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머그삼국지카페


임준전(任峻傳)

 

 임준(任峻)의 자는 백달(伯達)이며, 하남군(河南郡) 중모현(中牟縣) 사람이다. 한(漢)나라 말기에 요란(擾亂: 시끄럽고 어지러움)하여, 관동(關東: 함곡관 동쪽지역의 총칭)이 진동하자, 중모현(中牟縣)의 현령(縣令)인 양원(楊原)은 두려움에 근심하다가, 이를 떨치고자 관직을 버리고 도망치려고 했다.


이에 임준(任峻)은 양원(楊原)을 설득해 말했다.

"동탁(董卓)이 주도하여 혼란을 일으키자,  모두 (그를) 무섭고 두려워하여 눈치를 보지않는자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 마음이 없기 때문에가 아니고,  아직 정세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명부(明府: 태수, 현령의 존칭)가 그들을 잘 이끄신다면, 반드시 호응하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양원(楊原)은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오?"

 

임준(任峻)은 말했다.

"지금 관동(關東)에는 10여개의 현(縣)이 있어, 군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1만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 독단으로 하남윤(河南尹)의 직무를 대행해, 그들을 총괄해 이용하면  해결할수 없는것이 없을 것입니다."

 

양원(楊原)은 그 계략에 따라 , 임준(任峻)을 주부(主簿)로 임명했다. 임준(任峻)은 이에 양원(楊原)을 위해서 하남윤(河南尹)의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상표해, 굳게 지키기 위해 여러 현(縣: 하남윤에 속한 현들)을 부릴수 있으며, 나아가 병사를 일으킬수 있도록 했다.


정확히 태조(太祖: 조조)가 관동(關東: 함곡관 동쪽지역의 총칭)에서 군사를 일으켰을때, (그의 영역이) 중모현(中牟縣)의 경계까지 들어가자, 사람들은 누구를 따라야할지 몰랐는데,  임준(任峻)만은 동군(同郡: 같은 고을)사람인 장분(張奮)과 함께, 군(郡: 여기서는 '하남군'을 지칭)을 올려 태조(太祖: 조조)에게 복종해야 한다며 제의했다. 


그리고 임준(任峻)은 일족과 빈객(賓客) 및 가병(家兵: 가문이 거느린 사병들) 수백명을 이끌고 태조(太祖: 조조)에 따르는 것을 신청하자, 태조(太祖: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임준(任峻)을 상표해 기도위(騎都尉)로 삼고, 종매(從妹: 사촌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등 몹시 친해져 신뢰했다.


태조(太祖: 조조)가 정벌을 나갈때마다, 임준(任峻)은 언제나 (후방에) 남아서 방비하며 군대의 보급을 담당했다.


그 당시 해마다 기한(飢旱: 흉년과 가뭄)을 겪어, 군식(軍食: 군량)이 부족했으므로, 영천군(潁川郡)사람인 우림감(羽林監) 조지(棗祗)가 둔전(屯田)을 두는 것을 건의하자, 이에 태조(太祖: 조조)는 임준(任峻)을 전농중낭장(典農中郞將) 임명했으며 


〔많은 일가들을 허현(許縣: 후에 허창현)의 아래에 불러모아 둔전을 실시해, 곡식 백만석을 얻을수 있었으며, 군(郡)과 국(國)를 분리해 전관(田官: 둔전을 담당하는 관리)을 두었다.〕,


수년중(數年中: 여러해 동안) 도처에서 속(粟: 조,벼)를 쌓아올려, 창름(倉: 곡식 저장창고)이 모두 가득찼다. 


관도(官渡)의 싸움때, 태조(太祖: 조조)는 임준(任峻)에게 군기여(軍器糧: 군대의 그릇,식량,급여; 군수품)의 수송을 담당하도록 했었다. 도적들이 자주 수송로를 차단해 약탈을 했으므로, 이에 치중차 1000대중 일부를 분리해, 옆 10열에 줄서 행군하게 하고, 이들로 하여금 전투대형을 짜 이것을 경호하게 하자, 도적들이 가까워질수가 없게 되었다. 


군국(軍國: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이 (식량에) 넉넉해질수 있었던 것은, 조지(棗祗)가 (둔전제를) 처음 건의하고 임준(任峻)이 실행했기 때문이었다.〔 一 〕 


태조(太祖: 조조)는 임준(任峻)의 공적을 높이 생각하여, 상표해 도정후(都亭侯)에 봉하며 고을의 3백호를 영지로 내린후, 장수교위(長水校尉)에 전임 시켰다.

 

〔 一 〕《위무고사(魏武故事)》에 싣는 포령에 말한다.
 『옛 진류태수(陳留太守) 조지(棗祗)는 천성이 충직하고 재능이 많았다. 그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많은 원정과 토벌에 참여했다. 예전에 원소(袁紹)가 기주(冀州)에 웅거하고 있었을 당시, 원소(袁紹)는 조지(棗祗)를 욕심내, 데려가려고도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조지(棗祗)가 깊게 생각한 끝에 오히려 나에게 찾아와 의지하고자 했으며, 동아현(東阿縣)의 현령(縣令)을 맡겠다고하여 전임시켰다. 지난날 여포(呂布)가 반란을 일으켜, 연주(州)를 거의 다 반역을 했지만, 다만 범현(范縣)과 동아현(東阿縣)만이 온전할 수 있었으니,  이것은 조지(棗祗)가 여포(呂布)와 맞서 성을 굳게 지켰던 노력 덕분이었다.
그뒤 군량이 모자라 우리의 대군이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동아현(東阿縣)의 곡식을 옮겨와 허기를 메울 수 있었는데, 그또한 조지(棗祗)의 공이었다. 


황건적(黃巾賊)을 격파하고 허도로 천자를 맞아들일때는, 그 도적의 양식(= 둔전을 실시할수있는 계기가 된 경작용 소나 농기구 및 노동력)을 얻을수 있었다.


당시 둔전사업을 일으킬때, 의논을 했던 모든 이들이 관에서 대여해 준 소의 사용 횟수를 셈하여 징수액을 정하자고 했으므로, (그들의 말을 들어) 《전과(佃科: 둔전에 관한 법률)》을 정했다. 


조지(棗祗)는 시행 후에도 줄기차게 나를 찾아와 건의했는데, 


"소를 기준으로 징수액을 정하는 것은 매우 불편합니다. 풍년이 들어도 곡식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홍수나 가뭄이 들면 거둘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하고 의견을 내놓곤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규정대로 하고 풍년이 들더라도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지(棗祗)는 더욱더 이것을 채택하길 주장하였기에, 고(孤: 나=조조)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으므로, 순령군[荀令君: 순욱(荀彧)]과 함께 논의시켰다.


때마침 예전에 군제주(軍祭酒)를 역임한 후성(侯聲)이 말했다. 


"《전과(佃科)》에 따라 관우(官牛: 관청에 소속된 소)를 취급해,  관전(官田: 관청에 소속된 논,밭)를 계산을 해야합니다.  조지(棗祗)의 제안에 대해서는, 관청에 있어선 편하겠지만, (둔전에 종사하는) 손님에게 있어서는 불편합니다."


후성(侯聲)은 이 주장을 운운하며, 령(令: 조지가 건의한 내용)이 채택 되는걸 심히 헤아리길 원했다. 그런데도 조지(棗祗)는 더욱 자신을 가져, 계획에 근거해 다시 건의해, 
농지를 나누는 방법을 채택하길 주장했다. 이에 고(孤: 나=조조)는 이를 허락하며, (그를) 둔전도위(屯田都尉)로 삼아, 전업(田業: 둔전에 관한 업무)를 시행하도록 했다.


마침 그 해에 크게 풍년이 들어 수확이 많아졌으며, 그 이후로 마침내 이를 바탕으로 둔전을 대대적으로 실시할 수 있었는데, 그리하여 군량이 풍족해져, 여러 역도들을 꺾고, 천하를 평정하여, 왕실을 융성하게 할 수 있었다. 


이제 조지(棗祗)와 그 공을 함께 하려고 하였더니, 불행하게도 일찍 죽었으므로, 군(郡)의 관직(= 태수)에 추증했지만, (그 공적에 비해 보수는) 아직도 상당하지 못했다.


나는 거듭 그의 공로를 생각하고, 마땅히 봉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루고만 있었으니, 이것은 나의 큰 허물이다. 조지(棗祗)의 아들 조처중(棗處中)에게, 봉토와 작위를 더해, 조지(棗祗)를 제사지내게 하고 그의 공로를 오랫동안 기리도록 하라." 』


《문사전(文士傳)》에 말한다.
조지(棗祗)의 원래의 성은 극(棘)씨 였지만, 옛 조상이 재앙을 피해, 조(棗)씨로 고쳤던 것이다. 손자인 조거(棗據)의 자는 도언(道彦)인데, 진(晉)나라때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역임했다. 조거(棗據)의 아들은 조숭(棗嵩)으로, 자는 대산(臺産)이며,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역임했다. 모두 재치와 명성이 있어, 저술 한 것도 많았으며, 조숭(棗嵩)의 형은 조전(棗)인데, 자를 현방(玄方)이며, 양양태수(襄陽太守)를 역임했고,  또한 문장에는 화려함을 가지고 있었다.


【보충설명】《진서(晉書)》「열전(列傳) 62권」의 <조거전(棗據傳)>를 확인해 보면 조전(棗)의 관직은 '양양태수(襄陽太守)'이 아닌 '양성태수(襄城太守)'로 되어 있다.

 

임준(任峻)은 관후(寬厚: 너그럽고 후함)하여, 사리(事理: 사물의 이치)를 볼수있는 안목이 있었는데, (어떤) 의견을 진술할때마다, 태조(太祖: 조조)는 그것을 좋게 평가하는 것이 많았다. 기황[饑荒: 기근(饑饉)]때에도, 고아가 된 붕우(朋友: 친구)의 자식이 있으면 가엽게 여겨 거두었으며, 안밖으로 궁핍한 사람이 있으면, 위기를 구해 부족함을 보충해 주는 등, 신의(信義: 믿음과 의리)가 있다고 칭찬되었다. 


건안9년(建安九年: 204년)에 죽자, 태조(太祖: 조조)는 오랬동안 눈물을 계속 흘렸었다. 자식인 임선(任先) 후사를 이어받았다. 


임선(任先)이 죽었지만, (후사를 이를) 자식이 없었기에, 봉국을 없앴다. 문제(文帝: 조비)는 거슬러 올라가 공신을 기록할때, 임준(任峻)에게 성후(成侯)라고 시호를 내렸다.
그리고 임준(任峻)의 둘째 아들인 임람(任覽)을 관내후(關內侯)로 봉했다.

 

 


 

============================================= 임준(任峻) 가계도

출신지: 하남군(河南郡) 중모현(中牟縣)

불명(불명)━임준(任峻)┳임선(任先)━X

불명(불명) 백달(伯達)┃불명(불명)

??? ∼ ???  ??? ∼ 204┃??? ∼ ???

       장수교위┃ 도정후

       長水校尉┃ 都亭侯
       

        都成侯 ┗임람(任覽)

     ※정후(亭侯) 불명(불명)

             ??? ∼ ???
             관내후

             關內侯

 

============================================= 조지(棗祗) 가계도

출신지: 영천군(穎川郡) 장사현(長社縣)

불명(불명)━조지(棗祗)┳조숙의(棗叔禕)━조거(棗據)┳조전(棗)
불명(불명)   불명(불명)┃ 불명(불명)  도언(道彦)   ┃현방(玄方)
??? ∼ ???   ??? ∼ ???┃??? ∼ ???    ??? ∼ ???  ┃??? ∼ ???
         둔전도위 ┃         기주자사  ┃양양태수
         屯田都尉 ┃         冀州刺史  ┃襄陽太守
                ┃                 ┃ ※ 《진서(晉書)》 <조거전(棗據傳)>에는

                ┗조처중(棗處中)         ┃  '양성태수(襄城太守)'로 되어 있음

               불명(불명)                ┃
                ??? ∼ ???             ┗조숭(棗嵩)
                                대산(臺産)
                                  ??? ∼ ???
                                  산기상시
                                  散騎常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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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6.27
11:14:45
(*.104.28.55)
이게 더 괜찮은 것 같기도 한데 여러 분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장기튀김

2013.11.11
02:11:39
(*.121.129.101)
자료가 잘못됐군요. 조처중과 조거의 관계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진서》 권92 조거전에 따르면, 조거의 아버지는 위나라의 거록태수 조숙의棗叔禕입니다. 이 인물은 곧 조지의 아들이겠지요.
조처중이 곧 조숙의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라면 모를까, 저렇게 조거를 조처중의 아들이라고 기록할 순 없겠지요?

장기튀김

2013.11.11
02:15:19
(*.121.129.101)
다시 보니, 첨부된 가계도에 조의棗禕란 인물이 조지의 형제로 기록돼 있군요. 아무래도 앞서 말씀드린 '조숙의'를 잘못 보고 기록한 것 같습니다.

棗據,字道彥,潁川長社人也。本姓棘,其先避仇改焉。父叔禕,魏鉅鹿太守。
조거의 자는 도언이며, 영천군 장사현 사람이다. 본래 성이 '극'이었는데, 선조가 원수를 피하여 고쳤다. 아버지 조숙의는 위나라 때 거록태수였다.

조의는 없지만 조숙의는 있으며, 조숙의는 분명히 조거의 아버지입니다.

코렐솔라

2013.11.11
09:11:31
(*.166.245.132)
이렇게 수정하면 될까요? 잘 모르는 사람이라 모르고 있었는데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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