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朱治는 자가 군리(君理)이고 단양군(丹楊郡) 고장(故?)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는 현의 관리로 임명되었다가 이후에 효렴으로 추천되었는데, 주에서 불러 종사(從事)로 삼았다. 그 후 주치는 손견을 따라 정벌하러 갔다.

중평 5년(188)에 주치는 사마(司馬)로 제수되어 장사ㆍ영릉ㆍ계양 등 세 군의 적 주조(周朝)ㆍ소마(蘇馬) 등의 토벌에 참가해 공로를 세웠다. 손견은 표를 올려 주치에게 도위(都尉)의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그는 양인(陽人)에서 동탁을 공격할 때 참가하여 무찌르고 낙양으로 들어갔다. 손견은 표를 올려 주치에게 독군교위의 임무를 대행하도록 하고, 독자적으로 보병과 기병을 인솔하고 동쪽으로 가서 서주목 도겸을 도와 황건을 토벌하도록 했다.

마침 손견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주치는 손책을 보좌하여 원술에게 가서 의탁하게 되었다. 후에 주치는 원술이 정치적으로나 덕망에 있어서 이룬 것이 없음을 알고 곧바로 손책에게 군사를 돌려 강동을 평정시킬 것을 권유했다. 그 당시 태부 마일제(馬日?)가 수춘에 있으면서 주치를 초빙하여 속관으로 삼았으며, 이후에는 오군도위(吳郡都尉)로 승진시켰다. 이때 오경(吳景)이 단양에 있었는데, 손책은 원술을 위해 여강을 공격했다. 그래서 유요는 원술과 손책에게 병탄될 것이 두려웠으므로 두 사람을 이간시키려고 했다.

손책의 일가는 전부 원술의 통제를 받는 주에 있었으므로 주치는 곡아(曲阿)로 사람을 보내 태비(太妃:손견의 오부인)와 손권 형제를 맞도록 하여 정중히 받들어 모시고 보호하였는데, 깊고 두터운 정이 있었다. 주치가 전당(錢唐)으로부터 진군하여 오군으로 가려고 하자, 오군태수 허공(許貢)이 유권(由拳)에서 그를 저지시켰다. 그래서 주치는 허공과 싸워 크게 무찔렀다. 허공은 남쪽으로 산적 엄백호(嚴白虎)에게 달아나 기댔다. 주치는 마침내 오군으로 들어와 태수의 일을 겸했다. 손책은 유요를 달아나게 한 뒤에 또 동쪽으로 가서 회계를 평정시켰다.

손권이 15세 때, 주치는 그를 천거하여 효렴이 되게 했다. 후에 손책이 죽자, 주치는 장소 등과 함께 손권을 존중하며 받들었다.건안 7년(202), 손권이 표를 올려 주치를 오군태수로 임명했으며, 부의장군(扶義將軍)을 겸임하도록 하고, 누(?)ㆍ유권ㆍ무석(無錫)ㆍ비릉(毗陵)을 분할하여 그의 식읍이 되도록 했다. 그래서 주치는 지방 관리를 두게 되었다. 그는 소수 민족이나 산월(山越)을 토벌하고, 손권을 도와 동남쪽 지역을 평정시켰으며, 황건의 잔여 세력인 진패(陳敗)ㆍ만병(萬秉) 등을 포로로 잡아 근절시켰다.

황무 원년(222), 주치는 비릉후(毗陵候)로 봉해졌으며, 오군태수의 직책은 이전과 같이 겸임하였다.

2년(223), 주치는 안국장군(安國將軍)으로 임명되고, 금인(金印)과 자수(紫綏)를 수여받았으며, 봉지가 고장으로 옮겨졌다.손권은 중요한 상장(上將(을 역임하고 오왕이 되었다. 그렇지만, 주치가 나아가 만날 때마다 손권은 언제나 주치를 직접 영접했으며 홀(笏)을 쥐고 서로 인사를 하고 향연을 베풀어 주었다. 손권이 주치를 은애하고 존경하는 것은 특히 융성해, 주치를 수행하는 관리들에게 이르러서도 모두 예물을 바치고 개인적인 일로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다.

처음에 손권의 동생 손익(孫翊)은 성질이 급하고 너그럽지 못하며 기쁘든 노엽든 간에 마음의 통쾌함만을 구헸었다. 주치는 그를 여러 차례 질책하고 도의로써 계도하였다. 손권의 사촌 형이며 예장태수인 손분(孫賁)의 딸이 조조의 며느리가 되었다. 조조가 형주를 격파시키고 위세가 남쪽 땅을 진동시켰을 때, 손분은 두려웠으므로 아들을 보내 인질로 만들려고 했다. 주치는 이 말을 듣고, 손분에게로 가서 그와의 면담을 요구하여 정세의 안정과 위태로움에 대해 진술했다. 손분은 이 일로 해서 아들을 보내려는 생각을 떨쳐 버렸다.


江表傳載治說賁曰:「破虜將軍昔率義兵入討董卓,聲冠中夏,義士壯之。討逆繼世,廓定六郡,特以君侯骨肉至親,器為時生,故表漢朝,剖符大郡,兼建將校,仍關綜兩府,榮冠宗室,為遠近所瞻。加討虜聰明神武,繼承洪業,攬結英雄,周濟世務,軍眾日盛,事業日隆,雖昔蕭王之在河北,無以加也,必克成王基,應運東南。故劉玄德遠布腹心,求見拯救,此天下所共知也。前在東聞道路之言,云將軍有異趣,良用憮然。今曹公阻兵,傾覆漢室,幼帝流離,百姓元元未知所歸。而中國蕭條,或百里無煙,城邑空虛,道殣相望,士歎於外,婦怨乎室,加之以師旅,因之以飢饉,以此料之,豈能越長江與我爭利哉?將軍當斯時也,而欲背骨肉之 親,違萬安之計,割同氣之膚,啖虎狼之口,為一女子,改慮易圖,失機毫釐,差以千里,豈不惜哉!」    


강표전에 주치가 손분에게 한 말을 실어 이르길 : 「파로장군이 옛날 의병을 지휘해서 동탁을 토벌했는데 명성이 중하에서 으뜸이었고 의사들이 장하게 여겼습니다. 토역이 잇고 6군을 평정하였는데 특별히 군후를 골육의 친족이며 같은 시기에 태어난 것을 중히 여겨 한조에 표를 올려 큰 군을 통치하게 하고 더불어 장교를 세우게 하며 이로 인해 두 사람이 아주 친밀하며 영예가 종실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원근이 모두 목도한 바입니다. 더하여 토로가 총명 신무하여 홍업을 이어 받았는데 영웅들을 모아 세상의 사무를 두루 해결하니 군중이 날로 강성해지고 사업이 날로 융성해져서 비록 옛날 소왕(蕭王: 광무제)이 하북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드시 왕의 기업을 이루고 동남지방에서 천운에 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현덕은 멀리서 진심을 가지고 구원을 요청한 것은 천하가 더불어 아는 바입니다. 일전에 동쪽에 있으면서 전해지는 말을 들으니 장군께서 다른 뜻이 있다고 하던데 진실로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지금 조공이 군대를 이끌고 한실을 경복시켜 어린 황제가 떠돌아다니고 백성들이 귀의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중국은 냉락하여 혹 백리에 연기가 없고 성읍이 텅텅 비어 길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어 선비들은 바깥에서 탄식하고 부녀들은 집안에서 원망하고 있는데 전쟁과 기근을 더하여 헤아려 보면 어찌 능히 장강을 넘어 우리와 이익을 다툴 수 있겠습니까? 장군은 이 때에 당하여 골육의 친속을 배반하고 만전의 계책에 위반하며 동기의 피부를 갈라 호랑(虎狼)의 주둥이에 넣어주니 한 명의 여자를 위해 생각과 의도를 바꿔 털끝만큼의 차이가 천리나 벌어지게 하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

손권은 주치가 국가의 대사를 위해 걱정하며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항상 찬탄했다. 주치의 성격은 검소하며 비록 부귀한 위치에 있을지라도 수레와 복식은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만 사용했다. 손권은 그를 각별하게 대우했지만 그는 오히려 직접 독군과 어사(御史)에게 성 안의 문서를 처리하도록 명령했고, 네 현의 조세만을 다스렸다. 그러나 황족의 자제나 오군의 네 성(姓)이 대부분 그의 군에서 관리가 되어 군의 관리는 언제나 수천 명씩 되었으며, 주치가 몇 년마다 한 번씩 왕부(王府)로 파견할 때에는 파견하는 자가 수백 명이나 되었다. 주치는 매년 계절마다 손권에게 헌상품을 바쳤고, 손권은 주치가 바친 것보다 더 후하게 답례하였다.

당시 단양의 궁벽한 지역에는 사악하고 모반한 자가 자못 있었으며, 또 주치는 나이가 들어 늙어감에 따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게 되었으므로 직접 표를 올려 고장에 주둔하여 산월을 진무시키기를 원했다. 그가 고장에 도착한 후, 고향의 중추가 되는 노인이나 옛 친구들 가운데 그를 방문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주치는 이들을 전부 들어오도록 하여 함께 술을 마시고 즐거워했다. 고향 사람들은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는 고장에서 1년여 동안 살고 오군으로 돌아왔다.

황무 3년(224)에 주치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군에서 31년간 있었고, 향년 69세였다. 그의 아들 주재(朱才)는 원래 교위를 맡아 병사들을 통솔하였는데,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 편장군으로 승진했다. 주재의 동생은 주기(朱紀)이다. 손권은 손책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그는 교위의 신분으로 병사들을 통솔했다.


吳書曰:才字君業,為人精敏,善騎射,權愛異之,常侍從游戲。少以父任為武衛校尉,領兵隨從征伐,屢有功捷。本郡議者以才少處榮貴,未留意於鄉黨,才乃歎曰:「我初為將,謂跨馬蹈敵,當身履鋒,足以揚名,不知鄉黨復追跡其舉措乎!」於是更折節為恭,留意於賓客,輕財尚義,施不望報,又學兵法,名聲始聞於遠近。會疾卒。    


오서(吳書)에서 이르길: 주재(朱才)의 자는 군업(君業)으로 사람됨이 정밀하고 민첩하여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잘해 손권이 좋아하여 특별하게 대해 항상 시종하면서 놀러 다녔다. 어려서 아버지 덕분에 무위교위에 임명되었는데 병사를 이끌고 정벌에 따라다니면서 누차 공을 세웠다. 본군의 의논하는 사람들은 주재가 어려서부터 영화부귀에 처하여 향당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주재가 마침내 탄식하며 말하길 「나는 처음 장수가 됐을 때에 말하길 말에 걸터앉아 적군을 밟으며 응당 몸으로 예봉을 맡는다면 족히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거라 하였는데 향당이 다시 그 행동을 추적할 줄은 몰랐구나 !」이에 다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춰 공손하게 행동하고 빈객에게 마음을 기울였으며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리를 숭상하며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또한 병법을 배워 명성이 비로소 원근에서 들렸다. 병을 얻어 죽었다. 


주기의 동생 주위(朱緯)와 주만세(朱萬歲)는 모두 요절했다. 주재의 아들 주완(朱琓)은 작위를 계승하여 장수가 되었고, 관직은 진서장군까지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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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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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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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솔라

201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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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분을 설득하는 내용과 주재에 대한 내용은 dragonrz님 번역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rexhistoria.net/156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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