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출처: 고원님의 블로그

 
법정(法正)은 자(字)가 효직(孝直)이고 부풍(扶風) 미(郿)현 사람이다. 조부 법진(法眞)은 청절(淸節)로 이름이 높았다. (주1) 
 
(주1) [삼보결록주]三輔決錄注 – 법진(法眞)은 자가 고경(高卿)이고 어려서 오경(五經)에 밝고 또한 참위(讖緯)에 통달했는데 배움에 일정한 스승이 없었으나 고재(高才-빼어난 재주)를 지녔다고 이름났다. 늘 복건(幅巾) 차림으로 부풍 태수를 만났는데 태수가 말했다, 

“애공(哀公)이 비록 불초했으나 오히려 중니(仲尼-공자)를 신하로 삼았고 유하혜(柳下惠)는 부모의 나라를 떠나지 않았소. 삼가 공조(功曹)로 삼고자 하니, 어떻소이까?” 

법진이 말했다, 

“명부(明府-태수의 존칭)께서 예를 갖추어 대우해주시니 사시로 찾아뵙겠으나 만약 저를 관리(吏)로 삼으려 하시면 저 법진은 장차 북산의 북쪽이나 남산의 남쪽으로 갈 것입니다.”

이에 부풍태수가 감히 관리로 삼지 못했다. 당초 법진이 약관의 나이에 이르기 전 부친이 남군(南郡)에 있었는데 그곳으로 걸어가서 부친에게 문안드렸다. 떠나려 하자 부친이 그를 머물게 하고 정단(正旦-정월 초하루)까지 기다려 조리(朝吏)들이 모이는 것을 살펴보게 했다. 모인 자가 수백 명이었는데 법진은 그들이 부친과 대화하는 것을 창문을 통해 엿보았다. 모임이 끝나고 법진에게 물었다, 

“누가 어질더냐?” 

법진이 말했다, 

“조연(曹掾) 호광(胡廣)에게 공경(公卿-삼공구경)의 기량이 있습니다.” 

그 뒤 호광은 과연 구경(九卿), 삼공(三公)의 지위를 역임했고 세상 사람들은 법진의 사람 알아보는 능력에 탄복하게 되었다. 앞뒤로 징벽(徵辟-불러서 벼슬을 내림)되었으나 모두 응하지 않으니 우인(友人-벗)인 곽정(郭正) 등이 이를 훌륭하게 여기고 현덕 선생(玄德先生)이라 불렀다. 나이 89세로 중평 5년(188년)에 죽었다. 법정의 부친 법연(法衍)은 자가 계모(季謀)이고 사도연(司徒掾), 정위좌감(廷尉左監)을 지냈다.
 
건안 초, 천하에 기황(饑荒-기근)이 들자 법정은 같은 군(郡) 사람인 맹달(孟達)과 함께 촉으로 들어가 유장(劉璋)에게 의탁했다. 오랜 뒤에 신도령(新都令-광한군 신도현의 현령)이 되고 그 뒤 군의교위(軍議校尉)에 임명되었다. (중하게) 임용되지 못한데다 또한 그의 주읍(州邑)사람으로 함께 타향에서 손님 노릇하는(僑客) 자들에 의해 바른 품행이 없다고 비방 받으니 그 뜻을 펼치지 못했다. 
 
익주별가 장송(張松)이 법정과 서로 친했는데 유장이 함께 큰일을 하기에 부족하다 하며 늘 남몰래 탄식했다. 장송이 형주에서 조공(曹公-조조)을 만나고 돌아온 뒤 유장에게 조공과 관계를 끊고 선주(先主-유비)와 결탁하도록 권했다. 유장이 말했다, 

“누가 사자로 갈 만하오?” 

이에 장송이 법정을 천거했는데 법정이 사양했으나 부득이하게 가게 되었다.

법정이 돌아온 뒤 장송에게 선주가 웅략(雄略)을 갖추었다고 칭설(稱說-칭송; 진술)하고 은밀히 협규(協規-협력)하며 (선주를) 추대하여 받들길 원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그 뒤 유장은 조공(曹公)이 장수를 보내 장로(張魯)를 치려 한다는 것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를 틈타 장송이 유장을 설득하길 선주를 맞아들여 그로 하여금 장로를 치게 하고, 다시 법정에게 명을 받들게 했다. 
 
법정은 유장의 뜻을 전한 뒤 은밀히 선주에게 계책을 올렸다, 

“명장군(明將軍)의 영명한 재주로 유목(劉牧-익주목 유장)의 유약함을 틈타십시오. 장송은 주(州)의 고굉(股肱-신임 받는 중신)으로 내부에서 향응(響應-호응)할 것입니다. 그 연후에 익주의 은부(殷富-풍성함)를 기반으로 하고 하늘이 내린 험조함에 기대면 이로써 대업을 이루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입니다.” 
 
선주가 이를 옳게 여기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서쪽으로 가서 부(涪-광한군 부현)에서 유장과 만났다. 북쪽으로 가맹(葭萌-광한군 가맹현)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돌아와 유장을 공격했다.
 
정도(鄭度)가 유장을 설득했다 (주2) 
 
(주2) [화양국지]華陽國志 – 정도(鄭度)는 광한(廣漢) 사람이고 주(州)의 종사(從事)를 지냈다.
 
- “좌장군(左將軍-좌장군 유비)은 외떨어진 군사(縣軍)로 우리를 습격하니 군사가 1만을 채우지 못하고 사중(士衆-군사)들이 귀부하지 않고, 들의 곡식에 의존하며 군(軍)에는 치중(輜重)이 없습니다. 그 계책으로는 파서(巴西)와 재동(梓潼)의 백성들을 내수(內水)와 부수(涪水) 서쪽으로 모두 내몰고 그곳의 창고와 들의 곡식을 모두 불태운 뒤 보루를 높이고 해자를 깊게 판 채 조용히 그들을 기다리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저들이 당도하여 싸움을 청해도 들어주지 않으면 오래도록 군량을 얻을 곳이 없으니 백일이 되기 전에 필시 스스로 달아날 것입니다. 달아날 때 공격하면 틀림없이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선주가 이를 듣고 증오하여 법정에게 물었다. 법정이 말했다, 

“끝내 이 계책을 쓰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과연 법정의 말과 같았으니 유장이 그 수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적에 맞서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말은 들어 보았으나 백성들을 움직여 적을 피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소.” 

그리고는 정도(鄭度)를 내치고 그 계책을 쓰지 않았다. 
 
군(軍)이 낙성(雒城)을 포위하게 되자 법정이 유장에게 전(牋-서신)을 보냈다.

– “저 법정이 본래 재주가 부족해 맹호(盟好)가 훼손되게 하였으나, 좌우(左右-주변)에서 본말(本末)을 분명히 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제 탓으로 돌려 모욕을 입혀 내 몸을 망치고 그 욕됨이 집사(執事-귀하)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우니, 이 때문에 바깥에서 몸을 상하면서도 감히 반명(反命-복명. 일을 보고함)하지 못했습니다. 성청(聖聽-귀한 사람이 귀로 듣는 것)이 제 말을 싫어할까 두려워 그 사이 전(牋)을 올리지 않았으나 예전의 대우를 돌이켜보면 첨망(瞻望-우러러봄)하며 슬플 뿐입니다. 그러나 앞뒤로 오로지 복심(腹心-진심)을 피력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속마음을 감추며 최선을 다하지 않은 바가 없으나 다만 제가 어리석고 꾀가 부족하며 정성(精誠)으로 감복시키지 못해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국사(國事)가 이미 위태롭고 화해(禍害-화란, 재난)가 곧 닥칠 것이기에 비록 바깥에 버려진 신세로 제 말이 증오를 더할 수도 있으나 소회(所懷)를 극진히 토로해 남은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명장군(明將軍-유장을 지칭)의 본심은 저 법정이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구구하게 좌장군(左將軍-유비)의 뜻을 잃고 싶지 않았으나 창졸간에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좌우에서 영웅의 종사지도(從事之道)에 통달하지 못해 신의를 어기고 맹세를 욕되게 해도 된다고 말하며, 의기(意氣)로 서로 맞추어(意氣相致) 해와 달이 서로 바뀌듯 하고(日月相遷) 귀로 듣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즐거운 것(順耳悅目)을 추구(趨求)하여 아첨하는 말로 뜻에 맞출 뿐. 원려(遠慮-앞일을 헤아리는 깊은 생각)로써 나라를 위한 심원한 계책을 도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태가 이미 변한 뒤에도 또한 강약의 형세를 헤아리지 못하니, 좌장군이 멀리 외떨어진 군사로 양곡의 비축이 없다 하며 다수로 소수를 공격해 광일(曠日-많은 날을 허송세월함)하며 서로 대치하려 합니다. 그러나 관(關)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곳은 번번이 격파되었고 이궁(離宮), 별둔(別屯)은 날마다 절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비록 낙성(雒城) 아래에 만 명의 군사가 있지만 모두 군진이 무너진 병졸들(壞陳之卒)이며 격파된 군의 장수들(破軍之將)이니 만약 하루아침의 싸움을 치르려 한다면 그 군사와 장수의 세력으로는 실로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멀리 기약하여 각각의 군량을 헤아려본다면, 지금 이쪽 둔영의 수비는 이미 견고하고 곡미(穀米-곡식)가 이미 쌓여 있으나, 명장군의 토지는 날로 깎이고 백성은 날로 곤궁해지니 적대하는 자들이 많아져 곡식을 공급해야 하는 곳은 멀리까지 확대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제가 헤아려봐도 필시 (그쪽이) 먼저 곡식이 고갈하여 장차 다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헛되이 서로 지키는 것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지금 장익덕(張益德-장비)의 수만 군사가 이미 파동(巴東)을 평정하고, 건위(犍爲)의 경계로 들어와 군을 나누어 자중(資中-건위군 자중현), 덕양(德陽-광한군 덕양현)을 평정하며 세 갈래 먼 길로 침범하고 있습니다. 장차 이를 어찌 막으시렵니까? 
 
본래 명장군을 위해 계책을 꾸민 자는 필시 이쪽 군이 멀리 외떨어진 군사로 군량이 없고 궤운(饋運-운량)도 미치지 못하며 군사는 적고 뒤잇는 군사도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지금 형주로 통하는 도로가 뚫려 군사 수가 열 배 인데다 손거기(孫車騎-거기장군 손권)도 동생과 이이(李異), 감녕(甘寧) 등을 보내 뒤를 잇고 있습니다. 
 
만약 주객의 형세(客主之勢)를 다툼에 있어 토지로써 승리를 결정한다면 지금 이쪽은 파동(巴東)을 전부 차지하고 광한(廣漢), 건위(犍爲)는 절반 이상을 평정하였고 파서(巴西) 한 군(郡) 또한 명장군의 소유가 아닙니다. 헤아려보건대 익주에서 의지하는 바는 오로지 촉군인데 촉군 또한 파괴되었습니다. 3분의 2를 잃은 데다 관원과 백성들은 피폐해져 난을 일으키려 생각하는 자가 열 호(戶) 중에 여덟 호나 됩니다. 적이 멀리 있어도 백성들이 노역을 감당하지 못하니 적이 가까워지면 하루아침에 주인을 바꿀 것이고, 광한군의 여러 현들이 그 분명한 예입니다. 
 
또한 어복(魚復-파군 어복현)과 관두(關頭)는 실로 익주의 복화지문(福禍之門)이나 지금 두 문이 모두 열리고 견고한 성이 모두 떨어졌으며 제군(諸軍)들이 아울러 격파되어 군사와 장수들이 함께 소진되었습니다. 적이 여러 길로 아울러 진격하여 이미 심복(心腹-가슴과 배, 중심부)에까지 들어왔는데, 앉아서 도읍과 낙성을 지키고 있으니 존망지세(存亡之勢)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대략적으로 그 겉만 견주었을 뿐, 그 나머지 굴곡(屈曲-상세한 전말)은 말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저 법정의 어리석음으로도 오히려 이 일이 다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데, 하물며 명장군 좌우의 밝고 지혜로운 모사들이 어찌 이 이치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아침저녁으로 총행을 탐하며 용납되기 위해 아첨부리고, 원대한 계획을 꾀하지 않으며 마음을 다해 좋은 계책을 바치지 않을 뿐입니다. 만약 사세가 궁박해지면 각자 살 길을 찾아 그들의 문호(門戶)를 구제할 뿐 언행을 뒤집어 지금 (그들이 말하는) 계책과 다를 것이니, 명장군을 위해 사난(死難-국가의 위난에 처해 목숨을 바침)을 다하지 않고 존문(尊門-상대방의 가문을 높여 이르는 말)이 오히려 그 우환을 뒤집어 쓸 것입니다. 
 
저 법정이 비록 불충하다는 비방을 받았으나 내심 스스로는 성덕(聖德)을 저버렸다 생각지 않으며 분의(分義-분수에 맞는 정당한 도리)를 돌이켜 생각하며 실로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좌장군께서는 처음 촉에 들어올 때처럼 옛 마음이 여전하며 실로 박대하려는 뜻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제가 생각건대 변화를 꾀한다면 존문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19년(214년), 진격하여 성도(成都)를 포위했는데, 유장의 촉군태수 허정(許靖)이 성을 넘어 항복하려 했으나 일이 발각되어 성사되지 못했다. 유장은 위망(危亡)이 가까이 닥쳤으므로 허정을 죽이지 않았다. 유장이 계복(稽服-머리를 조아리고 항복함)한 뒤 선주는 이 일 때문에 허정을 박대하며 임용하지 않았다. 
 
법정이 설득했다.
 
- "천하에 헛된 명예를 얻었으나 그 내실이 없는 자가 있으니 허정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공(主公)께서 바야흐로 대업을 시작하려 하며 천하인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데, 허정의 허명이 사해(四海)에 널리 퍼져있으니 만약 그를 예우하지 않으면 천하인들은 이를 들어 주공께서 어진 이를 천대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의당 그를 경중(敬重-공경하고 중히 여김)해 원근의 사람들을 현혹하여 옛적 연왕(燕王)이 곽외(郭隗)를 대우했던 일을 뒤따르십시오.”(※) 
 
이에 선주가 허정을 후대했다. (주3) 
 
(주3) 손성(孫盛)이 말했다 – 무릇 현인을 예우하고 덕을 숭상하는 것은 나라의 요도(要道-긴요한 도리)이고 봉묘(封墓-묘에 흙을 쌓아 올림), 식려(式閭-마을 입구 이문에 이르러 수레위에서 예를 표함. 현인을 존숭함을 비유)하는 것은 선왕의 아름다운 궤범이다. 이 때문에 빼어난 행실을 본받고 높은 의로써 세상을 뒤덮은 연후에 가히 오래도록 사해를 주시하며 뭇 사람들을 진복(振服)시킬 수 있는 것이니, 존숭되는 자가 만약 그 사람됨이 아닌 자라면 그 도는 행해지지 않는 법이다. 허정은 집에 있을 때는 벗과 불목하고 출신(出身)해서는 처해서는 안 될 지위를 받았으며, 신의를 말하며 마음을 바꾸고 견식을 논하며 위태로운 허물의 으뜸이 되었으니, 어찌 먼저 그를 높여 다른 이들을 감격시켜 불러 모을 수 있겠는가? 부허(浮虛)한 자를 이처럼 존숭하여 영예를 투박(偸薄-경박)하게 하였으니 곧고 의로운 선비들은 장차 어찌 예우하겠는가? 법정이 현혹하는 술수에 힘써 귀상(貴尙-숭상)하는 기풍을 거스르고, (허정을) 곽외(郭隗)에 비유했으나 그에 견줄 수 있는 바가 아니다. 
 
/ 신 송지가 보건대(손성의 논평과 허정의 사람됨에 대한 주석자인 배송지의 견해), 곽외는 어질지 못한 자로 오히려 권계(權計)로써 은총을 입었다. 더구나 문휴(文休-허정)는 그 명성이 일찍이 드러난 자로 천하에서 그를 영위(英偉)라 일컬었는데, 비록 말년에 결함이 있어 그 섬김에 있어 창철(彰徹-밝게 드러나고 투철함)하지 못했으나 만약 그를 예우하지 않았다면 어찌 원근을 미혹할 수 있었겠는가? 법정이 허정을 곽외에 비교한 것이 부당하다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손성은 봉묘 식려를 들어 비판하니 어찌 이토록 엉뚱한가! 그렇다면 연(燕) 소공(昭公) 또한 잘못인데 어찌 오직 유옹(劉翁-유비)만을 비판하는가? 벗과 불목한 일에 이르러서는 그 잘못은 자장(子將-허정의 종제인 허소)에게서 비롯되었고 장제(蔣濟)의 논의를 찾아보면 문휴(文休)의 허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손성은 그가 처해서는 안 될 직책을 받았다고 나무랐는데 혹 동탁 때에 벼슬한 것을 말한 것이라면  동 탁이 처음 정권을 잡은 뒤 현준(賢俊)들을 발탁하여 그 책명과 작위를 받은 자가 숲처럼 무성하니 모두 그러하다. 문휴(文休)가 선관(選官)이 된 것은 동탁이 오기 전으로 그 뒤 중승(中丞)으로 승진하고 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를 들어 폄하한다면 (동탁 때 벼슬한) 순상(荀爽), 진기(陳紀) 같은 무리도 모두 세상에서 배척되어 버려져야 할 것이다. (※ 허정전에 의하면 허정은 영제 때 상서랑으로 원래 관리 선발을 주관했었는데, 이후 동탁이 정권을 잡자 그의 명에 의해 천하의 선비들을 대거 발탁하게 됨)
 
※ 곽외를 대우했던 일 - [전국책] 권29 중 일부로 ‘선종외시’라는 고사성어의 출전입니다. 찾아본 김에 관련대목을 전부 풀어보았습니다. 참고로 [사기] 권34 연소공세가에도 축약된 형태로 거의 똑 같은 내용의 기사가 있는데 아마 전국책의 이 부분이 소스가 된 것 같습니다.
 
연(燕) 소왕(昭王)은 연나라가 (제나라에 의해) 격파된 후 즉위했다. 몸을 낮추며 예물을 후하게 하여 현자들을 초빙해 장차 설욕하려 하니 이 때문에 곽외(郭隗)선생을 찾아가 만났다. 그가 말했다, 

“제나라가 우리의 어지러운 틈을 타 우리 연나라를 습격하여 격파했소. 나는 우리 연나라가 소국이고 힘이 적어 복수하기에는 부족함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현사(賢士)들을 얻어 나랏일을 함께 하며 선왕의 치욕을 씻는 것이 내가 소원하는 바요. 감히 묻건대 나라를 들어 설욕하자면 어찌 해야 하겠소?” 
 
곽외선생이 대답했다, 

“천자(帝者)는 스승과 함께 처하고 왕자(王者)는 벗과 함께 처하고 패자(霸者)는 신하와 함께 처하고 망국(亡國)은 노복(役)과 함께 처합니다. (아랫 신하들을 각각 스승, 벗, 그냥 신하, 노복처럼 대우한다는 말) (신하들을) 몸을 굽혀 섬기고 북면하여 학문을 배운다면 (이를 보고) 자신보다 백배 나은 이들이 당도할 것입니다. 스스로 행하는 것을 우선하고 쉬는 것을 뒤로 하며, 물어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우선하고 침묵하는 것을 뒤로 한다면 자신보다 열배 나은 이들이 당도할 것입니다. 남이 행할 때 자신도 행하면 자신과 같은 자가 당도할 것입니다. 궤(几-탁자)에 기대고 지팡이에 의지해 곁눈질과 손가락으로 사람을 부리면 천한 일을 할 사람이 당도할 것입니다. 만약 함부로 노려보며 분격하고 큰 소리로 꾸짖어댄다면 도예(徒隸-노예, 종복)들이 당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로부터 도의에 따라 선비들을 불러 모으는 법입니다. 왕께서 실로 나라 중의 현인을 두루 뽑고 그 문하를 친히 방문하십시오. 천하에서 왕께서 현신을 방문했다는 것을 들으면 천하의 선비들이 필시 연나라로 달려올 것입니다.” 
 
소왕이 말했다,

“과인이 장차 누구를 방문할 만하오?” 

곽외선생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옛날 임금 중에 천금으로 천리마를 구하는 자가 있었으나 3년 동안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연인(涓人-궁궐청소를 맡은 관원)이 임금에게 그 일을 자청하자 임금이 그를 보냈습니다. 석 달 만에 천리마를 구했는데 말이 이미 죽어 있었으나 그 머리를 오백 금에 구입하고 이를 임금에게 고했습니다. 임금이 대노하여 ‘구하는 것은 살아있는 말인데 어찌 죽은 말을 가져 와 오백 금을 버렸느냐’고 했습니다. 이에 연인이 대답하길, ‘죽은 말조차 오백 금에 구입하니 하물며 살아있는 말은 어떻겠습니까? 천하에서 필시 왕께서 말을 능히 사들인다 여길 것이니 말이 곧 당도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이에 1년도 되기 전에 천리마가 세 필이나 이르렀습니다. 지금 왕께서 실로 선비들을 불러 모으려면 먼저 저 곽외로부터 시작하십시오.(선종외시先從隗始) 저 곽외 같은 자조차 섬김을 받으니 하물며 저보다 현명한 자들이 어찌 천리 길을 멀다 하겠습니까?” 

이에 소왕이 곽외를 위해 궁을 짓고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그러자 악의(樂毅)가 위나라로부터 오고 추연(鄒衍)이 제나라로부터 오고 극신(劇辛)이 조나라로부터 왔으며 선비들이 다투어 연나라에 모여들었다. 
  
법정을 촉군태수(蜀郡太守) 양무장군(揚武將軍)으로 삼으니, 밖으로 도기(都畿-도읍과 그 주변)를 통수하고 안으로 모주(謀主-주요한 모사)가 되었다. 밥 한 그릇 얻어먹은 은혜(一餐之德)나 눈 흘긴 사소한 원한(睚眥之怨)을 되갚지 않는 법이 없었고, 자신을 훼상(毁傷)한 자 몇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 
 
어떤 이가 제갈량에게 말했다, 

“법정이 촉군에서 지나치게 종횡(縱橫)하니 장군께서 의당 주공께 여쭈어 그의 위복(威福-위엄과 은혜, 또는 이를 내리는 권한)을 억누르십시오.” 
 
제갈량이 대답했다, 

“주공(主公)께서 공안(公安)에 계실 때 북쪽으로는 조공(曹公-조조)의 강성함을 두려워하고 동쪽으로는 손권이 핍박함을 꺼렸으며, 가까이는 손부인이 곁에서 변고를 일으킬까 겁내시었으니, 그 당시는 진퇴(進退)가 낭발(狼跋-나아가고 물러남이 어려움에 빠짐)하였소. 그러다 법효직이 주공의 보익(輔翼)이 되어 (주공을) 높이 날게 하고 다시 남의 제약을 받지 않게 했으니, 어찌 법정을 금지해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게 하겠소!” 
 
당초, 손권은 여동생을 선주에게 시집보냈는데, 여동생은 재기가 있고 강맹(剛猛-굳세고 사나움)하여 여러 오라버니들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시비(侍婢-계집종) 백여 명이 모두 도(刀)를 잡고 시립하니 선주가 매번 들어갈 때마다 내심으로 늘 늠름(凜凜-두려워함)해했다. 제갈량은 또한 선주가 법정을 매우 경애하고 신임함을 알았기에 이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주4)
 
(주 4) 손성이 말했다 – 무릇 위복(威福)이 아래로부터 함부로 거행되면(自下) 가문을 망치고 나라를 해치는 길이 되고, 형벌이 총신에 의해 전횡되면 정치를 해치고 도리를 어지럽히는 근원이 되니, 어찌 공신(功臣)이 함부로 굴고 폐행(嬖幸-임금의 총애를 받는 자)이 국권을 농단하게 한단 말인가? 

옛날 전힐(顚頡)이 비록 부지런했으나 명을 거스른 형벌을 면하지 못했고, 양간(楊幹)이 비록 육친이었으나 오히려 난행(亂行)한 벌을 더해서 받았으니, 무릇 총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왕헌(王憲-왕법)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갈씨(諸葛氏-제갈량)의 말은 정치와 형벌을 그르쳤다 할 것이다.
 
(※ 전힐은 춘추시대 진(晉) 문공의 오랜 방랑을 호종한 공신이나 죄를 범해 효수 당했고, 양간은 진(晉) 도공(悼公)의 동생으로 군법을 어지럽히자 사마위강(司馬魏絳)이 그의 마부를 대신 처벌함)
 
건안 22년(217년), 법정이 선주를 설득하며 말했다.
 
- “조조가 일거에 장로를 항복시켜 한중을 평정하고도 이 기세를 틈타 파(巴), 촉(蜀)을 도모하지 않고 하후연(夏侯淵), 장합(張郃)을 남겨 둔수(屯守)케 하고 자신은 황급히 북쪽으로 돌아갔으니, 이는 그의 지모가 미치지 못하거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필시 내부에 우환이 닥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하후연과 장합의 재략(才略)을 헤아려보면 우리의 장수(將帥)들보다 낫지 못하니 군사를 일으켜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는 때에 이르러 농업을 일으켜 곡식을 쌓고 (저들의) 빈틈을 엿보고 기회를 노린다면, 상(上)으로는 구적(寇敵)을 무너뜨려 왕실을 받들거나, 중(中)으로는 옹주, 양주를 잠식해 영토를 넓힐 수 있고, 하(下)로는 요해지를 굳게 지키며 오래도록 유지하는 계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선주가 그 계책을 좋게 여기고 이에 제장들을 이끌고 한중으로 진병했고 법정 또한 종행(從行-수행)했다. 
 
건안 24년(219년), 선주가 양평(陽平)으로부터 남쪽으로 면수(沔水)를 건너 산을 따라 점차 전진하여 정군(定軍), 흥세(興勢)에 영채를 세우니 하후연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그 땅을 다투었다. 법정이 말했다, 

“가히 공격할 만합니다.” 

선주가 황충(黃忠)에 명해 높은 곳에 올라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이를 공격하게 하여 하후연군을 대파했고 하후연 등은 참수 당했다. 조공(曹公)이 서쪽을 정벌하며 법정의 계책임을 듣고 말했다, 

“나는 예전부터 현덕(玄德-유비)이 이 같은 일을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니 필시 남의 가르침을 받았을 줄 알았다.” (주5)
 
(주5) 신 송지가 보건대, 촉과 한중은 입술과 이의 관계와 같으니 유주(劉主-유비)의 지모가 어찌 이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장차 계략을 펼치기 전에 법정이 먼저 말했을 뿐이다. 무릇 좋은 모책을 들어 써서 공업을 이루는 것은 패왕된 자로서 누구나 그러하지 않던가? 위무(魏武-위무제 조조)가 이를 남의 가르침으로 여겼다면 또한 용렬하지 않은가! 이는 아마도 욕되고 한스러운 나머지 한 말로, 사실을 헤아려서 마땅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선주가 한중왕에 오르자 법정을 상서령(尙書令), 호군장군(護軍將軍)으로 삼았다. 그 이듬해(220년) 죽으니 그때 나이 45세였다. 선주가 그를 위해 며칠 동안 눈물을 흘렸다. 시호를 내려 익후(翼侯)라 했다. 아들 법막(法邈)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고 그의 관직은 봉거도위, 한양태수에 이르렀다. 
 
제갈량과 법정은 비록 호상(好尙-좋아하고 숭상하는 바. 취향, 기호)이 서로 같지 않았으나 공의(公義-공론, 공적인 도의)로 서로 따랐고(以公義相取) 제갈량은 늘 법정의 지술(智術-지모와 권술)을 높게 여겼다. 
 
선주가 존호에 칭한 뒤 장차 동쪽으로 손권을 정벌해 관우의 치욕을 되갚으려 하니 뭇 신하들이 여럿 간언했으나 하나같이 따르지 않았고, 장무 2년(222년) 대군이 크게 패하고 백제(白帝)로 돌아와 머물게 되었다.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법효직이 살아 있었다면 능히 주상을 제지해 동쪽으로 가시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동쪽으로 가셨다 하더라도 필시 경위(傾危-형세가 위태로워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6)
 
(주6) 선주가 조공(曹公)과 함께 다툴 때 형세가 불리했다. 의당 퇴각해야 했으나 선주가 크게 화를 내며 퇴각하려 하지 않으니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는데 법정이 선주의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선주가 말했다,

“효직은 화살을 피하시오.” 

법정이 말했다, 

“명공께서 친히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당해내시는데 하물며 소인이겠습니까?” 

이에 선주가 말했다, 

“효직, 내가 그대와 함께 물러나겠소.” 

그리고는 퇴각했다.
 
평한다. (권37 방통법정전 말미의 평으로, 방통, 법정에 대한 진수 평) 
 
방통은 평소 인류(人流-사람을 견줘보는 것)와 경학(經學), 사모(思謀-모책을 생각함)를 좋아하니 형(荊), 초(楚) 땅에서 그를 고준(高俊)이라 일컬었다. 법정은 일의 성패(成敗-성공과 실패)를 보는데 뛰어나고 기획(奇畫-기이한 꾀), 책산(策算-계책, 계산)을 지녔으나 평소 덕이 있다 칭송되지는 못했다. 위나라 신하에 견주자면 방통은 순욱의 중숙(仲叔-형제, 막상막하)이고 법정은 정욱, 곽가의 주려(儔儷-견줄만한 짝, 동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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