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동중국)에서는 동탁을 토벌하기 위하여 군대가 일어났다. 그 맹주인 원소가 하내까지 왔을 때, 장양은 원소와 합류하고 도 흉노의 선우 어부라(於夫羅)와 함께 장수 일대에서 주둔했다. 선우는 반역을 꾀하였지만, 원소와 장양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선우가 장양을 납치하여 함께 떠나자, 원소는 대장 국의에게 추격을 명령했으며, 업현의 남쪽에서 이들을 격파시켰다.
-위서 장양전-

이듬 해, 한복의 장수 국의가 반란을 일으켜 한복과 더불어 싸웠으나 손해를 보았다. 원소는 한복을 원망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국의와 서로 결탁하였다.
-후한서 원소열전-

통상적으로 국의는 한복의 휘하였다가 원소에게 귀부하여 공손찬과의 전쟁에서 대공을 세우고 유화와 연결됬다가 숙청당한 일생이라 얘기하는데 이 국의가 원소에게 귀부한 시점이 궁금합니다.

원소열전에서는 국의가 귀부하고 곧 기주를 차지해버리는데 장양전에서는 이미 한참 전인 반동탁연합때를 언급하고 있고, 한복은 연합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도 않고, 원소를 견제하고자 보낸 관리였기에 그의 수하인 국의를 원소가 부렸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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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15:47:45 (*.111.17.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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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송

2015.05.23
16:22:57
(*.34.86.109)
원소가 한복에게서 기주목을 양도받기 직전 시점에서 이미 장양과 어부라를 격파,병합한 정황이 구주춘추에서 조부의 발언과, 후한서 원소전에 인용된 원소의 상주문, 공손찬전에 인용된 공손찬의 표문 등에서 언급됩니다.

원소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기주를 노략질하던 장양을 격파하자 장양이 항복을 구걸해왔다 하고,
조부 등은 장양,어부라가 원소에게 합세해 봤자 결국 기주군 앞에서는 오합지졸이니 한번에 격파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
공손찬은 유자황이 장양을 항복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원소가 유자황을 시덥잖은 핑계로 숙청하고 후사까지 끊었으니 포악하다며 비난

원소를 비롯한 황하 이북의 연합군은 하내에 주둔했으니 원소가 장양과 하내에서 합류한 것은 190년 초의 일일 테고,
장양이 어부라와 함께 업성 북쪽의 장하에 주둔하던 것은 별개의 시점으로 봐야 할듯.

南單于劫張楊以叛袁紹,屯於黎陽。董卓以楊為建義將軍、河內太守。-자치통감 191년 기사-

남선우가 장양을 겁박하여 원소를 배반하도록 하니 여양에 진을 쳤다. 동탁이 장양을 건의장군으로 임명하고 하내태수로 삼았다.
자치통감에서는 반란의 대상이 원소로 되어 있고, 원소가 기주목을 양도받은 이후 시점으로 적고 있네요.

초송

2015.05.23
16:26:17
(*.34.86.109)
기록을 전부 취합해 순서를 정리해 보면

190년 초 원소 장양 등 하내 주둔
→ 왕광, 동탁군에 참패(동탁전)
→ 한복, 원소를 견제해 군량을 끊음.(후한서원소전)
→ 한복,원소의 유우 추대

191년
→ 국의가 한복에게 반란, 원소와 연합 (후한서 원소전)
→ 원소가 공손찬을 끌어들임.
→ 공손찬이 안평에서 한복을 대파.
→ 이 무렵 원소는 연진(진류군 산조현 북부, 당시 장막 관할지)에 주둔(삼국지 원소전), 장양과 어부라는 장하(업현 북쪽)에 주둔(삼국지 장양전)
→ 원소는 공손찬의 남진에 맞춰 황하를 건너 업으로 향함.
→ 원소가 장양과 어부라를 격파(원소여찬서), 유자황을 통해 항복시킴(찬표초죄상).
→ 원소가 곽도,순심,고간 등을 보내 한복을 협박, 측근 대다수의 격렬한 반대에도 한복은 이를 받아들여 기주목을 양도.
→ 원소의 구 한복파 숙청, 공손찬과의 대립 등등
→ 이 사이에 어부라의 부추김(혹은 협박)으로 장양은 원소에게 반란, 업현 남쪽에서 국의에게 격파당함.(삼국지 장양전, 자치통감)
→ 장양,어부라는 여양으로 달아나 도요장군 경지를 격파, 팝콘 먹고 있던 동탁이 장양을 건의장군으로 삼음.( 상동 )
→ 이후 계교전투

정도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워낙 기록이 흩어져 있다 보니 파악이 어렵지만 국의의 귀부 시점에서 모순이 생길 일은 없어 보이네요.

venne

2015.06.03
16:32:19
(*.186.21.9)
확실히 이렇게 정리를 해서 보니까 시세파악이 되네요. 반란실패로 입지가 곤란하던 국의가 기주에 입성한 원소에게 적극가담하며 공손찬, 장양을 섬멸했다는 전개가 된다는거군요. 장양의 반란시점을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훑어보다보니 답답했는데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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