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출처: 고원님 블로그, 史랑방

 
마초(馬超)는 자(字)가 맹기(孟起)이고 부풍(扶風) 무릉(茂陵) 사람이다. 부친 마등(馬騰)은 영제(靈帝:168-189) 말, 변장(邊章), 한수(韓遂) 등과 함께 서주(西州-양주涼州)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초평 3년(192년), 한수, 마등이 무리를 이끌고 장안(長安)으로 나아가니 한나라 조정에서는 한수를 진서장군(鎭西將軍)으로 삼아 금성(金城)으로 되돌려 보내고 마등을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삼아 미(郿-사례 부풍군 미현)로 보내 주둔하게 했다. 그 뒤 마등이 장안을 습격했으나 패주하고 양주(涼州)로 되돌아갔다.
 
사례교위(司隷校尉) 종요(鍾繇)가 관중(關中)을 진수하게 되자 한수, 마등에게 서신을 보내 화(禍)와 복(福)에 관해 진술했다. 마등이 마초를 보내 종요를 뒤따르게 하니 평양(平陽-하동군 평양현)에서 곽원(郭援), 고간(高幹)을 토벌하고 마초의 장수 방덕(龐德)이 직접 곽원을 참수했다. (※ [삼국지] 권10 순욱전, [자치통감] 등에 의하면 원소가 병사한 직후인 202년의 일) 
 
그 뒤 마등이 한수와 서로 불화하자 경기(京畿)로 돌아올 것을 청하니 이에 징소해 위위(衛尉)로 임명하고, 마초를 편장군(偏將軍)으로 삼고 도정후(都亭侯)에 봉해 마등의 부곡(部曲)을 거느리게 했다. [1]
 
[주1] [[마등전]]으로 분할

마초가 무리를 통솔하게 된 후 마침내 한수(韓遂)와 합종(合從)하고 양추(楊秋), 이감(李堪), 성의(成宜) 등과 서로 결탁하여 진군해 동관(潼關)에 이르렀다. (※ 211년의 일) 
 
조공(曹公-조조)은 한수, 마초와 더불어 홀로 말을 타고 대화했는데 마초는 자신의 다력(多力-힘이 강함)에 의지해 돌전(突前-돌진)하여 조공을 붙잡으려 은밀히 꾀했으나 조공 좌우의 장수 허저(許褚)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고 이에 마초는 감히 실행하지 못했다. 조공은 가후(賈詡)의 모책을 써서 마초와 한수를 이간시키니 다시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게 되었고 군이 대패(大敗)했다. [2]
 
(2) [산양공재기]山陽公載記 – 당초 조공의 군대가 포판(蒲阪)에 있으며 서쪽으로 (하수를) 건너려 하자 마초가 한수에게 말했다, 

“의당 위수 북쪽에서 저들을 막으면 20일이 지나지 않아 하동(河東)의 곡식이 다하여 필시 달아날 것입니다.” 

한수가 말하길 

“하수를 건너게 해주어 하수 가운데서 몰아붙인다면 오히려 통쾌하지 않겠는가!”

라 하며 마초의 계책을 펼치지 않았다. 조공이 이를 듣고 말했다, 

“마초 저 아이가 죽지 않는다면 내가 묻힐 땅이 없겠구나.”
 
마초는 달아나 제융(諸戎-여러 융족들)에 의지하고 조공이 추격해 안정(安定)에 이르렀으나 때마침 북방에 일이 생겨 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양부(楊阜)가 조공을 설득하며 말했다, 
 
“마초는 한신(韓信), 영포(英布)의 용맹을 갖추고 강(羌), 호(胡)의 마음을 심히 얻고 있습니다. 만약 대군(大軍)이 돌아가며 이를 엄히 방비하지 않는다면 농상(隴上)의 여러 군(郡)들은 국가의 소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마초는 제융(諸戎)들을 이끌고 농상(隴上)의 군현들을 공격하니 농상의 군현들이 모두 이에 호응했고 양주자사(涼州刺史) 위강(韋康)을 죽이고 기성(冀城-천수군 기현)을 점거하여 그 군사들을 차지했다. 마초는 정서장군(征西將軍), 영(領) 병주목(幷州牧), 독양주군사(督涼州軍事-양주의 군무를 도독)를 자칭했다. 
 
위강(韋康)의 옛 관리와 백성(吏民)인 양부(楊阜), 강서(姜敍), 양관(梁寬), 조구(趙衢) 등이 마초를 공격할 것을 함께 모의했다. 양부, 강서가 노성(鹵城)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마초가 출군해 이를 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했는데, 양관, 조구가 기성의 성문을 닫아 버리자 마초가 들어갈 수 없었고, 진퇴가 낭패(狼狽)스럽게 되자 이에 한중(漢中)으로 달아나 장로(張魯)에게 의탁했다. 

장로는 더불어 일을 도모하기에 부족한 인물이라 생각하여 내심 근심하고 번민했는데(於邑) 선주(先主-유비)가 성도(成都)에서 유장(劉璋)을 포위했다는 말을 듣고 은밀히 서신을 보내 항복을 청했다. [3]
 
(3) [전략]典略 – 건안 16년(211년), 마초는 관중(關中)의 제장들인 후선(侯選), 정은(程銀), 이감(李堪), 장횡(張橫), 양흥(梁興), 성의(成宜), 마완(馬玩), 양추(楊秋), 한수(韓遂) 등과 함께 도합 10부(部)로 함께 반란을 일으키니 그 군사가 10만으로 하수(河水), 동수(潼水) 일대를 점거하고 영진(營陳)을 벌여 세웠다. 이 해, 조공이 서쪽을 정벌해 마초 등과 더불어 하수, 위수(渭水)가 만나는 곳에서 교전하여 마초 등을 패주시켰다. 

마초는 안정(安定)에 이르렀다가 양주(涼州)로 달아났다. 조령으로 마초의 가속들을 붙잡아 멸했다. 마초는 다시 농상(隴上)에서 패했다. 그 뒤 한중으로 달아났는데, 장로는 (마초를) 도강좨주(都講祭酒)로 삼고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려 하니 어떤 이가 장로에게 간언했다,

“이처럼 자신의 육친(親)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어찌 남을 사랑하겠습니까?” 

이에 장로가 그만두었다. 당초 마초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 그의 소부(小婦-첩)의 동생인 충(种)이 삼보(三輔)에 머물렀는데 마초가 패하게 되자 충(种)이 먼저 한중으로 들어왔었다. 

정월 초하루 아침, 충(种)이 마초에게 상수(上壽)하자 마초가 가슴을 치고 피를 토하며 말했다, 

“온 가문의 백구(百口-근친 일족)가 하루아침에 함께 죽었는데 지금 두 사람이 서로 축하한단 말인가?” 

그 뒤 수차례 장로에게 군사를 청해 북쪽으로 양주를 탈취하려 하니 장로가 보내 주었으나 이로움이 없었다.(패했다) 또한 장로의 장수 양백(楊白)등이 그의 유능함을 시기하자 마초는 마침내 무도(武都)를 따라 달아나 저족(氐) 중으로 들어갔다가 몸을 돌려 촉(蜀)으로 달아났다. 이 해가 건안 19년(214년)이다.
 
선주(先主-유비)가 사람을 보내 마초를 영접하자 마초는 군사를 거느리고 곧바로 성 아래에 도착했다. 성(城)안 사람들이 진포(震怖-두려움에 떪)하여 유장이 이내 계수(稽首-머리를 조아려 절함; 항복)하니 [4] 마초를 평서장군(平西將軍), 독임저(督臨沮-임저는 형주 남군 임저현)로 임명하고는 예전대로 도정후(都亭侯)로 삼았다. [5]
 
(4) [전략]典略 – 유비는 마초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익주(益州)를 얻었구나.” 

그리고는 사람을 시켜 마초를 멈추게 하고 은밀히 군사를 대어 주었다. 마초가 도착하자 군을 이끌고 성 북쪽에 주둔하게 했는데, 마초가 도착한 후 열흘이 지나기 전에 성도(成都)가 무너졌다.
 
(5) [산양공재기]山陽公載記 – 마초는 유비가 후대하는 것을 보고 유비와 더불어 말하며 늘 유비의 자(字)를 부르니 관우가 노하여 그를 죽일 것을 청했다. 유비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궁박해져 내게로 귀의했소. 그런데 경등이 분노하며 내 자(字)를 불렀다 하여 죽이자 하니, 천하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이겠소!” 

장비가 말했다, 

“그렇다면 응당 예(禮)를 보여야지요.” 

다음 날 크게 모이며 마초를 청했는데, 관우, 장비가 함께 도(刀)를 쥐고 곧게 서 있었다. 마초는 좌석(坐席)을 둘러보았을 때 관우, 장비를 보지 못했다가 그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니 마침내 다시는 유비의 자(字)를 부르지 않았다. 다음날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이제야 패망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주(人主-주인, 임금)의 자(字)를 부르다 하마터면 관우, 장비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구나.” 

이후로 유비를 존중하며 섬겼다. 

/ 신송지가 보건대(주석자인 배송지裵松之의 견해), 마초는 궁박해져 유비에 귀의하여 그의 작위를 받았는데 어찌 오만하게 유비의 자를 부를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유비가 촉으로 들어올 때 관우를 남겨 형주를 진수하게 했으니 관우는 일찍이 익주 땅에 있은 적이 없다. 그래서 관우는 마초가 투항했다는 말을 듣고 제갈량에게 서신을 보내 마초의 재주는 누구에 비견될 수 있는지를 물은 것으로 이 책(산양공재기)이 말하는 바대로가 아니니, 관우가 어찌 장비와 함께 곧게 서 있을 수 있었겠는가? 무릇 사람이 일을 행할 때는 모두 그것이 가능하다 하여도 불가함을 알면 이를 행하지 않는 법이다.

과연 마초가 유비의 자를 불렀다면 또한 이치로 볼 때 의당 그리해도 된다고 여겨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설령 관우가 마초를 죽일 것을 청했다 하더라도 마초는 이를 듣지 못했는데, 단지 두 사람이 곧게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슨 까닭으로 이내 (자신이 유비의) 자를 불렀기 때문임을 알아채고는 ‘하마터면 관우, 장비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고 말했겠는가? 말이 이치에 닿지 않음이 너무 심해 가히 분질(忿疾-분노하고 미워함)에 이르는구나. 원위(袁暐-헌제춘추의 지은이), 악자(樂資-산양공재기의 지은이) 등이 기재한 여러 대목은 추잡하고 헛되고 그릇되니(穢雜虛謬) 이와 같은 부류가 거의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다.
 
선주가 한중왕(漢中王)이 되자 (※ 219년의 일) 마초를 좌장군(左將軍), 가절(假節)로 임명했다. 
 
장무(章武) 원년(221년), 표기장군(驃騎將軍), 영(領) 양주목(涼州牧)으로 올리고 태향후(斄鄕侯)로 올려 봉했다. 책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짐이 부덕(不德)하나 지존(至尊)의 자리를 이어 종묘를 봉승(奉承)하게 되었다. 조조(曹操) 부자(父子)가 대대로 죄가 가득하니 짐은 참달(慘怛-참담하고 비통함)하여 열병으로 머리가 깨어질 듯하구나. 해내(海內)가 원망하고 분노하여 정(正)에 귀의하고 본(本)으로 되돌아오고 저(氐), 강(羌)이 솔복(率服-잇따르며 와서 복종함)하고 훈육(獯鬻- 흉노)이 의(義)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대는 북토(北土)에 신의를 드날리고 위무(威武-위엄과 무력) 또한 아울러 빛났도다. 이로써 그대에게 임무를 맡기니 효호(虓虎-포효하는 범)의 위용을 높게 드날려 만 리 밖까지 겸하여 바로잡고 백성들의 아픔을 구하도록 하라. 장차 조정의 교화를 밝히고 베풀어 멀고 가까운 이들을 품어 보호하고 상벌을 엄숙하게 삼가고 한나라의 복운을 두텁게 하여 천하의 기대에 보답하도록 하라.
 
장무 2년(222년)에 죽으니 이때의 나이가 47세였다. (※ 마초 생몰 : 176-222) 죽음에 임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했다.
 
- 신의 문종(門宗-종족) 2백여 명이 맹덕(孟德-조조)에게 주살 당해 거의 다 없어지고 다만 종제(從弟) 마대(馬岱)가 남았으니 미천한 종족을 위해 혈식(血食-제사)이 이어질 수 있도록 폐하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 외에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시호를 추증해 위후(威侯)라 했다. 아들 마승(馬承)이 후사를 이었다. 마대(馬岱)의 관위는 평북장군(平北將軍)에 이르렀고 진창후(陳倉侯)로 올려 봉해졌다. 마초의 딸은 안평왕(安平王) 유리(劉理)의 배필이 되었다. [6]
 
(6) [전략]典略 – 당초 마초가 촉으로 들어올 때 그의 서처(庶妻-첩)인 동(董)(씨)와 아들 마추(馬秋)는 남아서 장로에 의탁하고 있었다. 장로가 패망하자 조공이 이들을 손에 넣었는데, 동씨를 염포(閻圃)에게 하사하고 마추는 장로에게 주니 장로가 자기 손으로 직접 마추를 죽였다.

진수의 평:  마초는 융족과 용력에 의지해 자신의 일족을 망쳤으니 애석하구나! 곤궁함에 처하여 이로 인해 태평함으로 나아갔다면 더 낫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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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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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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