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밀(宓)은 자가 자래(子崍)이고 광한군 면죽현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진복이라고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宓은 한국에서 '복'과 '밀' 두가지 발음으로 읽히고, 삼국지연의의 국내판에서는 주로 '복'으로 번역되었는데다가 김원중의 국역 삼국지에도 진복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한서에서는 秦密로 표기하고 자치통감에서도 宓의 음을 풀이하는 주석에서 '宓莫必飜 通作密(ㅏㄱ+ㅍㅣㄹ의 반절, '밀'과 음이 통함)'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이름은 진복이 아닌 진밀이다. 추가적으로 진밀의 자인 자래의 한자와 맞추어 보면

宓 - 성 복, 편안할 밀, 勑 - 위로할 래, 조서 칙 이 되어

이 둘과 맞는 것은 편안한 밀, 위로할 래이기 때문에 진밀이 되는 것이 맞다.


젊어서  재능과 학식이 있었으므로 주나 군에서 초빙햇지만, 질병이 있다고 하며 나가지 않았다. 진밀은 주목인 유언에게 상서를 올려 유학자 임정조(任定祖)를  추천했다.
  
[과거 백리와 건숙은 나이가 많았지만 계책을 정했으며, 감라와 자기는 소년이었지만 공을 세웠습니다. 때문에 <상서>에서 는 나이든 사람을 칭찬했고, <역경>에서는 안연을 칭송했습니다. 진실로 인재를 선발할 때는 능력에 근거해야지 나이의 많 고 적음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 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때 이래로 국내에서 찾아 선발한 사람은 대부분 영재와 젊은 자들이 많고 이전의 노인은 누락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논의는 같지 않고, 찬성과 반대가 서로 절반씩 되는 이런 인물을 태 평스런 시대에는 순서대로 승진할 수 있지만, 혼란스런  세상에는 긴급히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위급함을 구하고 혼란을 진정시 키고 스스로 수양하여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일반 사람들을 뛰어넘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어야 하 며, 그 시대 사람들과 지향하는 것을 다르게 하여 이웃나라를 진동시켜 놀라게 하고, 사방을 두려워 떨게 만들며 위로는 하늘의 뜻에 부합되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뜻에 합쳐지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과 사람이 합쳐지고 안으로 자신에게 물어 부끄러움이 없음을 안다 면, 비록 환란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걱정하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과거 초나라의 섭공이 용의 그림과 장식품을 좋아했으므 로 신성한 용이 그의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위조품을 좋아하는 것도 하늘에 이르거늘 하물며 진실된 것이라면 당연하겠지요.현재 처사 임안은 인자하고 의로우며 정직하여 명성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과거 탕이 이윤을 등용하자 인자하지 못한 사람들은 멀리 달아났고, 하무가 공승과 공사 두 사람을 천거하였는데, 두 사람은 사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므로, 보통 높이를 탐하고 만인의 숭산 을 홀시하고, 눈앞의 장식을 좋아하고 천하의 명예를 홀시하는 것은 진실로 옛날 사람들이 신중히 삼가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돌을 쪼개 옥을 찾고, 조개를 잘라 진주를 구하려고 했지만, 현재 수후의 진주와 화씨의 구슬은 빛나는 태양과 같습니다. 또 무엇 을 의심하겟습니까! 진실로 대낮에 촛불을 밝힐 필요가 없는 것은 햇빛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단지 저의 감정 이 구구하여 제 견해를 많이 피력하려고 욕심을 냈을 뿐입니다.] 


益部耆舊傳曰:安,廣漢人。少事聘士楊厚,究極圖籍,游覽京師,還家講授,與董扶俱以學行齊聲。郡請功曹,州辟治中別駕,終不久居。舉孝廉茂才,太尉載辟, 除博士,公車徵,皆稱疾不就。州牧劉焉表薦安味精道度,厲節高邈,揆其器量,國之元寶,宜處弼疑之輔,以消非常之咎。玄纁之禮,所宜招命。王塗隔塞,遂無 聘命。年七十九,建安七年卒,門人慕仰,為立碑銘。後丞相亮問秦宓以安所長,宓曰:「記人之善,忘人之過。」

 

익부기구전(益部耆舊傳)에 이르길:임안(任安)은,광한(廣漢)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빙사 양후(楊厚)를 섬겼고 도적을 궁구하였으며 경사를 유람하고는 집에 돌아와 강학에 종사하였는데 동부와 학식과 행실의 명성을 더불어 하였다. 군에서는 공조로 청하고 주에서는 치중별가로 징벽하였으나 끝내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효렴, 무재로 천거하고 태위가 수레를 보내 징벽하였고 박사에 제수하고 공거로 징벽하였는데 모두 병을 칭해 나아가지 않았다. 주목 유언은 표를 올려 임안을 천거하며 법도를 깊이 깨닫고 절조가 고상하며 그 기량을 헤아려보면 나라의 보물이니 응당 군왕을 보좌하는 신하로 두어 비상의 잘못을 없애는데 활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현사를 초빙하는 예법에 의하면 응당 초빙하여야 하나 왕도가 격절되어 마침내 초빙의 명령이 없었다. 나이 79세, 건안 7년에 죽으니 문인들이 앙모하여 비명을 세웠다. 이후에 승상 제갈량이 진밀에게 임안의 장점을 물어보자 진밀이 말하길 :「사람들의 좋은 점을 기억하고 사람들의 잘못을 잊었습니다.」라 하였다.

 


유장이 익주를 다스릴 때, 진밀과 같은 군의 왕상이 추중종사가 되었는데, 진밀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빈천하고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역시 언제나 그대와 몸을 끝가지 할수 있습니다! 변화는 보옥에 의지하여 세상에 이름을 빛냈습니다. 응당 한번 와서 주목과 만나십시오.]

진밀이 답장을 하여 말했다.

[과거 요가 허유를 우대한 것에는 넓지 않음이 없었지만, 자신의 두 귀를 씻었고, 초나라에서 장주를 초빙함에 있어서는 넓지 않음이 없 었지만, 낚시대를 쥐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역>>에서 말하기를  '확실하구나, 뽑을 수 없는 것이' 라 고 햇습니다. 무엇 때문에 빛날 수  있습니까? 군국의 현명함이 있은 후 자식이 훌륭히 보필하는 것입니다.  이때 소하,장량 의 책략을 실행해도 지혜가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밭두렁 사이에서 등으로 태양을 받으며 안희처럼 보잘것 없는 음식 을 먹고, 원헌의 띠로 두른 허름한 집을 노래하며, 때때로 산림이나 연못에서 노닐며, 장저,걸익 등의 무리와 짝하며 검은 원숭이 의 슬픈 소리를듣고, 학이 소택에서 우는 것을 보며, 편안한 생활을 즐기며 걱정이 없는 것을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텅비고 헛 된 이름 속에 있고 영험이 없는 거북이의 지위에 있어 나를 아는 자가 적으면, 내가  고귀하다고  한것이 됩니다. 이것은 제가 지향하는 것에 이를 수 잇는 때인데, 어찌 고통스럽고 슬프겠습니까?]


후에 왕상은 엄군평,이홍을 위해 사당을 세웠다. 진밀이 왕상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질병이 낫지 않아 은둔한 채 나가지 않았는데, 방금 그대가 엄군평과 이홍을 위해 사당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같 은 고향사람을 후하게 대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군평의 문장을 보니, 천하의 으뜸이 되는 것은 허유,백이 같은 뛰어난 절조 를 갖고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양웅이 그것에 대해 감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스스로 비출 수  있습니 다. 만일 이중원이 <법언>을 만나지 못했다면, 명성은 분명 매몰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호랑이 같은 문채가 없기 때문 이니, 용이나 봉황-양웅을 가르킴-에 의지하여 명성을 얻은 자라고 할 수 있읍니다. 양자윤 같은 경우는 저술에 전념하여 세상에 보 탬이 있었으며,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오염되지 않고, 행위는 성인 스승을 모방하였으므로 오늘날 천하에서 그의 문사를 담론하고 읊고 있는 것 입니다. 지방에서도 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 사방을 밝힐 수 있는데 기괴한 것은 그대가 이런 사람을 잊고 사당을 세워주 지 않는 것입니다.

촉나라에는 본래 학자가 없었는데, 문웅이 사마상여를 보내 동쪽에서 칠경을 학습하여 돌아와서 관리와 백성들에 게 가르치도록 했고, 그 결과 촉의 학문은 제나라나 노나라에 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문옹이 교육을 제창하고, 사마상여가 그들의 스승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한왕 조는 선비를 얻어, 그 시대에 가장 흥성했습니 다. 동중서의 무리는 봉선(천자가 천지를 제사지내는 대전)의 예절에 밝지 못하였는데, 사마상여가 그 예의를 제정했습니다. 무릇 예 의를  제정하고 음악을 만들어 풍속을 바굴 수 있으면 예교 질서에 따라 인간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겟습니까? 사마상여는 비록 탁왕손의 딸을 유혹한 죄에 연루되어 있지만, 공자가 제환공의 패업을 칭찬하고, 공양이 숙술(모친을 위해 군주를 살 해한 인물)의 겸양을 현명하다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저 또한 사마상여의 교화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응당 그에게 사당을 세워주 고 그의 명문을 빨리 확정지어야 합니다.]


이 이전에 이권(李權)이 진밀에게 <전국책>을 빌렸다. 진밀이 말했다.

"<전국책>은 합종연횡의 기술을 적고 있는데, 그것을 이용하여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권이 말했다.

"공자와 엄평은 많은 서적을 수집하여 <춘추>, <지귀(指歸)>와 같은 책을 만들었습니다. 바다는 흐르는 물을 모아 넓어지고, 군자는 넓은 지식으로 커지기 때문입니다."

진밀이 대답하여 말했다.

"책이 역사서적이나 주나라의 도서가 아니면 공자는 수록하지 않았습니다. 이치가 허무자연한 것이 아니면 엄평은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진흙을 받아들여도 매년 한차례씩 맑게 하면 됩니다. 군자는 지식이 넓어도 예의에 부합되지 않는 것을 볼 수는 없습니 다. 이 때문에 공자는 발분하여 <춘추>를 지어 바르게 사는 것을 중시했으면, 또 효경을 만들어 덕행을 널리 진술했습니다. 악의 싹을 잘라버려 정조를 막는 것으로는 먼저 제압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노자는 악의 싹이 피기도 전에 나쁜일 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찌 진실이 아니겠습니까?

은의 탕왕은 위대한 성인이지만, 들에 사는 물고기를 보고 달려가 잡는 과실이 있었고, 정공은 현이니었지만, 기녀의 노래를 듣고는 정치적인 사무를 버렷습니다. 도가의 법에서 말하기를 '욕망의 대상 을 보려고 하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는 정관이 되고 일월의 도는 정명이 되는 것입니 다. 화살처럼 곧은 것이 군자가 이행하는 것입니다. <홍범(洪範)>은 재화를 군주의 언어나  태도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데, 어찌 <전국책>의 교활한 기술을  배우겠습니까? 지금 <전국책>은 장의,소진의 기술을 반복하여 다른 사람을 죽여 스스로 살고, 다른 사람을 멸망시켜 스스로 보존하라는 말로써 경전에서 기피하는 것입니다."

  
신송지가 살피니 기록에 의하면 노정공은 칭찬할 만한 선행이 없다고 한다. 진밀이 그를 현자라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진밀에게 말했다.

"그대는 자신을 소부, 허유, 사호에 비교하려고 하면서 무엇 때문에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고 탁월한 재지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려고 하십니까?"

진밀이 대답하여 말했다.

"나의 문장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부 나타낼 수 없고, 말은 표현하려고 하는 뜻을 나타낼 수 없는데, 어찌 아름다운 문장으로 발휘 해 낼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과거 공자는 애공을 세번 만나보고 그 때의 말을 일곱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에 서 묵묵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접여는 걸어가면서 노래를 했고, 평론하는 자들은 그것으로 문장의 광채를 더했습니다. 어부는 창랑의 노래를 했는데,  현자(굴원)는 이것으로 시편을 꾸며 빛을 냈습니다. 이 두사람은 그 시대에 무엇을 구하려 고 한 것이 아닙니다. 무릇 호랑이는 태어나면서 아름다운 문양이 있으면, 봉황은 태어나면서 다섯 가지 색채가 있는 것이지, 어찌 다섯가지 색깔로 스스로 그렸겠습니까? 선천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도(河圖)>, <낙서(洛 書)>는 문자가 있음으로 해서 흥기되엇고, 육경은 문장에 의하여 형성되었습니다. 군자는 문덕을 아름답게 하고 사조를 화미하 게 하여도 손상시킨 것이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저도 문채를 경시한 혁자성(革子成)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데, 하물며 저보다 현명한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劉向七略曰:孔子三見哀公,作三朝記七篇,今在大戴禮。臣松之案:中經部有孔子三朝八卷,一卷目錄,餘者所謂七篇。    


유향은 <칠략>에서 공자가 애공을 세번 만나고 <삼조기> 7편을 작성했다고 했는데 지금 대대례(大戴禮)에 있다. 신 송지가 생각건대 <중경부>에 <공자삼조> 8권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권은 목록이고, 그 나머지가 유향이 말한 일곱 편입니다.    


臣松之案:今論語作棘子成。子成曰:「君子質而已矣,何以文為!」屈於子貢之言,故謂之誤也。    


신 송지가 생각건대 : 지금의 <논어>에는 극자성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극자성은    


"군자의 조건은 질박하면 충분한데, 어찌 문채가 필요하겠습니까?"    


라고 하였는데 자공의 말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전에서) 잘못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광한태수 하후찬(夏侯纂)이 진밀을 초청하여 사우좨주로 삼고, 오관연을 겸임하도록 했으며, 중부라고 불렀다. 진밀은 질병이 있다고 하며 집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하후찬은 공조인 고박(古朴)과 주부 왕보(王普)를 데리고 요리사와 식품을 갖고 진밀의 집을 찾아왔는데, 진밀은 이전과 같이 누워있었다.

하후찬이 고박에게 질문했다.

"그대의 주(익주)에서 생산하는 생활 필수품은 실제로 다른 주보다 단연 뛰어나지만, 선비들은 다른 주와 비교하면 어떤지 모르시오."

고박이 대답했다.

"서한 이래로, 작위를 받은 자는 아마도 다른 주만 못할 것이빈다만, 저작을 하여 세상의 사표가 되게 하는 점에서는 다른 주와 비교 하지 못합니다. 엄군평은 황제 노자의 학문을 본 후에 <지귀>를 지었고, 양웅은 <역>과 <태현(太玄)>, <논어>를 보고 <법언>을 지었고, 사마상여는 한무제를 위해 봉선의 문장을 제정했는데, 오늘 날 천하에 모두 알려졌습니다."

하후찬이 말했다.

"중부는 어떠한가?" 


진밀은 수판(簿)으로 얼굴을 치고 말했다.


부(簿)는 수판을 말함이다.


"원컨대 명부께서는 중부라는 이름을 작은 풀에 의탁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명부를 위해 일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기를 요청합니 다. 촉에는 문부산이 있고, 장강이 그 산의 한가운데로부터 흘러나오고, 천제는 그곳에 번창할 운을 모았으며, 신명은 이 땅으로 행 복을 세웠기 때문에 비옥한 땅이 천리나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河圖括地象曰:岷山之地,上為東井絡,帝以會昌,神以建福,上為天井。左思蜀都賦曰:遠則岷山之精,上為井絡,天地運期而會昌,景福(肹)〔肸〕蠁而興作。

 

주: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에 말하기를

“민 산(岷山)의 땅은 위로 정수(井宿)와 이어지매 천제(天帝)는 이로써 창성(昌盛)하게 되고[會昌] 신령(神靈)은 이로써 복(福)을 내리니 위로는 천정(天井)이 되는 것이다.” 하였고 좌사(左思)의 촉도부(蜀都賦)에 말하기를 “멀리는 민산(岷山)의 정기(精氣)가 위로 정수(井宿)와 이어지매 천지(天地)는 시운을 얻고 큰 복이 창성하며 드넓게[肸蠁] 일어나게 된다.”


회하와 제하등 네 하천 가운데, 장강이 그 우두머리입니다. 이것 이 첫째입니다. 우는 석뉴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문산군입니다.



帝王世紀曰:鯀納有莘氏女曰志,是為脩己。上山行,見流星貫昴,夢接意感,又吞神珠,臆圮胸折,而生禹於石紐。譙周蜀本紀曰:禹本汶山廣柔縣人也,生於石紐,其地名刳兒坪,見世帝紀。    


제왕세기(帝王世紀)에서 이르길: 곤(鯀)은 유신(有莘)의 딸 지(志)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가 수기(脩己)이다. (그녀는) 산에 올라가는 중에 유성(流星)이 묘성(昴星)을 관통하는 것을 보고 꿈속에서 감응이 있고 또한 신주(神珠)를 삼키고 배가 갈렸는데 석뉴에서 우를 낳았다.    


초주譙周가 『촉본기蜀本紀』에서 말하길, "우임금禹王은 본래 문산汶山 광유현廣柔縣 사람이다. 석뉴石紐(사천성 문천현 서북)에서 태어났는데, 그 지명은 고아평刳兒坪이고, 세제기(世帝紀)에 보인다."


과거 요가 홍수를 만나고 곤이 물을 잘 다스릴 수 없었는데, 우는 장강을 통해 황하의 제방을 무너뜨려 동쪽 바다로 흘러가도록 하여 백성들을 위해 재해를 제거했습니다. 인류가 있는 이래로 공이그 를 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둘째입니다. 천제는 방(房), 심(心)의 움직임을 보고 정치를 펴고, 삼(參), 벌(伐)을 보고 정책을 결정했는데, 삼과 벌은 익의 분야(分野:하늘의 별자리와 서로 일치하는 지방)입니다. 삼황(三皇:태고의 천자)은 지거 (祗車)를 타고 곡구를 나왔는데, 지금의 사곡에 해당합니다. 


蜀記曰:三皇乘祗車出谷口。未詳宓所由知為斜谷也。    


『촉기蜀記』에서 이르길, “삼황三皇이 기거(祗車, 신화 속에 나오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수레)를 타고서 곡구谷口(계곡이나 골짜기의 입구)에서 나왔다.”라 하였는데 진밀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야곡으로 알고 있는지는 상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 주의 지리입니다. 명부의 고견으로 평론하면 천하의 비교하여 어떻습니까?"
  
그 결과 하후찬은 반나절을 보내면서도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제환공이 관중을 존중하여 중부라고 불렀는데, 훗날 탁월한 신하에 대한 존칭이 되었다.

익주에서는 진밀을 초빙하여 종사좨주로 삼았다. 유비가 제로 칭해진후, 동쪽으로 오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진밀은 천시가 틀림없이 유리함이 없다고 진언하였다. 이 일로 해서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후에 석방되었다.

건흥(建興) 2년 (AD 224), 승상 제갈량이 익주목을 겸임하였을 때, 진밀을 발탁하여 별가로 삼았으며, 이어서 좌중랑장, 장 수교위로 임명했다. 오나라가 사자 장온을 보냈을 때, 백관들을 모두 가서 전송했다.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데 진밀이 아직 가지 않자, 제갈량이 여러차례 사람을 보내 재촉했다.

장온이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제갈량이 말했다.

"익주의 학자입니다."

진밀이 도착하자 장온이 질문했다.

"그대는 어떤 학문을 했습니까?"
 
진밀이 말했다.

"다섯 척의 어린이조차도 모두 학문을 하거늘, 하필 저에게 묻습니까?"

장온이 또 질문했다.

"하늘에는 머리가 있습니까?"

진밀이 말했다.

"있습니다."
 
장온이 말했다.

"어느 쪽에 있습니까?"

진밀이 말했다.

"서쪽에 있습니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네 머리를 돌려 서쪽을 보라'고 했으니, 이 구로부터 유추하면 머리를 서쪽에 있습니다."
  
장온이 말했다.

"하늘에는 귀가 있습니까?"

진밀이 말했다. 


"하늘은 높은 곳에 있으면서 낮은 곳의 소리를  듣습니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학은 구고에서 울고, 소리는 하늘에서 듣는다'고 했습니다.  만일 귀가 없다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장온이 말했다.

"하늘에는 발이 있습니까?"

진밀이 말했다.

"있습니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걸음은 어렵구나, 너는 이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만일 발이 없다면 어떻게 걷겠습니까?"

장온이 말했다.

"하늘에는 성이 있습니까?"

진밀이 말했다. 


"있습니다."

장온이 말햇다.

"성이 무엇입니까?"

진밀이 말했다.

"성은 유입니다."

장온이 말했다.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진밀이 대답했다.

"천자의 성이 유입니다. 때문에 이것으로써 아는 것입니다."

장온이 말했다.

"해는 동쪽에서 태어납니다."

진밀이 말했다.

"동쪽에서 태어나지만 서쪽에서 죽습니다."

대답은 울리는 것 같이 질문에 따라 나왔다. 그래서 장온은 진밀을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진밀의 문재와 변론은 모두 이와 같았다.

대사농으로 승진했고, 건흥 4년(AD 226)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 진밀은 황제의 계보를 적은 문장에서 오제를 같은 일족으 로 한 것을 보았다. 진밀은 그렇지 않은 근본을 밝혔다. 또, 황,제,왕,패,용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였는데, 이치상 매우 통했다. 초윤남은 젊었을 때, 여러차례 그를 방문하여 질문하고, 그의 말을 <춘추연부론(春秋然否論)>에 기록했는데, 문장 이 많으므로 여기에는 기재하지 않았다.

평하여 말한다. - 허정은 일찍부터 명예가 있었고, 독실함으로 평판을 받았으며, 또 인물 추천에 마음을 두었다. 비록 그가 행위나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모두 타당성이 있는 것만은 아니었지만, 장제는 '대체적으로 조정의 대들보 신하라고 할 만하다' 고 했다.


『만기론萬機論』에서 허자장許子將(=허소許劭)을 논하여 말하기를, "허문휴許文休(=허정許靖)는 대체로 조정廊廟의 그릇(조정을 지탱하는 한 기둥이라는 의미)이라 할 수 있으나 자장(허소, 許劭)이 그를 폄하하였다. 만약 진실로 그를 존중하지 않았다면, 이는 사리가 깨이지 못한 것이다. 만약 이를 알고 있었더라면, 선인善人이었으리라."라고 하였다.


미축, 간옹, 이적은 모두 포용력이 있는 태도로 풍자의 논의를 받들어 그 시대에 예우를 받았다. 진밀은 처음에는 세속을 벗어난 고고한 사람을 흠모했지만, 어리석은 사람과 같은 신실함은 없었다. 그러나 응대하는 재능에는 남음이 있었고, 문장은 웅장하고 화려했으므로 한 시대의 재능있는 선비라고 할 수 있다.

분류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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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8
00:20:19 (*.52.8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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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28
00:29:51
(*.52.89.212)
몇 가지 오타 수정 및 진밀-진복에 대한 것을 주석으로 남김

코렐솔라

2013.07.23
02:16:14
(*.52.89.87)
주석 추가

코렐솔라

2013.10.28
12:04:36
(*.0.203.66)
부는 수판이라는 주석 위치가 이상하기에 재조정하고 대충 한글로 바꿔놨습니다(…)

무명

2013.10.28
16:39:12
(*.132.161.152)
불편하군요. 고박(古朴), 왕보(王普)
한자 삽입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코렐솔라

2013.10.28
17:24:37
(*.166.245.132)
곽회전 같은 경우는 원래 아무런 한자도 없었기에 지금도 곽회와 그 자 정도만이 삽입된 상태입니다.

http://rexhistoria.net/68079

이 기능이 구현된 다음에야 하나씩 해나갈 계획인데 어차피 나중에 할 것 지금 똑같은 일 해놓느라 힘빼놓기 싫어서 미루는 중이군요.

그리고 건의게시판에는 제가 댓글 다는 것이 기술적으로 막혀 있는 상황이기에 자료 건의는 자료 건의 게시판에 해주시길 바랍니다.

코렐솔라

2013.10.28
17:26:12
(*.166.245.132)
아 夏侯纂 인데 夏候纂으로 되어 있네요. 이것도 육손전처럼 전체 반달되어있으려나;;;

venne

2013.10.28
17:38:43
(*.111.2.155)
중간에 사마찬도 보여요..

코렐솔라

2013.10.28
17:43:11
(*.166.245.132)
ㅋㅋㅋ 아 미치겠네요.

사마휘

2014.01.25
17:19:51
(*.234.26.150)
萬機論論許子將曰:許文休者,大較廊廟器也,而子將貶之。若實不貴之,是不明也;誠令知之,蓋善人也。

『만기론萬機論』에서 허자장許子將(=허소許劭)을 논하여 말하기를, "허문휴許文休(=허정許靖)는 대체로 조정廊廟의 그릇(조정을 지탱하는 한 기둥이라는 의미)이라 할 수 있으나 자장(허소, 許劭)이 그를 폄하하였다. 만약 진실로 그를 존중하지 않았다면, 이는 사리가 깨이지 못한 것이다. 만약 이를 알고 있었더라면, 선인善人이었으리라."라고 하였다.

사마휘

2014.01.25
17:35:12
(*.234.26.150)
譙周蜀本紀曰:禹本汶山廣柔縣人也,生於石紐,其地名刳兒坪,見世帝紀。

초주譙周가 『촉본기蜀本紀』에서 말하길, "우임금禹王은 본래 문산汶山 광유현廣柔縣 사람이다. 석뉴石紐(사천성 문천현 서북)에서 태어났는데, 그 지명은 刳兒坪이고, 세대世代는 제기世帝紀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刳兒坪의 경우 뭐라고 읽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그냥 한자만 적었습니다. 고아평이라고 읽어도 무방할 것 같으나, 고이평이나 고예평이라고 읽어야 할지도 몰라서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고견을 구합니다.

사마휘

2014.01.25
17:56:32
(*.234.26.150)
蜀記曰:三皇乘祗車出谷口。未詳宓所由知為斜谷也。

『촉기蜀記』에서 이르길, "삼황三皇이 기거(祗車, 신화 속에 나오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수레)를 타고서 곡구谷口(계곡이나 골짜기의 입구)에서 나왔는데, 불분명하였으나 진밀(혹은 진복)이 알고 있었으므로, 야곡斜谷(혹은 사곡)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내용은 기거(祗車) 정도인데, 지거, 기거 둘 중 무엇이 옳은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국 쪽에서도 무엇으로 읽어야 하는지 안 적어놨더군요.(강희자전에도 없고, 용례 사전이나 그런 것에도 없고.) 그래서 일단 저는 祗車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수레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기거라고 읽었습니다.

코렐솔라

2014.01.25
19:03:17
(*.166.245.152)
감사합니다. 모두 반영했습니다. 이거 뭐 참 놀라운 내용이 진밀전에 있군요. 이런 내용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코렐솔라

2016.08.04
15:43:58
(*.46.174.164)
dragonrz님의 번역에 따라 임안의 대한 기록 및 기존 번역에 대한 수정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7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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