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즐(步騭)은 자가 자산(子山)이고 임회군(臨淮郡) 회음사람이다.

오서吳書에서 이르길 : 진晉에 대부大夫 양揚이 있어 보步에서 봉읍의 조세와 부세를 누렸고, 후에 보숙步叔이 있어, 70 제자와 더불어 중니仲尼를 스승으로 섬겼다. 진한秦漢의 때 장군이 된 이가 있어, 공으로 인해 회음후淮陰侯에 봉해졌으니, 보즐은 그 후손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웠으므로 난을 피해 강동으로 갔다. 광릉의 위정(衛旌)과 같은 나이로 서로 친하였으므로 함께 오이를 심어 자급했으며, 낮에는 육체 노동에 힘썼고, 밤에는 경전을 외웠다.


오서에서 이르길 : 보즐은 널리 학문과 기량을 탐구해, 통독하고 박람하지 못함이 없었고, 천성은 관대하고 침착하며 생각이 깊어, 뜻을 굽히며 자신을 욕보일 수 있었다.

회계에 초정강(焦征羌)은 군의 호족인데, 그의 문객들도 무례했다.

오록(吳錄)에 이르길:초정강(焦征羌)의 이름은 초교(焦矯)로,정강(征羌)현의 현령을 지낸 적이 있다.

보즐과 위정은 그의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침범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함께 명함을 지니고 오이를 가지고 초정강에게 진상하려고 했다. 초정강은 마침 잠을 자고 있었으므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위정은 돌아가려고 했다. 보즐은 그를 제지시키며 말했다.


“본래 우리들이 여기에 온 이유는 강성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떠나가서 고상함을 나타내려고 했다면, 단지 원수만을 맺게 될 뿐이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초정강이 창문을 열고 이들을 보았다. 그는 자신은 휘장 안의 책상에 기대 앉아 있으면서, 땅에 자리를 두도록 하여 보즐과 위정을 창문 밖에 앉도록 했다. 위정은 더욱 치욕을 느꼈지만, 보즐의 말과 안색은 자연스러웠다. 초정강은 식사를 준비하여 자신은 커다란 상을 사용하고 그 위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했지만, 보즐과 위정에게는 작은 소반에 밥을 주었는데 오직 야채뿐이었다. 위정은 먹을 수 없었지만, 보즐은 남김없이 배불리 먹고 나서야 감사의 말을 하고 나왔다. 위정은 보즐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것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소?”

보즐은 말했다.

“우리들은 가난하고 미천하오. 때문에 주인은 가난하고 미천함으로써 우리를 대우한 것이니, 진실로 마땅한 것이오. 무엇 때문에 치욕스러워 해야만 하오?”

오록: 위정의 자는 자기(子旗)이며 관직은 상서(尚書)까지 이르었다.

손권이 토로장군이 되었을 때, 보즐을 불러 주기(主記)로 임명하고,


오서에서 이르길 : 1년 남짓 지나, 보즐은 질병으로 인해 관직을 그만두고, 낭야琅邪의 제갈근, 팽성彭城의 엄준嚴畯과 함께 오吳 안에서 유람했는데, 나란히 명성이 드러나, 당시의 영준한 이가 됐다.


해염현의 장으로 제수했으며, 다시 불러서 거기장군 동조연으로 삼았다.


오서에서 이르길 : 손권은 서주목徐州牧이 돼, 보즐을 치중종사治中從事로 삼고, 무재茂才로 추거했다.

건안 15년(210), 밖으로 나와 파양태수를 겸임했다. 그 해 중에 교주자사ㆍ입무중랑장(立武中郞將)으로 전임되었으며, 무장하고 활을 지닌 관리 1천 명을 인솔하여 곧장 남쪽으로 갔다. 이듬해, 사지절ㆍ정남중랑장으로 더 임명됐다. 유표가 배치한 창오(蒼梧)태수 오거(吳巨)는 안으로 다른 마음을 품고서 겉으로는 보즐에게 복종했다. 보즐은 자신을 낮추어 오거를 회유하고, 서로 만날 것을 요청한 연후에 기회를 타서 목을 베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보즐의 명성은 크게 떨쳐졌다. 사섭의 형제도 서로 이끌어 보즐의 명령을 들었고, 남방 지역이 복종한 것은 이로부터 시작됐다. 익주의 부호 옹개(雍?) 등은 촉에서 임명한 태수 정앙(正昻)을 죽이고 사섭에게 통보하여 오나라로 귀순하기를 원했다. 보즐은 그래서 명령을 받들어 사자를 보내 성은을 나타내고 어루만지도록 했다. 이로부터 보즐은 평융장군(平戎將軍)의 관직을 더하고 광신후(廣信侯)로 봉해졌다.

연강(延康) 원년(220), 손권이 여대를 보내 보즐을 대신하도록 하고, 보즐에게는 교주의 의로운 병사 1만 명을 인솔하여 장사로 나오도록 했다. 마침 유비가 동쪽으로 내려왔고, 무릉(武陵)의 이민족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손권은 그래서 보즐에게 익양(益陽)으로 진군하도록 명령했다. 유비가 참패를 한 후에도 영릉과 계양 각 군에서는 여전히 서로 겁먹고 동요되어 있었으며, 곳곳마다 무력을 기대고 있었다. 보즐이 두루 돌면서 토벌하여 모두 평정되었다.

황무 2년(223), 우장군좌호군으로 승진했고, 임상후(臨湘侯)로 바꿔 봉했다.

5년(226), 부절을 받고, 구구(?口)로 옮겨 주둔했다.

손권이 제로 칭해진 후, 보즐을 표기장군으로 임명했고 기주목을 겸임하게 했다. 이 해, 그는 서릉(西陵)으로 가서 도독으로 임명되어 육손을 대신해 두 나라의 접경지대를 진무시켰다. 오래지 않아 기주가 촉의 세력하에 있게 되어 기주목의 직책은 해임됐다. 당시 손권의 태자 손등은 무창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아끼고 선행을 좋아했다. 보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 무릇 현인이나 군자가 위대한 교화를 일으키고 흥성시키는 까닭은 당시의 중대한 사무를 보좌하여 처리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오. 나는 천성이 아둔하고 이치에 통하지 않아 도리를 깨닫지 못했소. 비록 확실히 구구하게 밝은 덕에 마음을 다하여 군자에게 돌아가려고 하지만,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사인들에 이르러서는 먼저와 나중의 마땅함이 오히려 실제와 너무 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세히 이해할 수는 없소. 경전(《논어》)에서 말하기를 ‘그를 아끼면서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에게 충성하면서 가르치지 않을 수 있는가?’ 라고 했소. 이 말의 의미는 어찌 군자들에게 바라는 바가 아니겠소. ―

보즐은 이 때문에 당시 형주 경내에서 임무를 맡고 있던 제갈근ㆍ육손ㆍ주연(朱然)ㆍ정보(程普)ㆍ반준(潘濬)ㆍ배현(裵玄)ㆍ하후승(夏侯承)ㆍ위정ㆍ이숙(李肅)ㆍ주조(周條)ㆍ석간(石幹) 11명을 나열하고 그들의 행장을 분석했으며, 상소를 올린 기회에 손등에게 권면하여 말했다.


오서에서 이르길 : 이숙李肅의 자는 위공偉恭으로, 남양南陽 사람이다. 어려서 재능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논의를 잘했고, 좋고 나쁨을 평가하면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알맞았고, 우수한 인재를 살피고 적어, 후진을 천거하고 말했는데, 제목과 품평이, 자세하며 조리가 있어, 많은 이들은 이로 인해 그에게 심복했다. 손권이 발탁해 선거選舉하는 이로 삼으니, 재주있는 인물을 얻는다고 불렸다. 외지로 나가 관리를 맡길 구하여, 계양태수桂陽太守가 됐는데, 관리와 백성이 기뻐하며 복종했다. 징소돼 경卿이 됐다. 때마침 죽으니, 그를 알거나 모르는 이, 모두가 몹시 애석하게 여겼다.

― 신이 듣기로는, 군주는 사소한 일을 가까이 하지 않고, 백관이나 담당 관리들이 각각 그 직책을 맡는다고 합니다. 때문에 순(舜)은 아홉 명의 현인을 임용하여, 그 자신은 마음을 쓴 바가 없이 단지 다섯 현의 금슬을 타고 남풍(南風)의 시를 읊으며 당묘(堂廟)로 내려오지도 않았지만, 천하는 다스려졌습니다. 제환공은 관중을 임용하고서 머리를 풀고 수레를 타고 노닐었지만, 제나라는 다스려졌고 또 바르게 화합하였습니다. 근래 한고조는 세 명의 호걸(蕭河[소하]ㆍ韓信[한신]ㆍ張良[장량])을 취하여 제왕의 대업을 일으켰고, 서초(西楚)에서는 영웅과 호걸을 잃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급암(汲?)이 조정에 있었기에 회남왕은 음모를 꾀했고, 질도(?都)가 변방을 지키고 있었기에 흉노가 자취를 숨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인이 있는 곳은 만리 밖에서도 적을 막게 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국가의 이익이 되는 그릇이며, 국가의 흥망은 이들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마침 지금 왕된 자의 교화는 한수 북쪽까지도 아직 미치지 못했으며, 하수와 낙수 유역에는 오히려 참위하고 반역하려는 무리들이 있으니, 실재로 영웅을 불러 모으고 준걸을 선발하여 현인을 임용할 시기인 것입니다. 영명한 태자께서는 이 일에 많이 유념하시기를 원하며, 이와 같이 하면 천하는 매우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

후에 중서 여일이 문서를 감사하게 되었는데, 보즐이 탄핵한 자가 많았다. 보즐은 상소를 올려 말했다.

― 신이 듣기로는, 사람들의 미미한 잘못을 전문적으로 찾아내는 자는 털을 불어 흠을 찾고 안건을 확대하여 무고함을 깊게 하며,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여 위력으로 복종시키려 하고, 죄가 없고 허물이 없는 사람이 무리하게 큰 형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광활한 천지 사이에 몸을 두고 있는 백성들 중 어느 누가 전율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옥의 관리는 오직 현명한 자라야만 임명되었습니다. 때문에 고요는 법관으로 임명되었고, 여후(呂侯)가 벌금제도를 정하였으며, 장석지(張釋之)나 우정국(于定國)이 정위가 되어 백성들은 억울함을 당하지 않았으니, 사실 국가의 태평스런 운세는 이로부터 흥기했던 것입니다. 현재 하찮은 신하들은 행동이 고대와 다르며, 재판은 뇌물로써 이루어지고 사람의 목숨을 경시하고 홀시하면서 그 허물은 천자에게 돌려 국가에 대한 원망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무릇 탄성을 지르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왕도(王道)를 손상시키고 원망을 품게 할 것입니다. 빛나는 덕행과 신중한 형벌, 이것은 철인(哲人)이 생각한 형법이며 경전에서 찬미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재판 판결에 대해서는, 도성 안의 안건이면 마땅히 고옹에게 자문하시고, 무창에서는 육손ㆍ반준에게 물어야 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실제 상황을 얻는데 힘쓰십시오. 제가 신명(?明)을 오염시켰다면 죄를 받아도 무슨 한이 있겠습니까? ―

또 말했다.

― 천자는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기 때문에 궁실의 백관들은 항상 하늘의 각 별자리를 본받아 움직입니다. 만일 정책과 법령을 시행하여 시절을 공순하게 따르며 관직에서 바른 인물을 얻는다면, 음양은 조화롭고 일곱 천체는 정상 궤도를 따를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러 관료들에게는 결점이 많아 비록 대신(大臣)이 있을지라도 또 신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고도 천지에 어떤 변화가 없겠습니까? 때문에 해를 이어 한발이 있었는데, 이것은 양기(陽氣)가 매우 성한 반응인 것입니다. 또 가화 6년 5월 14일, 적오 2년 정월 1일과 27일에는 땅이 모두 진동했습니다. 땅은 음(陰)의 종류에 속하며 신하의 상징입니다. 음기가 성하기 때문에 진동한 것이며, 이것은 신하가 정권을 독점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릇 하늘과 땅에 이변이 나타나는 까닭은 군주를 깨우치도록 경고하는 것이니,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승상 고옹, 상대장군 육손, 태상 반준은 걱정이 깊고 책임은 중대하며, 마음은 충성을 다하는 데 있으므로 아침 저녁으로 전전긍긍하며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편안하지 못하고, 국가를 안정되게 하고 백성들을 이롭게 하여 영원한 계획을 세우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심장과 넓적다리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의 신하들입니다. 응당 각각에게 임무를 맡겨 다른 관원들로 하여금 그들이 맡은 일을 감독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 일의 성과를 요구하며, 그 일의 득실과 우열을 살펴야만 합니다. 이 세 명의 신하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을 뿐, 어찌 감히 독자적인 세력으로 위협하여 하늘을 저버리겠습니까?

상을 내거는 것은 선행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형벌을 설치하는 것은 간사한 자를 위협하기 위함이니, 현인을 임용하고 능력있는 자를 사용하시어 법률 제도를 밝히고 그들에게 알도록 한다면 무슨 공적이라도 이루지 못하고,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없으며, 무슨 소리라도 들을 수 없고, 무슨 현상이라도 볼 수 없겠습니까? 만일 오늘 백리의 군수가 모두 각기 그 사람을 얻어 함께 서로 협력하여 일을 다스린다면, 이와 같다면 모든 정사가 어찌 흥성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여러 현에는 모두 예비 관리가 있다고 하는데, 관리가 많으면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며, 사회 기풍이 파괴됩니다. 단지 소인만이 군주의 명령을 받을 기회가 있으므로 공사를 힘껏 받들지 않고 세력으로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자의 눈과 귀를 확대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을 해롭게 합니다. 저는 이러한 관리들은 일률적으로 파면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손권은 크게 깨닫고는 여일을 주살시켰다. 보즐은 앞뒤로 신분이 낮은 현명하고 능력있는 자를 추천하고, 무고하게 환난을 받은 자를 구하기 위해서 수십 번 글을 올렸다.


오록(吳録)에 이르길: 또한 보즐은 표를 올려 말하기를, 

‘북방의 투항자 왕잠(王潛) 등이 말하기를, 북방에서는 대오를 정돈하고 동쪽으로 진출할 의도를 갖고, 베로 된 주머니를 대량 만들어서 모래를 넣어 강을 막아서 대대적으로 형주로 향하려고 합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긴급한 사태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땅히 방비를 해야만 합니다’ 

라고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이들은 쇠약해져 있는데 어떻게 도모함이 있을 수 있겠소? 반드시 감히 오지 못할 것이오. 만일 나의 말과 같지 않다면 소 수천 마리를 죽여서 그대를 주인으로 삼겠소” 

라고 했다. 후에 여범과 제갈각이 보즐의 말을 듣고, 

“보즐의 표를 읽을 때마다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 강은 천지 개벽과 함께 태어났는데, 어찌 모래 주머니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했다.

손권은 비록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항상 그의 건의를 듣고 취하였으며,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아 이익을 얻었다.


적오 9년(246), 보즐은 육손을 대신하여 승상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문하생들을 가르치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옷 입는 것이나 거처하는 것은 유생과 같이했다. 그러나 그 집안의 처첩들의 복식은 매우 사치스럽고 화려했으므로, 이 때문에 자못 사람들의 비방을 받았다. 서릉에 있은 지 20년이 되자 부근에 있는 적들은 그의 위세와 신의를 존경했다. 그의 성정은 관대하고 넓어 인심을 얻었으며, 기뻐하거나 노여워하는 것이 목소리나 안색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안팎으로 숙연했다.

적오 10년(247)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보협(步協)이 후사를 이었고 보즐이 다스리던 곳을 통솔했으며, 무군장군(撫軍將軍)을 더했다. 보협이 죽자 아들 보기(步璣)가 뒤를 이었다. 보협의 동생 보천(步闡)은 업을 계승하여 서릉독이 되었고, 소무장군을 더하였으며 서정후(西亭侯)에 봉해졌다. 봉황 원년(272), 보천을 불러서 요장독(繞帳督)으로 임명했다.

보천은 대대로 서릉에서 살았는데, 갑자기 부름을 받게 되자 그 자신은 직무를 버리려고 생각하면서도 또 참언의 화가 있을까 두려웠다. 이 때문에 성을 바치고 진나라에 투항했다. 보기와 동생 보선(步璿)을 낙양으로 보내 직책에 임명했다. 진나라에서는 보천을 도독서릉제군사ㆍ위장군ㆍ의동삼사로 임명하고 시중의 관직을 더했으며, 부절을 주고 교주목을 겸임하도록 했으며, 의도공(宜都公)으로 봉했다. 보기를 감강릉제군사(監江陵諸軍事)ㆍ좌장군으로 임명하고, 산기상시의 직을 더하고, 여릉태수를 겸임하게 했으며 강릉후(江陵侯)로 바꿔 봉하였다. 보선을 급사중ㆍ선위장군으로 임명하고 도향후로 봉했다. 거기장군 양호(羊祜)와 형주자사 양조(楊肇)에게 명하여 가서 보천을 구원하도록 했다. 손호는 육항에게 서쪽으로 가도록 하였다. 양호 등은 물러났다. 육항은 성을 함락시키고 보천 등의 목을 베었다. 보씨는 전멸하고 오직 보선만이 후사를 이었다.

영천(潁川)의 주소(周昭)는 책을 지어서 보즐과 엄준(嚴畯) 등을 칭찬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옛날이나 지금이나 현명한 사대부들이 명성을 실추시키고 몸을 잃으며 집안을 기울게 하고 나라를 해롭게 하는 이유가 한 가지는 아니다. 그러나 그 대체적인 귀결을 요약하고 흔히 보이는 근심을 총결해 보면, 네 가지뿐이다. 자신의 의견을 완고하게 주장하는 것이 첫째요, 명리를 다투는 것이 둘째요, 당파를 중시하는 것이 셋째요, 신속하게 하려고 힘쓰는 것이 넷째이다. 자신의 의견을 완고하게 주장하면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고, 명리를 다투면 친구를 파괴하고, 당파를 중시하면 군주를 가리게 되며, 신속하게 하려고 힘쓰면 덕을 잃게 된다. 이 네 가지가 제거되지 않으면 온전하게 할 수 없다. 당대의 군자 중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자 또한 있는데, 어찌 유독 고인에게만 한정하겠는가!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출난 사람들을 논한다면 고예장(顧豫章 ; 고소)ㆍ제갈사군(諸葛使君 ; 제갈근)ㆍ보승상(步丞相 ; 보즐)ㆍ엄위위(嚴衛尉 ; 엄준)ㆍ장분위(張奮威 ; 장승) 같이 완미함을 이룬 자는 없었다. 《논어》에서 말하기를 ‘우리 선생님은 성실하게 학생들을 이끄는 데 뛰어나다’ 라고 했고, 또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선행은 이루도록 해야 되지만, 다른 사람의 악행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라고 했는데, 고예장이 이것을 갖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가까이서 보면 온화하다. 그 말을 들으면 엄격하다’ 라고 했는데, 제갈사군이 이 특징을 나타냈다. ‘공경하지만 안정되고 위의가 있지만 용맹하지는 않다’ 라고 했는데, 보승상이 이러한 풍모를 나타냈다. 학문에서 녹(祿)을 추구하지 않고 마음에 이익을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는 것이 없는 것은 엄위위와 장분위가 나타냈다. 

이 다섯 명의 군자는 비록 덕행의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고, 지위의 가볍고 무거움의 차이가 있지만, 처세의 큰 방침에 이르러서는 네 가지를 범하지 않았으므로 모두 똑같은 원칙을 따른 것이다. 과거 정서(丁諝)는 신분이 낮은 집안의 출신이며, 오찬(吾粲)은 목동 출신이었지만, 고예장은 그들의 뛰어난 점을 발휘시켜 육씨나 전씨와 같은 반열에 있게 했다. 이 때문에 재능있는 자가 깊숙한 곳에 있지 않았으며 풍속이 순후해졌다. 

제갈사군ㆍ보승상ㆍ엄위위 세 군자는 옛날에 평민의 신분으로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고, 논의하는 자들은 각각 그 우열을 서술했다. 당초에는 앞에 엄위위, 다음이 보승상, 그 뒤가 제갈사군이었는데, 이후에는 공동으로 영명한 군주를 섬겨 국가의 사무를 관리했으며, 그들간의 나아가고 물러나는 재간에 차이가 있었으므로 앞뒤의 서열은 필연적으로 그 처음과 상반되었다. 이것은 세상의 일반 사람들의 판단이 얇은 결과이다. 세 군자의 우정은 끝까지 손상되지 않았으니, 어찌 옛 사람의 사귐이 아닌가! 또 노횡강(魯橫江 ; 노숙)은 옛날 1만 명의 병사를 인솔하여 육구(陸口)에 주둔하여 지켰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아름다운 일이었다. 능력이 있는 자든 능력이 없는 자든 간에 누가 이것을 희망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횡강이 죽자, 엄위위는 그 후임으로 선발되었는데, 자신이 장수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깊고 완곡하게 사양하여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후에 그는 구경으로 승진하였고, 여덟 명의 각료를 취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영예는 자신을 빛나게 하기에 부족했고, 봉록 또한 자신을 받들기에는 부족했다. 두 명의 군자에 이르러서는 모두 상장의 지위가 되었으며, 부귀함이 극에 이르렀다. 엄위위는 공명을 구하려는 욕심이 없었고, 두 군자는 또 적절히 추천되지 않았으므로 각자 뜻하는 바를 지키며 자신의 명예를 보전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긍지를 갖고 다투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당을 만들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 이 세 군자가 이 풍모를 갖추었다. 또 장분위의 명성 또한 세 군자 다음이었다. 한쪽의 수비를 담당하고, 상장의 직무를 받은 점에서는 제갈사군ㆍ보승상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국사에 참여하여 공로를 논함에 있어서는 확실히 앞뒤가 있었기 때문에 작위의 영광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장분위는 이 위치에 있으면서, 결심은 이 부분을 명확히 할 수 있었고, 마음은 도의를 잃는 사욕이 없었으며, 일에서는 욕망을 채우려는 욕구가 없었다. 

항상 조정에 올라갈 때마다 예의를 따라 행동했으며, 말의 어기는 진실되고 간절하여 충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숙사(叔嗣 ; 장휴)는 비록 그와 친근하며 지위가 높았지만, 장분위의 패망을 걱정했고, 채문지(蔡文至)는 비록 그와는 소원하고 지위가 낮았지만, 그는 채문지의 현명함을 칭찬했다. 자신의 딸이 태자의 배우자가 되었을 때, 태자의 예절을 받을 때는 마치 조문하는 것처럼 했으며, 의기가 양양했고, 충성스런 인물이었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모두 생각한 것과 같았다. 도의를 지키고 기회를 봐서 하며, 고대의 것을 좋아한 선비라고 말할 수 있었다. 

국가를 경영하고 군대를 관장하며 동분서주하여 패왕의 공을 세우는 것에 있어서는, 이 다섯 사람은 다른 사람을 넘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도의를 실행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이익을 구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고 이름과 행동을 보전한 점에 있어서는 아득히 세상을 초월하고 사실 모범이 되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적을 조잡하게나마 논하여 후세의 군자들에게 보이려는 것이다. ―

주소(周昭)는 자가 공원(恭遠)이고, 위요(韋曜)ㆍ설영(薛瑩)ㆍ화핵(華覈)과 함께 《오서(吳書)》를 지었다. 후에 중서랑으로 임명되었지만, 어떤 사건에 연좌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화핵이 표를 올려 그를 구하려고 했지만, 손휴는 듣지 않았다. 결국 처형되었다.

* 평하여 말한다. ― 장소는 손책의 유언을 받아 군주를 보좌하였고, 공훈을 세우고 충성하고 직언을 했으며 자신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엄한 태도 때문에 손권의 꺼림을 받았으며, 고상한 행동 때문에 소원해짐을 당하여 재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또 사보(師保 ; 천자의 교육고문)에 오르지 못했으며, 조용히 집에서 만년을 보냈던 것이다. 이것으로써 손권이 손책에 미치지 못함이 분명하다. 

고옹은 평소의 대업을 지모에 의거하여 운용하였기 때문에 영예와 지위가 최상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제갈근과 보즐은 나란히 덕과 규범적인 행동으로써 그 당시 세상에서 유능한 인물로 보여졌고, 장승과 고소는 마음을 비운 인격자로서 인물을 좋아하고 숭상했다. 주소의 논의는 이러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였기 때문에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고담은 공직에 있으면서 계책을 바쳤고, 충성과 정조의 절개가 있었다. 장휴와 고승은 뜻을 닦았으며,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들이 사람들의 원망을 받고 서로 공격하여 남쪽 땅으로 유배당하였으니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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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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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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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6
13: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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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 추가 완료. 제가 번역한 부분은 틀릴 가능성 농후

보숙의 얘기는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7605934

보즐의 천성과 학문 얘기, 제갈근 ,엄준과 함께 유람한 얘기 손권이 서주목이 돼 치중종사가 된 얘기 3개 모두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7605995

이숙에 대한 오서의 내용은 처사군님 번역입니다. http://blog.naver.com/kyspert/110187667646

코렐솔라

2013.10.12
00:42:40
(*.166.245.166)
보준->보선으로 수정하고 한자추가 아무래도 보선 같습니다만 위키백과도 그리 기록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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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오서 오서 목차 링크 [3] 재원 2013-06-28 113521
30 오서 주유전 [9] 견초 2013-05-01 17715
29 오서 설종전 [3] 견초 2013-05-01 4199
28 오서 감택전 [2] 견초 2013-05-01 3666
27 오서 정병전 [2] 견초 2013-05-01 3446
26 오서 엄준전 [2] 견초 2013-05-01 3453
25 오서 장굉전 [8] 견초 2013-05-01 4351
» 오서 보즐전 [2] 견초 2013-05-01 4712
23 오서 제갈근전 [2] 견초 2013-05-01 5779
22 오서 고옹전 [10] 견초 2013-05-01 5148
21 오서 장소전 [4] 견초 2013-05-01 6328
20 오서 손환전 [6] 견초 2013-04-30 4597
19 오서 손소전 [5] 견초 2013-04-30 5599
18 오서 손광전 [2] 견초 2013-04-30 3956
17 오서 손익전 [4] 견초 2013-04-30 4089
16 오서 손보전 [1] 견초 2013-04-30 4060
15 오서 손분전(오서 6권, 손견의 형의 아들) [4] 견초 2013-04-30 4795
14 오서 손환전 [2] 견초 2013-04-30 3720
13 오서 손교전 [2] 견초 2013-04-30 4428
12 오서 손유전 [1] 견초 2013-04-30 3949
11 오서 손정전 [1] 견초 2013-04-30 4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