지 않고 말을 타고 칼을 차는 것만 좋아하는데, 이것은 한 필부의 쓰임일 뿐 어찌 족히 귀하게 되겠는가!" 

조창에게 <시경>과 <서경>을 읽으라고 재촉하자 조창은 주위 사람에게 말했다. 

"대장부는 응당 위청(전한의 명장)과 곽거병처럼 10만 기병을 이끌고 사막을 질주하며 흉노를 쫓아 공훈을 세워 봉호를 얻어야 하는데, 어떻게 박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조조는 일찍이 그의 아들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물으며 그들 각자 자기가 지향하는 것을 말하도록 했다. 조창이 말했다. 

"장수가 되고 싶습니다." 

조조가 말했다. 

"장수가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대답했다. 

"몸에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몸을 돌아보지 않고 사졸들의 앞에 서며,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주어 장려하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징벌을 할 것입니다." 

조조는 크게 웃었다. 

건안 21년(216)에 언릉후로 봉했다. 

23년(218), 대군의 오환이 모반을 일으키자, 조창을 북중랑장으로 임명하고 효기장군을 대행하도록 했다. 출발에 임하여 조조는 조창에게 계도하여 말했다.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였으나, 일을 담당했으니 우리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가 되었다. 행동을 할 때는 왕법에 따라서 일을 처리해야 하니, 너는 이 점에 주의해라!" 

조창은 북정하여 탁군의 경계지역으로 들어갔는데, 반역한 오랑캐 수천 기병이 갑자기 왔다. 당시 병마는 아직 집결하지 않았고 오직 보병 천명과 기병 수백 명만 있었다. 조창이 전예의 계책을 사용하여 요새를 튼튼히 지켰으므로 적은 곧 퇴각하여 흩어졌다. 조창은 적을 추격하면서 오랑캐를 활로 쏘았는데, 활 시위에 호응하여 거꾸러지는 자가 앞뒤로 서로 이어졌다. 싸움은 반나절이나 계속되었는데, 조창의 갑옷에 몇 대의 화살이 맞았지만 투지는 오히려 더욱 앙양되었다. 승기를 잡아 적을 추격하여 상건현까지 갔을 때는,[주1] 군으로부터 2백여 리나 떨어져 있었다. 


[주1] 신송지의 의견 - 대군(代郡) 상건현(桑乾縣) 은 현재 북쪽 오랑캐 있는 곳으로, 선비(索干)의 도읍을 일컫는다.


장사나 여러 장수들은 모두, 방금 너무 멀리 진군하여 사병도 말도 피곤하고, 또 위나라의 절도를 받아 대군을 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깊숙이 진격할 수 없으며, 명령을 어기고 적을 경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창이 말했다. ..


"군대를 이끌어 병사를 나아가게 하는 것은 그곳에서 승리할 수 있어서 가는 것인데 또 무슨 절도란 말인가? 오랑캐는 달아나더라도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니 그들을 추격하면 반드시 무찌를 수 있거늘 명령을 존중하여 지키면 오히려 적을 놓아 달아나게 하는 것이니 훌륭한 장수가 아니다." 

그리고 말에 올라 군중에 명령했다. 

"늦게 출동하는 자는 목을 베리라." 

하루 낮 하루 밤을 달려 적을 추격하여 크게 무찔렀으며 머리를 베거나 포로로 잡은 자가 수천 명이었다. 조창은 즉시 보통 규정의 두 배에 해당하는 상을 장병들에게 주자, 장병들 중에서 기뻐하지 않는자가 없었다. 당시 선비족의 대인 가비능은 수만 기병을 이끌고 전투를 바라보았는데, 조창 군대가 전투를 용감히 하고 가는 곳마다 무찌르는 것을 보고 곧 조조에게 귀순하기를 청했다. 북방은 모두 평정되었다. 당시 조조는 장안에 있으면서 조창을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불렀다. 조창은 대군에서 출발하여 업성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태자 조비가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방금 공을 세워 지금 서쪽으로 가서 황상을 만나려고 하는데, 자만하지 마시오. 대답할 때는 항상 부족한 것이 있는 것처럼 겸손하게 하시오." 

조창은 장안에 도착하여 태자가 말한 것처럼 하여 공로를 장수들에게 돌렸다.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조창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황수아(조창)가 이와 같다니 의외로구나!" [주2]



[주2] 위략 : 태조가 한중에 있을때 (유비와 한중을 다투던 시기), 유비는 정군산 위에서 유봉을 내려보내 싸움을 걸었다. 조조가 욕하며 말하길


"신발장수집아이(유비 비하인듯)가 양자를 보내 다투고자 하니 이 어찌 공평한가! 조창을 불렀으니 오면 공격하게 하리라"


이에 조창을 불렀다. 조창이 밤낮을 달려 장안에 왔으나 조조는 이미 돌아와 한중으로부터의 귀환을 수행했다. 조창의 수염이 누렇기 때문에 황수(黃鬚, 또는 황수아)라 불렀다.


조조는 동쪽으로 돌아올 때, 조창에게 월기장군을 대행하도록 하여 장안에 남겨두었다. 조조가 낙양에 도착하여 병에 걸리자, 역마를 보내 조창을 불렀는데, 그가 도착하기 전에 조조는 죽었다.


위략 : 조창이 이르러 임치후 조식에게 말하길


"선왕이 나를 부르심은 너를 세우고자 함이 아니겠느냐"


조식이 말하길


"아닙니다. 원씨 형제를 보지 못했습니까!"


문제가 왕위에 오른 후, 조창과 제후들은 자기 본국으로 돌아갔다. 


魏略曰:太子嗣立,既葬,遣彰之國。始彰自以先王見任有功,冀因此遂見授用,而聞當隨例,意甚不悅,不待遣而去。時以鄢陵塉薄,使治中牟。及帝受禪,因封為中牟王。是後大駕幸許昌,北州諸侯上下,皆畏彰之剛嚴;每過中牟,不敢不速。

조서에서 말했다. 

<선생의 도는 공신을 임용하고 친족을 친절하게 하고,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생들과 함께 나라를 세워 가업을 계승하여 종묘사직을 지키고 침략을 막고 곤란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창은 이전에 명령을 받아 북벌을 하여 북방의 땅을 완전히 평정했으니, 그 공로가 매우 크다. 식읍 5천 호를 증가시켜 이전의 것과 합쳐 모두 1만호가 되게 하라.> 

황초 2년(221)에 작위를 승진시켜 공으로 삼았다. 

황초 3년, 임성왕으로 삼았다. 

4년에 수도로 나아가 황상을 만났고, 병을 얻어 수도의 관저에서 죽었는데, 시호를 위라고 했다.


위씨춘추 : 문제 즉위 초 조창이 옥쇄(璽綬)에 대해 물었다. 장차 다른 뜻이 있음을 알게되어, 조창이 조정에 이르렀으나, 만나지 않았다. 조창은 성내어 갑자기 죽었다(暴薨).


안장할 때, 문제는 천자용 수레, 용 모양의 깃발과 근위병 백 명을 하사하고, 한나라 동평왕의 안장 규격에 따르도록 했다. 아들 조해가 왕위를 계승했으며 중모현으로 옮겨 봉해졌다. 

5년에 임성현으로 바뀌어 봉해졌다. 

태화 6년에 임성국에 봉하고, 5현의 2천5백호를 갖도록 했다. 

청룡 3년에 조해는 황제를 위해 물건을 만드는 중상방으로 사사로이 관리를 보내 금지한 물건을 만들게 했으므로 한 현 2천호를 삭감당했다. 

정시 7년(246), 제남으로 봉하고 식읍을 3천호로 했다. 

정원, 경원 초년에 연속하여 식읍이 증가해 총 4천4백호가 되었다.


楷,泰始初為崇化少府,見百官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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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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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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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0
23:57:28
(*.52.89.87)
한문 주석추가

재원

2013.07.25
16:19:41
(*.67.12.154)
직접 수정해보니 수정하면 게시자가 바뀌게 되긴 하는군요. 이 문제 해결해달라고 요청해 두었습니다.

구라뱅뱅

2013.07.25
16:04:05
(*.49.168.253)
주1] 臣松之案桑乾縣屬代郡,今北虜居之,號為索干之都。
신송지의 의견 - 대군(代郡) 상건현(桑乾縣) 은 현재 북쪽 오랑캐 있는 곳으로, 선비(索干)의 도읍을 일컫는다.

재원

2013.07.25
16:14:15
(*.67.12.154)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구라뱅뱅

2013.07.25
16:37:59
(*.49.168.253)
주2] 魏略曰:太祖在漢中,而劉備栖於山頭,使劉封下挑戰。太祖罵曰:「賣履舍兒,長使假子拒汝公乎!待呼我黃鬚來,令擊之。」乃召彰。彰晨夜進道,西到長安而太祖已還,從漢中而歸。彰鬚黃,故以呼之。

이건 제가 실력이 짧아 메끄럽게 만들려다보니, 의역했습니다.

위략 : 태조가 한중에 있을때 (유비와 한중을 다투던 시기), 유비는 정군산 위에서 유봉을 내려보내 싸움을 걸었다. 조조가 욕하며 말하길 "신발장수집아이(유비 비하인듯)가 양자를 보내 다투고자 하니 이 어찌 공평한가! 조창을 불렀으니 오면 공격하게 하리라" 이에 조창을 불렀다. 조창이 밤낮을 달려 장안에 왔으나 조조는 이미 돌아와 한중으로 부터의 귀환을 수행했다. 조창의 수염이 누렇기 때문에 황수(黃鬚, 또는 황수아)라 불렀다.

코렐솔라

2013.07.25
16:45:31
(*.0.203.141)
헉, 그 유명한 연의에 나오는 황수아 얘기군요. 바로 반영하겠습니다. 번역 감사합니다.

구라뱅뱅

2013.07.25
16:49:11
(*.49.168.253)
魏略曰:彰至,謂臨菑侯植曰:「先王召我者,欲立汝也。」植曰:「不可。不見袁氏兄弟乎!」
위략 : 조창이 이르러 임치후 조식에게 말하길 "선왕이 나를 부르심은 너를 세우고자 함이 아니겠느냐" 조식이 말하길 "아닙니다. 원씨 형제를 보지 못했습니까!"

코렐솔라

2013.07.25
16:51:47
(*.0.203.141)
간결하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군요. 도움 감사합니다.

구라뱅뱅

2013.07.25
16:58:55
(*.49.168.253)
魏氏春秋曰:初,彰問璽綬,將有異志,故來朝不即得見。彰忿怒暴薨。
위씨춘추 : 문제 즉위 초 조창이 옥쇄(璽綬)에 대해 물었다. 장차 다른뜻이 있음을 알게되어, 조창이 조정에 이르렀으나, 만나지 않았다. 조창은 성내어 갑자기 죽었다(暴薨).

코렐솔라

2013.07.25
17:03:49
(*.0.203.141)
사람들이 이 부분을 갑자기 죽은 게 이상하니 조비의 암살이라고 했는데 위씨춘추는 이걸 홧병으로 보고 있군요. 번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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