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許靖)은 자가 문휴(文休)이고, 여남군 평여현 사람이다. 젊었을때, 사촌동생 허소(許劭)와 함께 인물을 평가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사사로운 성정에는 부합되지 않았다. 허소는 군의 공조가 되었지만, 허정을 배척하여 봉록을 얻을 수 없게 하였다. 그래서 허정은 혼자 힘으로 살아야만 했다.


영천군의 유익은 여남태수가 되자, 허정을 계리로 천거하고 효렴으로 추천했다. 허정은 상서랑으로 임명되어 관리 선발을 주관했다. 영제가 붕어하고 동탁이 정권을 잡자, 한양군의 주비를 이부상서로 임명하여 허정과 공동으로 성의해 천하의 선비들을 발탁하거나 물러나게 하고, 탐관오리를 추방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않은 인물을 발탁하게 했다.

그들은 영천의 순상, 한융, 진기등을 승진시켜 기용하여 공ㆍ경ㆍ군수로 임명했으며, 상서 한복을 기주목으로, 시중 유대를 연주자사로, 영천의 장자를 남양태수로, 진류의 공주(孔伷)를 예주자사로, 동군의 장막을 진류태수 임명하였으며, 허정을 파군태수로 승진시켰다. 허정은 취임하지 않고 어시중승을 보좌했다. 한복 등은 관직에 취임한 후, 각각 병사를 출동시켜 경도로 돌아가 동탁을 주살하려고 했따. 동탁은 주비에게 노여워하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훌륭한 선비를 발탁하여 등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여러분들의 건의에 따라서 천하의 인심을 배반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임용한 사람들은 취임하는 날 돌아와 나를 공격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의지하겠습니까!"

주비를 질책하여 나가도록 하고 밖에서 그를 죽였다. 허정의 사촌형인 진나라의 상 허창(許瑒)이 또 공주(孔伷)의 모반 계획에 협력하였으므로, 허정은 처형당하게 될것을 두려워하여 공유에게로 달아났다. 


촉기에서 이르길: 허정은 후에 직접 상주하여 이렇게 말했다.


“역적의 무리에게 삶을 구하는 것은 참지 못하는 것이고, 관직에 집착하여 스스로 위험하게 하는 것은 죽어도 도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옛 사람이 위험하거나 곤란함을 만나면 의식적으로 일상적인 도의를 떠나 비상수단으로 자신의 이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공주가 죽은 후, 허정은 양주자사 진위에게 의지했다. 진위가 죽자, 오군도위 허공, 회계태수 왕랑은 평소 허정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서 보호했다. 허정은 친척이나 같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기율을 세우고 생계를 꾸려나갔는데, 인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손책이 동쪽으로 장강을 건너자, 모두 교주로 달아나 난리를 피했다. 허정은 직접 해안가에 앉아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과 먼 친척을 먼저 출발시킨 후에야 비로소 뒤에 떠났다. 당시 이 모습을 본 사람들 중에서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교지에 도착하자, 교지태수 사섭이 경읠르 갖고 후하게 대우했다. 진국의 원휘가 교주에 의탁하여 머물고 있었는데, 원휘는 상서령 순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 허문휴는 걸출한 재능을 갖춘 위대한 선비로서, 지모와 책략은 국가의 대사를 계획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고향을 떠난 이래로 많은 선비들과 함께 행동을 했는데, 위급한 상황이 있을 때마다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은 뒤에 생각했으며, 멀고 가까운 친족들과 굶주림과 추위를 함께 합니다. 동족에 대한 규율도 그의 인자함, 용서 측은함으로 하여 모두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일이 또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

녹거군 장상(張翔)은 왕명을 받들어 교부에 사자로 갔는데, 그 기회를 타서 허정을 초빙하여 그와 충성을 맹서하도록 하려고 했다. 허정은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만기론(萬機論)에 이르길: 장상(張翔)의 자는 원봉(元鳳)이다.


허정은 조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 세상에는 융이의 침입이 있고, 재화나 난리가 모여들고 있습니다. 겁많고 무능한 저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직접 이민족을 도망나온 지 10년이나 되었으며, 길흉과 예의는 황폐해졌습니다. 과거 회계에 있을 떄 그대가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언사와 감정이 친밀하였으므로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습니다. 원술이 쇠약한 가족들에게 명령하여 혼란을 조장하고 반역자들을 선동하여 나루터나 길을 전부 폐쇄시키도록 하였을 때, 비록 마음은 북방을 향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씁니다.

유정례의 군대가 퇴각하고 원술의 병사가 전진했으므로 회계는 무너졌으며 경흥은 근거지를 잃었고 삼강오호가 전부 포로의 천하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곤궁함은 타개해 나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원패ㆍ등자효 등과 배를 타고 푸른 바다를 건너 남쪽의 교주까지 갔습니다. 도중에 동구ㆍ민ㆍ월나라를 지나며 만리 길을 왔는데, 한의 영토는 보이지 않았으며, 풍랑 속에 떠밀려 다녔습니다. 또 양식이 없어 풀을 먹었고, 굶주려 죽는 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남해를 건넌 후, 남해태수 아효덕(兒孝德)과 만나 그대가 충의를 떨치고 군대를 정돈하여 서쪽으로 가서 황제를 영접하고, 중악을 순행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기쁜 소식을 얻은 후, 저는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며 즉시 원패ㆍ서원현과 재차 행장을 정리하여 형주로 북상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창오의 여러 현의 이족ㆍ월족이 반란을 일으켜 주의 역소가 함락되고 도로가 막혔으며, 서원현은 살해되었고, 노약자들도 일제히 살해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안을 따라 5천여리를 달아났는데, 전염병을 만나 백모(伯母)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시에 따르던 자와 각자의 처자식에게까지 전염되어 일시에 거의 다 죽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서로 부축하고 의지하였으며, 이군까지 도착하기 전에 전쟁과 질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를 헤아리면 열명 중에서 한두 명만 남아 있습니다. 백성들의 고난, 무거운 고난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송지: 공자는 ‘현명한 인물은 어지러운 시대를 피하고, 다음 사람은 혼란스런 지역을 피한다-《논어(論語)》〈헌문(憲問)〉’ 라고 했다. 그는 안전과 위험을 보고 진퇴를 결정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허정은 회계(會稽)에 몸을 기탁한 평범한 선비이다. 손책이 온 것이 허정의 안전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만리 바다를 건너고, 풍토병이 극심한 땅으로 들어가고, 남녀노소를 도탄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하고, 무수한 근심을 끌어안았다. 이것도 허정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진 신하가 이와 같은 것은 지혜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孰若安時處順,端拱吳、越,與張昭、張紘之儔同保元吉者哉?


저는 갑자기 길거리에서 죽은 영원히 떠돌게 될까 두렵고, 걱정하는 마음이 겹쳐 몸은 초췌하며 잠 자는 것과 먹는 것을 잊었습니다. 조정의 뜻을 받들어 공품을 바치는 사자를 수행하여 통행할 수 있어서 천자의 조정으로 돌아가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형주의 바다와 육지의 교통은 끊였고, 교부로 연락하는 사자도 끊어졌씁니다. 익주로 올라가려면 또 엄격한 금령이 있으며, 옛날 관리나 현의 영장은 일률적으로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씁니다. 이전에 교지태수 사위언(사섭)에게 의뢰하여 익주에 있는 형제들에게 진정으로 도와줄 것을 부탁했고, 또 저 역시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진술하고 간절하게 도와주기를 원했었습니다만, 막막하게 어떤 소식도 없이 아직 답장이 없습니다. 비록 그대의 광휘를 굽어보고 목을 길게 빼고 발끝을 들어 볼 수 있지만, 어떻게 하면 날개를 빌려 그대가 있는 곳으로 직접 갈 수 있습니까?

성스러운 천자란 지혜롭고 총명하여 그대에게 정벌의 전권을 명확히 주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각지의 반역자들이 대부분 주살당하거나 토벌된 것은 힘을 다투는 자들이 마음을 하나로 하고, 순종하는 자들이 기획을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장자운(張子雲)은 이전에 수도에 있을때, 왕실을 도울 뜻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비록 황폐한 지역에 있어 조정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역시 국가의 번진이며, 그대를 외부에서 원조합니다. 


장자운(張子雲)의 이름은 장진(張津)이며,남양사람으로,교주자사(交州刺史)였다. 이 일은 오지(吳志)에 보인다.

만일 형, 초가 평화롭게 되고 황실의 은택이 남쪽까지 내려와 그대가 홀연히 자운에게 명령을 내리게 된다면, 부속된 자들에게 삼가 보호의 손길을 나타내 주어 우리들이 길을 빌려 형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다시 우리들을 익주에 있는 형제들에게 소개시켜 서로 받아들이도록 해주십시오. 만일 하늘이 세월을 빌려주고 사람들이 재화를 누그려뜨려 국가로 돌아가 죽을 수 있게 하고 도망치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면, 내 몸이 구천 아래 깊은 곳에 있어도 장차 또 무엇을 한스러워 하겠습니까!

시기에는 위험한 때와 평안한 때가 있고, 일에는 순조로울 때와 곤란할 때가 있으며, 사람의 목숨은 영원하지 않아 목숨을 놓으면 돌이킬 수 없는데, 이것은 영원히 죄책감을 지고 땅속에 매장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영구는 주를 보좌했고, 월을 짚고 자유로이 정벌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으며, 박육은 한을 보좌하여 호분을 받고 경필(천자 행차시 앞에서 통행을 차단함)을 허락받았습니다.


漢書霍光傳曰:「光出都肄郎羽林,道上稱警蹕。」未詳虎賁所出也。


오늘 그대는 위험 속에 있는 군주를 도와 기우는 국세를 지탱하여 국가의 기둥이 되었으며, 사망과 똑같은 임무를 맡고, 곽광과 같은 중책을 받게 되어, 오후(五侯) ---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제후 --- 와 구백을 손에서 제어하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람의 신하가 되어 존중받는 것이 그대에 미치는 자는 없었씁니다. 무릇 작위가 높으면 근심이 깊고, 봉록을 후하게 받으면 책임무겁습니다.

그대는 높은 작위에서 직무를 차지하고 책임이 무거운 위치에 있으므로, 입에서 내뱉는 말은 그대로 상벌이 되고, 마음속에 있는 경우는 곧 화복이 됩니다. 그대의 행위가 도의에 부합되면 사직이 안녕되고, 그대의 행위가 도의를 떠나면 즉시 사방이 분리되어 난리가 발생하게 됩니다. 국가의 안위는 그대에게 달려있으며, 백성들의 생명은 권력을 쥔 사람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이민족에 이르기까지 그대를 엄숙하게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이러한 일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역사책 속의 흥망 혹은 멸망의 원인, 영광과 굴욕을 받는 까닭, 사람들의 이전의 악함을 잊어버리고 관리들을 관용으로 보살피며, 다섯가지 재능을 헤아려 국가를 위해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을 멀리보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만일 적임자를 찾아낸다면, 설사 원수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기용해야 하며, 만일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면 설령 친척이라고 하더라도 관직을 줄 수 없습니다. 사직을 안녕되게 하고, 백성들을 구제하십시오. 일을 함에 있어서 공업을 세우면, 관현의 조화에 합쳐 송가를 연주하도록 하고, 공훈을 금석에 새기십시오. 원컨대 그대는 노력하십시오! 국가를 위해 스스로를 중시하고 백성을 위해 자신을 아끼십시오. -----

장상은 허정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때문에 원한을 갖고 있었으므로 허정이 보낸 편지를 수색하여 전부 물속에 던졌다.

후에 유장이 사자를 파견하여 허정을 초빙하자, 허정은 촉으로 들어갔다. 유장은 허정을 파군ㆍ광한태수로 임명했다. 남양의 송중자는 형주에서 촉군태수 왕상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 문휴는 뜻이 크고 기개가 있는 뛰어난 인물로서 지금 세상에서 출중한 재간을 갖고있습니다. 그대는 문휴를 지도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


익주기구전(益州耆舊傳): 왕상(王商) 자는 문표(文表)이고, 광한(廣漢)군 사람이다. 재주와 학식으로 주리(州里)에서 소문이 났다. 유장(劉璋)이 치중종사(治中從事)로 삼았으나 물러났다. 이 때 왕도(王塗)가 막히니, 주(州)의 다스리는 우두머리들이 오히려 칠국의 제후(諸侯)였다. 그러나 유장은 나약하고 의심이 많아 무리를 견디지 못하고 대신을 믿지 않았다. 왕상이 간하는 글을 지어 유장에게 바치니 유장이 자뭇 깨달아 감응했다.


애초에, 한수(韓遂)와 마등(馬騰)이 관중(關中)에서 난을 일으켜 자주 유장의 아버지 유언(劉焉)과 교류하여 믿었다. 마등(馬騰)의 아들 마초(馬超)에 이르러서는, 관계를 되돌리고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유장은 촉(蜀)의 의(意)를 이으려는 뜻이 있었다. 왕상이 유장에게 고하여 말했다,


"마초는 날래지만 어질지 못하여 얻는 것에 의로운 것을 보지 않으니, 생각건대 순치(唇齒: 이와 잇몸의 관계)로는 옳지 않습니다. 노자(老子)가 말하길, '나라의 이로운 그릇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 하였습니다. 지금의 익부(益部), 선비는 아름다고 백성은 풍요로우며, 보물이 나오는 곳으로, 이것에 비로소 교활한 자들이 경복(傾覆: 뒤집어 엎어서 망(亡)하게 함)하고 싶어하는 바이며 마초와 같은 무리들이 서쪽을 바라보는 까닭(所以) 입니다. 만약에 이와 같이 그(마초)를 끌어들여 가까이 하시면 말미암아 호랑이를 길러 장차 스스로 근심을 남길 뿐 입니다."


유장은 그 말을 따라 이에 길을 끊어 (마초와) 교류하지 않았다.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의 유학자(儒者) 송충(宋忠)은 그의 이름이 널리 미치어 들었다, 송충은 글을 전하고 더불어 왕상에게 은근(殷勤: 친밀한 교분)함(송충이 허정을 추천하는 일)이 차례로 이르렀다. 허정(許靖)은 호가 장부(臧否)인데, 촉(蜀)에 이르러 왕상을 보고 칭찬하여 말하기를,


"설사(設使) 왕상이 화하(華夏: 남쪽 따뜻한 지역)에서 태어나면, 아무리 왕경흥(王景興 : 王朗왕랑)이라 하여도 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유장이 왕상을 촉군태수(蜀郡太守)로 삼았다. 성도(成都)의 금견(禽堅)은 효를 행함에 힘쓰는 것이 있었기에 왕상이 그의 묘표를 효렴(孝廉)으로 추증(追贈)했다. 또한 엄군평(嚴君平), 이홍(李弘)을 위해 사당을 세우고 글을 지어 새김으로 그들의 선현(先賢)을 기렸다. 학문을 닦고 농업을 널리하니 백성들이 편안해졌다. 군을 맡은지 10년인데 관(官)에서 죽으니 허정(許靖)이 그를 대신했다.


건안 16년(211)에 허정은 촉군으로 바뀌어 임명됐다.


산양공재기: 212년(건안12년)에 황자 유희(劉熙)를 제음왕(濟陰王), 유의(劉懿)를 산양왕(山陽王), 유막(劉邈)을 제북왕(濟北王), 유돈(劉敦)을 동해왕(東海王)으로 삼았다. 이때 허정(許靖)이 파군(巴郡)에 있었는데 여러 왕들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숨을 들이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잠시 내쉬어야 하고, 빼앗기 위해서는 잠시 주어야 한다더니, 이것이 바로 맹덕(조조)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19년(214)에 유비가 촉을 지배하게 되자, 허정을 좌장군장사로 임명했다. 유비는 한중왕이 되자, 허정을 태부로 임명했다. 제(帝)에 즉위했을 때, 허정에게 책명을 내려 말했다.

----- 짐은 대업을 이어 받아 만국의 군주가 되었지만,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며 국가를 관리할 수 없을까 하여 두렵다. 백성들끼리 화목하지 않고 가정의 다섯 가지 질서가 정돈되지 않았으니, 그대를 사도로 삼겠다. 다섯가지 가르침 --- 의, 자, 우, 공, 효 --- 을 공손히 실행시키고, 관용을 기본으로 하라. 그대는 노력해야 한다! 덕의를 지키며 게으르지 않아야만 짐의 뜻에 부합될 것이다. -----

허정은 비록 나이가 70을 넘었지만 인물을 사랑하여 후진들을 받아들이고, 청담을 논의하면서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승상 제갈양 이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다.

허정은 장무2년(222)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허흠은 허정이 죽기 전에 요절했다. 허흠의 아들 허유인데, 경요 연간에 상서가 되었다. 이전에 허정은 영천의 진기를 형으로 섬겼으며 진군의 원환, 평원의 화흠, 동해의 왕랑 등과 친하게 지냈다. 화흠, 왕랑 및 진기의 아들 진군은 위나라 초기에 삼공을 보좌하는 대신이 되었고, 모두 허정에게 편지를 보내 이전의 우정을 서술하였으며 정의는 깊었다. 그러한 문장이 많으므로 여기에서는 기재하지 않는다.


魏略:王朗與文休書曰:「文休足下:消息平安,甚善甚善。豈意脫別三十餘年而無相見之緣乎!詩人比一日之別於歲月,豈況悠悠歷累紀之年者哉!自與子別,若沒 而復浮,若絕而復連者數矣。而今而後,居升平之京師,攀附於飛龍之聖主;儕輩略盡,幸得老與足下並為遺種之叟,而相去數千里,加有邅蹇之隔,時聞消息於風 聲,託舊情於思想,眇眇異處,與異世無以異也。往者隨軍到荊州,見鄧子孝、桓元將,粗聞足下動靜,云夫子既在益州,執職領郡,德素規矩,老而不墮。是時侍 宿武皇帝於江陵劉景升聽事之上,共道足下於通夜,拳拳飢渴,誠無已也。自天子在東宮,及即位之後,每會群賢,論天下髦雋之見在者,豈獨人盡易為英,士鮮易 取最,故乃猥以原壤之朽質,感夫子之情聽;每敘足下,以為謀首,豈其注意,乃復過於前世,書曰『人惟求舊』,易稱『同聲相應,同氣相求』,劉將軍之與大 魏,兼而兩之,總此二義。前世邂逅,以同為睽,非武皇帝之旨;頃者蹉跌,其泰而否,亦非足下之意也。深思書、易之義,利結分於宿好,故遣降者送吳所獻致名 馬、貂、罽,得因無嫌。道初開通,展敘舊情,以達聲問。久闊情慉,非夫筆墨所能寫陳,亦想足下同其志念。今者,親生男女凡有幾人?年並幾何?僕連失一男一 女,今有二男:大兒名肅,年二十九,生於會稽;小兒裁歲餘。臨書愴悢,有懷緬然。」又曰:「過聞『受終於文祖』之言於尚書。又聞『歷數在躬,允執其中』之 文於論語。豈自意得於老耄之齒,正值天命受於聖主之會,親見三讓之弘辭,觀眾瑞之總集,睹升堂穆穆之盛禮,瞻燔燎焜曜之青煙;于時忽自以為處唐、虞之運, 際於紫微之天庭也。徒慨不得攜子之手,共列於(世)〔廿〕有二子之數,以聽有唐『欽哉』之命也。子雖在裔土,想亦極目而迴望,側耳而遐聽,延頸而鶴立也。 昔汝南陳公初拜,不依故常,讓上卿於李元禮。以此推之,吾宜退身以避子位也。苟得避子以竊讓名,然後(綬)〔緩〕帶委質,游談於平、勃之間,與子共陳往時 避地之艱辛,樂酒酣讌,高談大噱,亦足遺憂而忘老。捉筆陳情,隨以喜笑。」又曰:「前夏有書而未達,今重有書,而并致前問。皇帝既深悼劉將軍之早世,又愍 其孤之不易,又惜使足下孔明等士人氣類之徒,遂沈溺於羌夷異種之間,永與華夏乖絕,而無朝聘中國之期緣,瞻睎故土桑梓之望也,故復運慈念而勞仁心,重下明 詔以發德音,申敕朗等,使重為書與足下等。以足下聰明,揆殷勤之聖意,亦足悟海岱之所常在,知百川之所宜注矣。昔伊尹去夏而就殷,陳平違楚而歸漢,猶曜德 於阿衡,著功於宰相。若足下能弼人之遺孤,定人之猶豫,去非常之偽號,事受命之大魏,客主兼不世之榮名,上下蒙不朽之常耀,功與事並,聲與勳著,考〔其〕 績效,足以超越伊、呂矣。既承詔(直)〔旨〕,且服舊之情,情不能已。若不言足下之所能,陳足下之所見,則無以宣明詔命,弘光大之恩,敘宿昔夢想之思。若 天啟眾心,子導蜀意,誠此意有攜手之期。若險路未夷,子謀不從,則懼聲問或否,復面何由!前後二書,言每及斯,希不切然有動於懷。足下周游江湖,以暨南 海,歷觀夷俗,可謂遍矣;想子之心,結思華夏,可謂深矣。為身擇居,猶願中土;為主擇(居)安,豈可以不繫意於京師,而持疑於荒裔乎?詳思愚言,速示還報 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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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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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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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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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추가

중간에 익주기구전의 왕상 얘기는 하트개미님의 번역입니다. http://rexhistoria.net/community_free/15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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