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개전(黃蓋傳)

황개의 자는 공복(公覆)이며, 영릉(零陵)군 천릉(泉陵) 사람이다. 

[주 : 『오서(吳書)』에 이르길: 옛 남양태수 황자렴(黃子廉)의 후손인데, 그 지파가 따로 떨어져 조부때부터 영릉으로 옮겨살며 일가를 이루었다. 황개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어린 나이때부터 흉난(凶難)을 만다고 일찍이 갖은 고생을 겪었으나, 굳센 의지가 있어 비록 빈천(貧賤)한 삶을 살아도, 범용(凡庸)한 보통 사람들과 스스로 같지 않아, 항상 땔나무를 지는 틈에도 책을 공부하고 병법를 강독했다.


처음, 군의 관리가 되었는데,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공부(公府)에 불려갔다. 


손견이 의병을 일으키자, 황개가 이를 따랐다. 손견이 남으로 산적(山賊)들을 격파하고, 북으로 동탁을 패주시키면서, 황개를 별부사마(別部司馬)로 배수했다. 손견이 죽자(薨), 황개를 손책과 손권을 따라 갑옷을 걸치고 두루 돌아다니며, 전투를 수행함 성을 도륙했다.

여러 산월(山越)족들이 복종하지 않아 노략질을 당하는 현이 있으면, 번번이 황개를 기용해 장(守長)으로 삼았다. 

석성(石城)현의 관리들은 특히 검속하고 부리기 힘들었지만, 황개는 이에 그들을 두 연(掾=속관)으로 임명해 여러 관아를 나누어 주관하게 했다. 명령을 내리길 “영장(令長=영이나 장이나 현의 최고 관리입니다. 즉, 여기서는 황개 자신을 말하는 거지요) 이 부덕한데 다만 무공(武功)으로 관리가 되었지만, 문리(文吏)에는 적합하지 않다. 지금 도적떼들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 군대의 업무가 있기에, 일체 문서의 업무는 두 연에게 위임해 맡기니, 응당 여러 관아들을 검속하고 담당하며, 잘못된 일을 규찰하라. 두 연이 처리하는 것 중 일이 들어오고 승낙이 나감에 있어 만약 간사한 사기(詐欺)가 있어도, 끝내 매질을 가하지 않을 것이니, 의당 각자 마음을 다하고 먼저 앞세우는 것이 없게 하라.” 고 했다. 

처음에는 모두 위엄을 펴며 밤낮으로 직분을 다하였다. 얼마쯤 지나자, 관리들은 황개가 문서를 보지 않는다 하여 사사로운 개인적 일을 점차 용납하게 되었다. 황개 또한 겉으로 해이하고 태만함을 싫어하였는데, 이때 일을 살피다가, 두 연이 여러 일을 처리함에 법을 받들지 않은 사실을 각각 알게 되었다. 이에 여러 연과 관리들을 모두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내리며, 이 기회에 업무의 출입에 관해 꾸짖어 물었다. 두 연들이 사죄하며 굽히니, 모두 관리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였다. 황개가 말하길 “전일에 이미 서로 경계하여, 끝내 형장을 서로 가하지는 않는다 하였으나, 서로를 속이는 것에 관해서는 아니다” 라 하고 마침내 죽였다. 현 중 사람들이 두려워 떨었다.

후에 춘곡(春穀) 현장으로 거쳐 심양(尋陽) 현령이 되었다. 무릇 9현의 지키면서 가는 곳마다 평정하였다. 단양(丹楊) 도위(都尉)로 승진하여, 강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우니, 산월족들이 귀부할 마음을 품었다.

황개는 용모는 엄숙하고 굳세며, 병사를 기르기를 잘하니, 매번 정토(征討)할 때마다 사졸들이 모두 다투어 선두에 나섰다.

건안(建安) 중엽에, 주유를 따라 적벽(赤壁)에서 조공을 막을 때, 화공(火攻)의 계책을 세웠는데, 이에 관한 말이 『주유전』에 있다. 

[주 : 『오서』에 이르길: 적벽의 전투중에, 황개는 유시(流矢)에 맞아서, 차가운 날씨에 물속에 추락하였는데, 오나라 군대 사람들에게 구해졌지만, (그들은) 황개인지 몰라 측간 중에 두었다. 황개는 자기 힘으로 큰 소리를 내어 한당(韓當)을 부르니, 한당이 이를 듣고 말하길 “이는 공복의 소리다” 라 했다. 그에게 향해 가서 눈물을 흘리며, 그의 옷을 풀어 바꿔 입으니, 마침내 살아나게 되었다.


무봉(武鋒) 중랑장으로 배수되었다.


무릉(武陵)의 오랑캐(蠻夷)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읍을 공격하고 수비하자, 이에 황개에게 태수직을 맡겼다. 이때 군중에 병사로 쓸 만한 사람은 5백명이어서 직접 대적하기 어려우니, 이에 인해 성문을 열어두고 도적들이 반쯤 들어올 때 이에 공격하니, 수백 명을 참수하고 나머지들은 모두 달아났으며, (만이의 측에 넘어간) 읍락(邑落)들을 모두 회복하였다. 우두머리들은 주살하여 토벌하고, 귀부하여 따르는 자들은 사면하였다.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침구(侵寇)하는 난리가 모두 평정되었고, 여러 유수(幽邃)의 파(巴), 예(醴), 유(由), 탄(誕)읍의 후(侯)와 군장(君長)들이 모두 지조와 절개를 바꾸어, 예를 받들어 알현하기를 청하니, 군의 경내가 마침내 깨끗해졌다.

후에 장사(長沙)군 익양(益陽)현이 산적들의 공격을 받자, 황개가 또다시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편장군(偏將軍)이 더해지고, 관직에 있다 병으로 죽었다.

황개는 관직에 임하여서는 결단력이 있어, 일이 지체되는 게 없었느니, 국인(國人)들이 그를 사모하였다. 

[주 : 『오서』에 이르길: 또한 황개 형상의 그림을 그려서, 사시사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손권이 제위로 오르자, 그의 공을 추론하여 그의 아들 황병(黃柄)에게 관내후의 작을 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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