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섭(士燮)은 자가 위언(威彦)이고 창오군 광신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본래 노나라 문양 사람인데, 왕망의 난에 이르러, 화를 피해 교주(交州)로 왔다. 그로부터 6대가 사섭의 부친 사사(士賜)인데, 그는 환제 때 일남(日南)태수를 지냈다. 사섭은 어린 시절 경사로 나와 유학하여 영천의 유자기(劉子奇)에게서 사사를 받아 《좌씨춘추》를 연구했다. 사섭은 효렴으로 천거되고 상서랑으로 임명되었는데, 공적인 업무로 인해 관직에서 쫓겨났다. 부친 사사의 상사가 끝난 후, 사섭은 무재로 천거되고 무현의 령으로 임명되었으며, 교지(交沚)태수로 승진했다.

동생 사일(士壹)은 처음에 군독우(郡督郵)였다. 자사 정궁(丁宮)이 부름을 받아 경도로 돌아갈 때, 사일이 매우 은근하고도 공경스럽게 모셨으므로 정궁은 이에 감동하였으며, 이별할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삼공의 직책을 맡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대를 부를 것이다."

후에 정궁은 사도로 임명되자 사일을 불렀다. 사일이 경도에 도착할 즈음, 정궁은 벌써 파직되었고, 황완(黃琬)이 대신 사도로 임명되어 있었는데, 사일을 매우 예우했다. 동탁(董卓)이 난리를 일으켰을 때, 사일은 고향으로 도망쳐 돌아왔다.


오서에서 이르길 : 황완과 동탁이 서로 훼방했는데, 사일은 황완에게 마음을 다하여, 대단한 명성을 가지게 됐다. 동탁이 그를 싫어해, 이에 교教를 쓰길 : “사도연司徒掾 사일은, 임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 해가 지나도 승진하지 못했다. 때마침 동탁이 조정에 들어와, 사일은 이에 피해 돌아갔다.

교주자사 주부(朱符)가 이민족에게 살해되자, 주와 군은 소란스러웠다. 사섭은 곧 표를 올려 사일을 합포태수로 임명하고, 서문현의 현령으로 있는 둘째 동생 사유(士䵋)에게는 구진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사유의 동생 사무()에게는 남해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사섭은 마음이 관대하고 온후하고 겸손하고 허심하며, 선비들을 예우했으므로 중원의 사인들로 이전에 그에게 의탁해 난을 피한자만 해도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는 《춘추》연구에 깊이 빠져 그것의 주석을 만들엇다. 진국(陳國)의 원휘(袁徽)는 상서령 순욱(荀彧)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 교지의 사부군(사섭)은 학문이 뛰어나고 넓으며, 또한 정치적인 업무에도 정통하여 아주 혼란스런 가운데 있으면서도 한 군을 보전하였으며, 20여 년간 그의 영내에는 일이 없었고 백성들은 가업을 잃지 않았으며, 타향을 떠도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비록 두융이 하서를 보존했을지라도, 어찌 그를 넘겠습니까? 공무는 한가하여 경전을 학습하고 연구하는데, 《춘추좌씨전》에 대해서는 특히 정미하게 연구했습니다. 나는 여러 차례 그에게 《좌전》가운데 의심나는 점을 자문했는데, 그의 설명에는 모두 근본이 있었으며, 뜻이 매우 정밀했습니다. 또한《고문상서》와 《금문상서》에도 매우 정통하여 그것의 근본적인 의미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듣건대, 경사에는 고문과 금문의 학설 사이에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좌씨전》과 《상서》에 관한 사섭의 의론 중에 특히 뛰어난 부분을 몇 개 바쳐려고 합니다. ---

사섭이 사람들에게 칭송된 것은 이와 같았다.

사섭의 형제는 나란히 군의 태수가 되었고 전체 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은 매우 먼곳이었기 때문에 위세와 존엄에 있어서 뛰어넘을 자가 없었다. 외출하거나 돌아올 때는 종이나 경쇠를 울렸으며 의장을 전부 갖추고 박대가 따랐으며 거마와 기마가 길에 가득하고, 항상 수십 명의 호인이 길 양쪽에서 향을 태웠다. 처첩들은 치병거(덮개가 있는 부인용 수레)를 탔고, 자제들은 보병과 기병이 따랐으니, 한 시대의 귀중함을 받고 이민족들을 복종시킨 점은 위타도 넘을 수 없었다.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사섭이 죽어 3일이 지났을 때, 신선인 동봉(董奉)이 환약(丸藥)을 가져와 물에 탄 뒤에, 사섭의 머리를 끌어안고, 흔들고 때리며, 마시게 했더니, 즉시 눈을 뜨고 손을 움직였고, 얼굴 색이 점점 살았고, 반나절이 지나자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4일이 지나자 말을 할 수 있었고, 곧 평상시 상태로 되돌아왔다. 동봉은 자가 창이(昌異)이고, 후관(侯官)인 사람이다.


사무는 일찍 병사했다.

주부가 죽은 후, 한의 조정에서는 장진(張津)을 파견하여 교주자사로 임명했는데, 장진은 이후에 또 그의 부장 구경(區景)에게 살해되었다. 형주목 유표(劉表)는 영릉의 뇌공(賴恭)을 보내 장진을 대신하도록 했다. 이때 창오태수 사황(史璜)이 죽었으므로, 유표는 또 오거(吳巨)를 보내 그를 대신하여 뇌공과 함께 가도록 했다. 한나라의 조정에서는 장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섭에게 황제의 봉인이 찍힌 조서를 내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주는 단절된 지역으로 남쪽으로는 강과 바다를 대하고 있고, 황상의 은혜는 전달될 수 없고 신하의 충의가 막히게 되었다. 역적 유표가 또 뇌공을 파견하여 남쪽 땅을 엿보고 있음을 안다. 지금 사섭을 수남중랑장으로 임명하니 일곱 개 군(남해, 창오, 울림, 합포, 교지, 구진, 일남)을 다스리도록 하고, 교지태수는 이전과 같이 겸하도록 하라."


후에 사섭은 관리 장민을 파견하여 공납품을 바치고 경도로 가서 알현했다. 이 당시 천하는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길이 끊어졌지만, 사섭이 공납품 바치는 일을 폐하지 않았으므로 특별히 또 조서를 내려 안원장군을 제수하고 용도정후로 봉했다.

후에 오거는 뇌공과 화합하지 못하고 병사들을 들어 뇌공을 쫓았다. 뇌공은 영릉으로 도망쳐 돌아왔다.

건안 15년(210), 손권(孫權)은 보즐(步騭)을 파견하여 교주자사로 임명했다. 보즐이 도착하자, 사섭이 형제들을 데리고 받들어 모셨다. 그리나 오거가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보즐은 그의 목을 베었다. 손권은 사섭에게 좌장군의 지위를 더했다.

건안 말년, 사섭이 아들 사흠(士廞)을 인질로 보냈다. 손권을 사흠을 무창태수로 임명하고 남쪽에 있는 사섭과 사일의 아들들을 모두 중랑장으로 임명했다. 사섭은 또 익주의 호족 옹개(雍闿) 등을 회유하여 익주군의 백성들을 이끌고 멀리 동쪽으로 의지하도록 했다. 손권은 이 일로 해서 사섭을 더욱 칭찬하고 위장군으로 승진시켰으며, 용편후로 봉했고, 동생 사일을 편장군ㆍ도향후로 삼았다. 사섭은 사자를 손권에게 보내 알현할 때마다 각종 향료와 촘촘한 갈포 수천 개를 보냈으며, 명주, 대패, 유리, 비취, 대모, 무소의 뿔, 상아 등의 보물, 기이한 물건이나 진기한 과일, 파초, 야자, 용의 눈 등 이러한 것이 한 해라도 손권에게 이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일은 계절마다 총 수백 필의 말을 바쳤다. 손권은 항상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두터운 총애와 상을 내림으로써 그들에게 보답하고 위로했다. 사섭은 군에서 40여년 있다가 황무5년(226), 90여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손권은 교지가 너무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합포 북쪽을 나누어 광주를 만들고 여대(呂岱)를 그곳의 자사로 임명하였으며 교지 남쪽을 나누어 교주를 만들고 대량(戴良)을 그곳의 자사로 임명하였다. 또 진시(陳時)를 파견하여 사섭을 대신해서 교지태수로 임명했다. 여대는 남해에서 머무르고, 대량과 진시는 함께 앞으로 나가 합포에 도착했다. 사섭의 아들 사휘(士徽)는 스스로 교지태수를 맡아 수하의 부족 병사들을 움직여 대량을 저지했다. 대량은 합포에 머물렀다. 교지의 환린(桓鄰)은 사섭이 천거한 관리인데, 사휘에게 대량을 맞이하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간언했다.

사휘는 노여워하며 환린을 때려 죽였다. 환린의 형인 환치(桓治)의 아들 환발(桓發) 또한 수하의 부족 병사들을 규합하여 사휘를 공격했다. 사휘는 성문을 굳게 닫고 지켰다. 환치 등은 그를 공격한 지 몇 달이 되었지만 함락시킬 수 없자, 화친을 맺고 각각 파병했던 병사를 거둬 돌아갔다. 그리고 여대는 사휘를 죽이라는 조서를 받고 광주에서부터 병사들을 인솔하여 밤낮으로 달려들어와서 합포를 지나 대량과 함께 전진했다. 사일의 아들로 중랑장이었던 사광(士匡)은 여대와 오랜 사귐에 있었으므로 여대는 사광을 사우종사로 임명하였다.

이때 여대는 먼저 교지로 편지를 보내 이해관계를 깨우쳐주고, 또 사광을 보내 사휘를 만나서 죄를 시인하도록 설득하게 하였으며, 비록 군수의 자리는 잃게 될지라도 다른 걱정은 없음을 보증한다고 했다. 여대는 사광의 뒤를 따라 이르렀고, 사휘의 형 사지(士祗), 동생 사간(士幹), 사송(士頌) 등 여섯 명이 사죄의 표시로 웃옷을 벗고 몸을 드러내며 받들어 영접했다. 여대는 사절하고 그들에게 다시 옷을 입도록 하고 앞으로 나가 군부에까지 이르렀다.

다음 날 아침, 장막을 설치하고 사휘 형제들에게 순서대로 들어오도록 청했다. 장막에는 빈객으로 가득 찼다. 여대는 일어나 부절을 잡고 조서를 읽어가면서 사휘의 죄과를 하나하나 진술했다. 그의 주위에 있던 자들이 그의 말에 응하여 사휘 등을 포박하여 끌고나와 즉시 모두 사형에 처하였으며, 머리를 무창으로 전달했다. 사일ㆍ사유ㆍ사광은 후에 출두했는데, 손권은 그들의 죄를 용서했다. 그들과 사섭의 인질이 된 아들 사흠은 모두 면직되어 평민이 되었다. 몇 년 후, 사일과 사유는 법을 범해 주살되었다. 사흠은 병사했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사흠의 처 혼자 살았다. 손권은 조서를 내려 그녀에게 매달 관리에게 봉급으로 주는 쌀을 공급하도록 하고, 40만 전을 내렸다.


손성孫盛이 이르길 : 대저 먼 곳의 백성을 화목하게 하여 따르게 하며 능이能迩함에는, 신용보다 훌륭한 것이 없고, 높은 자리에 안전하게 머물며 공업을 건립함에는, 정의보다 훌륭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제환齊桓공이 기반을 창립함은, 가柯의 회맹에서 덕을 드러냄에 있었고, 진문晉文공이 패자로 시작됨은, 원原을 정벌할 때에 의를 드러냄에 있다. 그러므로 여러 번 회맹해 바로잡게 할 수 있어, 대대로 하맹夏盟을 주관하며, 오랜 시간 아름다운 명성이 있었고, 역대제왕에게 모범을 남겼다. 여대는 사광을 사우로 삼아, 신용있는 맹세를 알리게 하여, 사휘 형제는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 정성을 다해 대하며 목숨을 맡겼는데도, 여대는 그들을 멸함으로써, 공명과 이득을 원했으니, 군자는 이로써 손권은 먼 곳까지 경략할 수 없고, 여씨의 복은 장구하지 못할 것임을 알게 됐다.


* 평하여 말한다. ― 유요는 명예를 아끼고 품행을 닦았으며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하기를 좋아하였는데, 혼란스런 시대에 이르러서 만리의 땅을 제어한 것은 그의 훌륭한 점이 아니다. 태사자는 신의가 있고 의기가 열렬하며 옛 사람의 정의가 있었다. 사섭은 남월을 지키며 마음대로 하고 생을 마쳤지만, 그 아들에 이르러서는 신중하지 못하여 스스로 화를 초래했다. 아마도 평범한 재능으로 부귀함을 즐기고 험한 지세를 부지한 것이 그로 하여금 이 결과가 되게 했을 것이다.

분류 :
오서
조회 수 :
6637
등록일 :
2013.04.30
09:57:03 (*.52.8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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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4.30
11:56:07
(*.52.89.88)

사섭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대월사기전서의 사왕을 봐주시고 사휘의 토벌은 대월사기전서나 여대전 쪽을 봐주세요.

코렐솔라

2013.05.02
11:32:16
(*.0.203.45)

진수의 평 추가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6.28
13:27:24
(*.104.28.55)
번역 안 된 손성의 평 추가했습니다.

코렐솔라

2013.07.16
17:33:25
(*.0.203.140)
배주 추가 완료

14/02/22 오서의 번역과 손성의 평은 처사군님 자료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kyspert/110185733077

dragonrz

2016.06.22
09:01:05
(*.226.145.238)
權以交阯縣遠,乃分合浦以北為廣州,呂岱為刺史;交阯以南為交州,戴良為刺史。又遣陳時代燮為交阯太守。
위 원문에 기초하여 본전의 번역중 교지 이남을 교주로 만들고 대량을 자사로 삼은 부분을 보충합니다.

코렐솔라

2016.08.02
15:22:29
(*.46.174.164)
사위->사유
손일->사일

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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