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군전]]에서 분할

 

진태(陳泰)는 자가 현백(玄伯)이다. 

청룡 연간에 산기시랑을 제수받았다. 정시 연간, 유격장군으로 옮기고 병주자가사 되었으며, 진위장군의 칭호를 더하고, 지절ㆍ호흉노중랑장이 되어 흉노의 백성들을 어루만지어 달래었는데, 위엄과 은혜가 매우 있었다. 수도의 귀인들은 대부분 보물과 재화를 진태에게 기탁하고 노비를 사려고 했는데, 진태는 이것들을 모두 벽에 걸어 놓고 그 봉인조차도 뜯어보지 않았다. 중앙으로 불려가 상서가 되었을 때, 그것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가평 초년, 곽회를 대신하여 옹주자사가 되었으며, 분위장군을 더하였다. 촉나라 대장 강유가 병사들을 이끌고 국산에 의지하여 두 개의 성을 쌓고, 아문장 구안과 이흠 등을 보내 그 성을 지키도록 했으며, 또 강호의 인질을 모아 위나라의 여러 군을 침범했다. 정서장군 곽회는 진태와 더불어 적을 제어할 방법을 상의했는데, 진태가 말했다.

"국성은 비록 견고하지만 촉나라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길이 험난하므로 반드시 군량미 수송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강족은 강유를 두려워하여 부역을 징발하였으니, 반드시 그들에게 의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그들을 포위하여 빼앗는다면, 칼에 피를 대지 않고서도 그들의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들에게 구원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산길이 험준하여 병사를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닐 것입니다."

곽회는 진태의 계책을 따라서 진태에게 토촉호군 서질과 남안 태수 등애 등을 인솔하고 병사를 나아가게 하여 그들을 포위하여 그 운송로와 성 밖의 물의 흐름을 끊도록 했다. 구안 등은 도전을 하였으나 위나라 군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성안의 장수와 병사들은 곤궁하였고, 식량을 나누어 배급하고 눈을 모아서 시간을 끌었다. 강유는 과연 구원하러 와 우두산으로부터 나와 진태와 서로 대치했는데, 진태가 말했다.

"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지금 우두산을 끊으면 강유는 돌아갈 길이 없으므로 우리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군 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각자 보루를 견고하게 하고 적과 싸우지 말도록 하며, 사자를 파견하여 곽회에게 진언하고 자신은 남쪽으로부터 백수를 건너 물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곽회로 하여금 우두산으로 달려가 적의 퇴로를 끊도록 하려고 했다. 이와 같이 하면 강유를 취할 수 있으며, 구안 등을 공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곽회는 그의 계책을 칭찬하고, 군사들을 인솔하여 밳 ㅜ로 진군하도록 했다. 강유는 두려워 군사를 이끌고 도주하였고, 구안 등은 고립되었는데도 원조가 없었으므로 마침내 모두 투항했다.

정 원 2년에 곽회가 세상을 떠나자, 진태가 곽회를 대신하여 정서장군이 되었고, 가절도독옹양제군사가 되었다. 후년, 옹주자사 왕경이 진태에게 말하기를 강유와 하후태가 세갈래 길, 즉 기산, 석영, 금성으로 향하여 병사를 위시로 나아가게 하고, 양주의 군사로 하여금 포한에 이르게 하여 토촉호군을 기산으로 향하도록 하려고 한다고 했다. 진태는 적의 세력으로는 세 갈래 길로 나눌 수 없으며, 아울러 병사의 세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우므로 양주의 경계를 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헤아렸다. 그래서 왕경에게 대답했다.

"적의 정확한 소식을 들어 살펴본 결과 그들의 동향을 알았습니다. 동서의 세력이 합치는 것을 기다렸다가 진군합시다."

당 시 강유 등은 수만 명을 인솔하여 포한에 도착하여 급히 적도로 향했다. 진태는 왕경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나아가게 하여 적도에 주둔시키고, 진태의 군사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계획에 따라 그들을 공략하도록 했다. 진태는 진창으로 진군했다. 마침 왕경이 인솔하는 군대가 고관에서 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전세가 불리했으므로 왕경은 곧 백수를 건넜다. 진태는 왕경이 적도를 굳게 지킬 수 없으면 반드시 다른 변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군영의 병사를 파견하여 앞으로 가게 하고, 진태는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이었다.

왕경은 이미 강유와 싸워서 크게 패하고 만여 명만이 돌아와 적도성을 지키고 있었고, 그 나머지는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강유는 승기를 틈타 적도를 포위하였다. 진태는 상규에서 주둔하며 병사를 나누어 요충지를 지키도록 하고 밤을 낮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등애ㆍ호분ㆍ왕비 또한 도착했으므로, 등애ㆍ왕비 등과 삼군으로 나누어 농서로 나아갔다. 등애 등은 주장했다.

" 왕경의 정예병사는 서쪽에서 실패하여 참사를 당했고, 적들의 사기는 더욱 왕성합니다. 승기를 탄 병사는 감당할 수 없고, 장군은 오합지졸로 방금 전쟁에서 진 군사들의 뒤를 잇고 있으며, 장수와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졌으며, 농우는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은 `독사가 손을 물면 장사는 손을 자른다` 고 했고, 《손자병법》에서는 `군대가 공격하지 않는 적이 있으면, 지키지 않는 곳이 있다` 고 했습니다. 대체로 작은 손실로써 큰 것을 보존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지금 농우의 재난은 독사에게 물린 것보다 심하고, 적도 땅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강유의 군대는 그의 예봉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요충지를 차지하고 안전하게 보존하면서 적의 쇠함을 디란 연후에 진군하여 구조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것이 승리를 얻는 방법입니다."

진태가 말했다.

" 강유는 가볍게 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깊숙이 들어가서 우리 군대와 평원에서 선봉을 다투어 한바탕 싸움에서 승리를 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왕경은 성벽을 높게 하고 보루를 깊게 하ㅕ 그들의 예리한 기세를 꺾어야 합니다. 지금 적과 교전을 시작했으므로 적으로 하여금 계책을 얻게하여 왕경을 격파하고 적도를 포위했습니다. 만일 강유가 승기를 타고 동쪽으로 진군한다면 많은 식량이 쌓여있는 역양을 점거하고, 병사들을 풀어 항복한 자들을 거두고, 북쪽 오랑캐와 남쪽 오랑캐를 불러 맞아들이고, 동쪽에서는 우리들과 관과 농을 다투며, 사군에 격문을 전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유가 승기를 탄 병사들을 인솔하여 높은 성 아래에서 주저앉는다면, 우리들의 사기는 높아져 힘을 다하고 목숨을 바쳐 적과 싸울 것입니다. 때문에 공격과 구비의 형세가 다르게 되고, 주객이 전도될 것입니다. 병서에서 말하기를, `사다리나 수레를 제조하는 데에는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고, 흙산을 만드는 것은 3개월 이후에야 완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가볍게 무장한 병사로 깊속이 들어간 강유가 창졸지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거지를 멀리 떠난 강유의 군대는 식량이 계속 이어지지 못할 것이고, 이는 우리가 신속히 나아가 적을 격파시킬 때입니다. 이른바, 빠른 번개소리가 귀에 미치지 못하는 자연스런 형세인 것입니다. 조수가 적도의 남족에 둘러있고, 강유의 군대는 조수의 북쪽에 있으므로, 지금 우리들이 높은 곳에 올라 유리한 지형을 점거하고 적의 덜미를 움켜쥔다면, 싸우지 않고도 반드시 도주시킬 것입니다. 지금은 적을 방치할 수 없고 적을 오랫도안 포위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군사를 나아가게 하여 고성령을 넘어 몰래 행군하여 밤에 적도의 동남쪽에 있는 높은 산위에 이르러 병사들에게 많은 봉화를 밝혀들고 북과 호각을 울리게 했다. 적도성 안에 있던 장수와 병사들은 구원병이 도착한 것을 보고 모두 떨쳐 일어났다. 강유는 최초의 구원병은 반드시 군사들을 모아 출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구원병이 벌써 도착했다는 말을 듣게되자, 이전부터 미리 준비한 계책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아래가 모우 매우 두려워했다. 위나라 군대는 농서를 출발할 때, 산길이 매우 험난하므로 적이 반드시 복병을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태는 거짓으로 남쪽길로부터 진군하였는데, 강유는 과연 3일간 복병을 배치하였다.


臣松之案:此傳云「謂救兵當須眾集,而卒聞已至,謂有奇變,上下震懼」,此則救至出於不意。若不知救至,何故伏兵深險乃經三日乎?設伏相伺,非不知之謂。此皆語之不通也。


신(臣) 송지(松之)가 보건대 : 본전의 말에 의하면 「말하길 구원하는 군대는 응당 무리를 모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창졸간에 이미 이르렀다는 소리를 듣자 이르길 기이한 계략이 있다하고는 상하가 떨며 두려워 하였다.」라 하였는데 이는 곧 구원병의 당도가 의도치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구원병이 오는 것을 몰랐다면 무슨 연고로 심험한 장소에 병사를 매복시켜 마침내 3일이나 지났던 것입니까? 병사를 매복시켜 정탐하였으니 몰랐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모두 말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태의 군대가 몰래 행군하여 갑자기 적도 남쪽에서 나타나자, 강유가 산을 따라 진태의 군사를 습격했다. 진태는 그와 교전하여 퇴각시켜 돌아가게 했다.

양주 군사는 금성을 지나 남쪽으로 옥간판에 도착했다. 진태와 왕경은 비밀리에 날짜를 정하고 함께 강유의 퇴로를 막으려고 했다. 강유 등은 이 계획을 듣고 즉시 도주했다. 적도성 안의 장수와 병사들은 비로소 성을 나오게 되었다. 왕경이 감탄하며 말했다.

"식량은 열흘분도 못 남았습니다. 만일 때에 이르러 구원병이 오지 않았다면 성을 들어 궤멸하여 옹주를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진태는 장수와 병사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앞뒤로 나누어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따로 사람을 보내 지키도록 하였으며, 아울러 성과 보루를 수리하도록 하고, 군대를 돌려 상규에 주둔했다.

그 이전에 진태는 왕경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군의 장수와 병사가 평소부터 모두 한마음이었으므로 그들에게 성을 지키게 하면 강유가 단번에 공략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표를 올려 군사를 나아가게 하여 밤낮으로 급히 적도로 달려가라고 했다. 여러 신하들의 의견은 왕경이 도주해 버린 후라 성을 굳게 지킬수 없으므로, 강유가 만일 양주로 가는 길을 끊어 사군의 백성과 만족을 겸병하여 관농의 요충지를 점거한다면 왕경의 군사를 전밀시키고, 농우를 멸망시킬 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응당 대군이 사방에서 모이는 것을 기다린 후에 강유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장군 사마문왕이 말했다.

"옛날 제갈양은 항상 이러한 뜻을 품고 있었지만, 끝까지 실현할 수 없었소. 이처럼 큰 사업과 계책은 강유에게 맡길만한 일이 아니오. 그리고 적도성은 창졸지간에 공격해서 할 수 없으며, 식량이 적은 것이 긴급한 일이요.정서장군이 신속히 구원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오."

진태는 언제나 한편으로 전쟁에 관한일이 있으면, 걸핏하면 허황된 소리로 천하를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에 위로 보고하는 일을 간략하게 하기를 희망했다. 때문에 그는 역참에 보내는 문서는 6백 리를 너지 않도록 했다.

사마문왕이 순기에게 말했다.

" 진현백(진태)은 침착하고 용감하며 판단력이 있으므로 한편의 중심을 맡아서 공략당한 성을 구할 수 있으니, 병사들의 증원을 요구하지 말고, 또 도정에는 가벼운 사건을 보고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그는 반드시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도독대장은 이와같이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후에 진태는 승진하여 상서우복야가 되었고, 관리선발을 관장하며 시중관록대부의 관직을 더했다. 오나라 대장 손준이 회수와 사수를 나왔다. 진태를 진남장군ㆍ가절도독회북제군사로 삼고, 서주의 감군 이하에게 진태의 지휘를 받도록 명령했다. 손준이 병사를 물리치자 진태 또한 군사를 돌아가게 하였으며, 좌복야로 전임되었다. 제갈탄이 수춘에서 모반을 하자, 사마문왕은 육군을 인솔하여 구두에 주둔시켰으며, 진태는 행대를 통솔했다. 사마경왕과 사마문왕은 모두 진태와 좋은 관계를 맺었으며 패국의 무해 역시 진태와 좋은 관계였다.

사마문왕이 무해에게 질문했다.

"현백을 그의 부친 사공(진군)과 비교하면 어떻소?"

무해가 말했다.

" 견해는 통돌하고 행위는 아정하며, 지식은 넓어 국가의 위엄과 교화를 자신의 임무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현백이 부친만 못합니다. 그러나 통솔력을 갖고 간략하게 하며 공을 세워 일을 완성하는 면에 있어서는 그의 부친을 뛰어넘습니다."

진태는 앞뒤의 공적으로 식읍 2천600호가 더해졌고, 자제 한명에게 정후를 하사받았으며, 두명에게는 관내후를 받았다.

경원 원년(260)에 세상을 떠났는데, 관직을 사공으로 추증하고 시호를 목후라고 했다. 

간보의 진기 : 고귀향공이 살해된 뒤에 사마문왕(사마소)이 조정의 신하들을 불러 그 대책을 논의했는데 태상 진태는 참석하지 않앗다. 그의 외숙 순의에게 그를 불러 참석 여부를 알아보게 했더니, 진태가 말하길


"세상의 논자들은 저를 외숙께 견주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외숙께서 저만 못합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자제와 내외 친족들이 모두 그에게 참석하라고 강요하자 눈물을 흘리면서 조정으로 들어갔다. 문왕이 격리된 방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말하길


"현백(진태), 경은 내가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했으면 좋겠소?"


라고 하자, 대답하길


"가충을 죽여 천하에 사죄해야 합니다"


라고 했다. 다시 문왕이 말하길


"나를 위하여 그 다음 방법을 다시 생각해주겠소?"


라고 하자, 진태가 말하길


"오직 그 이상은 있을 수 있지만 그 다음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했다. 그래서 문왕은 질문을 그만두었다.


위씨춘추(魏氏春秋) : 조모가 죽자 태부(太傅) 사마부(司馬孚)와 상서복야사(尚書右僕射) 진태(陳泰)가 조모의 사마소는 그 소식을 듣고 황제의 시신앞에 드러누우며 곡을 애달프게 했다. 이때 대장군 사마소가 금(禁: 궁궐)로 들어왔고 진태가 슬퍼하고 비통해 하는 것을 보았다. 곧 대장군도 옆에서 같이 곡을 했다. 이때 말했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라고 하자, 진태가 말하길


"가충을 참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떳떳함을 지킬 수는 있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사마소가 말하길


"경은 다른 방법을 다시 생각해주겠소?"


라고 하자, 진태가 말하길


"저에게 다시 그 다음 말을 하게 하시렵니까"


라고 했다. 그리고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신 송지가 본전을 상고해보니, 진태는 태상이 아니므로, 간보가 그것을 알게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손성은 진태의 말을 고쳤으나,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그래서 손성의 말 중 고친 곳을 검사했는데, 모두 다르게 들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의미를 판가름하여 고침으로, 여러 곳이 예전보다 못하였다. 무릇 말을 기록하는 근본은, 마땅히 그 말이 나온 것과 같아야 한다. 문체는 뛰어나지만 그 내용이 어긋나니, 진실로 군자가 취해서는 안될 바인데, 게다가 나아지지도 못하였으니 무리의 어른으로 허망하지 아니한가? 박물기를 상고하여 말하길 : 태구장 진식, 진식의 아들 홍려 진기, 진기의 아들 사공 진군, 진군의 아들 진태 네 세대는, 한, 위 두 조정에서 모두 높은 명성이 있었는데, 그 덕이 점점 적어지고 줄어들었다. 당시 사람이 그 말씀을 생각하여 말하길 : "공(진군)이 경(진기)에게 부끄러워하고, 경(진기)이 장(진식)에게 부끄러워하였다."


아들 진순이 뒤를 이었다. 진순이 죽었으나, 후사가 없어 동생 진온이 영지를 계승했다. 함회 연간에 오등작을 세웠고, 진태는 이전 조대에 공훈이 탁월했으므로 진온을 신자로 바꿔 봉했다.


案陳氏譜:群之後,名位遂微。諶孫佐,官至青州刺史。佐弟坦,廷尉。佐子準,太尉,封廣陵郡公。準弟戴、徵及從弟堪,並至大位。準孫逵,字林道,有譽江左,為西中郎將,追贈衛將軍。

분류 :
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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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0:58:35 (*.148.4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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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4
22:06:43
(*.52.89.87)
한진춘추 글은 도대체 어디출신인지를 모르겠네요.

코렐솔라

2013.07.19
21:46:58
(*.52.89.88)
주석을 추가하고 출처 불분명한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31
09:22:02
(*.52.91.73)
으아아, 한진춘추를 지운다는 것이 위씨춘추도 지웠군요. 다시 복구했습니다.

강유의 복병에 대한 배송지의 평가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rexhistoria.net/156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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