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衛臻)의 자가 공진(公振)이며 진류군(陳留郡) 양읍현(襄邑縣) 사람이다. 부친 위자(茲)는 큰 절조를 갖고서 삼공의 초빙에 응하지 않았다. 태조가 처음 진류군(陳留)에 이르렀을 때, 위자가 말했다.

“천하가 평정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이 사람이오.”

태조 또한 그를 기이하게 보았으며, 누차에 걸쳐 방문하여 대사를 논의했다. 태조를 따라 동탁(董卓)을 토벌하러 갔다가 형양(滎陽)에서 전사했다. 태조는 진류 경내를 지날 때마다 반드시 사자를 보내 그를 제사지냈다.


선현행장(先賢行狀)에서 이르길: 위자(衛茲)는 자가 자허(子許)이다. 위선을 장려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세속의 명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사려는 명료하고 심연했고, 계략은 광대 무한했다. 거기장군(車騎將軍) 하묘(何苗)에 의해서 초대되었고, 사도(司徒) 양표(楊彪)에게 두번 정도 정을 가지고 초빙되었다.


동탁의 난이 발생하자, 한나라는 흔드렸고, 태조가 진류땅에 도착하자, 위자와 만났고, 서로 동맹을 맺어, 같이 군사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위자가 말했다.


"오랫동안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오로지 군사력만이 이것을 평정할 수 있다"


또 말했다.


"군사를 일으켜 흥하는자가 지금부터 나올 것이다"


(군웅 중) 융성하는 사람, 멸망 하는 사람을 깊게 판별해, (조조가 세운) 광대한 모략의 필두의 익찬자가 되었다. 그는 3천명의 병사들을 모았다. 태조를 따라, 형양현에 가서 (동탁군과) 싸웠는데, 하루종일 이어진 싸움에서 패하고 전사했다.


곽임종전(郭林宗傳)에서 이르길: 위자가 약관이었을때 같은 고을의 권문생(圈文生)과 함께 덕이 있다고 칭송을 들었다. 곽태(郭泰)가 두 사람과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그는 부르는 값을 그대로 치르고 샀지만, 권문생은 흠집이 있는 것이라고 고함쳐, 반드시 값을 깎아 샀다. 곽태가 그는 욕심이 적고, 권문생은 감성이 풍부하다. 이 두명은 형제 지간이 될 수 없다, 부자지간이면 몰라도. 라고 평했다. 이 일로 그의 덕이 더욱 알려졌다. 후에 권문생은 재화에 빠지고 덕망을 잃었고, 위자는 장렬한 절개에 의해서 이름을 알려졌다.


하후돈(夏侯惇)이 진류태수(陳留太守)가 되었을 때, 위진을 계리(計吏)로 추천하고, 부인에게 연회에 출석하도록 명령했다. 위진이 말했다.

“말세의 풍속이야. 바른 예절이 아니오.”

하후돈은 매우 화가 나서 위진을 체포했지만, 오래지 않아 그를 사면시켜 주었다. 후에 한나라(漢)의 황문시랑(黃門侍郎)이 되었다. 동군(東郡)의 주월(朱越)이 모반을 하자, 위진을 불렀다. 태조가 명령하여 말했다.

“나의 그대의 부친은 함께 대사를 일으켰었소. 그래서 그대를 존경하며 묻는 것이요. 처음 주월(越)의 말을 들었을 때, 본래는 믿지 않았소. 순영군(荀令君 : 순욱)의 편지를 받고서야 당신의 충성심과 정직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소.”

마침 이때 위진은 한 황제의 조서를 받았는데, 귀인(貴人 : 女官의 지위)을 맞이하여 위나라를 찾아오도록 했다. 태조는 이 기회에 표를 올려 위진을 남겨 승상군사(丞相軍事)에 참여시키도록 했다. 위진 부친의 과거 공훈(勳)을 추도(追悼)하여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내리고, 호조(戶曹)의 속관(掾)으로 전임시켰다. 문제가 왕위에 즉위하자,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임명되었다. 문제가 제위에 오르자, 안국정후(安國亭侯)로 봉했다.
당시 신하들은 모두 위나라의 덕을 칭송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 왕조를 폄하시켰다. 위진만이 유독 한(漢)나라의 헌제가 제위를 선양해준 의미를 분명히 하고, 한대(漢代)의 미덕을 칭송했다. 문제는 위진을 몇 차례 보고 말했다.

“천하의 진주이니 마땅히 산양공(山陽共 : 한나라 헌제는 제위에서 물러나 산양공이 되었음)과 함께 대해야 되겠구나.”

상서(尚書)로 승진하였으며, 시중리부상서(侍中吏部尚書)로 전임되었다. 문제가 광릉(廣陵)으로 행차했을 때, 중령군(中領軍)을 대행하여 따라갔다. 정동대장군(征軍大將軍) 조휴(曹休)는 항복한 적의 자백을 받아 표를 올렸다.

- 손권은 벌써 유수구(濡須口)에 있습니다.

위진이 말했다.

“손권은 장강(長江)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감히 우리들에게 저항하며 충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두려워 거짓으로 자백한 것일 뿐입니다.”

항복한 사람들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과연 수비대장이 거짓으로 만든 것이었다.

명제가 즉위하자, 위진은 강향후(康鄉侯)로 승진하여 봉해졌고, 후에 우복야(右僕射)로 전임되었으며, 관리 선발을 관장하고, 이전처럼 시중(侍中)의 관직을 더하였다. 중호군(中護軍) 장제(蔣濟)는 위진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한 고조(漢祖)는 도망친 죄인(한신)을 상장(上將)으로 삼았고, 주무왕(周武)은 어부(여상)를 발탁하여 대사(太師)로 삼았습니다. 평민이나 노비도 왕공(王公)으로 등용될 수 있는데, 하필 과거의 제도를 지켜 시험해 본 후에 기용하겠습니까?

위진이 답장하여 말했다.

- 옛 사람들은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제도에 의거하여 관리를 선발하였으며, 반드시 업적을 살핀 후에 직책의 승진과 낮춤을 결정했습니다. 현재, 당신은 성왕(成)ㆍ강왕(康 : 周나라의 왕)의 시대를 목야(牧野 : 은과 주가 결전하던 전쟁터)의 시대와 혼동하고, 문제와 경제(文景) 시대에 만일 제도에 따라 천거하지 않은 것을 좋아하여 마음대로 관리를 발탁하는 선례를 연다면, 천하 사람들이 다투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제갈양(諸葛亮)이 천수(天水)로 침입하자, 위진이 상주했다.

- 기병을 파견하여 산관(散關)으로 들어가게 하여 적의 식량 보급로를 끊으십시오.

위진은 정촉장군(征蜀將軍)으로 임명되었고, 가절도독제군사(假節督諸軍事)가 되었다. 대장군이 장안(長安)에 도착하자, 제갈양은 이미 퇴각하였다. 위진은 수도로 돌아와 복직했으며, 광록대부(光祿大夫)의 관직을 더했다. 이 당시 명제가 궁전 건축에 열중하려고 했으므로, 위진은 몇 차례에 걸쳐 간언했따. 전중감(殿中監)이 독단적으로 난대영사(蘭臺令史)를 체포한 사건이 있었는데, 위진은 그 일을 조사할 것을 상주했다. 이에 황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 궁궐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그대는 그를 어떻게 조사한다는 것인가?

위진이 상소를 올려 말했다.

- 고대에 관리의 월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것은 관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싫어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유익한 점이 적고, 병폐가 크기 때문입니다. 신이 매번 교사(校事 : 신하들을 감찰하는 자)를 관찰해보니 그 유형이 대부분 이와 같았습니다. 저는 직무를 맡은 자들이 직권을 넘어 정치가 쇠미해질까봐 두렵습니다.

제갈양(亮)이 또 사곡(斜谷)으로 출격해오자, 정남장군(征南)이 표를 올려 말했다.

- 주연(朱然) 등의 군대는 이미 형성(荊城)을 지났습니다.

위진은 말했다.

“주연(然)은 오(吳)나라의 용맹한 장수이므로 반드시 손권을 따라 싸울 것입니다. 세력을 보여 정남장군(征南)장군을 공격하는 것 뿐입니다.”

손권(權)이 과연 주연(然)을 불러 거소(居巢)로 들어가 진군하여 합비를 공격했다. 명제는 직접 동쪽으로 정벌을 나가려 하였으나 위진이 말했다.

“손권은 겉으로는 제갈양에 호응하는 것을 보여주지만, 사실 내심으로는 관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합비성(合肥)은 견고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정벌하여 육군(六軍)의 비용을 줄일 필요가 없습니다.”

명제가 심양(尋陽)으로 왔을 때, 손권은 이미 물러났다.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이 상소를 올려 말했다.

“폐하께서 제위에 오른 이래로 기록할 수 있는 공적이 없었습니다. 오(吳)와 촉(蜀)은 험한 지형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즉시 평정할 수 없으니, 잠시 이쪽(유주)의 사용하지 않는 병사로 요동을 공격하여 평정시키십시오.”

위진은 말했다.

“관구검이 진술한 것은 전국시대 때 사용하던 자잘한 기교이지, 왕 노릇하는 자의 일이 아닙니다. 오나라가 해를 이어 군대를 사용하고, 변방 지역에 침입하여 소란스럽게 하였으며, 군대를 주둔시키고 병사를 양성하나, 즉시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백성들이 피곤해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공손연은 바다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정권은 삼대에 걸쳐 이어졌고, 밖으로는 융이(戎夷)를 진무하고 안으로는 병사들의 무예를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구검은 군대를 편성하여 멀리 달려 아침에 도착하여 저녁에 펴려고(하루만에 평정하려고 하다는 뜻임) 합니다. 이런 생각은 매우 허황된 것입니다.”

관구검은 군사를 나아가게 했는데, 과연 불리했다.

위진은 사공(司空)으로 승진하고 바꿔 사도(司徒)로 임명되었다.

정시(正始) 연간에 승진하여 작위가 장환후(長垣侯)가 되었으며 식읍이 천 호이고, 한 아들을 열후(列侯)로 봉했다. 처음에 태조는 오랫동안 태자를 세우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임치후(臨菑侯)를 매우 총애하였다. 정의(丁儀) 등은 조식의 심복이 되엇으며, 위진에게도 자신들과 결탁할 것을 권하였는데, 위진은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거절했다. 문제가 제위에 오르자, 동해왕(東海王) 조림(霖)이 총애를 받았다. 문제는 위진에게 말했다.

“평원후(平原侯)는 어떠한가?”

위진은 덕행이 아름답다고 칭찬했지만, 끝까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조상(曹爽)이 정치를 보좌할 때, 하후현(夏侯玄)으로 하여금 그의 뜻을 전달하도록 하여, 위진을 불러 조정으로 들어와 상서령(尚書令)을 맡도록 하고, 또 동생을 위해 결혼을 구했지만,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관직을 떠나기를 강력히 요청하니, 조서를 내려 말했다.

- 옛날 간목(干木)은 관직에 있지 않았지만 도의는 강력한 진(秦)나라를 굴복시켰고, 유후(留侯 : 전한 초의 모신 長良)는 정신을 쉬게 했어도 초(楚)나라의 일을 잊지 않았다. 당신이 바른 말과 좋은 계책이 있다면 아끼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에게 집 한 채와 특진(特進)의 관직과 삼공(三司)과 같은 은혜를 주었다. 그가 죽자 태위(太尉)의 관직을 추증했으며, 시호를 경후(敬侯)라고 했다. 아들 위열(烈)이 뒤를 이었으며, 함희(咸熙) 연간에 광록훈(光祿勳)이 되었다.


신송지: 위열(衛烈)의 두 동생인 위경(衛京)과 위개(衛楷)는 모두 2천석 관리가 되었다. 위개의 아들 위권(衛權)은 자가 백여(伯輿)이다. 진나라 대사마인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이 황제를 섭정할때, 위권을 상서랑(尚書郎)으로 삼았다.


傅咸與亮牋曰:「衛伯輿貴妃兄子,誠有才章,應作臺郎,然未得東宮官屬。東宮官屬,前患楊駿,親理塞路,今有伯輿,復越某作郎。一犬吠形,群犬吠聲,懼於群吠,遂至回聽。」權作左思吳都賦敘及注,敘粗有文辭,至於為注,了無所發明,直為塵穢紙墨,不合傳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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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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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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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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