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소(孫韶)는 자가 공례(公禮)이다. 그의 백부 손하(河)는 자가 백해(伯海)이고, 원래 성씨가 유씨(俞氏)로서 오(吳)나라 사람이다. 손책이 그를 아껴서 성을 주어 손(孫)이라고 하고, 그를 종실의 계보에 소속시켰다. 나중에 손소는 장군이 되어 경성(京城)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오서: 손하(孫河)는 손견의 족자(族子)이다. 원래는 유(俞)씨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손씨로 본래의 성으로 되돌아왔다. 바탕이 충직하며, 말은 어눌하고 행동은 민첩하였다. 어려서부터 손견이 정벌하면 좇아 앞장서, 후에는 측근의 병사를 거느리고 심복이 되었다. 또 손책을 따라 오군, 회계 지방을 평정하였고, 손권(孫權)이 이술(李術)을 토벌하자 이를 좇아 이술을 깨부수고 위구중랑장(威寇中郎將)에 임명되었으며 여강태수(廬江太守)를 겸임했다


처음에 손권이 오군태수(吳郡太守) 성헌(盛憲)을 죽였을 때,

會稽典錄曰:憲字孝章,器量雅偉,舉孝廉,補尚書郎,稍遷吳郡太守,以疾去官。孫策平定吳、會,誅其英豪,憲素有高名,策深忌之。初,憲與少府孔融善,融憂 其不免禍,乃與曹公書曰:「歲月不居,時節如流,五十之年,忽焉已至。公為始滿,融又過二,海內知識,零落殆盡,惟會稽盛孝章尚存。其人困於孫氏,妻孥湮 沒,單孑獨立,孤危愁苦,若使憂能傷人,此子不得復永年矣。春秋傳曰:『諸侯有相滅亡者,桓公不能救,則桓公恥之。』今孝章實丈夫之雄也,天下譚士依以揚 聲,而身不免於幽執,命不期於旦夕,是吾祖不當復論損益之友,而朱穆所以絕交也。公誠能馳一介之使,加咫尺之書,則孝章可致,友道可弘也。今之少年,喜謗 前輩,或能譏平孝章;孝章要為有天下大名,九牧之民所共稱歎。燕君市駿馬之骨,非欲以騁道里,乃當以招絕足也。惟公匡復漢室,宗社將絕,又能正之,正之之 術,實須得賢。珠玉無脛而自至者,以人好之也,況賢者之有足乎?昭王築臺以尊郭隗,隗雖小才,而逢大遇,竟能發明主之至心,故樂毅自魏往,劇辛自趙往,鄒 衍自齊往。嚮使郭隗倒縣而王不解,臨溺而王不拯,則士亦將高翔遠引,莫有北首燕路者矣。凡所稱引,自公所知,而有云者,欲公崇篤斯義也,因表不悉。」由是 徵為騎都尉。制命未至,果為權所害。子匡奔魏,位至征東司馬。    


회계전록(會稽典録)에 이르길: 성헌(盛憲)의 자는 효장(孝章)이고, 기량이 있고 바르고 빼어나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다. 상서랑(尙書郞)이 되고 후에 오군태수(吳郡太守)가 되었으나, 질병을 이유로 관직을 떠났다.


손책이 오군과 회계를 평정하고, 그곳의 영웅호걸들을 죽였으나, 성헌이 본래부터 이름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손책은 성헌을 크게 꺼림찍하게 생각했다. 예전에 성헌은 소부(少府) 공융(孔融)과 친교가 있었으므로, 공융은 성헌이 손책으로부터 화를 당할까봐 걱정하여 마침내 조조(曹操)에게 편지를 보내 이르길


「세월은 멈추어 있지 않아 물 흐르듯 흘러 50년이 홀연히 이르렀습니다. 공은 비로소 만 50세가 되었고 융(공융)은 또한 2년이 지났는데 천하에서 알고 있는 사람도 영락하여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오직 회계의 성효장이 오히려 살아있는데 그 사람은 손씨에게 곤욕을 겪고 있습니다. 처자는 이미 죽었고 혈혈단신으로 홀로 위태롭게 걱정과 고통을 겪고 있는데 만약 고민이 능히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오래도록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춘추전에 이르길 『제후 중에 멸망한 자가 있는데 환공이 구할 수 없었다면 곧 환공이 이를 부끄러워했다.』고 하는데 지금 효장은 실로 대장부 중의 호걸이며 천하의 청담지사들은 그에게 의지해 이름을 날리지만 오히려 신체는 감금되는 것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아침에 저녁을 보장할 수 없는 지경이니 이렇다면 저의 조상(공자)은 응당 다시 손해와 이익이 되는 친구를 말하지 않을 것이고 주목이 절교론을 지은 이유입니다. 공께서 진실로 능히 사자 한 명을 보내 한 통의 편지를 전달하면 곧 효장을 불러 올 수 있고 친구의 도리를 가히 홍양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소년들은 전배를 훼방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혹은 능히 효장을 비평하지만 효장은 대체로 천하에 큰 명성이 있고 9주의 백성들이 더불어 찬탄하는 사람입니다. 연나라의 군주가 준마의 뼈를 산 것은 길에 달리게 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는데 마침내 응당 이로써 천리마를 불러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오직 공께서 한실을 광복시키고 종묘사직이 장차 끊어지려 할 때 또한 능히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데 바로 잡는 기술은 실로 모름지기 현자를 얻는데 있습니다. 주옥이 다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르는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인데 하물며 다리가 있는 현자이겠습니까? 소왕은 대를 쌓아 곽외를 존중했는데 곽외의 재주가 비록 작다하나 큰 대우를 받고 끝내 명주의 지극한 마음을 밝힐 수 있었던 이유로 악의가 위나라에서 오고 극신이 조나라에서 왔으며 추연이 제나라에서 도래하였습니다. 만약 곽외가 거꾸로 매달렸는데 왕이 풀어주지 않고 물에 빠지려 할 때 왕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곧 선비들 또한 장차 멀리 날아가 버릴 것이니 북쪽을 향해 연나라의 길에 오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무릇 언급한 바들은 공께서 익히 잘 아시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말하는 이유는 공께서 이 의미를 높이 여겨 독실하게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로 인해 드러낸 것이니 나머지는 구비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조조는 성헌을) 기도위(騎都尉)로 임명했으나, 미처 그 명령이 이르기도 전에 성헌은 손권(孫權)에게 살해당하였다. 성헌의 아들 성광(盛匡)은 위(魏)로 달아났고, 관직은 정동사마(征東司馬)에 이르렀다.


성헌의 선임 효렴(孝廉)인 규람(媯覽)과 대원(戴員)은 도망가서 산 속에 숨었다. 그러나 손익이 단양태수(丹楊)가 되자 이들을 모두 예의로써 초빙했다. 그래서 규람을 대도독(大都督)으로 삼아 병사들을 지휘하게 하고, 대원을 군승(郡丞)으로 삼았다.


손익이 해를 입게 되었을 때, 손하는 말을 달려 완릉(宛陵)으로 가서 규람과 대원을 심하게 꾸짖으면서 그들이 직권을 다하지 않음으로 해서 간악한 자들로 하여금 변고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들 두 사람은 의논하여 말했다.


“백해(伯海 : 손하)는 장군과 소원한 관계인데도 우리들을 이토록 꾸짖으니, 만일 토로(討虜 : 손권)가 오게 되면 우리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마침내 손하를 죽이고, 사람을 북방으로 보내어 양주자사(揚州刺史) 유복(劉馥)을 맞이하여 그로 하여금 역양(歷陽)에 주둔하게 하고는, 그들은 단양(丹楊)에서 그에게 호응했다. 때마침 손익의 부하 서원(徐元)ㆍ손고(孫高)ㆍ부영(傅嬰) 등이 규람과 대원을 살해했다.


오력: 규람(媯覽)과 대원(戴員)은 변홍(邊洪)과 친했는데, 수차례 손익으로부터 곤란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항상 복수를 꿈꾸고 살았다. 오왕(손권)이 밖으로 원정 나가있는 틈이 생기자 그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여러 현령과 장들이 연회에서 손익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손익의 처인 서씨(徐氏)가 점을 자못 잘 쳤다. 손익이 들어와 서씨에게 말했다.


"내일 내가 장리(長吏)를 연회를 열까 생각중이오. 그대는 점을 쳐보시오."


서씨가 대답했다.


"점괘가 안 좋습니다. 다른 날을 선택하시지요."


손익은 장리들이 늦게 오자 빨리 오게 했고, 이내 빈객으로 맞이했다. 항상 출입할때는 손익은 칼을차고 다녔는데 이때에는 술에 취해 있어서 빈손으로 객들을 맞았고, 변홍은 칼로 손익을 찔렀고, 군내에는 소란이 일었으나, 아무도 손익을 구해줄 사람 없어고, 손익을 죽인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쳤다.


서씨는 구모(購募-현상수배)를 하며, 뒤쫒아가 잡으려 했는데, 이틀이 지나자, 규람과 대원(戴員)이 변홍을 죽이고서는 (변홍의 짓이라면서) 죄를 빌었다 [歸罪]. 모든 사람들은 규람과 대원의 소행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 둘을 토벌할 능력이 없었다.


규람은 군의 부중으로 들어간 뒤에, 손익의 빈첩(嬪妾)들과 그의 좌우의 시어(侍御)들도 체포한 뒤에, 서씨도 차지할려고 했다. 해를 입을까 두려웠던 서씨는 속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믐이 되면 제사를 지내고 상복을 벗은 다음에 따르고 싶습니다."


그 달이 이미 드믐이 다 되었으므로, 규람은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 때 서씨는 죽은 남편의 심복인 손고(孫高)와 부영(傅嬰)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규람이 이미 손익의 비첩(婢妾)들을 체포해갔고, 또한 저를 범할려 하길래, 겉으로는 허락하는 척 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를 안심시켜 화를 면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를 토벌하고 싶으니,원컨데 두분께슨 도와주십시오".


손고와 부영은 울면서 말했다.


"우리들은 태수님의 은혜를 받은몸으로, 그 즉시 죽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우리가 죽어도 아무런 소득도 없고, 복수할려고 계책을 마련하려 하였으나, 아직 방법을 모르고 있었는데, 왜 우리가 감히 부인의 명을 거절하겠습니까? 오늘의 계책은 사실 우리가 밤낮(夙夜)으로 생각할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고는 비밀리에 손익을 따르던 사람들 20여명들을 불러모아, 서씨의뜻을 전하며, 같이 맹세하고는 같이 모의하기로 했다. 


그믐이 되자, 제사를 지냈고, 서씨는 곡을 마치자, 곧 소복을 벗고, 훈향(薰香)으로 목욕을 한 뒤에, 다른 방에 들어가, 휘장(幃帳)에서 편안히,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면서, 아무런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는데,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규람이 몰래 엿보고 있었는데, 아무런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서씨는 손고와 부영을 불러 모든 노비들과 함께 집안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그후 규람에게 보고하여 자기는 제사를 마치고 상복을 벗었다고 即吉 알리며, 규람의 명에 따르겠다고 하였다.


규람이 기분 좋게 들어왔고 서씨는 집을 나가서 절을하였다. 규람이 절을 받자, 서씨는 크게 소리쳤다.


"두 사람은 나오시오!".


손고와 부영은 튀어나와 같이 규람을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서대원을 죽였다. 부인은 이내 상복차림으로 돌아와 규람과 대원의 머리를 손익의 묘에 제사지냈다. 모든 병사들이 놀라서 떨었다. 오주 손권이 속히 도달했고, 규람과 대원(戴員)의 나머지 잔당들을 죽였다. 그리고 손고와 부영에게 아문(牙門)으로 추천했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금과비단을 주고, 그 집안들을 빛내게 했다.


손소는 17세에 손하의 남은 무리들을 거두어들여 경성(京城)을 보수하고 누각을 일으켜 세우고, 병기와 비품들을 갖추어서 적을 방비하였다.


손권은 단양에 변란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초구(椒丘)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단양을 지나면서 평정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로 돌아왔다.


오나라로 돌아오는 도주에 밤에 경성에 이르러 진영을 치고 시험 삼아 공격하여 놀라게 해 보았다. 그러자 성 안의 병사들은 모두 성벽 위로 나가 격(檄)을 전하고 경계를 하면서 땅이 진동할 만큼 소리를 지르며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손권이 사람을 보내어 상황을 알려주자, 비로소 그들은 그만두었다. 이튿날, 손권은 손소를 만나고는 그를 큰 그릇감으로 여거 죽시 승렬교위(承烈校尉)를 제수하고 손하의 부하들을 통솔하게 하고, 곡아(曲阿)ㆍ단도(丹徒) 두 현(縣)을 식읍으로 주고, 스스로 장리(長吏)들을 두게 했으니, 모든 것이 손하가 과거에 했던 것처럼 하게 했다. 후에 광릉태수(廣陵太守)ㆍ편장군(偏將軍)에 임명되었다.


손권이 오왕(吳王)이 되자, 그는 양위장군(揚威將軍)으로 승진했고 건덕후(建德侯)에 봉해졌다. 손권(權)이 황제라고 일컫게 되자, 그를 진북장군(鎮北將軍)으로 임명했다. 손소는 수십 년 동안 변방의 장수가 되어 있으면서 병사들을 잘 훈련시켜 죽을 힘을 다해 서로 돕도록 했다. 그는 항상 변방을 경계함에 있어, 멀리까지 정탐하는 것을 임무로 삼아, 먼저 동정을 알고 그에 대비했으므로 지거나 패하는 일이 드물었다. 청주(青)ㆍ서주(徐)ㆍ여남(汝)ㆍ패군(沛) 일대의 사람들이 자못 와서 귀의하였다. 그 결과 회남(淮南) 땅과 장강 연안에 주둔해 있던 병사들과 척후병들도 모두 군대를 철수하고 멀리 이주하여, 서주(徐)ㆍ사수(泗)ㆍ장강(江)ㆍ회수(淮) 일대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각기 수 백 리나 되었다. 


손권이 서정하여 무창으로 환도한 이래로 손소는 알현하러 나아가지 못한 것이 10여년이었으나,  손권이 건업(建業)으로 돌아오자 즉시 알현하였다. 손권이 그에게 청주(青)ㆍ서주(徐)의 여러 주둔병의 요해(要害)라든지, 멀고 가까운 곳의 인마(人馬)의 많고 적음이라든지 위나라 장수의 성명을 물어보면, 묻는 것마다 모두 대답했다. 손소는 신장이 8척이었고, 거동과 용모가 매우 우아했다. 손권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공례(公禮 : 손소)를 만나지 못했는데, 그는 나아가 이로움을 도모하지는 않는 사람이오.”


손권은 그에게 유주목(幽州牧)을 겸임하도록 하고, 가절(假節)을 주었다.


적오(赤烏) 4년(241)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손월(越)이 뒤를 이었으며 우장군(右將軍)까지 이르렀다. 손월의 형 손해(楷)는 무위대장군(武衛大將軍)ㆍ임성후(臨成侯)로서 손월을 대신하여 경하(京下 : 경성)의 도독(督)이 되었다. 손해의 동생 손이(異)는 영군장군(領軍將軍)에 이르렀고, 손혁(奕)은 종정경(宗正卿), 손희(恢)는 무릉태수(武陵太守)가 되었다.


천새(天璽) 원년(276)에 손해를 불러 궁하진(宮下鎮)의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삼았다. 처음에 영안(永安)의 도적(賊) 시단(施但) 등이 손호(皓)의 동생 손겸(謙)을 핍박하고는 건업(建業)을 습격했을 때, 어떤 이가 손해에게 두 마음이 있어 즉시 나가 토벌하지 않았다고 아뢰었다. 손호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어 손해를 힐문했다. 손해는 항상 두려워했는데 갑자기 소환당하자 드디어 처자식과 근위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진나라로 귀의하였고, 진(晉)나라에서는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삼고 단양후(丹楊侯)로 봉했다.

진제공찬(晉諸公贊)에 이르길: 오나라가 평정된 후,도료장군(渡遼將軍)으로 강등당했으며, 영안원년에 죽었다.


오록吳錄에서 이르길 : 손해孫楷는 일을 처리하며 엄하게 정돈함은 손수孫秀만 못했으나, 사람들이 듣고 이름이 널리 알려짐은, 넘어섰다.

분류 :
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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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30
13:51:29 (*.36.2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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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16
16:28:29
(*.0.203.45)

서씨 얘기 주석 추가와 생략된 편지 원문 추가

코렐솔라

2013.07.15
15:47:44
(*.0.203.172)
주석 모두 추가

맨 마지막 오록의 손수 손해 내용은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7605934

코렐솔라

2013.09.03
12:02:16
(*.166.245.166)
진나라로 귀의하였고, 가 빠져있길래 추가 그외 진제공찬 내용도 추가

코렐솔라

2013.09.17
22:12:56
(*.166.245.166)
구라뱅뱅님의 제보대로 수정했습니다! 도움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렐솔라

2016.05.20
13:59:18
(*.196.74.143)
성헌에 대한 내용은 dragonrz님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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