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택(闞澤)은 자가 덕윤(德潤)이고 회계군 산음 사람이다.

집안 대대로 농민이었다. 감택은 학문을 좋아했지만 생활이 빈곤하여 학비가 없었으므로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필경(筆耕)을 하였으며, 베끼는 일을 마쳤을 때는 또 그 전체를 암송했다. 그는 스승을 좇아 토론하고 연구했으며 많은 서적을 두루 열람하고, 동시에 역법과 천문에도 통달하여, 이로부터 명성이 드러났다.

감택은 효렴으로 천거되었고 전당현(錢唐縣)의 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침현의 현령으로 승진됐다. 손권이 표기장군이 되었을 때, 감택을 초빙하여 서조연(西曹椽)을 돕도록 했다. 손권이 황제로 칭해진 후에는 감택을 상서로 삼았다. 감택은 가화 연간에 중서령으로 임명되고 시중을 더했다.

적오 5년(242)에 감택은 태자태부로 제수되었으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중서령을 겸임했다. 감택은 경전의 문장이 번다하여 전부 응용하는 일이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여러 사람의 견해를 참작하고 곧 《예기》의 문장과 여러 주석서를 간략하게 만들어 두궁의 왕자(손화와 손패)를 가르쳤으며, 두 사람이 출입하거나 빈객과 회견할 때의 의식을 제정했다. 또 《건상역주(乾象曆注)》를 지어 계절과 날짜를 바로잡았다.

항상 조정에서 중대한 일을 논의하다가 경전에서 의문점이 있으면 모두 그를 찾아가 의견을 구했다. 그는 유학 방면에서의 성실한 노력으로 해서 도향후에 봉해졌다. 그는 성정이 겸허하고 공경스러우며 독실하고 신중하였으므로, 궁궐이나 지위가 낮은 관부의 관리들을 불러 응대할 때도 모두 예의로써 대했다.

다른 사람에게 틀린 점이나 결점이 있을 때도 일찍이 입으로 직접 말한 적이 없었다.

그의 용모는 부족함이 있는 것 같았지만, 견문에 있어서는 막히는 것이 적었다.

손권은 일찍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경서나 그 해석, 시?부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뛰어나오?"

감택은 혼란을 다스리는 이치를 밝혀 풍유하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가의(賈誼)의〈과진론(過秦論)〉이 가장 좋다고 대답했다. 손권은 이 글을 읽었다.

당초, 여일의 사악한 죄가 발각되었을 때, 담당 관리들이 그 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사령에 처할 것을 상주했다. 어떤 이는 당연히 화형시켜 찢어 죽이는 형벌을 더하여 사악한 자들에게 보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손권은 이 일에 관해서 감택에게 자문을 구했다. 감택은 이렇게 말했다.

"번성하고 광명한 시대에 다시 이런 형벌을 있게 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손권은 그의 의견에 따랐다. 또 여러 관청에서 병폐가 발생하자 감시하는 관리를 늘려 신하들을 조사라여 제지하려고 했다. 감택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예의와 법도에 따라 해야 됩니다."

그의 평화롭고 정직함은 모두 이와 같았다.

오록에 이르길: 우번은 감택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감씨는 사람들을 뛰어넘을 만큼 우수한데, 촉의 양웅과 같다." 

고 했고, 또, 

"감씨는 유학에도 덕행에도 우수하여 또한 현대의 동중서이다." 

라고 했다. 위문제가 즉위했을 당시, 손권이 일찍이 신하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조비는 나이가 들어 즉위했는데, 나는 그에게 미칠 수 없음이 걱정되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신하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때 감택이 말하기를 

"10년이 못되어 조비는 죽을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 손권이

"어찌 그것을 아시오? " 

라고 하자. 감택은 

"그의 자에 의거하여 말하면 불(不)과 십(十)으로 비(丕)자를 이루고 있으니, 이것은 곧 그의 운명입니다." 

라고 했다 문제는 과연 40세 죽었다.


신송지가 세어보니 손권의 나이가 조비보다 다섯살 많으니 그것으로 장유를 따지기에는 미미합니다.


6년(243)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 손권은 비통해하고 에도했으며 며칠간 식사도 하지 않았다.  감택과 같은 주 안의 선배인 단양의 당고(唐固) 또한 몸을 닦고 학문을 쌓아 유학자로 칭해졌는데, 《국어(國語)》《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의 주석을 달았으며, 그의 강의를 받는 자는 항상 수십 명씩 있었다. 손권은 오왕이 되자, 당고에게 의랑을 제수했다. 육손(陸孫)장온(張溫)낙통(駱統) 등은 모두 처음부터 그를 존중했다. 당고는 황무 4년(225)에 상서복야로 임명되었다.


오록(吳錄)에 이르길:당고(唐固)의 자는 자정(子正)으로 ,죽을 때 70여세였다.

진수의 평: 장굉(張紘)은 문리(文理)가 통하고 생각이 바르며, 이 시대의 영재이다. 손책(孫策)이 장소(張昭)에 버금가게 그를 대우했던 것은 진실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엄준(嚴畯)ㆍ정병(程秉)ㆍ감택(闞澤)은 한 시대의 유림(儒林)이었다. 엄준이 자신의 영달을 버리고 옛 친구를 구한 것 또한 뛰어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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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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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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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0
14:39:34
(*.104.141.18)
배송지의 평이 빠져 있더군요.

코렐솔라

2013.07.10
14:44:18
(*.104.141.18)
대충 번역 가능한게 몇 개 있군요 신기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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