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潘璋은 자가 문규(文珪)이고 동군 발간 사람이다.

손권이 양선현의 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가 손권을 따랐다.

하지만 성정이 호탕하고 술을 좋아하였다. 그는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외상술을 즐겼다. 빚쟁이가 대문까지 쫓아오면 항상 이후에 부귀해지면 다시 오라고 말했다.

손권은 그를 기이하게 여겨 아꼈고, 그에게 병사를 모집하도록 하여 백여 명을 얻게 되자, 부장으로 삼았다. 산월의 적을 토벌하여 공로를 세웠으므로 별부사마에 임명됐다. 이후에 오군의 큰 저자에서 침입자를 죽이자, 이로부터 도적은 단절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이름이 났으며 예장군 서안현의 장으로 승진했다. 유표가 형주에 있을 때, 백성들은 여러 차례 그들의 침략을 당했다. 반장이 일을 맡은 이후부터 침략자들은 경내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웃하고 있는 현인 건창에서 강도들의 폭도가 일어나자, 전임되어 건창을 다스리게 되었고, 무맹교위를 더했다. 그는 사악한 자를 토벌하여 다스려 1개월 만에 전부 평정시켰다. 그리고 흩어져 떠도는 병사들을 소집하여 8백 명을 얻었으며, 그들을 데리고 건업으로 돌아왔다.

합비 싸움에서 장료가 급습했을 때, 장수들은 무방비 상태였고, 진무는 분투하다 죽었으며, 송겸이나 서성은 모두 후퇴하였다. 반장은 후방에 있었지만, 곧바로 급히 달려가서 말을 비껴 송겸과 서성의 병사들 중 달아나는 두 명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모두 돌아와서 싸웠다. 손권은 이 점을 특히 칭찬하여 그에게 편장군을 제수했다. 그래서 백 명의 교관을 통솔하여 반주에 주둔했다.

손권이 관우를 정벌할 때, 반장은 주연과 관우가 달아나는 길을 차단시켰다. 그는 임저에 도착하여 협석에 주둔했다. 반장의 부하 사마 마충이 관우와 관우의 아들 관평과 도독 조루 등을 붙잡았다. 손권은 의도군의 무현과 자귀현 두 현을 나누어 고릉군으로 만들고, 반장을 그곳의 태수로 임명했으며, 진위장군으로 삼았고, 율양후로 봉했다. 감녕이 죽자, 또 감녕의 군대를 주어 합치도록 했다. 유비가 이릉으로 출병했을 때는, 반장과 육손이 힘을 합쳐 대항했으며, 반장의 부하가 유비의 호군 풍습 등의 목을 베었고, 죽거나 부상당한 자는 매우 많았다. 반장은 평북장군, 양양태수로 임명됐다.

위나라 장수 하후상 등이 남군을 포위하고, 선봉 부대 3만 명을 나누어 부교를 만들고 백리주를 건너왔다. 제갈근과 양찬이 함께 병사를 모아 구원하러 달려갔지만, 그 사태에 대처할 바를 몰랐고, 위나라 병사들은 날마다 끊임없이 건너고 있었다. 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나라의 기세는 방금 흥성하기 시작했고, 강물은 또 얕으므로 그들과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위로부터 상류로 50리 되는 곳까지 가서 갈대를 수백만 개 베어 커다란 떼를 만들어 물의 흐름을 따라 불을 놓아 부교를 전소시키려 했다. 떼 만드는 작업이 막 끝나 강물이 가득 찬 것을 보고 띄우려고 할 때에 하후상이 이것을 알고 병사를 인솔하여 물러났다. 반장은 말에 올라 육구까지 내려가서 막았다. 손권은 제위에 오른 후, 반장을 우장군에 제수했다.

반장은 사람됨이 난폭하고 사나웠으며, 금령은 매우 숙연했다. 그는 공업 세우기를 좋아하였으며, 통솔하는 군대는 수천 명에 불과했지만 이르는 곳마다 언제나 만 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정벌이 멈추었을 때는, 즉시 군대 시장을 세웠으며, 다른 군에 없는 것은 모두 반장의 시장에서 충족시켰다. 그러나 그의 성격은 사치스러웠고, 이런 경향은 만년에 더욱 심해져 의복이나 물건은 그의 신분을 넘는 것을 사용했다. 관리들 가운데 부유한 자가 있으면 그를 죽이고 재물을 빼앗을 때도 있었다. 법령을 받들지 않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감시하는 자가 이 일을 들어 상주했지만, 손권은 그의 공을 아껴 항상 용서하고 죄를 묻지 않았다.

반장은 가화 3년(234)년에 죽었다. 아들 반평은 품행이 좋지 않았으므로 회계군으로 쫓겨났다.

반장의 처는 건업에서 살았는데, 밭과 가옥을 하사받았고, 또 소작인 50호의 부세를 면제받았다
 
반장의 자는 문규(文珪)이며 동군(東郡) 발간(發干)현 사람이다. 손권이 양선(陽羨)현장이 되자, 처음으로 가서 손권을 따랐다.성품이 평탄하고 호탕하며 술을 좋아해서 가난하면서도 외상술을 받아 먹었다. 빚쟁이가문앞까지 이르면 번번이 호부(豪富)해진 후에 다시 들리라고 하니,손권이 그를 기이하게 여겨 아끼니, 이로 인하여 군사들을 불러 모집하게 하여,1백명이 되자, 마침내 그를 장수로 삼았다.

 

산적(山賊)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우니, 별부사마로 삼았다. 이후오의 큰 시장에 간사한 자를 죽이게 되어, 도적들이 끊기고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알려지자, 예장군 서안(西安)현장으로 승진시켰다.

 

유표가 형주에 있으면서, 백성들이 수차례 침구(侵寇)를 당했는데, 반장이 일을 맡고 나서는 그런 침략자들이경내로 들어오지 못했다. 이웃한 현인 건창(乾昌)에서 도적들의 난이 일어나자, 건창현장도 겸임하였고, 무맹(武猛)교위를 더하였으며, 악한 백성들을 토벌하고 다스려 한달여 만에 모두 평정되었다. 남겨지고 흩어진 자들을 불러 모아8백명을 얻어 그들을 거느리고 건업으로 돌아왔다.

 

합비(合肥)의 전투때, 장료(張遼)가 엄습해 오자, 여러 장수들이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진무(陳武)는 역전(力戰)하다 죽었고, 송겸(宋謙)과 서성(徐盛)은 모두 달아났으나, 반장 자신은 후방에 있으면서 바로 말 달려 앞으로 나아가,말을 비껴세워 송겸과 서성의 병사 중 달아나는 자 2명을 베니, 병사들이 모두 돌아와 싸웠다. 손권이 그를 심히 장하게 여겨, 편장군에 배수하고, 마침내 백교(白校)를 통솔하며 반주(半州)에 주둔하도록 하였다.

 

손권이 관우를 정벌할 때, 반장과 주연(朱然)이 관우의 퇴로를 차단하여서,임저(臨沮)에 도착하여서는 협석(夾石)에 주둔했다. 반장 부하인 사마벼슬의 마충(馬忠)이 관우를 사로잡고, 아울어 관우의 아들 관평(關平)과 그의 도독 조루(趙累) 등도 사로잡았다. 손권이 곧 의도(宜都)군의 무()현과 자귀() 2현에 이르는 곳까지를 고릉(固陵)군으로 삼고, 반장을 배수하여 고릉 태수, 진위(振威)장군으로 삼고, 율양후(陽侯)로 봉했다. 감녕이 죽은 뒤, 또한 그의 병사를 병합하였다.

 

유비가 이릉(夷陵)으로 출전하자, 반장과 육손(陸遜)이 힘을 합쳐 막았고, 반장의 부하가 유비의 호군(護軍)인 풍습(馮習) 등을 베고, 살상한 것이 매우 많으니, 평북(平北)장군, 양양태수로 배수하였다.

 

위의 장수 하후상(夏侯尙) 등이 남군(南郡)을 포위하고, 선봉의 3만명을 나눠 부교를 만들어 백리주(百里洲)를 건너오자, 제갈근과 양찬(楊粲)이 아울러 병사를 모아 구원하러 갔으나,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고, 위나라 병사들은 날마다 건너오면서 끊이지 않았다. 반장이 말하길 “위의 세력이 비로써 성한데다,강물 또한 얕으니, 더불어 싸울 수 없습니다”라 하고, 바로 통솔하던 자들을 거느리고, 위의 진영 상류 50리쪽에도착하여, 갈대 수백만 묶음을 베어 이를 묶어 큰 뗏목을 만들어, 강물을따라 오며 불을 질러 적의 부교를 불태우고 부수고자 하였다. 뗏목을 만드는 일이 끝나자,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려 막 내려가려 할 때, 하후상이 바로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였다.반장은 아래로 내려가 육구(陸口)를 수비했다.

 

손권이 존호를 칭하고 난 후, 그를 우장군에 배수하였다.

 

반장은 사람됨이 과격하고 용맹하였으며, 금령이 숙연하였다. 공업을 세우기 좋아하여, 거느리던병마가 수천에 이르지도 못했으나, 항상 그가 있는 곳에는 만명이 있는 듯 하였다. 정벌이 멈추면, 바로 군대의 시장을 세워서, 다른 군에없는 곳도 모두 취하여 충족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사치스럽고 말년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져,의복과 기물들이 참람하였다. 관리와 병사들 중 부유한 자가 있으면,혹 죽여서 그들의 재물을 취하여서, 수차례 법령을 받들지 않았다. 감사(監司)가 이런 사례를 들어 아뢰었으나,손권이 그의 공을 아껴 묻지 않았다.

 

가화(嘉禾) 3(234) 죽었다. 아들 반평(潘平), 행적이 없어 회계군으로 옮겨졌다.반장의 처는 건업에 살았는데, 전택을 하사하고, 전객(佃客) 오십가의 부역를 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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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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