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전]]에서 분할


[전략]典略에서 이르길 -


마등은 자(字)가 수성(壽成)이고 마원(馬援)의 후예다. 

환제(桓帝:146-167) 때, 그의 부친은 자(字)가 자석(子碩)으로 (마평馬平 ※ 참고) 일찍이 천수의 난간위(蘭干尉-양주 천수군 난간현의 현위)를 지냈는데 그 후 관직을 잃고 이로 인해 (그대로) 농서(隴西)에 머물며 강족(羌)과 섞여 살았다.
 
※ 마등의 부친 - [후한서] 권72 동탁열전 이현 주에 인용된 헌제전(獻帝傳)에 의하면 마등의 부친은 마평(馬平). 그 외 내용은 여기의 [전략] 기사와 같음. 

집안이 가난해 처가 없으니 마침내 강녀(羌女)에게 장가들어 마등을 낳았다. 

마등은 어려서 가난해 산업(産業-가산)이 없었으므로 늘 창산(彰山)에서 나무를 베어 짊어지고 성시(城市)로 가서 팔아 스스로 생계를 이었다. 마등은 그 위인(爲人)됨이 신장 8척 남짓에 신체가 장대하며 얼굴과 코가 뛰어나고 남다르고 성정이 어질고 온후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공경했다. 
 
영제(靈帝) 말, 양주자사 경비(耿鄙)가 간사한 관원를 신임해 백성(民)인 왕국(王國) 등과 저족(氐), 강족(羌)이 반란을 일으키자 주군(州郡)에서는 백성 중에 용력을 갖춘 자를 모집해 이를 토벌하고자 했고 마등이 이에 응모했다. 주군(州郡)에서는 그를 남다르게 여겨 군종사(軍從事)로 임시로 삼고 부중(部衆)을 거느리게 했다. 적(賊)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군사마(軍司馬)에 임명되었다가 뒤에 공을 세워 편장군(偏將軍)으로 올랐고 또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올라 견(汧- 사례 부풍군 견현), 농(隴-양주 천수군 농현) 사이에 상시 주둔했다. 

초평(初平:190-193) 중, 정동장군(征東將軍)에 임명되었다. 이때 서주(西州)에 곡식이 부족 하자 마등은 스스로 표(表)를 올려 군중 사람들에게 곡식이 많이 모자라 지양(池陽-풍익군 지양현)에서 곡식을 구하려 한다 하고는 장평(長平) 기슭으로 둔(屯)을 옮겼다. 그러자 장수 왕승(王承) 등은 마등이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니 이에 마등의 영(營)을 공격했다. 이때 마등은 가까이 외출하고 대비가 없었으므로 마침내 패주하여 서쪽으로 갔다.
 
삼보(三輔-장안의 경조윤, 좌풍익, 우부풍을 합쳐 일컫는 말. 즉 장안 일대)가 어지러울 때에도 다시 동쪽으로 오지 않았고, 진서장군(鎭西將軍) 한수(韓遂)와 결탁해 이성형제(異姓兄弟-의형제)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서로 매우 친했으나 뒤에 부곡(部曲)이 서로 침입하게 되자 원수 사이(讐敵)가 되었다. 마등이 한수를 공격하자 한수가 달아났는데 무리를 합쳐 돌아와 마등을 공격해 마등의 처자식을 죽였고 싸움이 연이어 풀리지 않았다. 

건안(建安:196-220) 초, 국가의 강기(綱紀-기강)가 위태롭고 느슨해지니 사례교위 종요(鍾繇), 양주목 위단(韋端)을 시켜 그들을 화해하게 했다. 마등을 불러 괴리(槐里-부풍군 괴리현)로 돌아와 주둔케 하고 전임하여 전장군(前將軍) 가절(假節)로 삼고 괴리후(槐里侯)에 봉했다. 북쪽으로 호(胡-흉노 또는 북방 민족 통칭)의 침범을 방비하고 동쪽으로 백기(白騎-참고)를 방비하며, 선비를 대우하고 어진 이를 천거하며 백성의 목숨을 가엾이 여겨 구제하니 삼보(三輔)가 매우 편안해지고 그를 공경했다.

※ 백기(白 騎) - [후한서] 권71 황보숭 주준열전에 의하면 황건적 이후 봉기한 도적들 중 장백기(張白騎-백마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백기)가 언급되며, [삼국지] 방덕전에 따르면 홍농에서 장백기가 모반하자 방덕이 마등을 수행해 이를 토벌했다고 함.

(건안) 13년(208년)(※ 참고), 마등을 불러 위위(衛尉)로 삼자 마등은 스스로 연로(年老)한 것을 보고 마침내 (조정으로) 들어와 숙위(宿衛)했다. 
 
※ 마등이 입조한 해 

/건안 15년(210년) vs 건안 13년(208년) - 후강(侯康-청나라 때 학자)은 ‘五는 응당 三으로 적어야 한다.’고 했다. 

(사 마광의) 통감고이(通鑑考異)에서는 ‘장기전에 의하면 조공이 장차 형주를 정벌하려 할 때 장기에게 명해 마등을 설득해 입조하도록 했으니 三이란 글자가 잘못되어 五가 된 것으로 보인다.’(이런 근거에 따라 [자치통감]에서는 [전략]의 이 기사를 채용하면서 장기전 기사 등과 함께 모두 건안 15년이 아닌 건안 13년(208년) 기사로 수록)고 했다. (노필盧弼의 [삼국지집해]) … 같은 이유로 중화서국 점교본에서도 원문의 十五를 十三으로 고침.

당초 조공(曹公-조조)이 승상(丞相)이 되어 마등의 장자 마초를 벽소(辟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 조조가 승상이 된 건 208년의 일이니 뒤에 이어지는 사건들과 시간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아마 조조의 관직명을 잘못 적은 것 같습니다.) 

마초는 그 뒤 사례교위(종요)의 독군종사(督軍從事)가 되어 곽원(郭援)을 토벌했는데 날아온 화살에 맞자 낭(囊-자루, 주머니)으로 자신의 다리를 감싼 채 싸워 곽원을 격파하고 참수했다. 조령으로 서주자사(徐州刺史)에 임명되고 그 뒤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되었다. 

마등이 입조하게 되자 마초를 편장군으로 임명해 마등의 영(營)을 거느리게 했다. 또 마초의 동생 마휴(馬休)를 봉거도위(奉車都尉), 마휴의 동생 마철(馬鐵)을 기도위(騎都尉)로 삼고 그 가속들을 모두 업(鄴)으로 이주시키니 오직 마초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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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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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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