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찬전(王粲傳) 

왕찬의 자는 중선(仲宣)이고, 산양군(山陽郡) 고평현(高平縣)사람이다.증조부 왕공(王鞏)과 조부 왕창(王暢)은 모두 현대에 삼공을 지냈다.


將殯,臨之曰:「幸不為夭,復何恨哉?」及龔妻卒,龔與諸子並杖行服,時人或兩譏焉。暢字叔茂,名在八俊。靈帝時為司空,以水災免,而李膺亦免歸故郡,二人 以直道不容當時。天下以暢、膺為高士,諸危言危行之徒皆推宗之,願涉其流,惟恐不及。會連有災異,而言事者皆言三公非其人,宜因其變,以暢、膺代之,則禎 祥必至。由是宦豎深怨之,及膺誅死而暢遂廢,終于家。

 

장번 한기: 증조부 왕공(王龔)의 자는 백종(伯宗)인데, 천하에 이름이 높았다. 순제때 태위가 되었다. 예전에 산양태수(山陽太守) 설근(薛勤)이 처를 잃고 곡을 하지 않자. 장차 매장하려 할 때 이에 임해서 말하길


「다행히 요절한 것이 아닌데 또한 무엇을 한스러워 하겠는가?」


라 했는데 왕공의 처가 죽음에 이르러 여러 아들들과 더불어 지팡이를 짚고 복상하니 당시의 사람들 중에 혹 두 가지 행동으로 기롱하기도 하였다. 왕창의 자는 숙무로 이름이 팔준 안에 들어있다. 영제 당시에 사공이 되었는데 수재水災로 면관되고 이응 역시 면직되어 고군故郡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직도로써 당시의 세상을 용납하지 않았다. 천하는 왕창과 이응을 고사高士로 여겨 직언과 직행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들을 추종해 그 부류에 간섭되길 원하여 오직 이르지 못할까 걱정했다. 연이은 재이災異가 나타남에 이르러 일을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3공이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고는 응당 그 변고로 말미암아 왕창과 이응으로 대신하면 길한 징조가 필히 이를 것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환관들이 이들을 깊이 원망했으니 이응이 주살당하는 때에 이르러 왕창도 결국 폐해지고 집에서 여생을 다했다.


부친 왕겸(王謙)은 대장군 하진의 장사(長史)였다. 하진은 왕겸이 저명한삼공의 후예였으므로 인척 관계를 맺으려고 자신의 두 딸을 보여 선택하도록했지만, 왕겸이 허락하지 않았다. 질병 때문에 면직되었고 집에서 죽었다.헌제가 서쪽으로 옮겼을 때, 왕찬은 장안으로 이주하였는데, 좌중랑장 채옹은 그를 만나보고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채옹은 재능과 학문이 탁월하여조정에서 귀하게 여기고 중요시 하였으며, 항상 거마가 마을을 메웠고, 빈객이 집에 가득 앉아 있었다. 왕찬이 문밖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신발을 거꾸로 신고 그를 영접하였다. 왕찬이 들어오자 빈객들은 그가 나이가 어리고, 용모도 왜소하였으므로 모두 매우 놀랐는데, 채옹이 말했다. "이 사람은 왕공(王公)의 손자로서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으며, 나는 그만 못하오.우리 집에 있는 서적과 문학작품을 모두 그에게 주어야 하오." 

왕찬은 나이 열일곱에 사도로 초빙되었고, 조서를 받아 황무시랑으로 임명되었는데, 장안이 혼란스러웠으므로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그리고 형주로 가서 유표에게 의탁했다. 유표는 왕찬의 용모가 추하고 신체가 허약하여 가벼이 쉽게 여겼고, 그다지 중용하지 않았다.


신 송지가 아룁니다. ‘모침貌寢’은 용모가 그 실제(문재라는 명성)보다 못한 것을 일컫습니다. ‘통탈通侻’이란 것은 가벼이 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유표가 죽은 후, 왕찬은 유표의 아들 유종(劉綜)에게 조조에게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文士傳載粲說琮曰:「僕有愚計,願進之於將軍,可乎?」琮曰:「吾所願聞也。」粲曰:「天下大亂,豪傑並起,在倉卒之際,彊弱未分,故人各各有心耳。當此之 時,家家欲為帝王,人人欲為公侯。觀古今之成敗,能先見事機者,則恆受其福。今將軍自度,何如曹公邪?」琮不能對。粲復曰:「如粲所聞,曹公故人傑也。雄 略冠時,智謀出世,摧袁氏於官渡,驅孫權於江外,逐劉備於隴右,破烏丸於白登,其餘梟夷蕩定者,往往如神,不可勝計。今日之事,去就可知也。將軍能聽粲 計,卷甲倒戈,應天順命,以歸曹公,曹公必重德將軍。保己全宗,長享福祚,垂之後嗣,此萬全之策也。粲遭亂流離,託命此州,蒙將軍父子重顧,敢不盡言!」 琮納其言。臣松之案:孫權自此以前,尚與中國和同,未嘗交兵,何云「驅權於江外」乎?魏武以十三年征荊州,劉備卻後數年方入蜀,備身未嘗涉於關、隴。而於 征荊州之年,便云逐備於隴右,既已乖錯;又白登在平城,亦魏武所不經,北征烏丸,與白登永不相豫。以此知張騭假偽之辭,而不覺其虛之自露也。凡騭虛偽妄 作,不可覆疏,如此類者,不可勝紀。


문사전에 왕찬이 유종에게 한 말을 싣길 :


「제가 어리석은 계책이 있어 원컨대 장군을 위해 올리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라 하자 유종이 대답하길


「저는 듣고 싶습니다.」


라 하니 왕찬이 말하길


「천하에 대란이 있어 호걸들이 더불어 일어나니 창졸간에 강약이 아직 나뉘지 않아 그런 연고로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심사가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당하여 집집마다 제왕이 되고 싶어 하고 사람마다 공후가 되고 싶어 합니다. 고금의 성패를 관찰하건대 일의 기틀을 먼저 보는 사람은 항상 그 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장군은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조공이 어떻다고 여기십니까?」


라 하니 유종이 대답하지 못했다. 왕찬이 다시 말하길


「찬이 들은 바에 의하면 조공은 옛날의 인걸입니다. 웅략으로는 당시에 으뜸이고 지모는 세속을 초월합니다. 원씨를 관도에서 꺾고 손권을 강외에서 구축하며 유비를 농우에서 쫓아내고 오환을 백등에서 파했으니 그 나머지 간활한 오랑캐들을 탕평한 것은 왕왕 신묘하여 계책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금일의 일은 나아갈 곳을 알 수 있습니다. 장군께서 찬의 계책을 능히 들을 수 있다면 무기를 버리고 천명에 순응하시기 바랍니다. 이로써 조공에게 귀의하면 조공은 반드시 장군을 중용할 것입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종족을 온전하게 하며 오래토록 복작을 누리고 후세에 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은 만전의 계책입니다. 찬은 난을 만나 온 곳을 떠돌아다니다 형주에 몸을 맡기게 되어 장군 부자의 두터운 보살핌을 입게 되었으므로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 하자 유종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신 송지가 보건대 :손권은 이 당시 이전에 중국과 화친해서 일찍이 접전한 적이 없는데 어찌 「손권을 강외에서 구축했다.」라고 하는가? 위무제는 건안 13년 형주를 정벌했는데 유비는 오히려 그 뒤 수년 이후에 촉에 들어갔으므로 유비의 몸은 관농 지방에 있은 적이 없다. 형주를 정벌한 해에 「유비를 농우에서 쫓아냈다.」라 한 것은 이미 틀린 것이다. 또한 백등은 평성에 있는데 역시 위무제가 지나지 않은 곳이다. 오환을 북정한 것은 백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로부터 장즐의 거짓된 글이 스스로의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릇 장즐의 허위망작虛偽妄作은 소활함을 덮지 못하니 이와 같은 부류는 다 기록할 수 없다.


조조는 왕찬을 초빙하여 승상연(承相椽)으로 삼았으며,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다. 

조조가 한수 해안가에서 주연을 베풀었는데, 왕찬이 축배를 들며 축하의 말을 했다. 

"지금 원소는 하북에서 일어났으며, 의지하는 사람이 많고 뜻을 세워 천하를 겸병하려고 합니다. 그가 현인을 좋아해도 기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재능있는 선비들은 그를 떠납니다. 유표는 형초(荊楚)에서 동요됨이 없이 앉아서 시세의 변화를 관망하다가 스스로 서백(西佰)과 같은 명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란을 피해 형주로 간 선비들은 모두 이 나라의 준걸들입니다. 유표는 그들을 등용할 줄을 몰랐으므로 나라가 위태로웠는데도 보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명공은 기주를 평정하던 날, 수레에서 내려 군대를 정돈하고 그곳의 호걸들을 받아들이고 기용항여 천하를 평정했습니다. 장강과 한수지역을 평정하여 그곳의 어진 사람과 뛰어난 인물을 초빙하여 그들을 관직에 올려놓고, 천하로 하여금 당신에게 마음이 돌아가도록 하여 당신의 풍채를 바라보고 다스림 받기를 원하도록 했습니다. 문인과 무인이 함께 기용되고, 영웅은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삼왕(三王:하?은?주 삼대의 시조)의 거동입니다." 

후에 왕찬은 군모좨주(軍謀祭酒)로 승진했으며, 위나라가 건립되고 나서는 시중으로 임명되었다. 왕찬은 박학다식하였으므로 묻는 것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 당시 과거의 예의 제도가 폐지되거나 느슨하게 되었는데, 새로 만들어지는 제도는 왕찬이 항상 주재했다. 


摯虞決疑要注曰:漢末喪亂,絕無玉珮。魏侍中王粲識舊珮,始復作之。今之玉珮,受法於粲也。


지우의 결의요주에 이르길 : 한나라 말기에 상란이 일어나 절대 옥패가 없었다. 위나라의 시중 왕찬이 구패舊珮를 알아 비로소 다시 만든 것이다. 지금의 옥패는 왕찬으로부터 방법을 이어 받은 것이다.


이전에 왕찬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다가 길가에 세워진 비석을 읽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암송할 수 있습니까?" 

왕찬이 대답했다. 

"할 수 있소." 

사람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게 하고 그것을 외우도록 했는데,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 번은 다른 사람들이 바둑 두는 것을 보고 있다가 바둑알이 흩어지자, 왕찬은 그것을 원래 모양대로 복원시켰다. 바둑을 두고 있던 사람들은 믿지 않았으므로 수건으로 바둑판을 가리고, 그로 하여금 다시 다른 바둑판에 바둑알을 배열하도록 하고는 서로 비교하였는데, 한 알도 틀리지 않았다. 그의 뛰어난 기억력과 암기력은 이처럼 좋았다. 왕찬은 본성이 계산에 뛰어났으므로 산법(算法)을 만들어 대략 그 이치를 다하였다. 글을 잘 지어 붓을 들면 문장이 이루어졌고, 고쳐서 바로잡는 경우가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항상 이전부터 구상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반복하여 생각해도 그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典略曰;粲才既高,辯論應機。鍾繇、王朗等雖各為魏卿相,至於朝廷奏議,皆閣筆不能措手。


전략에 이르길 : 왕찬은 재주가 이미 고명하고 변론이 기미에 응했다. 종요, 왕랑 등은 비록 각각 위나라의 경상을 지냈지만 조정에 주의奏議를 올리는 때에 이르러 모두 붓을 내려놓고 손댈 수 없었다.



저작으로는 시(詩)부(賦)논(論)의(議) 60편이 있다. 

건안 21년(216), 조조를 따라가서 오나라를 정벌했다. 

건안 22년(217) 봄, 길에서 병사했는데 당시 41세였다. 왕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위풍(魏風)의 반역에 연루되어 처형되었으므로 후사가 끊겼다.


文章志曰:太祖時征漢中,聞粲子死,歎曰:「孤若在,不使仲宣無後。」


문장지에 이르길 : 태조가 한중을 정벌할 때 왕찬의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들었다. 탄식하며 말하길 「고가 만약 있었다면 중선(仲宣)의 후사가 없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 하였다.


처음 문제가 오관장(五官將)으로 있을 때, 평원후 조식과 함께 문학을 좋아했다. 북해(北海) 사람 서간(徐幹)의 자는 위장(偉長), 광릉(廣陵) 사람 진림(陳琳)의 자는 공장(孔璋), 진류(陳留) 사람 완우(阮瑀)의 자는 원유(元瑜), 여남(汝南) 사람 응창(應瑒)의 자는 덕련(德璉), 동평(東平) 사람 유정(劉楨)의 자는 공간(公幹)인데, 왕찬은 이들과 함께 문제의 친구로 사랑을 받았다. 서간은 사공군모좨주연속(司空軍謨祭酒椽屬)오관장문학(五官將文學)으로 임명되었다.


先賢行狀曰:幹清玄體道,六行脩備,聰識洽聞,操翰成章,輕官忽祿,不耽世榮。建安中,太祖特加旌命,以疾休息。後除上艾長,又以疾不行。


선현행장에 이르길 : 서간(徐幹)은 청현清玄하고 도를 체득하여 모든 행동이 완비되었다. 총명하고 박식해 글을 써서 능히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으며 관직과 봉록을 가벼이 여기고 세속의 영화에 탐닉하지 않았다. 건안 연간에 태조가 특별히 표창하여 징소하였지만 질병으로 말미암아 멈췄다. 이후에 상애장上艾長에 제수되었는데 다시 병으로 말미암아 가지 않았다.


[[진림, 완우전]]으로 분할



응창()과 유정(劉楨)은 각각 조조에게 초빙되어 승상연속이 되었다. 응창()은 평원후의 서자(庶子)로 전임되었고, 후에 오관장문학이 되었다.


華嶠漢書曰:瑒祖奉,字世叔。才敏善諷誦,故世稱「應世叔讀書,五行俱下」。著後序十餘篇,為世儒者。延熹中,至司隸校尉。子劭字仲遠,亦博學多識,尤好 事。諸所撰述風俗通等,凡百餘篇,辭雖不典,世服其博聞。續漢書曰:劭又著中漢輯敘、漢官儀及禮儀故事,凡十一種,百三十六卷。朝廷制度,百官儀式,所以 不亡者,由劭記之。官至泰山太守。劭弟珣,字季瑜,司空掾,即瑒之父。


화교의 한서에 이르길 : 응창()의 조부인 응봉()은 자가 세숙(世叔)이다. 민첩하고 읊기를 잘해 세상에서 칭하길


「응세숙은 독서할 때 다섯줄을 동시에 내려온다.」


라 하였다. 후서後序 10여편을 지었는데 당시의 유자였다. 연희 연간에 사례교위에 이르렀다. 아들인 응소()는 자가 중원(仲遠)으로 역시 박학다식 하고 더욱 호사好事하였다. 풍속통風俗通 등의 여러 저술 들이 100여편이었고 글이 비록 전아하지는 못하지만 세상에서는 그의 박문에 탄복하였다.


속한서에 이르길 : 응소는 또한 중한집서中漢輯敘, 한관의漢官儀와 예의고사禮儀故事를 저술하여 무릇 11종 136권이었다. 조정의 제도와 백관의 의식이 없어지지 않은 이유는 응소가 이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관직이 태산태수에 이르렀다. 응소의 동생인 응순()은 자가 계유(季瑜)로 사공연을 지냈는데 곧 응창()의 아버지이다.


유정은 불경죄로 형을 받았고, 형이 끝나자 리(吏)에 임명되었다.


문사전(文士傳), 전략(典略)에서 이르길: [[유정전]]으로 분할


모두 수십편의 문(文)과 부(賦)를 지었다. 


완우는 건안 17년(212)에 사망했다. 서간,진림,응창,유정은 건안 22년(217)에 죽었다. 문제는 원성현(元城縣)의 현령 오질(吳質)에게 편지를 써서 말했다. 



작년에 역병이 유행하여 친척과 친구 대부분이 병에 전염되어 죽었소. 서간, 진림, 응창, 유정은 동시에 모두 세상을 떠났소. 고금의 문인들을 살펴보면,사소한 행동을 지키지 않았고, 명예와 절조가 스스로 설 수 있었던 자는 매우 적었소. 위장(서간)만은 교양과 질박함을 갖추었고, 명리를 탐내는 마음이없었고 욕심이 없었으며, 기산(箕山:은둔)의 뜻을 품고 있으므로 조화를 이룬 군자라고 할 수 있소. 그는 《중론(中論)》 20여 편을 지었는데, 문사와 내용이 전아하여 충분히 후세에 전해질 수 있소. 

덕련(응창)은 항상 작품을 지으려는 뜻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재능과 학식은 책을 짓기에 충분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뜻은 완수시키지 못했으니 실로 애석하오! 

공장(진림)의 장(章)과 표(表)는 문체가 강건하였지만, 약간은 번잡했소. 공간(公幹; 유정의 자)은 쏟아붓는 듯한 기상이 있었으나, 강건함이 부족했소. 원유(元瑜; 완우의 자)의 서(書)와 기(記)는 매우 아름다워, 읽으면 즐거울 수 있었소. 중선(왕찬)은 사(辭)와 부(賦)가 뛰어났는데, 안타깝게도 그 몸이 약하여 문장을 세울 수 없었소. 그가 만든 좋은 작품은 고인들도 넘지 못하오. 

옛날 백아(伯牙)는 종자기(鍾子期) 때문에 금슬의 현을 끊었고, 공자는 자로(子路) 때문에 육장(肉醬:포를 썰어 누룩 및 소금을 섞어서 술에 담근 음식)을 엎었소. 전자는 음악을 이해하는 자의 조우를 애통헤 하고, 후자는 문하생을 구하지 못해 상심한 것이오. 이 사람들은 비록 고인에게 미치지는 못해도 한 시대의 준걸이오.


典論曰:今之文人,魯國孔融、廣陵陳琳、山陽王粲、北海徐幹、陳留阮瑀、汝南應瑒、東平劉楨,斯七子者,於學無所遺,於辭無所假,咸自以騁騏驥於千里,仰齊 足而並馳。粲長於辭賦。幹時有逸氣,然非粲匹也。如粲之初征、登樓、槐賦、征思,幹之玄猿、漏卮、圓扇、橘賦,雖張、蔡不過也,然於他文未能稱是。琳、瑀 之章表書記,今之雋也。應瑒和而不壯;劉楨壯而不密。孔融體氣高妙,有過人者,然不能持論,理不勝辭,至于雜以嘲戲;及其所善,揚、班之儔也。


전론에 이르길 : 지금의 문인으로 노국의 공융 광릉의 진림 산양의 왕찬 북해의 서간 진류의 완우 여남의 응창 동평의 유정 7사람은 학문에 있어 남김이 없고 문장에 있어 빌림이 없으니 모두 스스로 천리마와 천리를 달려도 오히려 발을 나란히 하고 더불어 달릴 사람들이다. 왕찬은 사부에 능하고 서간은 당시에 세속을 초월하는 기상이 있었으나 왕찬과 짝할 수는 없었다. 왕찬의 초정初征, 등루登樓, 괴부槐賦, 정사征思와 서간의 현원玄猿, 누치漏卮, 원선圓扇, 귤부橘賦는 비록 장형이나 채옹도 이보다 더 훌륭할 수는 없으나 다른 문장은 칭할만한게 없다. 진림과 완우의 장표와 서기는 작금의 준작이다. 응창은 조화롭지만 장엄하지 않고 유정은 장엄하지만 면밀하지 못하다. 공융은 문체가 고상하고 오묘하여 보통사람은 뛰어넘으나 지론이 없고 이치가 문사를 이기지 못하니 희롱하고 웃기는 말에 섞이는데 이른다. 그 사귀는 친구에 이르러서는 양웅과 반고의 무리이다.


영천(潁川) 사람 한단순(邯鄲淳)(주1)과 번흠(繁欽)(주2), 진류 사람 노수(路粹)(주3), 패국 사람 정의(丁儀), 홍농 사람 양수(揚脩), 하내 사람 순위(荀緯) 등 또한 문체가 있었지만 이 일곱 사람과 함께 논할 수는 없다.(주4)


[주1] 위략(魏略)에서 이르길:[[한단순전]]으로 분할


[주2] 繁,音婆。典略曰:欽字休伯,以文才機辯,少得名於汝、潁。欽旣長於書記,又善為詩賦。其所與太子書,記喉轉意,率皆巧麗。為丞相主簿。建安二十三年卒。

繁의 발음은 婆이다. 전략(典略)에서 이르길:번흠(繁欽)의 자는 휴백(休伯)이다. 문재(文才)와 기변(機辯)이 있어 어려서부터 여남과 영천에서 명성을 얻었다. 번흠이 이미 서기에 장점이 있고 또한 시부에도 능했다. 그 태자에게 보낸 편지에 후전喉轉의 의미를 기록한 것은 대체로 모두 교묘하고 아름답다. 승상주부로 임명되었다. 건안 23년에 죽었다.

自註: 후전喉轉- 삼국지 집해를 보건대 하작은 마땅히 記자 뒤에 탈자가 있을 거라고 여겼고 손지조는 4글자가 한구가 되므로 탈자가 없다고 여겼다. 생각하건대 마땅히 후자가 옳다. 번흠이 위문제에게 보내는 글에서 “時都尉薛訪車子,年始十四,能喉囀引聲,與笳同音。” 쓰인 내용을 보건대 후전이라 함은 입으로 소리를 내서 악기의 연주를 흉내내는 일종의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3] 전략(典略)에 이르길:[[노수전]]으로 분할


魚豢曰:尋省往者,魯連、鄒陽之徒,援譬引類,以解締結,誠彼時文辯之雋也。今覽王、繁、阮、陳、路諸 人前後文旨,亦何昔不若哉?其所以不論者,時世異耳。余又竊怪其不甚見用,以問大鴻臚卿韋仲將。仲將云:「仲宣傷於肥戆,休伯都無格檢,元瑜病於體弱,孔 璋實自麤疏,文尉性頗忿鷙,如是彼為,非徒以脂燭自煎糜也,其不高蹈,蓋有由矣。然君子不責備于一人,譬之朱漆,雖無楨幹,其為光澤亦壯觀也。」


어환이 이르길 : 옛일을 살펴보건대 노련과 추양같은 무리들이 비유와 비슷한 부류를 끌어와 얽힌 것을 풀었으니 실로 그 당시 문변文辯의 준걸이었다. 지금 왕찬, 번흠, 완우, 진림, 노수 등의 전후 문장의 취지를 살펴보니 어찌 고인과 같지 아니하겠는가? 논하지 않는 까닭은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스스로 아주 중요되지 않음을 기이하게 여겨 위로써 대홍려경 위중장에게 물어보았다. 중장이 말하길 「중선仲宣(왕찬)은 만년의 절조를 상했고 휴백休伯(번흠)은 스스로를 점검함이 없었으며 원유元瑜(완우)는 몸이 허약한 병이 있었고 공장孔璋(진림)은 실로 자신이 추소하였으며 문위文尉(노수)는 성격이 자못 흉한하였는데 이와 같이 저들이 하였으니 헛되이 촛불 스스로가 탄 것이 아니네. 그들이 높은 자리에 매겨지지 아니한 이유는 대체로 이유가 있는 것이네. 그러나 군자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갖추도록 책망하지 아니하므로 붉은 안료에 비유하자면 비록 골자가 없다고는 하나 그 광택이 또한 장관인 것과 같네.」고 하였다.


[주4] 儀、廙、脩事,並在陳思王傳。荀勖文章敘錄曰:緯字公高。少喜文學。建安中,召署軍謀掾、魏太子庶子,稍遷至散騎常侍、越騎校尉。年四十二,黃初四年卒。


정의, 정이, 양수의 일은 더불어 진사왕전에 있다. 순욱의 문장서록에 이르길 : 순위는 자가 공고로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였다. 건안 연간에 불러 군모연, 위태자서자에 임명하고 점차 옮겨 산기상시, 월기교위에 이르렀다. 42세, 황초 4년에 죽었다.


응창의 동생 응거(應據)와 응거의 아들 응정(應貞)은 모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응거는 관직이 시중까지 이르렀으며, 응정은 함회 연간에 참상국군사(慘相國軍事)가 되었다.


문장서록(文章叙錄)에서 이르길: [[응거, 응정전]]으로 분할


완우(阮瑀)의 아들 완적(玩籍)은 재능이 뛰어나고 문체가 화려하였지만 세상의 구속을 싫어하고 방탕하였으며, 욕심이 적고 장주(莊周:장자)를 모범으로 삼았다. 관직은 보병교위(步兵校尉)에 이르렀다. 


위씨춘추, 세어: [[완적전]]으로 분할


당시에 또 초군(樵郡) 사람 혜강(嵇康)이 있었는데, 문사가 웅장하고 화려했고 노자와 장자를 말하기 좋아하며, 기아함을 숭상하고 협기를 중시했다. 경원(景元) 연간에 이르러 사건에 연루되어 주살되었다. 


[[혜강전]]으로 분할



경초 연간에 하비의 환위는 연고도 없고 낮은 신분의 출신이지만, 나이 18세에《혼여경(渾與經)》을 지었으며 도가의 가르침에 따라 의견을 나타냈다. 제국(齊國)의 문하서좌(門下書佐)와 사도서리(司徒署吏)에 임명되었고, 나중에 안성(安城)의 현령이 되었다. 

오질(吳質)은 제음 사람이며, 문학적 재질로써 문제에 의해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관직은 진위장군(振威將軍), 가절도독하북제군사까지 승진했고 열후에 봉해졌다.


[[오질전]]으로 분리


총평 

옛날 위문제와 진사왕은 공자(公子)의 존귀함을 받고 널리 문학을 좋아하였으며, 기호가 같은 선비들을 모았고, 문학적 재능이 있는 자들을 나란히 출현시켰다. 왕찬 등 여섯 명의 명성이 가장 높았는데 특히 왕찬은 항상 곁에 있는 관리가 되어 일대의 제도를 세웠지만, 그 허함을 지키고 세상을 덕으로 채운 서간의 순수함만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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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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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뱅뱅

201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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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68.253)
臣松之曰:貌寢,謂貌負其實也。通侻者,簡易也。

#왕찬의 용모를 貌寢로 쓴 글에 대한 배송지의 의견 : 貌寢 이라 함음 모양(貌)의 본질(實)이 負(나쁘다)한 것을 말한다. 이는 추한 사람(侻者)과 통하며 간단하게 표현(簡易)한것이다.

코렐솔라

2013.07.26
15:39:07
(*.52.89.88)
보지도 못한 왕찬을 못 생겼다고 디스하는 배송지군요(…)

구다라

2013.08.06
02:55:19
(*.9.121.186)
구라뱅뱅님과 코렐솔라님이 오류를 범했습니다.
물론 원인은 본문이 잘못 번역된 것에 기인합니다.
번역가&개인 란에 이 부문 올려 놓겠습니다.

구라뱅뱅

2013.08.06
10:34:49
(*.49.168.253)
어설픈 번역은 잘못된 내용으로 가게 만드는 군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코렐솔라

2013.08.06
10:49:34
(*.52.91.73)
본문의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불편을 드렸군요. 잘못된 내용을 올려서 불편을 드린전 사과드립니다.

코렐솔라

2013.10.11
12:24:05
(*.166.245.166)
여기있는 주석의 번역은 모두 완료되었으며 dragonrz님이 해주신 것입니다. http://rexhistoria.net/62866 감사합니다.

코렐솔라

2013.10.11
13:53:55
(*.166.245.166)
"광릉(廣陵) 사람 진림(陳琳)의 자는 공장(孔璋)으로 " 부분은 진림전으로 분할하면서 추가된 것 같군요. 삭제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10.26
16:58:23
(*.166.245.132)
혜강전은 마저 번역이 되면 분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비천한 능력으론 도저히 어디까지가 혜강의 내용인지 알 수가 없군요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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