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흡(和洽)은 자가 양사(陽士)이고, 여남군(汝南郡) 서평현(西平縣) 사람이다. 효렴(孝廉)에 추천되었고 대장군(大將軍)에 초빙되었지만,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원소(袁紹)가 기주(冀州)에 있을 때, 사자를 파견하여 여남(汝南)의 사대부(士大夫)를 맞이하도록 했는데, 화흡은 홀로 생각했다.

“기주(冀州)는 토지가 평탄하고 백성들은 강성하여 영웅호걸들이 이익을 다투는 장수로서, 사방이 공격을 받기 쉬운 곳이다. 본초(本初 : 원소의 자)는 자금에 의지하여 비록 강대할 수 있었으나, 영웅호걸들이 바야흐로 일어나고 있어 기주를 온전히 보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형주(荊州)의 유표(劉表)는 어떤 원대한 포부는 없지만 인물을 아끼고 선비를 좋아하고, 그 토지는 험난하고 막혀 있으며, 산은 평평하고 백성들은 쇠약하다. 그에게 의지하는 것이 용이하겠다.”

드디어 친구들과 더불어 함께 남쪽으로 가 유표를 따르니, 유포는 그를 상객(上客)의 예로써 대우했다. 화흡이 말했다.

“제가 본초를 따르지 않은 까닭은 다투는 곳을 피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군주의 곁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래 있으면 위험에 처하게 되고, 반드시 사악한 자가 나와서 군주와의 사이를 이간시킬 것입니다.”

마침내 남방의 무릉(武陵)으로 건너갔다.


臣松之案漢書文紀曰「阽於死亡」,食貨志曰「阽危若是」,注曰。「阽音鹽,如屋簷,近邊欲墮之意也。」一曰「臨危曰阽」。


태조(太祖)는 형주(荊州)를 정벌하자, 화흡을 불러서 승상연속(丞相掾屬)으로 삼았다. 이 당시 모개(毛玠)와 최염(崔琰)은 충의와 청렴으로써 일을 처리했는데, 그들이 관리를 선발하고 임용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절약을 숭상하였다. 화흡이 진언하여 말했다.

“천하의 대기(大器 : 국정)는 관직과 인물에 달려 있지, 절검(節儉 한가지로써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절검과 소박함이 중도를 넘으면 스스로 처신하면 되니, 이러한 절검으로 만물을 바르게 할 경우 잃는 바가 간혹 많아지게 됩니다. 지금 조정의 의견은 관리 중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좋은 수레를 타는 자를 청빈하지 못하다고 하며, 장리(吏 : 현의 고관)가 진영을 지나면서 겉모습을 꾸미지 않고 갈기갈기 찢어진 옷과 갖옷을 입고 있으면 일컬어 청렴하다고 합니다. 지금 사대부(士大夫)들로 하여금 고의로 그들의 옷을 더럽히게 하고 그들의 수레와 의복을 감추게 하며, 관청의 높은 관리들은 간혹 스스로 호로병과 밥을 가지고서 관청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교화를 일으켜 세우고 풍속을 관찰함에 있어서 중용(中庸)에 처해지기를 귀하게 여겨야 가히 계승해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일률적으로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절검으로써 관리의 자질을 구분하려 하고 관리들에게 억지로 그것을 하게 하면 반드시 피곤하고 초췌해지게 될 것입니다. 옛날의 위대한 가르침은 반드시 인정에 통하게 하는 데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무릇 괴이한 해위로 치닫게 하면 그중에 반드시 거짓이 숨어들게 됩니다.”


孫盛曰:昔先王御世,觀民設教,雖質文因時,損益代用,至於車服禮秩,貴賤等差,其歸一揆。魏承漢亂,風俗侈泰,誠宜仰思古制,訓以約簡,使奢不陵肆,儉足 中禮,進無蜉蝣之刺,退免採莫之譏;如此則治道隆而頌聲作矣。夫矯枉過正則巧偽滋生,以克訓下則民志險隘,非聖王所以陶化民物,閑邪存誠之道。和洽之言, 於是允矣。





화흡은 위(魏)나라가 건국되자 시중(侍中)이 되었다. 후에 어떤 사람이 모개(毛玠)가 태조를 비방한다고 하외자, 태조는 매우 노하여 측근의 신하들과 만났다. 화흡은 모개의 평소 행동이 근본이 있다고 진술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사실대로 조사할 것을 요청하였다. 조회가 끝나자 태조는 명을 내렸다.

“지금 이 사건에 대해 말하는 자 중에서 모개에 대해서 아뢰는 자는 나를 비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 다시 최염(崔琰)의 원망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임금과 신하의 은혜와 정의를 훼손시키고, 망령되게도 죽은 친구에게 원망과 탄식을 주게 하는 것이니, 아마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에 소하(蕭)와 조참(曹)은 한고조(高祖)와 더불어 함께 미천한 신분에서 일어나 힘을 다하여 공을 세웠다. 고조가 급박한 처지에 놓였을 때마다 두 재상(소하와 조참)은 도리어 더욱 고조에게 공손하여 신하의 도리가 나날이 빛났기 때문에 소하와 조참의 작위가 후세에 이르게 되었다. 화시중(和侍中 : 화흡)이 나에게 이 일을 조사해 줄 것을 연달아 요청하였으나, 내가 듣지 않은 까닭은 이 일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하려고 한 것이다.”

화흡이 이때 대답하여 말했다.

“만일 의견을 말하는 자의 말에 따르면, 모개의 죄는 매우 무거워 천지로도 덮혀 질 수 없습니다. 신은 감히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모개를 변호하여 인륜의 대도(大道)를 굽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모개는 모든 관리 중에서 뛰어나 특별히 발탁되어 높은 관직(상서복야)에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는 해마다 은총을 받았고 강직하고 충성스럽고 공명하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거리끼는 바가 되었지, 마땅히 이런 것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보장하기가 어려우므로 마땅히 살피고 탄핵해야만 하며, 양자가 주장하는 것의 사실 여부를 조사해봐야 합니다. 이제 성은이 치욕을 먹음은 인덕을 덮고 차마 그를 재판에 이르게 하지 않아 그른지 옳은지의 구분을 다시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의심은 가까운데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태조가 말했다.

“조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모개와 이 일을 진술한 두 사람을 온전하게 하려고 했던 것뿐이오.”

화흡이 대답하여 말했다.

“모개에게 실제로 윗사람을 비방하는 말이 있었다면, 마땅히 그를 시장에서 처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만일 모개가 이러한 일이 없었다면 그 일을 진술한 자에게 대신을 무고함으로써 판단을 그르치게 한 잘못을 덧붙여야 합니다. 양자가 조사하여 사실 여부를 분명하게 하지 않은 것이 신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태조는 말했다.

“지금 군사에 관한 일이 있으니, 어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서 곧바로 조사할 수 있겠소? 춘추시대 진나라의 호사고(狐射姑)가 조정에서 월권행위를 한 양처부(陽處父)를 찔러 죽였는데, 이는 그 당시 군주에게 경계가 되었소.”

태조가 장로(張魯)를 쳐부수려고 하자, 화흡은 시의 적절한 의견을 내세워 시기를 보고 군대를 이끌고 백성들을 이주시키면 수비대를 설치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태조는 화흡의 의견을 포기하였다. 또 다시 낭중령(郎中令)으로 임명되어 지방으로 나갔다. 문제(文帝)가 즉위한 이후에 화흡은 광록훈(光祿勳)에 임명되었고, 안성정후(安城亭侯)에 봉해졌다. 명제(明帝)가 즉위하자 승진하여 서릉향후(西陵鄉侯)에 봉해졌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태화(太和) 연간에 산기상시(散騎常侍)인 고당륭(高堂隆)이 상주했다.

- 지금 계절풍이 이르지 않았는데, 농업에는 황폐하게 버려진 기운이 있습니다. 반드시 담당관리 가운데 직무를 근면하게 수행하지 않는 자가 있어 하늘의 질서를 잃은 것입니다.

조서는 겸허하게 책임을 이끌도록 하고 아울러 다른 의견을 광범위하게 자문하였다. 화흡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성들은 드물고 밭가는 사람은 적으며, 떠돌아다니며 먹고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으며, 백성은 곡식을 명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한 시절의 농업 생산을 허비하게 되면, 생존과 번식의 근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선왕은 번잡한 요역을 피함으로써 오로지 농업에만 힘쓰도록 하였습니다. 봄과 여름 이래로 요역에 시달리고 농업은 황폐화되었으므로 백성들은 개탄하고 있습니다. 계절풍이 이르지 않는 것은 반드시 이러한 데로부터 말미암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소멸시키고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절약과 검소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태조(太祖)께서 위대한 사업을 세우고, 군대를 옮기는 비용을 공급하고, 군대에게 상벌을 주는 비용을 공급하고, 관리와 선비들에게는 물자와 식량을 풍부하게 하며, 창고 속에는 곡식과 비단이 많이 있도록 했는데, 이는 태조께서 쓸모없는 궁전을 꾸미지 않았고, 헛되고 과다하게 지출되는 비용을 없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관건은 진실로 번잡한 노역을 폐기하거나 생략하고, 그 다른 임무를 덜고 없앰으로써 군비를 저장하는 것입니다. 세 방면을 지키고 방어하는 것은 마땅히 미리 방비하는 데 있습니다. 적들의 허와 실을 헤아리고 사졸을 양성하며 적을 이길 수 있는 계책을 세우고 공격해서 취할 수 있는 계략을 밝히고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구해야합니다. 만일 책략이 평상시에 정해져 있지 않고, 작은 적을 경시하고 얕보게 되면, 군대가 자주 출동해도 오히려 힘만 들 뿐 공이 없게 됩니다. 이른바 ‘무(武)를 숭상하는 것은 이길 수 없다.’는 고인의 훈계입니다.”

화흡은 전임하여 태상(太常)이 되었는데, 청빈하고 검소함을 지켜 밭과 주택을 팔아서 자급했다. 명제가 그 말을 듣고 그에게 곡식과 비단을 하사했다. 세상을 떠난 후에 시호를 간후(簡侯)라고 했으며 아들 화리(和禽)가 뒤를 이었다. 화리의 동생인 화유(和適)는 재능이 뛰어나고 군주를 보좌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공업을 세웠으며 관직이 정위(廷尉)ㆍ이부상서(吏部尚書)까지 이르렀다.


진제공찬(晉諸公贊)에서 이르길:화교(和嶠)의 자는 장여(長輿)로,화유의 아들이다. 少知名,以雅重稱。常慕其舅夏侯玄之為人,厚自封植,嶷然不群。於黃門郎遷中書令,轉尚書。愍懷太子初立,以 嶠為少保,加散騎常侍。家產豐富,擬於王公,而性至儉吝。嶠同母弟郁,素無名,嶠輕侮之,以此為損。卒於官,贈光祿大夫。郁以公彊當世,致位尚書令。


화흡과 같은 군 출신 중에 허혼(許混)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허소(許劭)의 아들이다. 청빈하고 순박하고 식견이 있었으며 명제(明帝) 시대에 상서(尚書)가 되었다.


허소(許劭)의 자는 자장(子將)이다. 汝南先賢傳曰:召陵謝子微,高才遠識,見劭年十八時,乃歎息曰:「此則希世出眾之偉人也。」劭始發明樊子昭於鬻幘之肆,出虞永賢於牧豎,召李淑才 鄉閭之閒,擢郭子瑜鞍馬之吏,援楊孝祖,舉和陽士,茲六賢者,皆當世之令懿也。其餘中流之士,或舉之於淹滯,或顯之乎童齒,莫不賴劭顧歎之榮。凡所拔育, 顯成令德者,不可殫記。其探擿偽行,抑損虛名,則周之單襄,無以尚也。劭宗人許栩,沉沒榮利,致位司徒。舉宗莫不匍匐栩門,承風而驅,官以賄成,惟劭不過 其門。廣陵(徐孟本)〔徐孟玉〕來臨汝南,聞劭高名,請為功曹。饕餮放流,絜士盈朝。袁紹公族好名,為濮陽長,棄官來還,有副車從騎,將入郡界,紹乃歎 曰:「吾之輿服,豈可使許子將見之乎?」遂單車而歸。辟公府掾,拜鄢陵令,方正徵,皆不就。避亂江南,所歷之國,必翔而後集。終于豫章,時年四十六。有子 曰混,顯名魏世。
//조조에게 평한 것으로 유명한 허자장의 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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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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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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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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