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화(廖化)의 자는 원검(元儉)이고 본명은 순(淳; 요순廖淳)으로 양양(襄陽) 사람이다. 전장군 관우의 주부(主簿)에 임명되었는데 관우가
패하자 오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선주(유비)에게 돌아가기 위해 거짓으로 죽은 체하자 당시 사람들이 이를 믿었다. 이에 노모를
모시고 밤낮으로 서쪽으로 달아났다. 때마침 선주가 동쪽을 치러 나섰다 자귀(秭歸)에서 서로 만났는데, 선주가 크게 기뻐하며 요화를
의도(宜都) 태수로 삼았다.
선주가 죽은 뒤 승상 참군이 되었고 그 뒤 독광무(督廣武)에 임명되었다. 점차 관직이 올라 우거기장군 가절, 영 병주자사에 이르고
중향후(中鄕侯)에 봉해졌다. 과단성있고 강직하다고 칭해져 관위(官位)가 장익(張翼)과 나란히 하고 종예보다 앞섰다. (1)
(1)
한진춘추[漢晉春秋]에 이르길 – 경요5년(262) 강유(姜維)가 군을 이끌고 적도(狄道)로 출병하자 요화가 말했다,
“ ‘전란이
끊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불태운다’고 하더니 백약(伯約-강유의 자)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지모가 적보다 뛰어나지 않고 역량도
적으면서 용병이 끊이지 않으니 어찌 스스로를 보존하리? [시경]에서 말하는 ‘不自我先, 不自我後’라는 것이 바로 지금의 일을
가리키는 것이로다”
함희 원년(264) 봄, 요화와 종예는 함께 낙양으로 옮겨졌는데 도중에 병들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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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사실 요화는 삼국지 열전의 정식표제인물은 아니고 일종의 더부살이하는 신세죠. 촉서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삼국지 권45 촉서15 <등장종양 전>(등지,장익,종예,양희) 중 <종예전>에 꼽사리 끼어있습니다.
근데 연의의 영향으로 종예보다는 요화가 훨씬 유명하죠. 그래서 따로 올렸습니다만 올리고보니 분량이 너무 미미하네요.-_-
그래서 잡설을 좀 덧붙이자면,,
위에 올린 내용에서도 확인되듯이, 요화가 황건적 출신이라는 구절은 사실 정사에 근거가 없습니다.여기 외에 [삼국지] 다른 부분에도
없구요. 아마 극적인 재미를 위해 연의에서 창작된 걸로 생각됩니다.(참고로 '주창'은 캐릭터 자체가 완전 창작입니다)
요화의 생년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근데 종예전에서 258년에 70세가 넘었다는 걸 보면, 요화가 죽은 264년에는 적어도 70대 후반..(그러니 대략 190년 조금 이전에 태어났겠지요)
황건적 출신이란게 만약 사실이라면 거의 90살에 육박하여 삼국지 최장수 무장으로 꼽히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것까지는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정사의 기록에 의거해 볼때도 적어도 70대 후반 정도로 장수하며 촉의 건국과 멸망을 경험한 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