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은 자가 자건(子建)이다. 열 살 남짓할 때, 《시경》ㆍ《논어》 및 사부 10만 자를 암송하고 읽었으며 문장짓는데 뛰어났다. 조조는 일찍이 그가 글을 쓰는 것을 보고 말했다. 

"너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대신 짓는 것이냐?" 

조식은 무릎을 끓고 말했다. 

"제가 말을 하면 의론이 되고, 붓을 휘두르면 문장이 이루어집니다. 눈앞에서 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에게 부탁하여 대신 짓게 하겠습니까?" 

이 당시 업성에는 동작대가 막 완공되어 조조는 여러 아들을 데리고 동작대 위로 올라가 그들에게 각자 사부를 짓도록 했다. 조식은 붓을 쥐고 한 번에 휘둘러 완성했는데, 볼 만했으므로 조조는 그를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음담(陰澹)의 위기(魏紀)에 실려있는(載) 조식()의 부(賦)// 동작대부로 유명합니다.


"從明后而嬉游兮,  명후(明后)를 따라 노닐다가

登層臺以娛情 경치를 즐기러 누대에 올랐다네.

見太府之廣開兮,태부(太府)의 넓직함을 보니

觀聖德之所營。성덕의 경영함을 알겠네.

建高門之嵯峨兮,높은 문을 우뚝 세웠으니

浮雙闕乎太清。태청(太淸)에 망루가 서 있다네.

立中天之華觀兮,중천에 화려한 경치를 세워

連飛閣乎西城。서쪽성에 다리를 잇겠노라.

臨漳水之長流兮,장수(水)에 오니 강물은 길게도 흐르는데

望園果之滋榮。정원의 과일이 풍성함을 바라본다.

仰春風之和穆兮,봄바람 화목하게 불어오니

聽百鳥之悲鳴。온갖 새들의 슬픈 울음소리 들리네.

天雲垣其既立兮,하늘에 구름 겹겹이 쌓였으니

家願得而獲逞。집안의 소원을 얻어 즐거워지리라.

揚仁化於宇內兮,어진 교화를 천하에 드날리니

盡肅恭於上京。모두다 천자님을 삼가 존경하네.

惟桓文之為盛兮,오직 제환공과 진문공의 위업이니

豈足方乎聖明!어찌 성명에 모남이 있겠는가.

休矣美矣!惠澤遠揚。훌륭하도다 아름답도다, 멀리까지 은혜를 베풂이여

翼佐我皇家兮,우리 황실을 도와

寧彼四方。저 천하가 평안할 지니라.

同天地之規量兮,천하의 법규를 같이하여

齊日月之暉光。해와 달을 가지런히 한 것 같이 빛나리라.

永貴尊而無極兮,영원히 존귀하여 끝이 없으니

等年壽於東王 모두들 동황에 장수를 누리리라."


太祖深異之



조식은 성정이 까다롭지 않았고 순리를 따랐으며, 행동거지는 위엄을 차리려고 하지 않았으며, 거마와 복식은 화려함을 숭상하지 않았다. 조조에게 나가 만나면, 조조는 매번 어려운 문제를 내고, 그는 목소리에 호응하여 대답했기 때문에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건안 16년(211)에 평원후로 봉해졌다. 

19년(214)에 임치후에 봉해졌다. 조조가 손권을 정벌할 때 조식을 보내 업성을 지키도록 하면서 그에게 충고하며 말했다. 

"내가 옛날 돈구현의 현령으로 있을 때, 스물셋이었다. 그 당시 했던 일을 회상하면, 지금도 후회되는 것이 없다. 이제 너도 스물셋이다. 노력을 안할 수 있겠느냐!" 

조식은 재능으로써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후, 정의ㆍ정이ㆍ양수 등이 그의 우익이 되어 도왔다. 조조는 결정하지 못하여 주저하면서 몇 번이나 조식을 태자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조식은 성품에 따라 일을 하고 자기를 꾸미지 않았지만, 음주에 절제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수단을 강구하여 조조를 받들고 진실된 감정을 가리고 자기를 꾸몄으므로 궁궐 사람과 조조 주위의 신하들은 모두 그를 위해 말하였기 때문에 계승자가 되었다.

22년(217)에 식읍 5천 호를 증가시켜 이전 것과 더해 모두 1만 호가 되었다. 조식은 일찍이 수레를 타고 천자만이 가는 길을 통해 사마문을 열고 나갔다. 조조는 매우 노하여 궁문을 관리하는 공거령을 사형에 처했다. 이 때문에 제후의 법령 제한이 강화되었고, 조식의 총애는 나날이 줄어들었다.


魏武故事載令曰:「始者謂子建,兒中最可定大事。」又令曰:「自臨菑侯植私出,開司馬門至金門,令吾異目視此兒矣。」又令曰:「諸侯長史及帳下吏,知吾出輒 將諸侯行意否?從子建私開司馬門來,吾都不復信諸侯也。恐吾適出,便復私出,故攝將行。不可恆使吾(爾)〔以〕誰為心腹也!」    


위무고사(魏武故事)에 명령을 기재하였는데 이르길 :


「처음에는 자건(子建)이 아이들 중에 가장 대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또 명령에서 이르길 :


「임치후 조식이 사사로이 나가 사마문에서부터 금문을 연 것이 나로 하여금 이 아이를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


또 명령에서 이르길 :


「제후의 장사와 장하리들은 내가 나갈 때 항상 제후들과 더불어 동행하는 의도를 아는가? 자건이 사사로이 사마문을 연 이래로 나는 다시는 제후들을 전부 믿지 않게 되었다. 내가 나가면 다시 사사로이 나갈까 두려워서 데리고 같이 나가는 것이다. (이로써) 항상 그대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를 마음속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조조는 조식의 세력이 너무 커서 후환이 될것을 걱정하였으며, 양수가 재간과 모략이 있었으나 원씨의 외조카인 점을 들어 양수를 주살했다. 조식은 내심 더욱 불안해졌다. 


전략, 세어 등 양수전으로 분할

24년(219)에 조인이 관우에게 포위되었다. 조조는 조식을 남중랑장으로 임명하고 정로장군을 대행하도록 하여 그를 보내 조인을 구하게 하려고 불러냈는데 조식이 술에 취해 명을 받들 수 없었으므로 조조는 후회하며 그의 관직을 박탈했다. 


魏氏春秋曰:植將行,太子飲焉,偪而醉之。王召植,植不能受王命,故王怒也。    


위씨춘추에 이르길 : 조식이 장차 가려는데 있어 태자가 술을 먹으며 핍박해 취하게 만들었다. 왕이 조식을 불렀는데 조식이 왕명을 받들지 못하니 이 때문에 왕이 분노하였다.

문제는 왕위에 오른 후, 정의와 정이 및 그들 집안의 남자들을 죽였다. 조식과 제후들은 모두 자기 봉국으로 돌아갔다. 


위략: 정의전으로 분리 문사전: 정이전으로 분리

황초 2년(221), 남국의 알자 관균이 천자의 뜻을 받들어 상주했다. 

─ 조식은 술에 취하여 난폭하고 오만하며, 사자를 협박했습니다. 


魏書載詔曰:「植,朕之同母弟。朕於天下無所不容,而況植乎?骨肉之親,舍而不誅,其改封植。」    


위서에 조서를 기재하였는데 이르길 :


「조식은 짐과 어머니가 같은 형제이다. 짐은 천하에 있어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조식이겠는가? 골육사이의 친함은 버리되 죽이지 않으니 조식을 개봉(改封:제후의 영지를 바꾸어 봉함)하도록 하라.」

담당관리는 처벌을 요청했지만, 문제는 태후를 생각하여 안향후로 직위를 낮췄다. 같은 해, 견성후로 바꿔 봉했다. 

3년(222), 견성왕으로 세우고 식읍 2천5백 호를 주었다. 

4년(223), 옹구왕에 봉했다. 같은 해, 수도로 나가 알현하고 상소를 올렸다. 

─ 신은 죄를 짓고 번국으로 돌아가 마음을 살에 새기고 뼈를 깎으면서 죄를 뉘우치고, 낮이 되면 식사를 하고, 밤이 되면 잠을 잡니다. 확실히 왕조의 법령을 다시 어기지 않을 수는 있으나, 다시 황상의 은혜를 받아 사면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시경》<용풍>의 '상서'에서 예의가 없으면 빨리 죽는다는 이치에 감동되어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위문하고, 다섯 가지 감정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죄가 있어 목숨을 버리자면 옛날 현자의 '아침에 잘못이 있으면 저녁에 바르게 고친다'라고 충고한 것에 위배되는 것이고, 오욕을 받으면서 구차하게 삶을 보전한다면 시인의 '무슨 면목으로 살아가라'는 풍자의 말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폐하의 은덕은 천지처럼 넓고, 은혜는 부모처럼 깊으며, 은덕을 베풀고 펼침은 바람처럼 부드럽고, 은택이 때에 맞춰 내리는 단비 같습니다. 그리고 가시나무를 차별하지 않는 것은 오색 구름 같은 은혜입니다. 일곱명의 아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은 훌륭한 임금의 거동이며,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고 재능을 아끼는 것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은정입니다. 때문에 어리석은 신은 폐하의 은혜와 덕택 속에서 배회하며, 스스로를 버릴수 없습니다. 

이전에 조서를 받들어, 신 등은 조정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여 마음은 떨어지고 뜻은 단절되었고, 스스로 노령의 나이가 되어서도 다시 규를 손에 쥘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성상의 조서가 내려와 신을 수도로 부르셔서, 조서를 내린 그날로 한마음으로 폐하에게 달려와 알현했습니다. 구석진 서관에 살면서 폐하를 받들 수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폐하를 뵙게 되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공경스럽게 상주문을 올리고 시 두 편을 올립니다. 

'부친의 빛남이여 / 시대 무황제여 / 하늘에서 명을 받들어 사방을 평안하게 했구나 / 붉은 깃발 날리는 곳 구주에서 굴복하지 않는 이 없구나 / 덕은 사방으로 흐르고, 먼 곳의 사람도 와서 왕이 되었구나 / 공덕은 상주 시대를 뛰어넘고, 당요만큼 아름다워라 / 나의 황제는 하늘의 두터움 얻고 대대로 총명하고 지혜롭구나 / 무는 엄숙하고 용감하며, 문은 시대에 화목하구나 / 제위를 염한에게서 받아 국가를 통치한다 / 나라가 안정되자 고대의 제도를 따랐지 / 뛰어난 친척을 널리 임명하고, 왕국을 퍼트렸다 / 문제는 당신을 후로 봉하여 그대에게 이 청주 땅을 다스리게 하여 해안가까지 곧장 이르니 주대 노국을 봉한 것과 같다 / 수레와 복식에는 광채가 있고, 깃발과 휘장에는 순서가 있다 / 수 많은 현인들은 나라를 구하고 나는 보필한다 / 미천한 나는 황상의 총애에 기대어 지나치게 교만하여, 일어나면 당시의 법령을 어기고, 움직이면 국가의 법제를 혼란스럽게 했다 / 나는 나라의 번이 되고 병이 되어야 했는데, 선제의 법칙을 훼손시키고, 황제의 사신을 오만하게 대하여 우리 조정의 예의를 범했다 / 나라에 법률이 있어 나의 식읍을 줄이고 나를 좌천시키고, 감옥으로 보내 원흉과 같게 했다 / 성명한 천자는 형제의 정을 중시하여, 나를 사형시키고 나를 잔혹하게 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 법관의 판결을 따르지 못하고, 이 못난 사람을 불쌍히 여겼다 / 봉국을 곤읍으로 바꾸고, 황하 해안가에 왕국의 신하를 두지 않았으니 임금은 있으나 신하는 없었다 / 만일 나에게 황음한 과실이 있다면 누가 나를 보필하겠는가 / 고독한 복부는 그 기주 끝에 있다 / 아! 미천한 몸이 재앙을 만났구나 / 성명한 천자의 은덕으로는 나를 버리지 않고, 나에게 검은 모자를 씌우고, 나에게 붉은 인수를 매게 했네 / 주발은 빛나고 크고 나를 영화롭게 했다 / 부절을 새긴 옥을 주고, 왕의 작위를 주었다 / 나는 우러러 옥새를 차고 제후의 열에 섰고, 몸을 굽혀 황상의 책서를 쥐었다 / 황제의 은혜는 지나치게 융성하니, 공손하게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 / 애석하게도 이 어리석은 자는 죄악으로 몸을 묶고는 죽어서는 선제의 능묘에 참회하고, 살아서는 폐하께 참회한다 / 감히 도덕에 오만하지 않으며 황상의 정을 의지한다 / 존엄한 폐하는 다시 나를 왕으로 봉했으니, 죽어도 잊을 수 없다 / 폐하의 은덕은 하늘처럼 다함이 없고, 성명을 강구할 수는 없거늘, 항상 갑자기 죽어 죄를 짓0?황토로 가게 될까봐 두려웠다 / 화살과 돌을 이고 동악에 깃발을 세우기를 원한다 / 작은 공로를 세우고, 미미한 공으로 죄를 씻기를 바란다 / 몸을 위험하게 하여 생명을 바쳐 죄를 면하기에 충분함을 알고, 장강과 상수로 달려가고 오와 초에서 병기를 휘두르기를 원한다 / 폐하가 마음의 문을 열어 우리들을 수도로 들어오게 하였는데, 황상을 받들기를 기다리는 것은 갈증이 나는 것이고 굶주리는 것 같다 / 마음속의 그리움은 매우 비장하고, 숭고한 천자가 비천한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천자의 광휘가 비천한 나에게 비추기를 바란다.' 

또 말하겠습니다. 

'황상의 조서를 숙연하게 받들어 수도에서의 만남에 응했습니다 / 밤에 행장을 꾸려 새벽에 수레를 달려 출발하고, 말에 꼴을 배불리 먹이고 수레바퀴에 좋은 기름을 칠했습니다 / 그것을 관장하는 사람에게명하여 저의 시종을 정돈하게 하고, 아침에 난대를 출발하여 저녁에 난저에서 묵었습니다 / 망망한 평야에는 많은 남녀가 있고, 공전을 지나 피와 기장의 성장을 기쁘게 보았습니다 / 큰 나무 아래를 지나니 두터운 그림자가 이어져 있습니다 / 비록 먹을 것이 있어도 굶주려도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 성을 바라보고 지나가지 못하고, 읍을 직면하고 있으면서 놀지 못합니다 / 복부는 명을 받고 말에 채찍을 가하여 평탄한 길을 선택하여 달려왔습니다 / 네 필의 흑마는 정신이 아득하여 고삐가 죄어 있고, 주둥이에는 거품을 흘리며, 급한 바람이 수레 옆을 따라 지나오고, 가벼운 구름이 수레 덮개위로 떠 있습니다 / 서쪽으로는 관곡을 건너고, 조금은 내려오기도 하고 조금 올라오기도 하고, 수레를 끄는 말달은 매우 피곤하여 잠시 휴식을 취해 다시 길을 계속합니다 / 성명한 황상을 장차 보려고 감히 편안하지 아니하며, 천천히 하는 걸음으로 말을 달려서 해를 가리키며 빨리 출발했습니다 / 앞에서는 횃불을 들고 달리며, 뒤에서는 깃발을 높이 들고 있습니다 / 수레는 계속 굴러가서 멈추지 아니하며, 수레의 딸랑거리는 소리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 경사에 도착하여 서성에 머물며, 황상의 조서가 아직 내려오지 않아 감히 뵙지도 못하였습니다 / 고개를 들고 창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황상을 생각하오며,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영원토록 양모하며, 근심스런 마음이 마치 술에 취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의 문사와 의의를 칭찬하고는 상서에 회답하고 그를 격려했다. 


위략: 이전에 조식이 관(關)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을때, 스스로 죄가 있다고 생각하고, 마땅히 황제에게 사죄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하인들은 관동(關東)에 머무르게 하고, 단지 3명만 데리고 몰래, 청하공주(清河長公主: 清河公主)를 만나, 황제에게 사죄할려고 한다고 청했다. 관(關)의 관리들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황제 조비는 사람들을 조식 일행을 되돌아가게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태후가 자살을 생각하며 황제를 울면서 대했다. 이때 조식은 두건을쓰지않고 부질(鈇鑕: 작두)를 짊어지고, 조식 일행은 궁궐 하에 맨발로 모여 있었다. 황제와 태후의 기분을 풀어줄려고 조식을 만나고자 했다. 실제로 만나게되자 황제는 엄한 얼굴을 한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또한 신발을 신으라는 말조차 안했다. 조식은 땅바닥에 엎드려 울었고, 태후도 마음이 아팠다. 이후에 조식에게 왕의 복장으로 다시 입으라는 명이 내려졌다.


위씨춘추: 이당시 제왕(조조의 아들)들에 대한 법은 준엄하고 엄격했다. (223년) 임성왕(任城王) 조창(曹彰)이 갑자기 죽었다. 제왕들 끼리는 같은 고통을 느껴 우정의 감정이 싺텄다. 조식은 백마왕 조표와 함께 번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같은 방향이다 보니, 동행을 하며, 같이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하려 했는데, 감국사자(監國使者)가 허락하지 않았다. 조식은 분노를 하며, 조표에게 이별을 고하며, 시를 썼는데.. 


백마왕(白馬王) 조표(曹彪)에게-조식(曹植)

謁帝承明廬(알제승명려) : 승명려에 들어 황제를 배알하고

逝將返舊疆(서장반구강) : 가서 옛 강토로 돌아가려네

清晨發皇邑(청신발황읍) : 맑은 새벽에 서울을 떠나

日夕過首陽(일석과수양) : 저녁에 수양산을 지난다

伊洛廣且深(이락광차심) : 이수와 낙수는 넓고도 깊어

欲濟川無梁(욕제천무량) : 건너고 싶어도 다리가 없구나

汎舟越洪濤(범주월홍도) : 배를 띄워 큰 파도 건너니

怨彼東路長(원피동로장) : 저 동녘 길이 멀고 먼 것이 원망스럽구나

顧瞻戀城闕(고첨련성궐) : 돌아보니 성의 궁궐이 그리워

引領情內傷(인령정내상) : 목을 빼고 보니 속 마음 상하는구나

太谷何寥廓(태곡하요곽) : 큰 계곡은 어찌 이렇게 적료하고 넓은지

山樹鬱蒼蒼(산수울창창) : 산 속 나무는 울창하구나

霖雨泥我塗(림우니아도) : 장마비가 내 가는 길을 짙이기고

流潦浩縱橫(류료호종횡) : 고인 물이 여기저기 흥건하구나

中逵絕無軌(중규절무궤) : 한길에도 수레자국 하나 없으니

改轍登高岡(개철등고강) : 방향을 바꾸어 높은 언덕에 오른다

修阪造雲日(수판조운일) : 언덕은 구름의 해까지 뼏혀있고

我馬玄以黃(아마현이황) : 나의 말은 씩씩거린다

玄黃猶能進(현황유능진) : 씩씩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나

我思穆以紆(아사목이우) : 내 마음은 시름에 젖는다

鬱紆將何念(울우장하념) : 시름에 젖어 장차 무슨 생각을 하는가

親愛在離居(친애재리거) : 사랑하는 친척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라네

本圖相與偕(본도상여해) : 본래 의도는 함께 하는 것이었는데

中更不克俱(중경불극구) : 중도에서 바뀌어 끝내 함께 할 수 없구나

鴟梟鳴衡軛(치효명형액) : 올빼미와 소리개는 멍에 옆에서 울어대고

豺狼當路衢(시랑당로구) : 승냥이는 한길에 서있구나

蒼蠅間白黑(창승간백흑) : 파리는 흰 것과 검은 것 사이에 있고

讒巧令親疏(참교령친소) : 참언과 교언영색은 친척을 서먹하게 하는구나

欲還絕無蹊(욕환절무혜) : 돌아가려도 갈 길이 전혀 없어

攬轡止踟躕(람비지지주) : 고삐를 자보 서서 머뭇거리도다

踟躕亦何留(지주역하류) : 머뭇거린다 한들 어찌 머물수 있겠으며

相思無終極(상사무종극) :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은 끝이 없도다

秋風發微涼(추풍발미량) : 가을 바람은 불어 서늘하고

寒蟬鳴我側(한선명아측) : 매미는 내 곁에서 울어댄다

原野何蕭條(원야하소조) : 들판은 어찌 이리도 쓸쓸한지

白日忽西匿(백일홀서닉) : 밝은 해는 갑자기 서산으로 기우는구나

歸鳥赴喬林(귀조부교림) : 돌아가는 새도 둥지 찾아 높은 나무로 향하며

翩翩厲羽翼(편편려우익) : 푸드득푸드득 날개를 치는구나

孤獸走索群(고수주색군) : 무리 떠난 짐승도 달려 무리를 찾아

銜草不遑食(함초불황식) : 입에 들은 풀도 황급하여 먹지를 못하는구나

感物傷我懷(감물상아회) : 이러한 일 들에 내 마음 속 아파

撫心長太息(무심장태식) : 마음을 어루만지며 크게 한숨 짓는다

太息將何為(태식장하위) : 크게 탄식한들 장차 어찌 할까

天命與我違(천명여아위) : 천명이 나를 버렸도다

奈何念同生(내하념동생) : 친 동기를 생각한들 어쩌란 말인가

一往形不歸(일왕형불귀) : 한 번 가면 육체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데

孤魂翔故域(고혼상고역) : 외로운 혼백만 옛을 날아다니나

靈柩寄京師(령구기경사) : 영구는 서울에 남는 것을

存者忽復過(존자홀부과) : 살아 있는 사람도 갑자기 다시 떠나 지나고

亡沒身自衰(망몰신자쇠) : 죽은 자는 몸이 이미 스러지는구나

人生處一世(인생처일세) : 사람이 한 세상 사는 것이

去若朝露晞(거약조로희) : 아침 이슬이 햇볕에 지는 것과 같구나

年在桑榆間(년재상유간) : 내 나이 이미 지는 해 같아

影響不能追(영향불능추) : 그 그림자와 소리 따라잡을 수가 없구나

自顧非金石(자고비금석) : 스스로 돌아봐도 쇠나 바위가 아니니

咄唶令心悲(돌차령심비) : 꾸짖고 탄식함이 내 마음만 슬퍼게 하는구나

心悲動我神(심비동아신) : 마음이 슬퍼지 마음이 움직이니

棄置莫復陳(기치막부진) : 팽개치고 다시는 말하지 말아라

丈夫志四海(장부지사해) : 대장부가 천하에 뜻을 두면

萬里猶比鄰(만리유비린) : 온 세상이 오히려 이웃이 되리라

恩愛苟不虧(은애구불휴) : 천륜의 은혜와 사랑이 온전하면

在遠分日親(재원분일친) : 멀리 나누어 있어도 나날이 친해나니

何必同衾幬(하필동금주) : 어찌 반드시 같이 살아

然後展慇懃(연후전은근) : 은근해질 수 있다는 것인가

憂思成疾疢(우사성질진) : 근심으로 병 드는 것은

無乃兒女仁(무내아녀인) : 곧 아녀자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倉卒骨肉情(창졸골육정) : 갑자스런 형제의 이별

能不懷苦辛(능불회고신) :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苦辛何慮思(고신하려사) : 고통스럽다, 어찌 이렇게도 마음쓰이는지

天命信可疑(천명신가의) : 천명이란 것이 정말로 있는가

虛無求列仙(허무구렬선) : 허망하게 뭇신선들을 찾지 말아라

松子久吾欺(송자구오기) : 적송자가 오랫동안 나를 속였구나

變故在斯須(변고재사수) : 재난과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는데

百年誰能持(백년수능지) : 백년의 목숨을 누가 능히 지킬 수 있으랴

離別永無會(리별영무회) : 이별하면 여원히 만나지 못하니

執手將何時(집수장하시) : 다시 손 잡는 일 장차 어느 때나 가능하리

王其愛玉體(왕기애옥체) : 왕은 옥체를 애중히 여겨라

俱享黃髮期(구향황발기) : 함께 머리가 누렇게 되도록 살아보자구나

收淚即長路(수루즉장로) : 눈물을 거두니 가야 할 먼 길이 나타나니

援筆從此辭(원필종차사) : 붓을 끌어 여기서 글을 짓는다



6년(225), 문제는 동쪽으로 정벌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옹구를 지나 조식의 궁전에 행차하여 식읍 5백 호를 증가시켰다. 

태화 원년(227)에 준의로 옮겨 봉했다. 

2년(228), 다시 옹구로 돌아왔다. 조식은 항상스스로 분개하고 원망 하였으며,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도 펼칠 곳이 없었으므로 상소하여 자신을 임용해 주기를 청했다. 

─ 신이 듣건대, 선비가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집안에 들어서면 부모를 섬기고, 대문을 나서면 군주를 받드는 것입니다. 부모를 섬기는 경우에는 부모님께 영예를 안겨주는 것을 가장 숭상하고, 군주를 받드는 경우에는 나라를 일으키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때문에 자애로운 부모라고 해도 임용되지 못하는 자식을 사랑할 수는 없고, 인자한 군주라도 공이 없는 신하를 임용할 수는 없습니다. 덕행에 근거하여 관직을 주는 것이 공업을 성취한 군주입니다. 재능을 헤아려 작위를 받는 것은 사명을 완성한 대신인 것입니다. 때문에 군주는 이유없이 관직을 줄 수 없고, 대신은 공이 없으면서 작위를 받을 수 없습니다. 덕이 없는데 관직을 수여하는 것은 잘못된 천거이고, 공이 없는데 작위를 받는 것은 봉록을 축내는 것입니다. 《시경》<벌단>의 '소찬'편이 지어진 까닭은 바로 이것입니다.


옛날 주문왕의 동생 괵중과 괵숙이 두 나라에 임명되는 것을 사퇴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덕행이 돈후했던 것이고, 주공 단과 소공석이 연나라와 노나라의 봉국이 되어 겸양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공로가 컸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은 국가의 큰 은덕을 입은 것이 오늘까지 3대가 되었습니다. 마침 폐하의 태평성대 시대를 만나, 황상의 은택으로 목욕하고 덕망과 교화에 빠지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신은 덕이 없어 동쪽 번국에 있으면서 높은 작위에 있고, 몸에 가볍고 따뜻한 옷을 걸치고, 입으로는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고, 눈으로는 지극히 화려한 것만 보고, 귀로는 관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작위가 무겁고 봉록이 두터웠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봉록을 받았던 사람들을 회상하면 이러한 것과 달리 모두 공로로써 국가에 이익을 주고 군주를 보좌하고 백성들을 아꼈습니다. 현재 신은 서술할 수 있는 덕행도 없고, 기록할 만한 공로도 없는데, 만일 이렇게 죽는다면 국가 조정에 이익이 없어 국풍의 작자가 '피기'라고 비난한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위로는 왕관을 부끄럽게 여기고, 아래로는 붉은 인수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천하는 통일되고, 구주가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쪽을 돌아보면 아직 명령을 거역하는 촉나라가 있고 동쪽에는 신하라고 일컫지 않는 오나라가 있어서 변경을 지키는 병사들로 하여금 갑옷과 병기를 벗어 던지게 할 수 없고, 모사들로 하여금 높은 베개에서 잠자게 할 수 없으니, 천하를 철저하게 통일하여 평화에 이르러야 합니다. 과거 하계는 유호를 멸하고 하 왕조의 공덕을 밝혔고, 성왕은 상과 엄을 싸워 이겨 주왕조의 공덕을 빛나게 했습니다.


현재 폐하께서는 성스러운 밝음으로 천하를 다스려서 주 문왕과 주 무왕의 공적을 완성하고, 성왕ㆍ강왕의 흥성을 이으려고 하고 현명한 인재를 선발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임용하고, 방숙과 소호같은 신하로 사방을 지켜 국가의 손톱과 이빨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람을 제대로 임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높이 나는 새는 화살에 맞지 않고, 깊은 연못의 물고기는 낚시에 걸리지 않으니, 고기를 낚고 화살을 쏘는 방법이 혹시 완벽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전에 경흡은 광무가 도착할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장보를 공격하였는데, 적군은 군주를 위해 남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수레 오른편에서는 수레바퀴의 울림에 따라 칼로 자진하여 엎드리고, 옹문은 초나라 사람이 제나라 변경지역을 침범하여 목을 맸는데, 이 두 사람은 설마 사는 것이 싫고 죽는 것이 좋았겠습니까? 실제로 공장이 군주를 태만하게 하고, 월나라 사람이 군주를 침범한 것을 분노한 것입니다. 모두 해로움을 제거하고 이로움을 흥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劉向說苑曰:越甲至齊,雍門狄請死之。齊王曰:「鼓鐸之聲未聞,矢石未交,長兵未接,子何務死?知為人臣之禮邪?」雍門狄對曰:「臣聞之,昔者王田於囿,左轂鳴,車右請死之,王曰:『子何為死?』車右曰:『為其鳴吾君也。』王曰:『左轂鳴者,此工師之罪也。子何事之有焉?』車右對曰:『吾不見工師之乘,而見 其鳴吾君也。』遂刎頸而死。有是乎?」王曰:「有之。」雍門狄曰:「今越甲至,其鳴吾君,豈左轂之下哉?車右可以死左轂,而臣獨不可以死越甲邪?」遂刎頸而死。是日,越人引軍而退七十里,曰:「齊王有臣,鈞如雍門狄,疑使越社稷不血食。」遂歸。齊王葬雍門狄以上卿之禮。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이르길 :월나라의 갑병이 제나라에 이르자 옹문적(雍門狄)이 죽기를 청했다. 제나라 왕이 말하길


「북과 방울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고 화살과 돌이 날아오거나 장창을 든 병사들이 접전하지도 않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죽기를 애쓰는가? 신하된 예법을 알고 있기 때문인가?」


옹문적이 대답하길


「신이 듣기로 옛날에 왕께서 동산에서 사냥할 때 수레의 왼쪽 바퀴에서 소리가 나서 왕이 놀랐는데 오른쪽에 있던 사람이(호위무사) 죽기를 청하자 왕이 말하길 『그대는 무엇 때문에 죽으려 하는가?』 호위무사가 말하길 『그 소리가 나의 군주를 놀래켰기 때문입니다.』 왕이 말하길 『왼쪽 바퀴가 소리를 내 놀래킨 것은 기술자의 잘못이지 그대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호위무사가 대답하여 말하길 『저는 기술자가 수레를 만드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그 소리가 군주를 놀래킨 것은 보았기 때문입니다.』하고는 마침내 칼로 목을 긋고 죽었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니 왕이 말하길


「있었다.」


옹문적이 말하길


「지금 월나라의 갑병이 이르고 있는데 그것이 임금을 놀래키는 것이 어찌 왼쪽바퀴보다 못하겠습니까? 수레의 오른쪽에 탄 호위무사도 왼쪽수레바퀴 때문에 죽을 수 있는데 신이 홀로 월나라의 갑병 때문에 죽을 수 없겠습니까?」


하고는 마침내 칼로 목을 긋고 죽었다. 이 날 월나라 사람들이 군대를 이끌고 70리 퇴각하였는데 말하길


「제나라 왕의 신하들이 모두 옹문적과 같다면 아마 월나라의 사직이 제사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라 하고는 마침내 돌아갔다. 제나라왕은 옹문적을 상경의 예법으로 장사지냈다.


신하가 군주를 받드는 경우에는 반드시 생명을 바쳐 동란을 제지하고, 공로로써 군주에게 보답해야만 합니다. 이전에 가의는 약관의 나이에 속국이 관직에 시험삼아 임용되기를 청하고, 흉노 선우의 머리를 묶고 그 목숨을 억압했습니다. 종군은 젊어서부터 월나라에 사자로 갈 때까지 긴 갓끈을 얻어 왕이 되어서 조정에 구속되고 싶었습니다. 이 두 대신이 설마 군주에게 큰소리치고 세상 사람들에게 빛나기 위해서였겠습니까? 그들의 뜻이 억눌렸으므로 명군에게 재간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이전에 한무제가 곽거병을 위해 저택을 지었을 때, 곽거병은 사절하며 '흉노가 아직 멸망되지 않았으므로 신은 집안일은 생각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래 대장부는 나라를 걱정하고 집을 잊고, 내 몸을 던져 어려움을 구하는 것을 충신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d탔?나라 밖에 있지만 황상의 은덕이 두텁지 않은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잠 못 이루고 먹지 못하는 것은 오와 촉 두적국이 아직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데, 무황제(조조)의 무신과 노련한 장수가 나이가 들어 세상에 나가면 명성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는 현명하고 재능있는 자가 드물지 않을지라도 노련한 장수와 오래된 병사들은 전투에 익숙합니다. 저는 스스로 역량이 없지만, 뜻을 세워 국가를 위해 힘을 내어 작은 공이라도 세워 받은 은정을 보답하고 싶습니다. 설사 폐하께서 특별히 조서를 내려 신에게 송곳과 칼의 쓰임을 본받게 하시고, 서쪽의 대장군에 소속되어 한 부대의 사병을 인솔하거나 동쪽 대사마에 소속되어 한 척의 배를 통솔하게 한다면, 신은 반드시 험난하고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를 젓고 말을 달려 날카롭게 뜷고 진지를 함락시키려 사졸들의 맨 앞에 설 것입니다. 설령 손권을 붙잡거나 제갈량의 귀를 자를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적군의 장수를 포로로 잡고 적군을 전멸시켜 한 번에 승리를 얻어야만 신의 평생의 부끄러움을 제거하고, 신의 이름을 역사책에 기록하고, 사적을 조정의 소칙에 열거할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몸이 촉의 국경지역에서 나뉘어지고, 머리가 오나라 정문에 걸린다고 할지라도 생명을 갖고 있을 때처럼 기쁠 것입니다. 만일 신의 재능이 미약하여 한번 시험해 볼 수 없어 세상에서 명성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헛되어 몸만 영화를 누려 신체는 살쪄 살고 있어도 국가에 이익이 없고 죽어서도 국가에 손실이 없을 것입니다. 헛되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무거운 봉록을 먹는 것은 새장 속에서 길러지는 새와 같고, 백발이 될 때까지 대접받고 사는 것은 울타리 안에서 사육되는 동물과 같은 것이므로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동쪽의 군사가 방비를 소홀히 하고, 장수와 병사들은 약간 좌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먹지 못하고 소매를 떨치고 옷을 말아 올리고 보검에 의지하여 동쪽을 응시하였으며, 마음은 일찍이 오군ㆍ회계군으로 날아갔습니다. 

신은 과거에 무황제를 따라 출정하여 남쪽으로 직안까지 갔었고, 동쪽으로는 창해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는 옥문관을 바라보았고, 북쪽으로는 변방으로 나가서 군사를 인솔하고 병사를 사용하는 전술이 매우 신비하고 묘함을 보았습니다. 때문에 병사를 사용함에는 예언할 수 없으므로 위급하고 곤란함에 임하여 임기응변합니다.


저의 목적은 명대에 국가에 보답하고, 성대에 공업을 세우는 것입니다. 매번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고대 충신과 의사들이 짧은 목숨을 던져 국가의 어려움을 구하였고, 몸은 갈기갈기 찢겨지더라도 공덕은 솥이나 종에 새겨지고, 명성과 칭찬이 대나무나 비단에 기록되어 있음을 보고 가슴을 치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臣松之案:秦用敗軍之將,事顯,故不注。魯連與燕將書曰:「曹子為魯將,三戰三北而亡地五百里,向使曹子計不反顧,義不旋踵,刎頸而死,則亦不免為敗軍之將 矣。曹子棄三北之恥,而退與魯君計。桓公朝天子,會諸侯,曹子以一劍之任,披桓公之心於壇坫之上,顏色不變,辭氣不悖。三戰之所亡,一朝而復之。天下震動,諸侯驚駭,威加吳、越。」若此二士者,非不能成小廉而行小節也。    


신 송지가 살피건대 : 진나라가 전쟁에서 진 장수를 썼다는 것은 일이 현저하기에 주석을 달지 않습니다. 노련이 연나라 장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길


「조자가 노나라의 장군이 되어 3번 싸워 3번을 패배하여 잃은 영토만 500리 였는데 만약 조자가 계책을 짜내 돌아보지 않아 발을 돌리지 않고 칼로 목을 긋고 죽었다면 또 한명의 패배한 장군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조자는 세 번 패배한 치욕을 버리고 돌아가 노나라 군주와 더불어 계책을 짰습니다. 제나라 환공이 천자를 조회하고 제후들을 모았을 때 조자는 한 자루의 검에 의지하여 저 환공의 마음을 단점(壇坫:제후가 조령을 내리거나 맹약을 맺는 장소) 위에서 드러내었으니 안색이 변하지 않고 말하는 기색이 엄정하였습니다. 세 번 싸워 잃은 것을 하루아침에 복구하였습니다. 천하가 진동하고 제후들은 놀라 두려워하였으며 위세가 오월에 가해졌습니다.」


이 두 명의 선비 같은 사람은 작은 청렴과 작은 절개를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신은 현명한 군자가 신하를 임용할 때는 죄가 있는 자도 버리지 않고 패배한 장군도 기용하였기 때문에 진나라와 노나라는 그 성공을 거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연 석상에서 초나라 장왕이 애첩의 옷섶을 당긴 신하의 갓끈을 끊거나, 태공의 말을 훔친 신하를 사면하였으므로 초와 초나라는 그 위험을 구했습니다. 


臣松之案:楚莊掩絕纓之罪,事亦顯,故不書。秦穆公有赦盜馬事,趙則未聞。蓋以秦亦趙姓,故互文以避上「秦」字也。    


신 송지가 살피건대 : 초 장왕이 갓 끈을 끊은 죄를 덮은 것은 일이 매우 현저하기 때문에 적지 않았습니다. 진 목공이 말을 훔친 것을 사면한 일은 있지만 조나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대체로 진나라도 역시 조나라의 성이기에 글을 바꿔 진(秦)이라는 글자를 올리는 것을 피한 것 같습니다.


신은 선제가 일찍 붕어하고, 위왕이 이 세상을 버리려고 하는 것에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신 등이 특별한 인간이라고 해도 영구한 생명을 갖겠습니까! 항상 아침 이슬에 앞서 구덩이에 묻히고, 분묘의 흙이 마르지 않았는데 몸도 이름도 함께 소멸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신은 들었습니다. 준마가 길게 우는 것은 백락이 그 능력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고, 한국의 검은 개가 울부짖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그 재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준마를 제나라와 초나라의 먼길로 가게 하여 천리를 가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고, 민첩한 토끼의 자취를 추적하게 하여 검은 개의 본령을 시험합니다.


지금 신의 뜻은 개나 말처럼 약간의 공이라도 세우는 것인데, 저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시종 백락과 한국이 저를 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봉읍 안에서 마음을 애통해 하고 있었습니다. 

무릇 도박하는 놀이를 보면 발돋움하며 고개를 파묻고, 음악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박자를 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음악을 감상하고 이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모수는 조나라의 노예였는데,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의 비유를 들어 군주를 깨우쳐 공을 세웠습니다. 하물며 높고 높은 위대한 위나라와 많은 인재가 쌓여있는 조정에서 강개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죽는 신하가 없겠습니까! 자기 스스로를 과시하고 스스로를 모의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추잡한 행각입니다. 때에 따라 임용되기를 구하는 것은 도가에서도 명백히 기피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신이 감히 폐하에게 진술하여 들려주는 것은 확실히 국가와 몸을 나누어 함께 호흡하는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바라는 것은 티끌과 이슬과 같은 미미함으로써 산과 바다같은 이익을 보충하고, 반딧불의 작은 빛으로써 해와 달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치욕을 무릅쓰고 충성을 바치려는 것입니다. 


魏略曰:植雖上此表,猶疑不見用,故曰「夫人貴生者,非貴其養體好服,終竟年壽也,貴在其代天而理物也。夫爵祿者,非虛張者也,有功德然後應之,當矣。無功 而爵厚,無德而祿重,或人以為榮,而壯夫以為恥。故太上立德,其次立功,蓋功德者所以垂名也。名者不滅,士之所利,故孔子有夕死之論,孟軻有棄生之義。彼 一聖一賢,豈不願久生哉?志或有不展也。是用喟然求試,必立功也。嗚呼!言之未用,欲使後之君子知吾意者也。    


위략에 이르길 : 조식이 비록 이 표를 올렸지만 오히려 채용되지 못함을 의심하였으므로 말하길 「무릇 사람이 사는 것을 귀히 여기는 까닭은 몸을 기르고 좋은 옷을 입으며 천수를 누리는데 있지 않고 하늘을 대신하여 사물을 다스리는데 있다. 무릇 작록이라는 것은 헛되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공덕이 있은 연후에 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공이 없는데도 작이 두텁고 덕이 없는데도 녹이 무겁다면 혹자는 이를 영예롭게 생각할지 몰라도 장부는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고 그 다음이 공을 세우는 것인데 대체로 공덕이라는 것은 이름을 드리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불멸하니 선비가 이롭게 여기는 것인 연고로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고 맹가는 생명을 버리는 의로움이 있었다. 저 한명의 성인과 한명의 현자가 어찌 오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겠는가? 뜻이 혹 펼쳐지지 못 할까 탄식하며 시험해보길 원하니 반드시 공을 세울 것이다. 아~! 말이 쓰이질 않으니 후대의 군자로 하여금 나의 의도를 알게 하고 싶구나.

태화 3년(229), 조식은 동이왕으로 옮겨져 봉해졌다. 

태화 5년(231)에 조식은 다시 상소를 올려 친척의 안부를 묻고 그 자신의 생각을 아울러 서술했다. 

─ 신이 듣건대 하늘이 그 높음을 일컫는 것은 만물을 덮지 아니함이 없기 때문이며, 해와 달이 그 밝음을 일컫는 것은 만물을 비추지 아니함이 없기 때문이고, 강과 바다가 그 광대함을 일컫는 것은 만물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자는 '위대하도다! 요가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이여! 오직 하늘만이 크거늘, 요가 그것을 본받았구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무릇 하늘의 덕이 만물에 대한 것은 크고도 넓다고 할수 있습니다. 대체로 요임금이 교화를 세움에 있어서 친함을 먼저 하고 소원함을 나중에 하고, 가까운 데로부터 먼 데로 미쳤습니다. 《역전》<상서>'요전'에서 말하기를, '분명한 밝음과 위대한 덕으로써 구족을 찬하게 하고, 구족이 이미 화목하면 다시 백관을 품평하라'고 했습니다. 주나라의 문왕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러한 교화를 존중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주문왕은 예법에 따라 자기 아내를 대했고, 그런 연후에 형제를 대했으며, 이러한 연후에 집과 나라를 다스렸다'고 했습니다.따라서 시인은 그들의 화목한 모습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전에 주공이 관숙과 채숙의 불화를 슬프게 여기고 친척들에게 광범위하게 봉토를 나누어 주고 번국과 왕실을 친하게 했습니다. 《전》에 말하기를, '주대에는 제후가 조회를 할 때, 다른 성은 뒤에 있었다'라고 한 것은 진실로 골육지정이 깊기 때문에 설령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떨어질 수가 없고, 친하고 친한 뜻이 진실로 굳건함에 있으니 의로움이 있으면서 군주를 뒤로 하거나, 어질면서 그 아버지를 버리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당요가 공경하고 명찰한 덕을 갖추셨고, 주나라 문왕이 조심하고 온화한 인애를 갖추고 계시고, 은혜가 후궁에까지 두루 미치며, 은덕이 구족을 빛추고 있으며, 모든 후궁과 모든 관료가 순서에 따라 쉬며 호아상을 받들고 있고, 조정에서 기평하는 것이 공공의 조정에서 폐지함이 없으며, 아랫사람에 대한 정은 사사로운 방에서 펼쳐 얻었으니, 친척을 친애하는 이치가 통하였고, 경축하고 조문하는 감정이 펼쳐졌으며, 진실로 자신의 마음을 용서하여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은혜를 미루어 은덕을 베풀고 있습니다. 신에 이르러 인간의 도리가 실마리조차 끊어져 밝은 대낮에 구금되고 있으니, 신은 남몰래 스스로 상심하였습니다. 감히 지나치게 서로간에 공통적인 것을 좋아하는 친구를 바라지 않으며,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인륜을 누리고 있습니다. 가까이로는 혼인을 하여 인척이 왕래할 수 없으며, 형제간에 어그러지고 끊어졌으며, 길흉을 돕는 길도 막혔으며, 축하하고 조문하는 행위도 폐하였으며, 은혜의 기강이 어그러지는 것이 사람이 다니는 길보다 훨씬 더 심하니 친척간의 벌어진 관계는 호ㆍ월과 비교됩니다. 지금 신은 일체의 규정에 따라 영원히 아침에 궁궐에 들어가 배알할 희망이 없으며, 천자에 대한 관심에 이르러서는 감정이 궁궐 문에까지 이어져 있는데, 오직 신만이 그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자만이 실질적으로 그것을 규정할 수 있으니, 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고개를 돌려 생각해보니, 모든 왕들은 항상 친척들이 서로 만나 보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폐하께서 갑작스럽게 조서를 내려 제후들이 축하하러 문안하는 것을 허락하여 사계절이 발전을 함으로써 골육의 깊은 정은 펼쳐지고, 모든 친척들의 돈독한 우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비첩의 가솔들은 황상의 은혜를 지나치게 받는 사람들로, 해마다 와서 조회하여 귀족들과 의를 나란히 하며 백관들과 은혜를 균등하게 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것은 옛사람이 칭찬했던 바이고 풍야가 읊조리는 바이며, 또한 성현의 시대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이 엎드려 스스로 생각하며 반성해 보니, 신은 송곳이나 작은 칼과 같은 용도도 없습니다. 폐하께서 뽑아서 임명한 관리들을 보니 만일 신이 다른 성씨를 가지고 있고, 저 혼자 스스로를 헤아려 보면 조정의 선비들의 끝에도 못 미칩니다. 만일 왕복을 벗어버리고 시중의 무변을 쓰고, 왕후의 붉은 인수를 벗어버리고 푸른 인수를 차고, 부마도위 혹은 봉거도위에 의지하여 하나의 봉호를 취득하고, 국내에 거주하며 말의 채찍을 잡고 붓을 놀리며, 시후는 폐하의 곁에 있고, 궁문을 나서면 황제로부터 장식용 수레를 따라가고, 궁 안으로 들어가면 시후들이 수레 옆에 있고, 황상의 질문에 대답하는 문제를 측근들이 보충해주는 것은 신이 내심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고, 꿈에서도 생각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 멀리 《시경》<녹명>편 처럼 군신의 연회를 앙모하고, 중간의 <당체>편에서 말하는 형제는 바깥사람이 아니라는 경고를 암송합니다.

가까이로는 <벌목>편에서 친구지간에 우정이 생겨나는 도의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는 <육아>편에서 부모의 끝없는 은덕에 보답하지 못하는 비애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번 사계절이 만나는 날에 신은 홀로 외로운 곳에서 좌우에는 단지 노복과 노예만이 있고 마주 대하는 것은 오직 처자식들뿐이니, 뛰어난 식견을 더불어 얘기할 곳이 없으며 뜻을 생각해도 더불어 펼칠만한 사람이 없으니, 일찍이 음악을 듣지 않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술잔을 들어올려 탄식할 뿐입니다. 신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견마의 진실됨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는 것은 마치 사람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없는것과 같습니다. 성이 붕괴되고 여름에 서리가 내렸으므로, 신은 처음으로 이 두 고사를 믿었지만, 제 입장으로 보건데 이것은 단지 허튼 말일 뿐입니다. 해바라기와 기울어진 잎이 태양을 대하고 있으나, 태양은 그것들에게 빛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는 것은 정성입니다. 신은 스스로 제 자신을 해바라기에 비유하지만, 하늘과 땅의 은혜를 베풀고 해와 달과 별의 빛을 비추는 것은 실제로 폐하에게 달려있습니다. 

신은 《문자》에서, '복으로써 시작을 삼지 말고, 화로써 우선을 삼지마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모든 왕들과 단절되었고, 형제들은 한결같이 근심하고 있으며, 단지 신만이 진정을 상서하고 있는 것은 성인의 세대에 은혜를 잃은 사람들이 있지않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원망하고 독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경》<백주>편에는 '부친에게 믿음을 주지 않은 자식의 원망'이 있고, <곡풍>편에서는 '버림받은 자식의 탄식'이 서려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윤은 그의 군주가 요순과 같은 성스러움이 있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맹자》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기고 그의 군주를 받들지 않았던 까닭은 그의 군주를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이 우매하고 진실로 순임금과 이윤과는 다르지만, 폐하께서 사방의 친척들에게 광대하게 비추어 미덕을 나타내기를 바라는 것에 이르러서는 실제로 갈망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감히 다시 진정을 올리며, 폐하께서 제 마음을 들어주시기를 원합니다. 

명제가 조서를 내려 대답했다. 

─ 대체로 교화의 근거는 각각 흥성하고 쇠함에 있으나, 모두 처음이 좋고 끝이 나쁜 것은 아니고, 사물의 발전 추세가 그렇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주문왕의 성실돈후함과 인애가 초목에까지 몇ㅆ으므로 '행위'시가 지어진 것이고, 주유왕의 은택이 쇠하여 엷어지고 구족에 전하지 않았으므로 각궁이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제국의 형제들에게 애정을 간소하고 느슨하게 하고, 비첩의 집에 은택을 소략하게 한 것은 짐이 설령 친척들을 후하게 대접하여 화목하게 할 수 없을지라도 왕이 과거를 인용하여 도리를 설명한 말로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정성으로 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무릇 귀함과 천함을 구별하고 친척을 존중하며, 현명한 인물을 예우하고 어린 사람과 늙은 사람의 질서를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기강이며, 본래 제후국의 통교를 금지한다는 조칙은 없었다. 굽은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래 관리들이 견책당하게 될까 두려워한 것으로, 오늘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미 소관관리에게 명령을 내려 왕이 상소한 방법처럼 하도록 하였다. 

조식은 또 상소하여 관리를 분명하게 살펴 선발하는 일에 관해서 말했다. 

─ 신이 듣건대 하늘과 땅이 기를 합치자 만물이 비로소 태어났고, 군주와 신하가 덕을 합쳐 정치가 성공했습니다. 오제 시대에는 모두 지혜롭지 못했으며, 삼대 말기에는 모두 어리석지 않은 자가 없었으므로, 사용함과 사용하지 않음, 아는 것과 알지 못함에 관건이 있었습니다. 과거 시대에는 현인을 천거하는 형식은 있었지만 현인을 얻은 사실이 없었고, 반드시 각자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이끌어 나아가게 했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재상의 문하에서 재상이 나오고, 장수의 문하에서 장수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무릇 재상은 예악과 교화에 밝은 사람이고, 장수는 무공이 빛나는 사람입니다. 예악과 교화가 빛나면 국가와 조정을 보존할수 있는데, 직(요임금의 명재상), 설ㆍ기ㆍ용(순임금의 명재상)은 이과 같은 재상입니다. 무공이 빛나면 조정에 복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여 사방의 만족에 위세를 나타내는 것이니, 남중과 방숙이 이와 같은 장수입니다. 옛날 이윤은 탕왕에게 시집보냈던 몸종의 대부가 되었을 때 지위는 낮았고, 여상은 도살이나 낚시질을 하고 있을 때 지위가 미천했는데, 그들이 성탕과 주문왕에게 발탁되었던 것은 도의와 이상이 합치하고 깊은 계책이 통하였던 것인데, 어찌 또 가까이서 신임받고 있는 자의 추천이나 주위의 소개에 의지하겠습니까. 《시경》에서 말하기를, '비범한 군주가 있으면 반드시 비범한 대신을 임용할 수 있고, 비범한 대신을 임용하면 반드시 비범한 공업을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탕과 주문왕은 이와 같은 군주입니다. 만일 얕고 천함에 얽매이고 일상적인 범례를 따르고 옛것을 고수하는 인물이라면, 어찌 폐하를 위해 충분하다고 말하겠습니까? 때문에 음과 양이 조화되지 않고 일월성신이 빛나지 않고, 관직에는 현인이 없고 조정에는 성취하는 것이 없는 것은 삼공의 책임입니다. 변방이 소란하고 적이 안으로 침입하여 군대가 실패하고 병사들이 전사하고 병사들이 쉬지 못하는 것은 변방장수의 무능함입니다. 어찌 나라의 총애를 받고 그 직책을 빛내지 않을 수 있습니까? 때문에 임무가 높으면 높을수록 책임은 더욱더 무거워지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책임은 더욱더 무거워지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책임은 더욱더 깊어집니다. 《서경》에서 말하기를, '관직에 현명한 신하가 없다'고 하고, 《시경》에서 말하기를, '관직에 임명된 신하는 나라와 백성을 걱정해야 한다'고 한 것은 이런 뜻입니다. 

폐하께서는 선천적으로 성명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왕통을 계승하게 되어 고요가 순임금을 칭찬한 <강재>편의 노래를 듣기를 원하며, 전쟁을 멈추고 덕을 시행하는 정치를 빛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수년 이래 수해와 가뭄이 계절에 맞지 않게 발생하여 백성들은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부족했으며 사병의 징발은 해마다 증가하고, 게다가 동쪽에는 전쟁에서 패한 군대가 있고 서쪽에는 전사한 장수가 있으며, 방합(오나라)이 제 마음대로 회수와 사수에서 떠돌아다니고 군유(촉나라)가 삼림 속에서 큰 소리로 떠들게 했습니다. 신은 항상 이런 생각을 해 보다가 일찍이 식사를 멈추고 밥그릇을 내버리고, 술잔을 대하면 손으로 움켜쥐었습니다. 옛날 한문제는 대나라를 출발할 때 조정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의심했는데, 송창이 '조정 안에는 주허후와 동모후 같은 친척이 있었고, 밖에는 제왕, 회남왕, 낭야왕이 있는데, 이들은 반석같은 종족입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신이 엎드려 바라옵건데, 폐하께서는 멀리 주문왕을 원조한 무왕의 동생인 괵중과 괵숙을 살피고, 그 사이 시대에는 주성왕을 보좌한 무왕의 동생들인 소공과 필공을 생각하며, 아래로는 송창이 말한 반석같은 종족을 보전하십시오. 옛날 천리마가 오나라의 산언덕위에 있을 때는 곤궁하였지만 백락이 그것을 알아보고, 손우가 그것을 부려서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 서로 앉아서 천 리를 갈 수 있었습니다. 백락은 말을 잘 다스려 천 리를 달렸고, 명군은 신하를 잘 사용하여 매우 평화로운 시기에 이르니, 이것은 확실히 현명한 사람을 임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사용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만일 조정의 관리가 훌륭하다면 조정 안이 잘 다스려질 것이고, 무장이 병사를 인솔하면 변방의 위급함은 해소될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도성에서 조용히 한적하게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명공의 난가를 수고롭게 하고, 변방에서 드러나게 할 수 있습니까? 

신이 듣건대, 양이 호랑이 가죽을 쓰고 있더라도 풀을 보면 기뻐하고, 이리를 보면 벌벌 떨면서 호랑이 가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고 합니다. 지금 배치한 장수가 무능하다면, 이와 유사할 것입니다. 때문에 속담에 '일을 하는데 두려워하는 사람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을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악의는 조나라로 도망갔는데 마음속으로는 연나라를 잊지 않았고, 염파는 초나라에 있으면서도 조나라의 장수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신은 혼란스런 세상에 태어나 군대 안에서 성장했으며, 또 무황제(조조)의 가르침을 자주 받았습니다. 저는 사사로이 장수가 병사를 사용하는 관건은 반드시 손무와 오기가 만든 병법에서 취하여 그들과 합치되게 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마음속에서 이해하고, 항상 한 번은 조정의 신하로 참내하는 몸이 되어 금문을 열고 궁전의 옥 계단을 밟으며 직무를 맡은 신하의 일원으로서 나열하여 짧은 시간에 하문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신에게 한번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을 발산하도록 권하고, 마음에 담아 놓은 것을 서술하게 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홍려에서 내려온 사병과 어린 아이를 징발하라는 문서를 열어 보니, 기한이 매우 촉박했습니다. 또 황제의 수레 대열 맨 끝 수레에 다는 표범의 꼬리가 벌써 세워졌고, 전쟁용 수레가 급속히 모여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다시 옥체를 수고롭게 하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해야 할 것입니다. 신은 정말로 불안하며, 조금도 편한 구석은 없습니다. 원컨대 말에 채찍을 가하여 달리게 하고, 머리에는 진흙이나 이슬이 있게 하고, 풍후(황제의 신하)의 신기한 병법을 빌리고, 손무와 오기의 병사를 사용하는 정화를 계승하고, 복상(공자의 제자)이 폐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음을 추모하고, 명을 내려 선봉에 서서 목숨을 바쳐 폐하를 지키게 하십시오. 비록 큰 이익은 없을지라도 작은 도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고귀한 폐하께서는 먼 곳의 소리만을 듣고 있으니 저의 마음은 위까지 통할 방법이 없고, 단지 혼자 푸른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을 어루만지고, 높은 하늘을 우러르고 탄식할 뿐입니다. 굴평(굴원)이 말하기를, 나라에 준마가 있지만 탈줄을 모르고, 오히려 황급하게 사망에서 찾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이전에 주나라 초기 관숙과 채숙은 처형되어 쫓겨 났으며, 주공과 소공은 성왕을 보좌하였고, 진나라의 대부 숙어는 공정하지 못하여 사영에 처해져, 그의 형 숙향이 국가를 바로잡았습니다. 삼감의 죄는 신 자신이 그것에 해당합니다. 주공과 소공의 보좌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종실 귀족과 번왕 중에는 반드시 이 천거에 응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전》에서 말하기를, '주공의 친척이 없다면 주공의 일은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조금만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근대에는 한씨가 광범위하게 제후왕을 세웠는데, 크게는 수십 성을 이었고, 작게는 조상을 제사지낼 수 있을 뿐으로, 주가 왕국을 세워 다섯 등급의 작위제도를 만든 것과는 다릅니다. 부소가 진시황에게 간언하고, 순우월이 주청신을 반박한 것처럼 시세의 변화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하로 하여금 귀와 눈을 기울이게 할 수 있는 자는 권력을 잡은 사람뿐입니다. 때문에 그 들의 책모는 군주의 뜻을 바꿀 수 있고, 위엄은 아랫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호족이, 정치를 잡으면 친척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권력이 있는 자는 비록 친척 관계가 없더라도 반드시 중요시 될 것이며, 권세가 없어진 후에는 비록 친척이라도 경시받을 것입니다. 때문에 제나라를 빼앗은 자는 전씨 일족이지 여씨 일족이 아니고, 진을 분할한 것은 조와 위이지 희씨성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이 점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좋은 시대에는 그 관직을 점유했지만, 나쁜 시대에는 그 재난으로부터 벗어난다면, 다른 성의 대신일 것입니다. 국가의 안정을 희망하고 가족의 존귀함을 기원하며, 살면서는 그 영예를 함께 하고 죽어서는 그 화를 함께 하는 자는 공족의 신하입니다. 지금은 반대로 공족은 소원시 되고 이족은 친함을 받고 있으니, 신은 사사로이 의혹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이 듣건대 맹자는 '군자는 곤궁할 때 그의 몸을 선하게 닦고, 영달하였을 때 천하를 이끈다'고 했습니다. 지금 신하들과 폐하는 얼음과 재를 밟고 산에 올라 계곡을 건너고, 추위와 더위, 건조함과 습함, 높은 곳과 낮은 곳 등을 함께 하는데, 어찌 퍠하를 떠나겠습니까? 신은 마음속의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표를 올려 감정을 서술했습니다. 만일 폐하의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잠시 숨겨 놓은 서부 속에 있는 것을 구하고, 즉시 훼손시키거나 버리지 마십시오, 신이 죽은 후 , 그 일을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폐하의 생각을 적중시킨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조정에서 공표하여 역사를 이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상주문에서 도리에 맞지 않는 부분을 바로잡도록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한다면, 신의 소원은 만족될 것입니다. 

황제는 조서를 내려 그를 위로했다. 


魏略曰:是後大發士息,及取諸國士。植以近前諸國士息已見發,其遺孤稚弱,在者無幾,而復被取,乃上書曰:「臣聞古者聖君,與日月齊其明,四時等其信,是以 戮凶無重,賞善無輕,怒若驚霆,喜若時雨,恩不中絕,教無二可,以此臨朝,則臣下知所死矣。受任在萬里之外,審主之所授官,必己之所以投命,雖有構會之 徒,泊然不以為懼者,蓋君臣相信之明效也。昔章子為齊將,人有告之反者,威王曰:『不然。』左右曰:『王何以明之?』王曰:『聞章子改葬死母;彼尚不欺死 父,顧當叛生君乎?』此君之信臣也。昔管仲親射桓公,後幽囚從魯檻車載,使少年挽而送齊。管仲知桓公之必用己,懼魯之悔,謂少年曰:『吾為汝唱,汝為和, 聲和聲,宜走。』於是管仲唱之,少年走而和之,日行數百里,宿昔而至。至則相齊,此臣之信君也。臣初受封,策書曰:『植受茲青社,封於東土,以屏翰皇家, 為魏藩輔。』而所得兵百五十人,皆年在耳順,或不踰矩,虎賁官騎及親事凡二百餘人。正復不老,皆使年壯,備有不虞,檢校乘城,顧不足以自救,況皆復耄耋罷 曳乎?而名為魏東藩,使屏翰王室,臣竊自羞矣。就之諸國,國有士子,合不過五百人。伏以為三軍益損,不復賴此。方外不定,必當須辦者,臣願將部曲倍道奔 赴,夫妻負襁,子弟懷糧,蹈鋒履刃,以徇國難,何但習業小兒哉?愚誠以揮涕增河,鼷鼠飲海,於朝萬無損益,於臣家計甚有廢損。又臣士息前後三送,兼人已 竭。惟尚有小兒,七八歲已上,十六七已還,三十餘人。今部曲皆年耆,臥在床席,非糜不食,眼不能視,氣息裁屬者,凡三十七人;疲瘵風靡,疣盲聾聵者,二十 三人。惟正須此小兒,大者可備宿衛,雖不足以禦寇,粗可以警小盜;小者未堪大使,為可使耘鉏穢草,驅護鳥雀。休侯人則一事廢,一日獵則眾業散,不親自經營 則功不攝;常自躬親,不委下吏而已。陛下聖仁,恩詔三至,士子給國,長不復發。明詔之下,有若皦日,保金石之恩,必明神之信,畫然自固,如天如地。定習業 者並復見送,晻若晝晦,悵然失圖。伏以為陛下既爵臣百寮之右,居藩國之任,為置卿士,屋名為宮,冢名為陵,不使其危居獨立,無異於凡庶。若柏成欣於野耕, 子仲樂於灌園;蓬戶茅牖,原憲之宅也;陋巷單瓢,顏子之居也:臣才不見效用,常慨然執斯志焉。若陛下聽臣悉還部曲,罷官屬,省監官,使解璽釋紱,追柏成、 子仲之業,營顏淵、原憲之事,居子臧之廬,宅延陵之室。如此,雖進無成功,退有可守,身死之日,猶松、喬也。然伏度國朝終未肯聽臣之若是,固當羈絆於世 繩,維繫於祿位,懷屑屑之小憂,執無已之百念,安得蕩然肆志,逍遙於宇宙之外哉?此願未從,陛下必欲崇親親,篤骨肉,潤白骨而榮枯木者,惟遂仁德以副前恩 詔。」皆遂還之。


위략에 이르길 : 이후에 대대적으로 병사의 자식들과 제후국의 병사들을 취하였다. 조식은 앞서 얼마 전에 제후국에서 병사의 자식들이 이미 징발됐고 그 남아 있는 고아들은 어리고 약해 몇 명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시 징발을 하게 되자 마침내 상주를 올려 이르길 : 「신이 듣기로 옛날의 성군은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나란히 하고 사시와 더불어 신용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이로써 흉악한 사람을 잔살하는데 무겁지 않고 선량한 사람을 상 주는데 가볍지 아니하며 노하는 것이 벽력과 같고 기쁠 때는 때에 맞추어 비가 오는 것 같았으니 은혜가 도중에서 끊어지지 않았고 가르침에서 있어 (한 가지 일에 따를 것이)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로써 조정에 임한다면 신하는 죽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만 리 밖에서 임무를 받고 군주가 내려주는 관직을 살피고 반드시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자 하는데 비록 방해하는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담연히 두려움으로 삼지 않는 이유는 대체로 임금과 신하가 서로 믿음으로서 생기는 명백한 효력입니다. 옛날 장자(章子)가 제나라의 장군이 됐는데 어떤 사람이 그가 반란을 한다고 고하니 위왕이 말하길 『그럴 리가 없다.』 좌우에서 말하길 『왕께서 어찌 이를 명백하게 아십니까?』 왕이 말하길 『듣기로 장자가 죽은 어머니를 개장하는데 있어 저가 오히려 죽은 아버지도 속이지 않았는데 어찌 응당 살아있는 군주를 배반하겠는가?』 라 하였는데 이는 임금이 신하를 믿는 것입니다. 옛날 관중이 직접 환공을 쐈는데 이후에 노(魯)에서 함거(檻車:죄인 호송용 수레. )에 실렸는데 소년으로 하여금 끌고 제나라에 가게 하였습니다. 관중은 환공이 반드시 쓸 줄 알고 노나라에서 (자기를 보내는 것을) 후회할까 두려워했습니다. 소년에게 말하길 『내가 너를 위해 노래 부를 테니 너는 나에게 화답하거라. 소리에 소리로 답하면서 알맞게 달리거라.』이에 관중이 노래를 부르면 소년이 달리면서 이에 화답했고 하루 만에 수 백리를 가면서 하루만에 (제나라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는 신하가 임금을 믿은 것입니다. 신이 처음 봉작을 받으면서 책서에 이르길 『조식은 이 청사(青社:봉지가 동방에 있었기에 파란색이다.)를 받고 동방의 토지에 봉해졌으니 황가를 수호하고 위나라의 울타리가 되어라.』라 하고 병사 150인을 얻었는데 모두 나이가 60이거나 70이었고 호분, 관기와 가족들이 무릇 200여명이었습니다. 바로 늙은 사람들이 아니고 가령 모두 장년이라 하더라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대비하고 진영을 관리하며 성을 올라갈 때 스스로를 구하기도 힘든데 하물며 모두 나이가 들고 피곤해 지친 사람들이겠습니까? 이름은 위나라의 동쪽 울타리라서 왕실을 보호하게 해놓았으니 신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신이 제후국으로 가서 나라의 병사들의 자식을 다 합쳐봐야 500명을 넘지 않습니다. 저는 3군이 더욱 감소된다면 더 이상 이에 의지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국경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응당 이야기 할 필요가 있는데 신은 장차 부대를 움직여 부처가 이고 싸며 자제들은 식량을 품고 위험한 전장에 나가 나라의 어려움을 당해 순국하면 되지 어찌 다만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만을 징발하시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생각으로 진실로 눈물을 휘날려 강을 불게하고 쥐가 바다를 마시는 것 같아 조정에 만에 하나라도 손익이 없지만 신의 가문의 계획에 있어서는 심각한 손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신이 병사의 자식을 전후 세 차례나 보내서 건장한 사람은 이미 고갈 됐습니다. 오히려 소아가 있는데 나이가 7~8세 이상에서부터 16~17세로 30여명 됩니다. 지금 부대의 병사들은 모두 나이가 많아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 죽이 아니면 먹지를 못하며 눈이 보이지 않고 숨쉬는 것도 겨우 잇는 부류가 무릇 37명이고 종기가 나서 등이 굽은사람과 풍이 와서 마비가 된 사람, 피부병, 눈병, 귀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23명입니다. 오직 바로 모름지기 이 어린 아이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은 숙위를 시킬 수는 있어도 도적을 막기에는 불충분하고 대략 작은 도둑을 놀래킬 정도이며 적은 아이는 큰 일은 감당하지 못하고 잡초를 뽑거나 참새를 쫓는 것만 시킬 수 있습니다. 빈객을 맞이하고 보내는 사람이 쉬면 한 가지 일이 폐기되고 하루 사냥을 나가면 많은 일들이 흐트러지니 친히 경영을 하지 않으면 공효가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스스로 친히 일을 하지 아래의 관리에게 맡기지 않을 뿐입니다. 폐하께서 성스럽고 인자하여 은혜로운 조서를 3번 내려 병사의 자식을 나라에 주면서 크더라도 다시 징발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밝은 조서가 내려오는 것이 마치 빛나는 해가 있는 것 같아 금석과 같은 은혜를 보장하고 신명의 믿음을 확실히 하시니 한계가 분명하여 스스로 굳건한 것이 마치 하늘과 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익힐 일을 정한사람들이 더불어 보내지게 되니 어둠이 드리워지는 것이 마치 한 낮의 암흑같이 창연히 (장래의) 계획을 잃게 되었습니다. 저는 폐하께서 이미 신에게 백료의 위에서는 작위를 주고 나라의 울타리에 해당하는 직임에 거하게 하며 그를 위해 경사(卿士)를 두고 집을 일컬어 궁(宮)이라 하고 무덤을 일컬어 능(陵)이라 하며 위태롭게 거처하고 홀로 있어 서민들과 다름없이 있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여깁니다. 만약 백성(柏成)이 흔쾌하게 들에서 농사지으며 자중(子仲)이 즐거이 정원에 물을 주고 풀로 집이나 문을 만드는 원헌(原憲)의 가택, 누추한 곳에 살며 단사표음으로 즐거움을 삼는 안자(顏子)의 생활과 같은 부류를 신의 재능이 쓰이지 않는 다면 항상 개연히 이런 뜻을 고집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신의 요구를 들어주시어 부곡을 모두 풀어 돌려보내주신다면 관속을 파하고 감관을 생략하며 도장을 내려놓고 백성, 자중의 업을 따르고 안연, 원헌의 일을 영위하며 자장(子臧)의 집에서 살고 연릉(延陵:계자)의 가택에 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같다면 비록 나아가서 공이 없지만 물러나서 지키는 바가 있으니 몸이 죽는 날에 오히려 적송자나 왕자 교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헤아리건대 국조가 끝내 신의 이와 같은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기에 진실로 응당 세상의 규칙에 얽매이고 녹위에 매어있어 불안한 작은 금심을 품고 끝없는 번뇌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탕연히 뜻을 마음대로 하여 우주의 바깥에서 한가롭게 노닐 수 있겠습니까? 아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으면 폐하께서 필히 친족을 친히 대하고 골육을 독실히 하는 마음을 높이 여겨 백골을 윤택하게 하고 고목을 영화롭게 하여 오직 인덕을 마쳐서 전에 내려 주신 은혜로운 조서에 부합하도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마침내 돌려보냈다.


그해 겨울, 제왕에게 태화 6년 정월에 참내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그해 2월에 진의 네 현으로 조식을 진왕에 봉했으며, 식읍 3천 5백호를 하사했다. 조식은 항상 혼자 황상을 만나 당시의 정치적 득실을 말하려고 생각했으므로, 임용될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끝내 허락을 받을 수 없었다. 돌아온 이후에, 마음이 착잡하였으며 절망했다. 그 당시의 법률제도는 번국에 대해 매우 엄격했고, 관속들은 모두 재능과 덕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병사들도 늙고 약한 자를 지급하였고, 가장 많아도 2백 명을 넘지 못했다. 또 조식은 이전에 잘못이 있었으므로 모든 일이 절반으로 줄었고, 11년만에 세 번 옮겼으며, 항상 근심에 젖어 즐겁지 않았으며, 끝내는 질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가 41세였다. 


植常為琴瑟調歌,辭曰:「吁嗟此轉蓬,居世何獨然!長去本根逝,夙夜無休閒。東西經七陌,南北越九阡,卒遇回風起,吹我入雲閒。自謂終天路,忽焉下沉淵。驚 飇接我出,故歸彼中田。當南而更北,謂東而反西,宕宕當何依,忽亡而復存。飄颻周八澤,連翩歷五山,流轉無恆處,誰知吾苦艱?願為中林草,秋隨野火燔,糜 滅豈不痛,願與根荄連。」孫盛曰:異哉,魏氏之封建也!不度先王之典,不思藩屏之術,違敦睦之風,背維城之義。漢初之封,或權侔人主,雖云不度,時勢然 也。魏氏諸侯,陋同匹夫,雖懲七國,矯枉過也。且魏之代漢,非積德之由,風澤既微,六合未一,而彫翦枝幹,委權異族,勢同瘣木,危若巢幕,不嗣忽諸,非天 喪也。五等之制,萬世不易之典。六代興亡,曹冏論之詳矣。


조식이 일찍이 거문과 비파에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 가사에 이르길 「아아, 굴러 다니는 쑥대처럼 세상살이 어찌 이리 외롭기만 한가 !오랫동안 뿌리에서 떨어져 나와 밤이 되어도 쉴 수가 없다. 동쪽 서쪽으로 한없이 나다니고 남쪽 북쪽으로 무수한 길 넘나 들었네. 갑자기 회오리 바람 닥치자, 나를 불러 구름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스스로 말하길 하늘 끝까지 닿는다 했지만 갑자기 떨어져 깊은 못에 잠기었다. 사나운 바람 나를 끌어내주어 다시 저기 들판 한 가운데로 돌아오게 되었지. 남쪽으로 가야할 때 북쪽으로 가게 되고 동쪽으로 가야한다고 하면서 서쪽으로 가게 되었다. 정처 없이 굴러다니며 무엇에 의지하랴 이러다 죽는가 했더니 그래도 숨은 붙어있다. 이리 저리 날리며 한없이 팔택(八澤) 맴돌고 훨훨 날리며 오산(五山)을 돌았네. 떠돌이 생활 정해진 거처도 없으니 이 고생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 차라리 숲 속의 한 포기 풀이라도 되어버려 가을 날 들판을 돌아다니며 불살라져 재가 되는 게 어찌 아프지 않겠느냐만 뿌리와 연이어 있게 되길 원하네.」 


손성이 말하길 : 기이하구나 위나라의 봉건제도여 ! 선왕의 제도와 맞지 않고 울타리를 두르는 기술을 생각하지 않으며 화목한 기풍을 위배하거 유성(維城:시경에 보임)의 뜻을 배반하였다. 한나라 초기에 제후를 봉함에 있어 혹 권세가 황제와 비슷했는데 비록 법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시의 시세가 그런 것이었다. 위나라의 제후들은 누추한 것이 필부와 다를 바가 없고 비록 7국을 교훈으로 삼았다 하더라도 잘못을 고치는 것이 심한 것이다. 또한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체한 것은 덕을 쌓아 이룬 것이 아니고 (백성에게 미친) 혜택이 미미하며 전국도 통일되지 않았음에도 가지를 잘라내고 권력을 다른 종족에게 맡기니 세력이 마치 말라 죽은 나무와 같고 위태롭기가 천막에 둥지를 지은 새 같아서 후세로 전해지지 못하고 홀연히 멸망하였으니 하늘이 망하게 한 것이 아니다. 5등의 제도는 만세토록 바꿀 수 없는 법도이다. 6대의 흥망에 관하여서는 조경(曹冏)이 상세하게 논하였다.



그는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유언했다. 작은 아들 조지가 집을 보존하는 군주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그를 세우기를 원했다. 당초 조식은 어산에 올라가 동아를 보며 탄식하면서, 이곳에서 죽을 생각을 하고 묘를 만들었다. 아들 조지가 왕위를 계씅하여 제북왕으로 고쳐 봉해졌다. 

경초 연간, 조서를 내렸다. 

ㅡ 진사왕은 옛날에 비록 과실이 있었지만, 그 자신을 억제하며 행동을 신중히 하여 이전의 과실을 보완했으며,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하기 어려운 일이다. 황초 연간에 조식의 죄상을 탄핵하려던 상주문, 공경 이하 상서ㆍ비서ㆍ중서 삼부, 대홍려에서 토론한 문건을 회수하여 모두 폐기하도록 하라. 조식이 앞뒤로 지은 부ㆍ송ㆍ시ㆍ명ㆍ잡론 모두 백여 편을 초록하여 궁궐 안팎에 간수하도록 하라. 

조지의 식읍은 계속 증가되었고, 이전 것과 합쳐 9백9십 호나 되었다.


조지별전(志別傳)에 이르길: 조식의 아들 조지(曹志)는 자가 윤공(允恭)이고, 글일기를 좋아하고, 진무제(사마염)가 중무군(中撫軍)이 되어, 상도향공(常道鄉公: 조황(마지막 황제))를 업(鄴)에서 맞이할 때, 이때 조지는 사마염과 밤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새벽에서 시작하여 새벽까지 이야기를나누어, 사마염이 조지를 크게 재능있다 여겼다. 나중에 사마염이 황제가 되자, 조지는 견성공(鄄城公)으로 봉해졌다. 나중에 낙평태수( 樂平太守)가 되었고, 장무(章武) 태수, 조군(趙郡) 태수가 되었고,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되었과,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었다. 나중에 박사좨주(博士祭酒)가 되었다.


나중에 제왕(齊王) 사마유(司馬攸)가 제왕의 번국으로 부임할때,


"이토록 재능있고 이토록 친한 친척임에도, 나무와 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국가의 기틀을 만들지 못하고, 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한단 말인가?"


하면서 한탄했는데, 그 글이 너무 구구절절했다. 이에 황제가 노해서 그의 관직을 면하게 하였다. 나중에 다시 산기상시(散騎常侍)로 복직되었다. 조지는 어머니 상을 만나, 상을 행할때, 병을 얻었고, 기쁨과 노여움이 비정상적이 되었고, 태강(280-289) 9년(288)에 죽었다. 익호를 정공(定公)이라 했다.

분류 :
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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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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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1
01:28:08
(*.52.89.87)
재원님 엄청난 내용이 추가됐고 새로운 전이 세 개가 생길 정도의 양이더군요;;; 이것들을 카페에 올릴까요?

재원

2013.07.11
02:05:43
(*.130.179.245)
사실 올릴 수 있으시면 올려도 좋죠. 이게 가끔 자료가 날라가는 듯 해서 어딘가에 백업해 두는 개념도 되고..

코렐솔라

2016.01.01
00:57:09
(*.104.98.192)
위무고사의 표 내용과 위씨춘추에서 조식에게 술 먹인 얘기. 자긴 형제 안 죽인다는 조식의 말. 유향의 설원. 배송지의 과거 고사에 대한 고찰 2개. 위략에서 조식이 한탄하는 말은 모두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dragonrz/220583450514 징병을 반대하는 조식의 상소문과 조식이 만든 노래. 그리고 손성의 평 역시 dragonrz님의 번역으로 출처는 여기입니다. http://blog.naver.com/dragonrz/220584020512 이로 해당 문서의 모든 주석이 번역 완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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