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회왕웅전(조웅)

소(簫)의 회왕(懷王) 조웅(曹熊)은 요절했다.

황초 2년(221), 제후에 추봉(追封)되어 소회공(蕭懷公)이라고 했다.

태화 3년(222), 작위를 추증하여 왕(王)이 되었다.

청룡 2년(234), 아들 애왕(哀王) 조병(曹炳)이 뒤를 이었으며, 식읍은 2천 5백호 였다.

6년에 죽었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봉국은 최소되었다.

- 평하여 말한다.

임성왕(任城)은 무예가 높고 용맹하며, 장수다운 풍모를 가졌다. 진사왕(陳思)은 문학적 재능이 풍부하고 화려하며 후세에까지 전해질 수 있었지만, 겸양하지 않아 장래의 재앙을 막을 수 없었으며, 죽을 때까지 천자에게 불려지지 않았다. 전(傳)에서 말하기를, 


“초(楚)나라는 그를 잃었지만, 제(齊)나라 또한 그를 얻을 수 없었다.”

고 했는데, 아마도 이 일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어환이 말했다. 속된 말에 ‘가난한 자는 배우지 않아도 검약하고, 비천한 자는 배우지 않아도 공손하다.’고 한다. 하지만, 인성의 본분이 아니고 세력이 자연히 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실제 자연스런 대세로, 믿음이 헛되지 않는다. 가령 태조가 조식 등의 뜻을 막은 것이 예전(주석疇昔)에 있었다면, 이렇게 현명한 마음으로 어찌 규망窺望(분수에 맞지 않게 자리를 바라고 엿보는 것)이 있었을 것인가? 조창曹彰(조비의 동생인 언릉후)이 원한을 품는 일도 오히려 없었을 것이다. 조식에게 이르러서도 어찌 어려움이 일어났겠는가? 이에 양수楊脩는 조식에게 기대어 관심을 두다 해를 만났고, 정의丁儀는 조식에게 영합하다 종족이 멸망했으니, 슬픈 일이로다! 남은 시간마다 조식의 화채華采(빛나는 문장)를 살펴보면, 생각이 신명이 있음과 같다. 이로써 짐작하건대, 태조가 마음을 쓰는 것이 또한 이러한 점에 있어 뛰어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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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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