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常林)은 자가 백고(伯槐)이며 하내군(河內郡) 온현(溫縣) 사람이다. 7살 때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가 와서 문을 두드리며 상림에게 물었다.

“백선(伯先 : 부친의 자이며 이름은 알 수 없다)은 집에 있는가?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느냐?”

상림이 대답했다.

“저는 비록 머리를 숙여 손님에게 인사해야 하겠지만, 아들을 보고 아버지의 자를 말씀하시니 어찌 인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가상히 여겼다.

魏略曰:林少單貧。雖貧,自非手力,不取之於人。性好學,漢末為諸生,帶經耕鉏。其妻常自餽餉之,林雖在田野,其相敬如賓。

태수(太守) 왕광(王匡)이 군대를 일으켜 동탁(董卓)을 토벌할 때, 모든 유생을 소속 현(縣)에 파견하여 관리와 백성들의 죄과를 살피도록 하고는 발견되기만 하면 그들을 체포하여 돈과 곡식으로써 죄를 용서받도록 했는데,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종족을 모두 없앰으로써 위엄을 세웠다. 상림의 숙부가 식객의 종아리를 쳤는데, 모든 유생들에게 의해서 알려지게 되었다. 왕광은 노하여 체포하여 다스렸다. 

집안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어느 정도 문책 받게 될지를 알지 못하고, 구류된 자를 구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상림은 왕광과 같은 현 사람인 호모표(胡母彪)를 찾아가 만나보고 말했다.

“왕부군(王府君 : 왕광)께서는 문무로써 높은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희 비루한 군에 오셨습니다. 저희 군은 산하로 둘러싸여 있고 땅은 넓고 백성들은 풍부하고, 또 현명하고 능력은 가진 인재가 많아 선택되어 등용되는 것을 뜻대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상(主上 = 한나라 헌제)께서는 어리고 심약하여 간신들이 조정을 주물러 중원이 두려워 떨고 있으니, 영웅호걸이 재능을 떨칠 시기입니다. 만일 천하의 간악한 적을 주살하여 미약한 왕실을 부축하려고 하신다면, 지혜로운 자는 그 바람을 바라보며 마치 울리는 것처럼 호응할 것입니다. 어지러움을 극복하는 것은 화해로움에 있으니, 어떤 위험을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만일 은덕을 베풀지 아니하여 임용함에 있어서 그 사람을 잃게 되면, 엎어지고 망하는 것이 장차 이르게 될 텐데, 어느 틈에 조정을 바로잡고 보살필 수 있으며, 공명을 세우는 것을 숭상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는 이 점을 깊이 간직하십시오.”

이에 관련하여 숙부가 구류되게 된 사건에 대해 설명하였다. 호모표는 즉시 글을 올려 왕광을 문책하였다. 왕광은 상림의 숙부를 석방했다. 상림은 즉시 상당(上黨)까지 도망가 산기슭에서 밭을 갈고 씨도 뿌렸다. 당시에 가뭄과 병충이 발생하였으나, 상림은 홀로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그의 이웃 사람들을 모두 불러서 되와 말에 곡식을 담아 나누어 주었다.

그는 옛날에 하간태수(河間太守)를 지낸 진연(陳延)의 보루에 의탁했다. 그곳의 진(陳)과 풍(馮) 두 성씨는 옛 씨족에서는 최고의 집단이었다. 장양(張楊)이 이 두 집안의 부녀자들을 눈독들이고 재산을 탐하자, 상림은 그 종족을 이끌고 이들을 위해서 계책을 세웠다. 60여 일 동안 포위되었으나, 마침내 그 보루를 보존할 수 있었다.

병주자사(并州刺史) 고간(高幹)이 표를 올려 상림을 기도위(騎都尉)에 추천하였다. 상림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나중에 자사(刺史) 양습(梁習)이 주(州) 안의 명사(名士), 즉 상림(林)ㆍ양준(楊俊)ㆍ왕릉(王淩)ㆍ왕상(王象)ㆍ순위(荀緯) 등을 추천하였는데, 태조(太祖)는 그들을 모두 현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상림은 남화현(南和)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정치(治)ㆍ교화(化)면에서 성취한 것이 많아 파격적으로 박릉태수(博陵太守)와 유주자사(幽州刺史)로 승진되었는데, 그곳에서도 공적을 세웠다. 위나라 문제(文帝)가 오관장(五官將)이 되었을 때, 상림은 공조(功曹)에 임명되었다. 

태조가 서쪽을 정벌할 때, 전은(田銀)과 소백(蘇伯)이 모반하자, 유주(幽)와 기주(冀)의 형세가 불안하였다. 문제가 그들을 직접 나서서 토벌하려고 하자, 상림이 말했다.

“제가 이전에 박릉(博陵)에서 벼슬을 하고 나중에 유주(幽州)에서 있을 때, 적들의 형세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북방의 백성들은 안정을 좋아하고 혼란을 싫어하며, 조정의 교화에 복종한 것이 이미 오래되었으며, 국가 기강을 잘 준수하는 자가 많습니다. 전은(銀)과 소백(伯)이 개와 양처럼 서로 모여들었으나, 지혜는 작고 야심만 커 해를 입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대군은 먼 곳에 있고 밖으로는 강한 적이 있으며, 장군께서는 천하의 진지가 되고 있으니, 가볍게 행동하여 먼 곳으로 출정하면 설령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무용(武)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의 의견에 따라 장수를 파견하니 때에 임하여 완전히 소멸시켰다.

상림은 평원태수(平原太守)와 위군 동부도위(魏郡東部都尉)에 임명되었고 수도로 들어가 승상동조속(丞相東曹屬)이 되었다. 위(魏)나라가 세워진 후에 상서(尚書)에 제수되었다. 

문제가 제위에 오르자 소부(少府)로 승진하여 임명되었고, 악양정후(樂陽亭侯)에 봉해졌으며, 대사농(大司農)으로 전임되었다.

魏略曰:林性既清白,當官又嚴。少府寺與鴻臚對門,時崔林為鴻臚。崔性闊達,不與林同,數數聞林撾吏聲,不以為可。林夜撾吏,不勝痛,叫呼敖敖徹曙。明日, 崔出門,與林車相遇,乃啁林曰:「聞卿為廷尉,爾邪?」林不覺答曰:「不也。」崔曰:「卿不為廷尉,昨夜何故考囚乎?」林大慚,然不能自止。

명제(明帝)가 즉위한 후에 승진되어 고양향후(高陽鄉侯)에 봉해졌고, 광록훈(光祿勳)ㆍ태상(太常)으로 옮겨졌다. 

진(晉) 선왕(宣王 : 사마의)은 상림의 고향의 덕 있는 선배라고 생각하여 매번 그에게 인사를 했다. 어떤 사람이 상림에게 말했다.

“사마공(司馬公 : 사마의)은 지위가 존귀하니 그대는 마땅히 그의 행동을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상림이 말했다.

“사마공 스스로 장유(長幼 :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예를 올리는 것)의 순서를 돈독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을 위한 법이오. 존귀한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며, 인사하는 것 역시 내가 제지할 수 있는 바가 아니오.”

말하던 자는 부끄러워하면서 물러났다.

魏略曰:初,林少與司馬京兆善。太傅每見林,輒欲跪。林止之曰:「公尊貴矣,止也!」及司徒缺,太傅有意欲以林補之。案魏略此語,與本傳反。臣松之以為林之為人,不畏權貴者也。論其然否,謂本傳為是。

당시 대신들 중에는 상림의 절개가 높고 맑아 그로 하여금 삼공(公輔)의 자리에 이르게 하여 보좌하도록 했으나, 상림은 마침내 병이 심하다고 일컬었다.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제수되었으며, 나이 83세에 세상을 떠나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추증되었고, 장례는 공(公)의 예에 따라서 했으며, 시호를 정후(貞侯)라고 했다. 아들 상시가 뒤를 이어 태산태수(泰山太守)가 되었지만, 법을 범하여 주살(誅)되었다. 상시의 동생 상정(靜)이 봉호(封)를 계승하였다.

案晉書,諸葛誕反,大將軍東征,旹坐稱疾,為司馬文王所法。《위략》에 상림 및 길무(吉茂), 목병(沐並), 시묘(時苗) 네 사람으로 <청개전淸介傳>(성품은 맑으나 정치에 참여한 사람)을 만들었다.

길무吉茂의 자는 숙창叔暢으로 풍익馮翊 지양池陽 사람이며 대대로 저성著姓이었다. 책을 좋아하여 질 나쁜 의식衣食*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나, 사물의 이치를 알지 못함은 부끄러워하였다.

건안建安 초初, 관중關中이 비로소 평정되자, 길무가 부풍扶風 소칙蘇則과 함께 무공武功 남산南山에 들어가 여러 해 동안 정사精思*하며 숨어 지냈다. 주州에서 길무의 재능으로 천거되어, 임분臨汾의 현령으로 제배除拜되었고, 관직에 있으면서 청정清靜하였기에, 관리들과 백성들이 차마 기만하지 못하였다. 전임하여 무덕후武德侯 서자庶子가 되었다.


* 惡衣惡食 - 논어 이인편에서 나오는 말로, 무릇 士란 질 나쁜 옷이나 음식을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공자가 언급함.
* 精思 - 직역하면 사려함을 정려하다 정도가 될텐데, 너무 추상적이라 일단 말뭉치를 살렸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의미로는 플라톤의 Idea와 흡사할 겁니다. 생각을 통해 이상적인 지혜를 탐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二十二 年,坐其宗人吉本等起事被收。先是科禁內學及兵書,而茂皆有,匿不送官。及其被收,不知當坐本等,顧謂其左右曰:「我坐書也。」會鍾相國證茂、本服第已 絕,故得不坐。後以茂為武陵太守,不之官。轉酇相,以國省,拜議郎。景初中病亡。自茂修行,從少至長,冬則被裘,夏則裋褐,行則步涉,食則茨藿,臣役妻 子,室如懸磬。其或饋遺,一不肯受。雖不以此高人,亦心疾不義而貴且富者。先時國家始制九品,各使諸郡選置中正,差敘自公卿以下,至于郎吏,功德材行所 任。茂同郡護羌校尉王琰,前數為郡守,不名為清白。而琰子嘉仕歷諸縣,亦復為通人。嘉時還為散騎郎,馮翊郡移嘉為中正。嘉敘茂雖在上第,而狀甚下,云: 「德優能少。」茂慍曰:「痛乎,我效汝父子冠幘劫人邪!」初,茂同產兄黃,以十二年中從公府掾為長陵令。是時科禁長吏擅去官,而黃聞司徒趙溫薨,自以為故 吏,違科奔喪,為司隸鍾繇所收,遂伏法。茂時為白衣,始有清名於三輔,以為兄坐追義而死,怨怒不肯哭。至歲終,繇舉茂。議者以為茂必不就,及舉既到而茂就 之,故時人或以茂為畏繇,或以茂為髦士也。沐並字德信,河閒人也。少孤苦,袁紹父子時,始為名吏。有志介,嘗過姊,姊為殺雞炊黍而不留也。然為人公果,不 畏彊禦,丞相召署軍謀掾。黃初中,為成皋令。校事劉肇出過縣,遣人呼縣吏,求索稿穀。是時蝗旱,官無有見。未辦之間,肇人從入並之閤下,呴呼罵吏。並怒, 因躧履提刀而出,多從吏卒,欲收肇。肇覺知驅走,具以狀聞。有詔:「肇為牧司爪牙吏,而並欲收縛,無所忌憚,自恃清名邪?」遂收欲殺之。(肇)髡決減死, 刑竟復吏,由是放散十餘年。至正始中,為三府長史。時吳使朱然、諸葛瑾攻圍樊城,遣船兵於峴山東斫材,牂牁人兵作食,有先熟者呼後熟者,言:「共食來。」 後熟者答言:「不也。」呼者曰:「汝欲作沐德信邪?」其名流布,播於異域如此。雖自華夏,不知者以為前世人也。為長史八年,晚出為濟陰太守,召還,拜議 郎。年六十餘,自慮身無常,豫作終制,戒其子以儉葬,曰:「告雲、儀等:夫禮者,生民之始教,而百世之中庸也。故力行者則為君子,不務者終為小人,然非聖 人莫能履其從容也。是以富貴者有驕奢之過,而貧賤者譏於固陋,於是養生送死,苟竊非禮。由斯觀之,陽虎璵璠,甚於暴骨,桓魋石槨,不如速朽。此言儒學撥亂 反正、鳴鼓矯俗之大義也,未是夫窮理盡性、陶冶變化之實論也。若能原始要終,以天地為一區,萬物為芻狗,該覽玄通,求形景之宗,同禍福之素,一死生之命, 吾有慕於道矣。夫道之為物,惟恍惟忽,壽為欺魄,夭為鳧沒,身淪有無,與神消息,含悅陰陽,甘夢太極。奚以棺槨為牢,衣裳為纏?屍繫地下,長幽桎梏,豈不 哀哉!昔莊周闊達,無所適莫;又楊王孫裸體,貴不久容耳。至夫末世,緣生怨死之徒,乃有含珠鱗柙,玉床象衽,殺人以狥;壙穴之內,錮以紵絮,藉以蜃炭,千 載僵燥,託類神仙。於是大教陵遲,競於厚葬,謂莊子為放蕩,以王孫為戮屍,豈復識古有衣薪之鬼,而野有狐狸之胔乎哉?吾以材質滓濁,汙於清流。昔忝國恩, 歷試宰守,所在無效,代匠傷指,狼跋首尾,無以雪恥。如不可求,從吾所好。今年過耳順,奄忽無常,苟得獲沒,即以吾身襲於王孫矣。上冀以贖巿朝之逋罪,下 以親道化之靈祖。顧爾幼昏,未知臧否,若將逐俗,抑廢吾志,私稱從令,未必為孝;而犯魏顆聽治之賢,爾為棄父之命,誰或矜之!使死而有知,吾將屍視。」至 嘉平中,病甚。臨困,又敕豫掘埳。戒氣絕,令二人舉屍即埳,絕哭泣之聲,止婦女之送,禁弔祭之賓,無設摶治粟米之奠。又戒後亡者不得入藏,不得封樹。妻子 皆遵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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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의 평: 상림(常林)이 삼사(三司)에 마음을 얽매이지 않고, 대부(大夫)의 위치로서 노령(老)을 이유로 물러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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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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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3
11:24:18
(*.52.89.87)
한문 밑에 주석추가했습니다. 상정 밑에 이 긴 주석이란, 뭔가 중요한 녀석일까요

코렐솔라

2013.08.22
14:21:48
(*.104.28.55)
사마휘님의 번역을 추가. 추가되는대로 업데이트해서 다 되면 따로 분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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