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처사군님의 블로그 1,2,3,4,5,6,7


육기陸機가 《변망론辨亡論》을 지어 오나라가 망한 까닭을 지었는데, 그 <상편上篇>에 말한다:


"과거 한씨漢氏가 통치능력을 잃어, 간신이 국가의 대권을 탈취해, 재앙이 경기京畿에서 비롯됐고, 해악이 천하에 두루 퍼져, 조정의 다스림은 부서지고 무너졌고, 왕실은 마침내 쇠해졌다. 이에 군웅이 벌떼처럼 일어났고, 의병은 사방에서 모였다. 오무열황제吳武烈皇帝가 소국에서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퍼, 형남荊南에서 위풍과 기세가 맹렬했고, 임기응변의 모략이 많고 왕성했으며, 충성스럽고 용맹함이 세상에 드러나, 위세는 이예夷羿가 흔들릴 정도였고, 교전하면 추로醜虜가 귀가 베여져, 마침내 종묘를 깨끗하게 하고, 황조皇祖에 제사를 지냈다. 당시에 구름이 일듯이 성하게 일어난 장수들이 주州를 가졌고,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는 듯한 군은 읍邑을 점거했고, 맹수가 포효하는 듯한 무리는 바람같이 말을 몰았고, 곰 같은 무리는 안개 같이 모였다. 비록 군이 의義로써 움직여, 동맹하고 서로 힘을 모았으나, 모두 화심禍心을 감추고, 군에 의거해 난을 틈타 이로움을 취해, 혹 군대는 모략과 기율이 없어서, 위세를 잃고 도적이 됐다. 충심으로 계획하며 용맹스럽고 위세가 있는 절조를 가짐에 있어, 이와 같이 두드러짐이 없었다."


무열武烈제가 죽고 나서, 장사환왕長沙桓王은 한 시대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던 이로, 약관에 재지와 풍채가 뛰어나고 훌륭해, 선조의 옛 신하들을 불러 모아 받아들이고, 그들과 더불어 대업을 계승했다. 신神이 보낸 군사로 동쪽으로 말을 달려, 힘써 적은 무리로 많은 이들을 치니, 공격하면 방비가 철저한 성의 장수가 없었고, 싸우면 교전하는 노虜가 없었다. 반역자를 주살하고 위로하며 복종시켜, 강외江外는 평정됐고, 법을 갖추고 군을 손질하니, 위엄과 덕망이 성대해졌다. 이름난 현사를 존경하고 예우하니, 장공張公이 그 중에서도 영웅이었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이를 사귀며 거느리니, 주유周瑜가 그 중에서도 준걸이었다. 저 두 군자는 모두 활달하고 민첩하면서도 기이한 점이 많았고, 모범적이고 정통하면서도 슬기롭고 지혜로웠기에, 포부가 같은 이들은 비슷한 점 때문에 귀부했고, 서로 잘 맞는 이들은 기세 때문에 모여, 강동은 많은 인재들이 뒤덮었다. 장차 중원으로 북벌해, 법률과 기율을 위반한 이를 주살하고, 황여皇輿를 평탄한 곳으로 돌려서, 황제의 자리를 궁중으로 돌아오게 해,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여, 국운을 맑게 하고 지난날의 제도와 문물로 돌아가게 하려고 했다. 융거戎車가 이르고 나서, 많은 악한 이들이 무섭고 두려워서 바로 보지 못했으나, 대업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도중에 죽었다. 


우리 대황제大皇帝 대에서 다스림이 이루어졌으니, 기묘한 모책으로 고결한 본보기를 뒤따라, 사리에 밝은 생각으로 원대한 책략을 이루고, 정사를 처리하며 옛 전례에서 물었고, 법령을 반포하며 유풍遺風을 헤아렸고, 여기다 말과 행실이 도탑고 공손함을 더했고, 절약하고 검소함을 폈고, 재주와 학식이 뛰어난 이를 물어서 찾으며, 계획함이 능숙하고 훌륭하게 결단해, 속백束帛을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는 곳까지 가지런히 베풀었고, 현인을 초빙하는 명령이 거리에서 오고 갔다. 그러므로 재지가 뛰어난 선비는 명성을 따라 호응해 귀순했고, 절의가 있는 선비는 빛을 바라보고 그림자처럼 달려 왔고, 기이한 이들이 한 곳으로 많이 몰려들었고, 용사는 수풀 같이 모였다. 이에 장공張公은 사부가 됐고, 주유, 육공 陸公, 노숙, 여몽의 무리는, 들어가선 심복이 됐고, 나와선 팔과 다리가 됐고, 감녕, 능통, 정보, 하제, 주환, 주연의 무리는 그들의 맹위를 떨쳤고, 한당, 반장, 황개, 장흠, 주태의 무리는 그들의 힘을 널리 폈고, 풍아風雅라면 제갈근, 장승 張承, 보즐이 명성으로 국가를 위해 영예를 떨쳤고, 정사라면 고옹, 반준, 여범, 여대가 신임돼 직책을 맡았고, 뛰어나게 훌륭한 이로는 우번, 육적, 장돈張惇이 숭고한 절조로 정사를 행했고, 사신으로 명을 받드는 것이라면 조자趙咨, 심형沈珩이 민달敏達함으로 명예를 널리 퍼뜨렸고, 술수術數라면 오범, 조달趙達이 귀신의 화복으로 덕을 도왔고, 동습, 진무는 목숨을 바쳐 주군을 지켰고, 낙통, 유기劉基는 힘써 간하여 허물을 고쳤다. 도모하면 계략에 있어 미비한 점이 없었고, 거행하면 실책이 없었다. 그러므로 마침내 산천에 할거하고, 형荊, 오吳를 제압해서, 천하와 더불어 우열과 경중을 다투었다. 위씨魏氏가 일찍이 전승한 위세에 기대, 백만 군을 거느리고, 등새鄧塞의 배를 띄우며, 한음漢陰의 무리를 사용해, 우즙羽楫은 만 척으로, 막힘 없이 사방으로 마구 치달으며 물의 흐름을 따랐고, 날랜 군대는 천 여旅로, 원습原隰을 위풍당당하게 걸었고, 모신謨臣은 건물을 가득 채울 정도였고, 무장은 많아, 재빠르게 강가를 삼키려는 뜻과, 우주를 통일하려는 기세를 가졌었다. 그러나 주유는 우리의 일부 군을 몰아서, 적벽에서 그들을 물리쳐, 기를 잃어버리고 어지러운 흔적을 남기며, 겨우 모면해, 자취를 거두고는 멀리 달아났다. 한왕漢王 또한 제왕의 명호에 기대, 파巴, 한漢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말을 달리며 다투어, 천 리에 보루를 세우며, 관우의 패배를 복수하는데 뜻을 두고, 상서湘西의 땅을 거두길 도모했다. 그러나 우리 육공께서 또한 그들을 서릉西陵에서 꺾어, 군을 넘어뜨리고 패배시켜, 곤란했으나 후에 성공하여, 영안에서 죽게 했다. 이어서 유수의 침범 때는, 하천에 임해 예봉을 꺾었고, 봉롱蓬蘢의 전투에선, 수레 한 량도 돌아가지 못했다. 이로 인해 두 나라의 장수들은, 기세를 잃고 예봉이 꺾여, 형세는 오그라들고 재력이 결핍됐으나, 오는 빙그레 웃는 모양으로 앉아서 그들의 폐해를 이용했기에, 위인들은 화해하길 청했고, 한씨는 화의를 구해, 마침내 천자란 명호로 오르며, 정족과 같이 나란히 우뚝 솟았다. 서쪽으로는 용庸, 익益의 들을 경계로 삼았고, 북으로는 회淮, 한漢의 물가를 분할했고, 동으로는 백월百越의 땅을 감쌌고, 남으로는 만족들의 역외域外를 포함했다. 이에 팔대八代의 예를 연구하고, 삼왕三王의 예악을 찾아내, 상제上帝에게 고류告類하고, 군후群后에게 공읍拱揖했다. 무신과 굳센 병졸들은, 강을 돌며 지켰고, 장극長棘과 예리한 창은, 회오리바람을 바라보며 치켜들었다. 백관들이 위에서는 힘써 간했고, 백성들이 아래에서는 산업을 확충하고 발전시키고, 수예殊裔를 교화시키며 도와, 풍속과 교화는 먼 곳까지 퍼졌다. 일개 행인으로 하여금, 외국을 위문하게 하니, 큰 코끼리와 뛰어난 준마는, 바깥에서 길들였고, 명주와 진귀한 보물은, 내부에서 빛났고, 진귀한 보물은 전철을 밟아 이르렀고, 기이한 노리개는 명성에 응해 다다랐고, 유헌輶軒은 남쪽 변방으로 달렸고, 충팽衝輣은 북쪽 들에서 쉬어, 백성은 전쟁의 재앙에서 벗어났고, 군마는 새벽에 수레를 끌 염려가 없게 되며, 제업帝業은 확고해졌다. 


대황大皇제가 죽고 나서, 나이 어린 임금이 조정에 다다르니, 간사한 이가 사나운 짓을 제멋대로 함부로 했다. 경황景皇제가 마침내 일어나, 전대에 남긴 법규를 경건하게 닦아, 정치에 매우 큰 허물이 없어, 수문守文하는 좋은 임금이 됐다. 떨어져 귀명歸命후가 됐을 때의 초기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법전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고로故老도 여전히 존재했다. 대사마大司馬 육공陸公은 문무의 재주로 조정을 흥성하게 했고, 좌승상左丞相 육개陸凱는 꺼리지 않고 바른 말을 하며 전력으로 직간했고, 시적施績, 범신范慎은 위엄 있고 태도가 무겁다고 드러났고, 정봉 丁奉, 종리비鍾離斐는 용맹하고 의지가 굳다고 칭해졌고, 맹종 孟宗, 정고丁固의 무리는 공경이 됐고, 누현 樓玄, 하소賀邵의 무리는 가장 기밀한 일을 주관해, 원수元首가 비록 병들어도, 다리와 팔 같은 중요한 신하는 여전히 훌륭했다. 곧 말기에 이르러, 공들이 이미 죽으니, 연후에 백성들에겐 와해되는 근심이 생겼고, 황가에는 토붕土崩하는 발단이 생겨, 역수와 천명은 변화에 순응해 쇠미해져서, 왕사王師가 운명을 따라 일어나니, 병졸은 진에서 흩어졌고, 무리는 읍에서 달아나, 성과 해자에는 가려서 막는 견고함이 없었고, 산천에는 도랑이나 언덕 같은 형세가 없어서, 공수工輸의 운제雲梯 같은 기구, 지백智伯이 세차게 흔드는 재해, 초자楚子가 구덩이를 다졌던 포위, 연인燕人이 제濟의 서쪽에서 가졌던 군대도 없이, 진을 친지 12일이 못돼 사직은 멸망했다. 비록 충신이 홀로 분개하고, 열사가 절개를 위해 죽어도, 장차 어찌 구했으랴!  

 

대저 조曹씨, 유劉씨의 장수들이 온 세상에서 선택된 바가 아니었고, 지난번의 군이 이전같이 많지도 않았고, 공격하고 지키는 방법 또한 정해진 방법이었고, 험조險阻의 이로움도 갑자기 바뀌지 않았으나, 성패는 변하여, 고금의 결과가 같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피차의 변화가 달랐고, 위임한 이의 재주가 달랐던 것이다.


그 하편에 말한다.


과거 삼방이 왕노릇하며, 위인魏人은 중원을 점거했고, 한씨漢氏는 민岷, 익益을 가졌고, 오吳는 형荊, 양揚을 제압하고 교交, 광廣을 덮어 가졌다. 조씨曹氏가 비록 중원에서 공을 이루나, 포학함 또한 심해, 사람들이 원망했다. 유옹劉翁이 험준함을 이용해 재지가 있는 것처럼 꾸몄으나, 공이 이미 적었고, 그 풍속은 천했다. 대저 오는, 환왕桓王이 무력으로 터를 잡았고, 태조太祖가 덕으로 이루며, 총명하고 사리에 밝으며 통달했고, 도량이 크고 넓었다. 현인을 구하며 재주가 미치지 못하는 듯이 낮췄고, 타인을 돌봄은 자식을 대하는 것 같았고, 선비를 대접하며 크고 훌륭한 덕의 관용을 다했고, 어진 이를 가까이하며 참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사랑을 다했다. 군대 안에서 여몽을 발탁했고, 구금된 이 중에서 반준을 썼다. 진심으로 대우하며 선비를 믿어, 타인이 자신을 속임을 우려하지 않았고, 재능을 고려해 명예와 지위를 주며, 권력이 자신을 핍박함을 근심하지 않았다. 채찍을 들고 몸을 굽히며, 육공陸公의 권위를 더해줬고, 무위武衞를 모두 맡겨, 주유의 군을 이루게 했다. 궁실은 초라하고 음식은 박했으나, 공신의 상은 두텁게 줬고, 흉금을 활짝 열고 겸허하게, 모사의 지혜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노숙은 한번 보고 자신을 의탁했고, 사섭은 위태로움을 무릎쓰고 사력을 다해 일했다. 장공張公의 덕을 존경해, 사냥의 즐거움을 줄였고, 제갈諸葛씨의 말을 존경해, 정욕의 즐거움을 포기했고, 육공의 권고에 감동해, 형법의 번잡함을 제거했고, 유기劉基의 의견을 기이하게 여겨, 삼작三爵 후의 맹세를 만들었고, 호흡을 억누르며 삼가고 조심해서, 자명子明의 질병을 살폈고, 자애를 나눠줘 손해를 달게 여기며, 능통의 고아를 길렀고, 단壇에 오르며 격앙돼, 노자魯子의 공으로 돌렸고, 원망하는 말을 없애고 버리며, 자유子瑜의 절조를 믿었다. 이로써 충신들은 그들의 계책을 다투어 다 바쳤고, 지사들은 모두 있는 힘을 다할 수 있어서, 원대한 계략을 널리 꾀해도, 진실로 만족하지 못함이 구구區區했다. 그러므로 백관들은 마음에 들도록 힘써, 각종 정무는 손쓸 틈도 없었다. 애초에 건업으로 도읍하니, 신하들은 예의의 서열, 작위와 봉록의 등급을 갖추길 청했으나, 천자는 사양해 허락하지 않고 이르길 : “천하가 짐을 어떻게 여기겠는가!” 궁실과 여복輿服을, 대략 겸연쩍어했다. 중엽에 이르니, 천인天人의 직분이 이미 정해졌기에, 온갖 법률과 제도의 이지러짐은 대략 손질돼, 비록 너그롭고 후한 덕정으로 백성을 교화함과 아름다운 강상綱常이, 상대上代와는 나란히 할 수 없었으나, 다만 국가를 다스림은 갖추어져, 또한 정치하기에 충분했다. 땅은 둘레가 수만 리에, 대갑帶甲과 장사는 백만이었고, 들은 기름졌고, 병사는 노련했고, 병기는 날카로웠고, 재물은 풍부했으며, 동으로는 창해滄海를 등졌고, 서로는 험새險塞에 의거했고, 장강이 그 구역을 억제했고, 높고 험한 산이 그 봉역封域을 둘러싸, 국가의 날카로움이 이보다 큰 적이 없었다. 만약 도道로 이를 지키고, 술수로 이를 다스리고, 전대에 남긴 법령 제도를 엄수하고, 애써 정무를 처리하여 백성에게 힘을 다하고 공경하며 삼가 정치를 행하고, 정책을 개정하며 확실히 하고, 일정한 험요를 지켰다면, 역대에 오래도록 지속되며, 위망의 근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이가 이르길 : “오吳, 촉蜀은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밀접한 나라라, 대저 촉이 멸해져 오가 망함이, 이치상 옳다.” 대저 촉이, 대략 보위함을 돕는 동맹을 맺은 나라이나, 오인의 존망 이유는 아니다. 국경이 접하는 곳은, 산이 거듭되고 험준한 곳이 계속돼, 육지에는 병거가 지날 길이 없고, 하천이 좁고 흐름이 빨라, 수로에는 위험하고 다급한 물결과 같은 어려움이 있다. 비록 날랜 군대 백만을 가졌어도, 출발할 때는 천 명을 넘지 못하고, 배가 천 리 이어져있어도, 행렬에서 앞설 수 있는 것은 백 함艦을 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유씨劉氏가 공격했을 때, 육공陸公께서는 이를 긴 뱀에 비유했으니, 그 형세가 그러하다. 과거 촉이 처음 망했을 때, 조정의 신하들은 다르게 모색하여, 어떤 이는 돌을 쌓아서 물의 흐름을 험하게 하고자 했고, 어떤 이는 기계로 변을 막고자 했다. 천자가 여러 의견을 모아서 이를 대사마大司馬 육공에게 물으니, 육공께서는 사독四瀆이 천지가 그 기氣를 제어하고 퍼트렸기 때문에, 진실로 막을 수 있는 도리가 없고, 기계라면 저들과 우리가 공유하는 바지만, 저들이 만약 장기를 버리고 쇠한 바를 따라, 형荊, 초楚로 나아가며 배를 운용하는 바를 다투면,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라, 장차 협구峽口를 삼가 지켜서 사로잡길 기다리면 될 뿐이라고 여겼다. 보천步闡의 난 때, 견고한 성곽에 기대서 강적을 끌어들였고, 많은 재물을 써서 만적들을 불러냈다. 당시에 대국의 무리는, 운상雲翔하며 번개가 치듯이 해, 강기슭에 기旍가 늘어져, 물가를 따라 보루를 세웠고, 요해지를 둘러싸서, 오인의 서진을 저지했고, 파巴, 한漢의 수군은, 강을 따라 동으로 내려왔다. 육공께서는 편사偏師 3만으로, 북으로 동갱東坑을 점령하고, 깊은 도랑을 파고 보루를 높이 쌓고, 갑병을 누르며 위세를 길렀다. 반노反虜는 엎드려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감히 북으로 살 길을 엿보지 못했고, 강적은 패해 밤에 달아나며, 군의 태반을 잃었고, 날랜 군대 5천에게 명하여, 서쪽으로 수군을 막게 하니, 동서에서 같이 이겨, 만 명을 헌부獻俘했다. 정말로 현인의 모책인데, 어찌 우리를 속이는 것이겠는가! 이로부터 봉화하는 이가 놀람은 드물었고, 봉역封域에서 염려함은 적었다. 육공이 돌아가시고 은밀한 계획이 시작됐고, 오의 틈은 깊어졌고 육사六師는 어지러워졌다. 대저 태강太康의 전투에서, 무리는 지난번의 군보다 성대하지 못했으나, 광주廣州의 반란은, 재앙이 지난번의 재난보다 더하여, 국가는 뒤집어 엎어졌고, 종묘는 황폐해졌다. 아아! “현인을 잃으니, 국가가 병들어 시든다.”라고 하더니, 그러하지 않은가!


역易에서 이르길 “탕湯, 무武의 혁명은 천도에 순응했다.”, 어떤 이가 이르길 “난세가 다하지 않으면 치세는 나타나지 못한다.”, 제왕은 천시天時를 따름을 말한 것이다. 옛 사람의 말 중에서 이르길 “천시는 지리地利만 못하다.”, 역에서 이르길 “왕후王侯는 요해처에 방비시설을 하여 그들의 나라를 지킨다.”, 나라를 다스리면서 험한 지형에 의지함을 말한 것이다. 또한 이르길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덕에 달려있는 것이지 요해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요해지를 지킴은 사람에 달려있음을 말한 것이다. 오吳가 흥할 때는, 세 조건이 갖춰지며 이를 따라서, 손경孫卿이 이른 세 조건이 갖춰짐에 적합한 격이었다. 망할 때는, 험한 지형에 의지할 뿐이라서, 또한 손경이 이른 세 조건이 갖춰짐을 버린 격이었다. 대저 4주의 백성은 많지 않은 게 아니었고, 대강大江이남은 준걸이 모자란 게 아니었고, 산천의 험함은 수비하기에 쉬웠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기계는 쓰기 쉬웠고, 이전의 정치 책략은 익히기 쉬웠으나, 공은 흥하지 못하고 화를 만난 것은 어째서인가? 이를 씀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장구한 법규에 통달하고, 존망의 정묘한 도리를 밝게 알아서, 자신을 낮춰 백성을 안정시켰고, 돈후하고 인자함으로 인화를 이루었고, 관대하고 겸손하며 온화함으로 준예의 모책을 이끌어냈고, 자애롭고 상냥함으로 백성의 사랑을 모았다. 이로써 안정됐을 때는, 백성이 이와 더불며 함께 경축했고, 위태로울 때는, 많은 백성이 이와 더불며 함께 근심하였다. 안정됐을 때 무리와 더불어 함께 경축하여, 위난이 이루어질 수 없었고, 위태로울 때 아랫사람과 함께 근심하여, 재앙을 걱정할 수준에 이르지도 않았다. 대저 그러하기에, 사직을 보존하며 천하를 굳힐 수 있었다면, 맥수麥秀에서 은殷을 슬퍼하는 생각이 없었을 것이고, 서리黍離에서 주周를 불쌍히 여기는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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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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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9.13
14: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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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망론 완역 됐습니다. 처사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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