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량(孫亮)은 자가 자명(子明)이고, 손권의 막내 아들이다.


손량이 가장 어렸기 때문에, 손권은 각별히 마음을 쏟았다. 손량의 누이 전공주는 일찍이 태자 손화와 그의 모친을 모함하였으므로, 심적으로 불안해 했다. 그래서 손권의 마음이 손량에게 기울어진 것에 대하여, 손량과 각별한 관계를 맺으려고 생각하고는 전상의 딸을 자주 칭찬하면서 손량을 위해 그녀를 맞아 들이도록 했다.

적오 13년(250) 손화가 페위되고, 손권은 마침내 손량을 태자로 세우고 전씨를 태자비로 삼았다.

태원 원년(251) 여름 제갈량의 모친 반씨가 황후로 세워졌다. 겨울에 손권이 질병으로 누워있게 되자, 대장군 제갈각을 불러 태자태부로 삼았으며, 회계태수 등윤을 태상으로 임명했다. 아울러 두 사람 모두 조서를 받아 태자를 보좌했다.

이듬해 4월 손권이 세상을 떠나자, 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였으며, 대사면을 실시하고 연호를 바꿨다. 이 해는, 위나라로 말하면 가평 4년이었다.

건흥 원년(252) 윤달, 제갈각을 황제의 태부로 임명하고, 등윤을 위장군에 임명하여 상서의 직무를 겸임하도록 했으며, 상대장군 여대를 대사마로 삼고, 관직에 있는 문무백관들 모두에게 작위를 승진시키고 상을 주었으며, 일반 관리들도 등급을 올려 주었다.

겨울 10월, 태부 제갈각은 군대를 인솔하여 조호를 방어했다. 동흥에 성을 쌓고, 장수 전단에게는 서쪽 성을 지키게 하고, 도위 유략에게는 동쪽 성을 지키게 했다.

12월 초하루, 태풍이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났다. 위나라는 장군 제갈탄과 호준등이 보병과 기병 7만 명으로 하여금, 동흥을 포위하도록 했으며, 장군 왕창에게 남군을 공격하도록 했고, 관구검에게는 무창으로 향하도록 했다. 19일, 제갈각이 대군을 이끌고 나가 적군을 맞았다. 23일, 대군은 동흥까지 이르러 위나라 군대와 교전하여, 크게 격파시켰고, 장군 한종과 환가등을 살해했다. 이 달, 뇌우가 계속되었다. 무창의 단문(궁궐 남쪽 정문)에 천재가 내렸다. 단문을 다시 수축했는데, 또 내전에 화재가 났다.


신 배송지裴松之가 상고하건대 : 손권孫權이 적오赤烏 10년, 조서로 무창궁武昌宮의 목재와 기와를 옮겨서, 건강궁建康宮을 보수하게 했으나, 이 때에 여전히 단문端門, 내전內殿이 있었습니다. 오록吳錄에서 이르길 : 제갈각諸葛恪이 천도할 뜻을 가져, 다시 무창궁을 일으켰다. 지금 화재가 난 곳은 제갈각이 새로 지은 곳입니다.


건흥 2년(253) 봄 정원 1일, 전씨를 황후로 세우고, 대사면을 실시하였다 5일, 왕창 등이 모두 후퇴했다. 2월, 군대가 동흥에서 돌아오자 작위와 상을 성대하게 해주었다.

3월, 제갈각이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를 정벌하러 갔다.

여름 4월, 신성을 포위했는데, 역병이 크게 유행하여, 병졸의 대다수가 죽었다.

가을 8월, 제갈각은 군대를 인솔하여, 돌아왔다.

겨울 10월, 조정에서 종묘에 제사지냈다. 무위장군 손준이 복병을 두어 전당에서 제갈각을 죽였다. 대사면을 실시했다. 손준을 승상으로 삼고, 부춘후로 봉했다.

11월, 큰 새 다섯 마리가, 춘신에 나타났으므로, 다음해부터 연호를 바꾸기로 했다.

오봉 원년(254) 여름, 오나라에 대홍수가 발생했다. 가을, 오후 손영이 손준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하였는데, 일이 발각되자 손영은 자살했다. 겨울 11월, 두수와 우수 사이에서 혜성이 나타났다. 


강표전江表傳에서 이르길 : 이 해에 교지交阯의 돌피가 벼로 변했다.

2년(255) 봄 정월, 위의 진동대장군 관구검, 전장군 문흠이 회남의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침입하였는데, 악가에서 오나라 군대와 싸웠다.

윤달 정월 9월 손준은 표기장군 여거, 좌장군 유찬과 군대를 이끌고 수춘을 습격하려고 했다. 군대가 동흥에 이르렀을 때, 문흠 등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일, 군대가 탁고까지 진군하자, 문흠이 손준에게 투항해 왔고, 회남의 잔여 세력 수만 명도 오나라로 달려왔다. 위나라의 제갈탄이 수춘으로 진입하자, 손준은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2월, 위나라 장군 조진과 고정에서 마주쳐 교전했는데, 조진이 크게 패했다. 유찬은 제갈탄의 다른 장수 장반에게 고파에서 패했다. 유찬과 장군 손릉, 장수 등이 모두 해를 입었다.

3월, 진남장군 주이에게, 안풍을 습격하도록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가을 7월, 장군 손의,장이,임순 등이 손준을 살해하려고 모의했지만, 발각되었다. 손의는 자살했고, 임순 등은 사형에 처해졌다. 양선의 이리산에 커다란 돌이 우뚝 서 있었다. 위위 풍조로 하여금 광릉에 성을 짓도록 하고, 장군 오양을 광릉태수로 제수했으며, 유락을 동해태수로 임명했다. 이 해, 큰 한재가 있었다.

12월, 태묘를 만들었다. 풍조를 감군사자, 독서주제군사로 임명했다. 백성들은 굶주렸고, 군사들은 원망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태평 원년 (256) 봄(주) 2월 초하루, 건업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주)오력(吳歷)에 이르길: 5월, 손권의 묘를 세우고 태조묘(太祖廟)라 불렀다.


손준은 정북대장군 문흠의 계책을 이용하여 위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8월, 먼저 문흠과 표기장군 여거, 거기장군 유찬, 진남장군 주이, 전장군 당자의 군대를 파견하여, 강도에서 회수와 사수로 들어가도록 했다.

9월 14일, 손준이 세상을 떠났다. 사촌 동생이며, 편장군인 손침이 시중,무위장군으로 임명되어, 조정 안팎의 모든 군사일을 겸임했고, 여거 등을 불러 돌아오도록 했다. 여거는 손침이 손준을 대신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화를 냈다.

16 일, 대사마 여대가 죽고, 19일 태백(금성)이 남두를 침범했다. 여거,문흠,당자 등은 표를 올려, 위장군 등윤을 승상으로 임명하도록 했지만, 손침이 듣지 않았다. 30일, 등윤을 대사마로 바꿔 임명하고, 여대를 대신하여 무창에 주둔하도록 했다. 여거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손침을 토벌하려고 했다. 손침은 사자를 파견하여 조서로써 문흠,당자 등에게 알려 여거를 체포하도록 했다.

겨울 10월 4일, 손헌과 정봉 시관 등을 파견하여, 수군을 이끌고 강도에서 여거를 맞아 공격하도록 했으며, 장군 유승을 보내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등윤을 공격하도록 했다.

등윤의 군대는 패하였으며, 그 일족을 살해되었다. 6일, 대사면을 실시하고, 연호를 바꿨다. 8일 여거를 신주에서 체포했다.

11월, 손침을 대장군,가절로 임명하고, 영녕후로 봉했다. 손헌은 장군 왕돈과 손침을 살해하려는 모의를 했지만, 일이 발각되었다. 손침은 왕돈을 죽였으며, 손헌에게는 자살하도록 했다.

12월, 오관중랑장 조현을 사자로 하여 오나라에 반란이 일어났음을 촉에 알리도록 했다.

태평 2년(257) 봄 2월 13일, 폭우가 쏟아지고 우레가 쳤다. 14일 전에는 눈이 내리고, 매우 추웠다. 장사군 동쪽을 상동군, 서쪽을 형양군, 회계 동쪽을 임해군, 예장 동쪽을 임천군이라고 했다.

여름 4월, 손량은 정전에 임했고 대사면을 실시하고 처음으로 정사를 직접 다스렸다. 손침이 표를 올리거나 상주한 것은 대부분 손량의 반대나 반론을 맡았다. 또 병사들의 자제들 가운데, 18세 이하 15세 이상에서 선발하여 3천명을 얻었으며, 대장들의 자제 중에서 나이가 어리고 용기가 있는 자들을 뽑아 장수로 삼았다. 손량이 말했다.

"내가 이 군대를 창설한 것은 그들과 함께 오랫동안 함께 있고자 함이요. "

이 군대는 매일 어원 안에서 훈련을 했다.


오력(吳歷)에서 이르길: 손량(孫亮)은 자주 중서성(中書)에 가서 손권(孫權)의 옛일을 보고 좌우의 시신(侍臣)들에게 묻길


"선제께서는 자주 특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장군이 묻는 일에 단지 내게 몇 자만 쓰게 하는데 그래도 좋소?"


손량이 후에 서원(西苑)이란 곳에서 날매실을 먹으려고 할 때 황문(黃門)에게 분부하여 궁중의 창고에 이르어 꿀로 절인 매실을 가져오게 했다. 꿀 안에 쥐똥이 있기에 장리(藏吏)를 불러 물으니 장리는 머리를 땅에 찧었다. 손량이 장리에게 묻길:


"황문관이 너에게 와서 꿀을 구하지 않았는가?"


장리가 답하길: 


"요구한 일이 있으나 실제로 감히 주지 아니하였습니다."


황문은 이에 불복하였고 시중(侍中) 조현(刁玄)과 장빈(張邠)이 일깨우길


"황문과 장리의 말이 일치하지 않으니 아예 옥졸에게 넘겨 처리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손량이 답하길


"이는 알기 쉬운 일이다."


쥐똥을 쪼개라 명하니 똥안이 말라있었다. 손량이 크게 웃으며 조현, 장분에게 말하길:


"만약 쥐똥이 먼저 꿀 속에 있었다면 안팎이 마땅히 모두 젖어있어야 할 것인데, 지금 보면 바깥만 젖었고 안은 말랐으니 필시 황문이 한 짓이다."


황문은 수복(首服)하였고 좌우사람들이 놀라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강표전(江表傳)에서 이르길: 손량이 황문을 시켜 은사발을 덮개와 함께 가지고 나아가 장리에게 가서 교주(交州)에서 진상한 사탕수수(甘蔗) 엿을 취해오게 했다. 황문은 옛날에 장리에게 원한이 있었으므로 이에 쥐똥을 엿 가운데에 던지고는 장리가 조심스럽지 못했다고 아뢰었다. 손량이 장리를 불러 엿그릇을 가져오게 한 뒤에 묻길


"이 그릇은 덮개가 있고 또 다시 덮는 것이 따로 있으니 이렇게 될 이유가 없다. 황문이 너에게 한스럽게 여길 행동을 한적이 있소?"


장리가 머리를 땅에 찧으며 말하길:


"일찍이 시중드는 아무개가 궁중(宮中)의 완석(莞席)을 구했는데 궁중의 자리는 일정한 수량이 있기에 감히 주지 않았습니다."


손량이 말하길


"필시 그것 때문이다."


다시 황문에게 묻자 일일이 수복하였다. 곧 눈 앞에서 머리를 밀고(髡)  채찍질(鞭)하고 마을 바깥으로 내쫓았다.


신 송지가 보건데. 쥐똥이 갓 누운 것이라면 역시 겉과 속이 모두 젖어있을 것입니다. 황문이 갓 누운 것을 취했다면 즉 그 거짓말을 깨닫을 수 없을 것이나 우연히 마른 똥을 취한 연고로 손량의 지혜를 이룰 수 있던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히려 이를 설명하는 오력의 말은 강표전의 본질과 같지 않습니다.

5월, 위나라 정독대장군 제갈탄이 회남의 군대를 인솔하여 수춘성을 지키며, 장군 주성을 보내 신하라고 칭하며 상소를 올렸고, 또 아들 제갈정, 장사 오강등 많은 군문의 자제들을 인질로 보냈다.

6월, 문흠,당자,전단 등 보병과 기병 3만 명으로 제갈탄을 구하도록 했다. 주이는 호림으로부터 병력을 인솔하여, 하구를 습격했다. 하구의 독 손일은 위나라로 도주했다.

가을 7월 손침은 병사들을 인솔하여 수춘을 구하려고 하면서 확리에 주둔했고, 주이는 하구에 도착했다. 손침은 주이를 전부독으로 임명하고, 정봉 등과 함께 무장한 병사 5만명을 이끌고 가서 포위를 풀도록 했다.

8월 회계 남쪽에서 반란을 일으켜 도위를 죽였다. 파양,신도의 백성들도 반란을 일으켰다. 정위 정밀, 보병교위 정주, 장군 종리목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들을 토벌했다. 주이는 군사들의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인솔하여 돌아왔는데, 손침은 매우 노여워하며, 9월 초하루에 확리에서 주이를 죽였다. 3일, 손침은 확리에서 건업으로 돌아왔다. 16일, 대사면을 실시했다. 11월, 전서의 아들 전위,전의는 어머니를 모시고 위나롤 달아났다.

12월, 전단과 전역등이 수춘성에서 사마문왕에게 달려왔다.

3년(258) 봄 정월, 제갈탄이 문흠을 죽였다.

3월, 사마문왕이 수춘을 공략했다. 제갈탄은 그의 측근들과 전사했고, 장수나 군리 이하는 모두 항복했다.

가을 7월, 원래의 제앙 손분을 장안후로 봉했다. 주와 군에 조서를 내려, 궁전 건축용 목재를 벌채하도록 했다. 8월부터 하늘이 어두우면서도 비가 내리지 않은 지 40여일이나 되었다. 손량은 손침의 전횡과 방자함을 보고 태상 전상, 장군 유승과 함께 손침을 주살하려고 모의했다.

9월 26일, 손침은 병사를 이용하여 전상을 체포하고, 동생 손은을 보내 창용문 밖에서 유승을 공격하여 죽이도록 했으며, 대신들은 궁문으로 불러 모이게 하고, 손량을 페출시켜 회계왕으로 삼았는데, 당시 나이가 1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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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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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6
21:15:22
(*.52.89.88)
배주 추가

코렐솔라

2013.07.25
11:26:04
(*.0.203.141)
망할 이건 또 이름 바뀌네-_-;;; 오력의 번역 안 된 것 걍 제가 대충 때웁니다.

코렐솔라

2013.12.04
16:30:29
(*.0.203.43)
제갈각이 새로 지었다는 무창궁은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0842741

254 돌피는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7357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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