甘寧은 자가 흥패(興覇)이고 파군 임강(臨江) 사람이다. 

주 : 『오서(吳書)』에 이르길: 감녕의 본래 남양(南陽)사람인데, 그의 선조가 파군에 빈객으로 있었다. 감념이 관리가 되어 계연(計掾)으로 천거되고 촉군의 군승(郡丞)에 보임되었으나, 얼마 후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기개가 있었고 유협(游俠)을 좋아하였으며, 무뢰한을 불러 모아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들은 무리를 이뤄 서로 따랐고, 활과 화살을 지니고 깃털을 등에 꽂고 방울을 허리에 찼다. 백성들은 방울 소리를 듣고 즉시 감녕임을 알았다. 

주 : 『오서』에 이르길: 감녕이 경박하게 협기로 사람을 살해하고 망명자를 집에 숨겨주었는데, 이것이 군중에 소문이 났다. 그가 출입할 때, 뭍에서는 수레와 말을 펼쳐놓고, 물에서는 빠른 배를 연이어 놓았으며, 시종하는 자들은 무늬 있는 비단옷을 입어 마치 길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멈추어 설 때면 항상 비단으로 배를 메었다가 떠날 때면 혹 이를 잘라 버려서 사치함을 보였다.

사람들과 만나거나 그 성의 지방 관원과 만날 경우에, 융성하게 접대하면 곧 그와 즐겁게 교제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수하에 있는 자들을 풀어 그의 재물을 빼앗았다. 그래서 지방 관원 중에서 어떤 이는 그의 박해를 받아 재산을 내놓아야 하는 부담이 있게 되었다. 이런 행위는 20여 년 간 지속되었다. 이후에 그는 이런 행위를 그치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지 않았으며, 제자백가의 책을 약간 읽고서 곧 유표에게로 가서 의탁했다. 그래서 남양(南陽)에서 살았지만, 나아가 임용되지는 않았다.

후에 그는 몸을 돌려 황조에게 의탁했다. 황조 또한 보통 사람으로서 그를 공양했다. 

[주 : 『오서』에 이르길:

감녕의 그의 가동(家僮)과 빈객들 8백 명을 거느리고 유표에게 갔다. 유표는 유생(儒生)이라 군대의 일을 익히지 못하였다. 이때 여러 영웅호걸들이 각각 병사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감녕이 유표의 사세(事勢)를 살펴보니, 아무리해도 이루는 바가 없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아울러 그 화를 받게 될까 두려워, 오(吳)로 들어가고자 하였다. 

황조가 하구(夏口)에 있었는데, 군대는 지나가지 못하니, 이에 머물러 황조에게 의탁하였으나, 3년이 되도록 황조는 그를 예우하지 않았다. 손권이 황조를 토벌하자, 황조의 군대는 패배하여 흩어져 달아났는데, 그 병사를 추격하니 위급하였다. 감녕이 활을 잘 쏘았는데, 병사를 거느리면서 후방에 있으면, 활을 쏘아 교위 능조(凌操)를 죽였다. 황조가 위급함에서 벗어나고, 군대는 파하여 진영으로 돌아왔으나, 감녕을 처음처럼 대하였다. 

황조의 도독 소비(蘇飛)가 수차례 감녕을 천거했으나, 황조가 쓰지 않고, 사람을 시켜 그의 빈객을 유혹하니, 빈객들이 점차 도망하였다. 감녕은 떠나가고 싶었으나, 붙잡힘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홀로 걱정하며 나갈 바를 몰랐다. 소비가 그의 뜻을 알아, 이에 감녕을 맞이해 술자리를 베풀고 말하길 

“내가 그대를 천거한지 여러 차례였으나, 주인이 능히 쓰지 않는다. 해와 달은 멀리 넘어 가니 인생이 얼마 되겠는가. 마땅히 먼 곳에서가 도모하면, 무릇 지기(知己)를 만날 것이다”

라 했다. 감녕이 한참 후에 말하길 

“비록 뜻이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 했다. 소비가 말하길 

“내가 그대를 주(邾)현의 현장으로 삼고자 아뢰고, 이에 떠나간다면, 누가 더불어 판적(版籍)에 임하여 바꾸겠는가?” 

라 하였다. 감녕이 

“심히 다행입니다” 

라 했다. 소비가 황조에게 아뢰니, (황조가) 감녕이 주현으로 가는 것을 들어주었다. (감녕이) 망명객들과 불러 모으고 의를 따르는 자들을 합쳐서, 수백 명을 얻었다.

그래서 감녕은 오나라로 귀순했다. 주유와 여몽 모두 그를 천거했다. 

손권은 그에게 옛 신하와 같이 특별한 대우를 해주었다. 감녕이 계책을 진술하며 말했다. 

"지금 한나라는 매일매일 쇠미해져 가고 있고, 조조는 더욱더 교만해져 끝내는 제위를 찬탈하려고 할 것입니다. 남쪽의 형주 땅은 산세가 편리하고 강과 하천의 흐름이 원활하니, 진실로 우리나라 서쪽의 유리한 형세입니다. 

저는 이미 유표를 관찰했는데, 그의 생각은 원대하지 않고, 자식들은 또 모자라서 기업을 계승하여 전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공께서 이것을 일찍 살펴보기만 한다면 조조의 뒤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토지를 도모하는 계책은 응당 먼저 황조를 취하는 것입니다. 황조는 지금 연로하여 혼미함이 매우 심하고, 재물과 식량은 모두 부족하며, 수하의 사람들은 그를 속이고 재화를 탐하며, 부하 장수들의 이익을 빼앗아 장수들의 마음에는 원한이 있고, 배나 무기는 버려진 채 정리되어 있지 않으며, 농경에는 게으르고 군대에는 엄한 규율이 없습니다. 공께서 만일 지금 간다면 그들의 패배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일단, 황조의 군대를 파괴하고 북을 치며 서쪽으로 진군합니다. 서쪽에서 초관(楚關)을 점거하여 대세를 넓히면 즉시 점차적으로 파군과 촉군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권은 그의 의견을 칭찬하고 받아들였다. 장소는 그 당시 자리에 있었는데, 그를 비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나라는 현재 형세가 위급한데, 만일 군대가 과감히 출동한다면 아마도 반드시 어지럽게 될 것이오." 

감녕은 장소에게 말했다. 

"나라에서는 소하(蕭何)의 임무를 그대에게 맡겼거늘, 그대는 남아서 지키면서 혼란을 걱정하고 있으니, 어찌 고인을 배우기를 바라시오?" 

손권은 술을 들어 감녕에게 권하며 말했다. 

"흥패, 올해 출정하여 토벌하는 것은 이 술과 같은 것이니, 결정은 그대에게 맡기겠소. 그대가 단지 계략을 짜는 일에 힘써 반드시 황조를 이기도록 한다면 그대의 공이오. 어찌 장장사(張長史)의 말을 의심하시오?" 

손권은 그래서 서쪽으로 나아갔는데, 과연 황조를 체포했고, 그의 병사들을 모두 붙잡았다. 손권은 곧 감녕에게 병권을 주고 당구(當口)에 주둔하도록 했다.

[주:『오서』에 이르길: 손권이 황조를 격파시켰을 때 먼저 상자 두개를 만들어 황조와 소비의 머리를 넣으려고 했다. 소비는 사람을 시켜 급히 감녕에게 위급함을 알리도록 했다. 감녕은 

"소비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찌 잊겠는가?" 

라고 했다. 손권이 부장들을 위해 주연을 베푼 자리에서 감녕은 좌석에서 내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피눈물을 흘렸다. 손권에게 말하기를 

"소비는 옛날 저에게 은혜를 베푼 자입니다. 저는 소비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전에 길가에서 죽어 장군 휘하에서 목숨을 다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소비의 죄는 주륙을 당함이 마땅하지만, 특별히 장군께서 그의 머리를 저에게 주시길 원합니다."

라고 말했다. 손권은 그의 말을 듣고 감동하여, 

"오늘 그대를 위해 죄를 묻지 않았다가 그가 달아난다면 어쩌겠소?" 

라고 했다. 감녕이 말하기를 

"소비는 찢기는 화를 면하고 다시 살 수 있는 은혜를 받는다면 오히려 달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 도망칠 생각을 하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저의 머리를 대신 상자에 넣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손권은 그래서 소비를 사면시켜 주었다.

이후에 감녕은 주유를 수행해 오림(烏林)에서 조조를 대항하여 무찔렀다. 남군에서는 조인을 공격했지만, 공략시키지는 못했다. 감녕은 먼저 곧장 이릉으로 진군하여 취할 것을 건의했다. 그는 가서 그 성을 얻었으며, 들어가서는 고수했다. 

그 당시 수하에는 수백 명의 병사가 있었는데, 새로 얻어서 1천 명을 채웠다. 조인은 곧 5, 6천 명을 시켜 감녕을 포위하도록 했다. 감녕은 며칠간의 계속된 공격을 받았으며, 적은 높은 누각을 세우고 성 안으로 비가 내리는 듯이 화살을 쏘았다. 병사들은 모두 두려워했다. 오직 감녕만은 태연자약하게 담소했다. 

사자를 파견하여 주유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주유는 여몽의 계책을 써서 장수들을 인솔하여 포위를 풀었다. 후에 노숙을 수행하여 익양을 진무시키고 관우에게 대항했다. 관우는 3만 명이라 칭하고, 직접 정예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 상류 10여 리의 얕은 여울에 배치하고 밤을 틈타 냇물을 건너려 한다고 말했다. 

노숙이 장수들과 상의할 때 감녕은 당시 3백 명의 병사만 있었으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시 저에게 5백 명을 증원시켜 줄 수 있다면, 제가 가서 그에게 대항하겠습니다. 관우는 제가 기침하며 가래침을 뱉는 것을 듣고 감히 물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물을 건너면 저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노숙은 곧바로 병사 1천 명을 선발하여 감녕에게 더해 주었다. 감녕은 그날 밤에 갔다. 

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건너지 못한 채 머물러 있으면서 땔나무를 엮어 진영을 만들었는데, 오늘날 이것을 관우뢰(關羽瀨)라고 부른다. 손권은 감녕의 공로를 칭찬하고 서릉태수로 제수했으며, 양신(陽新)ㆍ하이(下雉) 두 현을 통솔하도록 했다. 

후에 감녕은 환현 공격에 참가해 승성독(升城督)으로 임명됐다. 감녕은 직접 줄을 잡고 성벽을 기어 올라가 장사들의 선봉이 되어 결국은 주광(朱光)을 격파시키고 포로로 잡았다. 공로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여몽이 가장 컸고, 감녕이 그 다음이었으므로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제수되었다. 

이후에 조조가 유수로 출병했을 때, 감녕은 전부독(前部督)이 되어 병사를 출동시켜 적의 앞 진영을 쳐부수라는 명령을 받았다. 손권은 특별히 쌀과 술, 많은 안주를 하사했다. 감녕은 이것을 수하 1백여 명에게 내려 먹도록 했다. 다 먹은 후, 감녕은 먼저 은 술잔에 술을 따라서 자기가 두 잔을 마시고, 그런 연후에 수하의 도독에게 따라 주었다. 도독은 땅에 엎드려 있었으므로 그 즉시 받을 수 없었다. 

감녕은 칼을 꺼내 무릎 위에 놓고 꾸짖어 말했다. 

"그대가 폐하에게 인정받았다고 하나, 어찌 나와 함께 할 수 있소? 

나는 여전히 죽음을 아끼지 않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유독 죽음을 아끼시오?" 

도독은 감녕의 안색이 사나운 것을 보고 즉시 일어나 공손히 술을 받았으며, 그런 연후에 병사들에게 각기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이경(二更)이 되었을 때, 나뭇가지로 위장하고 적을 쳐부수러 갔다. 적은 깜짝 놀랐으며, 끝내는 퇴각했다. 감녕은 이 때문에 더욱 중시되었고, 병사 2천 명이 증원되었다. 

[주 : 『강표전(江表傳)』에 이르길:

조공이 유수로 출전했을 때, 보기 40만이라 불렀고, 강물에 임하여 말을 물 먹였다. 손권이 병사 7만을 거느리고 응전하면서, 감녕을 시켜 3천명을 거느리고 전부독이 되게 하였다. 

손권이 비밀리에 감녕에게 명령을 내려 밤에 위군으로 난입하게 하였다. 손권이 수하의 건장한 병사 1백 명을 골라, 빠른 길로 조공의 진영 아래로 가서, 녹각(鹿角)을 뽑아 불며, 보루를 넘어 진영에 들어가, 수십 급을 참수했다. 북군(北軍)은 놀라 시끄럽게 북을 울리며 불을 별빛처럼 환하게 드니, 감녕이 이에 진영으로 돌아와 북과 나팔을 불며 만세를 불렀다. 

인하여 밤에 손권을 알현하니, 손권이 기뻐 말하길 

“늙은이를 너무 놀라게 한 것 아니오? 오로지 경의 담력만 지켜봤소.”

라 했다. 곧 비단 1천 필과 칼 1백 자루를 하사했다. 손권이 말하길 

“맹덕에겐 장료가 있지만, 나에겐 흥패가 있으니, 족히 서로 상대해볼만 하다” 

라 했다. 한 달여간 멈추고 머무르다, 북군은 바로 퇴각하였다.

감녕은 비록 사납고 살생을 좋아했지만, 호방하고 맑은 성정과 계략이 있었다. 그는 재물을 경시하고 장사들을 존중했다. 유능한 인물을 후하게 대우했으며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병사들 또한 기꺼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건안 20년(215), 감녕은 합비 공격에 참가했는데, 마침 역병이 유행하여 군대는 모두 물러났고, 오직 수레 아래의 호사(虎士) 1천여 명과 여몽ㆍ장흠ㆍ능통 및 감녕이 손권을 따라 
소요진(逍遙津) 북쪽에 있었다. 장료는 멀리서 이러한 모습을 관찰하고 즉시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급습하였다. 감녕은 적에게 화살을 쏘았으며, 능통 등도 필사적으로 싸웠다. 

[주 : 『오서』에 이르길: 원래 능통은 감녕이 자신의 아버지 능조를 죽게 했으므로,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에 감녕은 항상 능통을 경계하고 서고 만나지 않았다. 손권 역시 능통에게 한을 품지 말라고 명령했다. 

일찍이 여몽의 집에서 연회를 열어 주흥이 무르익자. 능통은 칼을 가지고 춤을 추었다. 감녕이 이에 일어나서 말하기를 

"나도 쌍극무를 출수 있소." 

라고 하였다. 여몽이 말하기를

"감녕도 할 수 있겠지만, 나의 기교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오."

라고 하면서 칼을 잡고 방패를 쥐고서 몸으로 두 사람 사이를 베었다. 후에 손권은 능통의 마음을 알고, 감녕에게 병사를 인솔하여 반주로 옮겨 주둔하도록 했다.

감녕은 군악대에게 무엇 때문에 북을 치고 피리를 불지 않느냐고 거세게 소리 질렀다. 그는 웅장하고 강인했다. 

손권은 특별히 그를 칭찬했다. 감녕의 주방에서 일하는 어린이가 일찍이 허물이 있자 여몽에게로 달려가 투항했다. 여몽은 감녕이 그 아이를 죽일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즉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후에 감녕이 예물을 갖고 여몽의 모친을 배알하고 직접 모친과 당에 오른 후에야 비로소 주방의 어린이를 감녕에게 돌려보냈다. 감녕은 여몽에게 그 아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잠시 후, 배로 돌아오자 그 아이를 뽕나무에 묶어놓고 직접 활을 당겨 쏘아 죽였다. 일을 마친 후, 뱃사람들에게 명하여 배의 닻줄을 내리도록 하고, 옷을 벗고 배 안에 누웠다. 여몽은 매우 노여워하며, 북을 쳐서 병사들을 모아 배로 가서 감녕을 공격하려고 했다. 감녕은 이 소식을 들었지만, 고의로 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다. 

여몽의 모친은 맨발로 달려 나와서 여몽에게 이렇게 권했다. 

"황상께서는 너를 육친처럼 대우하고 국가의 대사를 너에게 위탁하셨는데 어떻게 사사로운 노여움 때문에 감녕을 공격하여 죽이려 하느냐? 감녕이 죽은 날, 설령 황상께서 힐문하지 않더라도 네 행동이 신하된 자로서 법도에 부합되겠느냐." 

여몽은 평소 지극한 효자였으므로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즉시 허물을 명백히 하고 마음속의 원한도 사그라졌다. 그는 직접 감녕의 배로 와서 웃으며 이렇게 외쳤다. 

"흥패, 어머니께서 그대를 식사에 초대하셨으니 빨리 올라오시오!" 

감녕은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그대를 저버렸소." 

감녕은 여몽과 함께 돌아와 여몽의 어머니를 보고 온종일 즐겁게 지냈다. 감녕이 죽은 후, 손권은 매우 애통해했다. 아들 감괴(甘瑰)는 죄를 범하여 회계군으로 이주되었다가 오래지 않아 죽었다.
분류 :
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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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3.05.01
05:46:54 (*.148.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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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5.02
13:07:55
(*.0.203.81)

저 감괴의 괴자가 없어서 찾아 붙여넣는데 '구슬 이름 괴'자군요 ㅋㅋㅋ 아들 이름 한 번 기막히네요

코렐솔라

2013.07.17
21:52:22
(*.52.89.88)
추가로 넣을 배주 없습니다.

코렐솔라

2013.08.06
15:49:59
(*.131.108.250)
하치->하이로 수정

코렐솔라

2013.09.03
19:48:01
(*.166.245.166)
관우는 3만 명의 병사 중 직접 정예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관우는 3만 명이라 칭하고, 직접 정예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

로 고칩니다.

구라뱅뱅

2013.09.04
16:41:16
(*.49.168.253)
집해에 나온 오류 지적부분
◎按《孫權傳》、《呂蒙傳》,皆雲破朱光在前,據關羽在後,與此傳異。

손권전과 여몽전을 보면 주광朱光을 격파한것이 먼저고, 관우에 대항據한것이 나중이나, 감녕전은 다르다.

코렐솔라

2013.09.04
16:43:23
(*.0.203.174)
넵, 저도 선주전 집해의 옛날에 쌓은 성이다를 보고 관우를 과거로 두고 유수구를 214년으로 두면 된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냥 순서 틀리다고 하면 되는 문제였죠 흑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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