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홍대용의 저서 담헌서에 사론(史論)이라는 제목으로 중국 역대 인물을 품평한 것이 있어 삼국시대와 진나라 초기 인물을 발췌해서 올립니다. 한국고전종합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은 글입니다. (한국고전번역원 김철희 () 1974) 글과 글 사이의 상관 관계는 없으며 이 인물은 이렇고 저 인물은 저렇다, 이렇게 죽 나열하고 있습니다. 

 


강유(姜維)는 무후(武侯)의 재주는 없으면서 무후의 사업을 하려고 했으니, 그 뜻은 충성스럽지만, 그가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여 결국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니, 그것은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요화(廖化)가 이른바 지모(智謀)도 적()만 못하고, 병력(兵力)도 적보다 적으면서 용병(用兵)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니 어찌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은 참으로 알고 하는 말이다. 또한 모사(謀事)를 잘하는 자는 그 근본부터 먼저하고 끝은 나중에 하며, 안의 일부터 급히 하고 바깥일은 천천히 한다. 소인(小人)이 안에서 일을 주선하는데, 장수가 밖에서 성공(成功)한 자는 있지 않다. 그런데, 강유는 정권을 제 마음대로 하는 황호(黃皓)를 능히 억누르지 못하고 저 억센 적에게 뜻대로 하려고 했으니, 지혜롭다 할 수 없다.


오휴(吳休-오 경제 손휴)는 아첨한 자의 수단에 빠져서 소(昭冲: 위소(韋昭), 성충(盛冲))의 무리와 더불어 글 읽고 강론함을 기쁘게 여겼다. 그러나 그가 흥포(興布-복양흥, 장포)의 무리에게 답한 말들은 또한 명백하고 절실하였으니, 대개 그의 천품(天禀)은 좋았던 것인데 가르침과 인도함을 착하게 못한 것이 애석하다. 흥포의 무리는 자기들의 허물을 행여 말할까 두려워해서 굳이 간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임금을 그르치고 자신의 은총(恩寵)만 받으려고 하는 소인의 무리는 모두 이와 같으니, 두렵다.

 

혜강(嵇康-죽림7현 중 한 사람)은 두 발을 앞으로 쭉 뻗고 앉아 쇠를 불리면서 종회(鍾會)가 와도 인사하지 않았다. 재주만 믿고 남을 깔보았으니, 화를 면할 수 없었음은 마땅하다. 손등(孫登)은 그가 화를 당하기 전에 미리 알았던 것이니, 현명하다 하겠다. 그런데 그의 언론을 상고할 수 없으니 애석하다.

 

강유(姜維)는 양안(陽安)과 음평(陰平)을 방비하고자 했으나 황호(黃皓)에게 저지(沮止) 당했다. 만약 강유의 계획대로 했다면 등애(鄧艾)가 음평으로 한 걸음도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등애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종회(鍾會)는 스스로 달아나게 되었을 것이니, 촉한(蜀漢)이 이같이 빨리 멸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갈첨(諸葛瞻)은 음평(陰平)을 지키지 못하고 후퇴하여 면죽(綿竹)에서 죽었다. 그가 아비의 충성은 있었지만 그 아비의 재주가 없었으므로 결국 자신이 죽고 집안이 망했을 뿐더러 나라에도 이익이 없었던 것이니, 애석하도다. 그러나 군사를 해산시키고 적에게 항복한 강유의 무리에 비교하면 또한 사람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격동시켰다. 그가 황호(黃皓)를 죽이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는 그의 아들도 죽음에 임해서 격분하고 한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일을 가지고 죄목을 삼는다면 그에게 너무 까다롭게 책비(責備 완비하기를 바라는 것)하는 것이니, 이것은 군자(君子)는 남과 더불어 착함을 행한다.’는 뜻이 아니다.


초주(譙周)는 두 번이나 임금에게 항복하라 권하고 세 임금(촉, 오, 위)에게 몸을 더럽혔으니, 족히 논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 그가 오() 나라로 도망쳐서 남쪽에 들어간 계책은 진실로 잘못이다. 임금의 사직(社稷)을 위해 죽는 것은 천지의 대의(大義)가 아니겠는가?

 

강유(姜維)가 죽을 임시에 꾀한 것은 뜻만은 독()하였으나 계획은 소루(踈漏)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에 충성한 마음은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었고 무후(武侯)가 인정하던 것도 손상시키지 않았으니, 또한 아름답다 하겠다. --강유를 깎았다가 올렸다가

 

신헌영(辛憲英-신비의 딸, 양탐(羊耽)의 아내)은 한 여자로서 종회(鍾會)가 딴 뜻이 있는 것을 능히 알았으니, 갸륵하다. 또한 그의 아들에게 경계한 것이 말은 간단하면서 뜻은 적절하였다.

 

곽과(藿戈)와 나헌(羅憲)은 비록 임금을 배반하고 적에게 항복한 자와는 차이가 있기는 하나, 그들의 몸은 한 나라의 신하이고 살고 있는 땅도 한 나라의 강토인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한실(漢室)을 중흥(中興)시킬 수 없으면 죽음으로써 그 강토를 지키어 신하의 절개를 보전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째서 나라를 멸망시키고 임금을 부하로 삼는 저 원수에게 무릎을 꿇었단 말인가?

 

() 나라의 주후(朱后--오 경제 손휴의 비. 주태후)는 자기 아들을 버리고 호(-손호)를 세웠는데도 마음에 아무 감정이 없었으니, 어질다 하겠다.

 

양호(羊祜)는 수라군(戍邏軍)을 감원해서 밭을 개간하였다. 그리고 가벼운 갑옷에 느슨한 띠만을 두르고, 몸에 갑옷은 입지 않았다. 그러므로 영각(鈴閣)의 아래에 시위(侍衛)하는 자는 10여 명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만약 불의(不意)에 오나라 군사가 급히 달려와서 습격했다면 어찌했을 것인가? 그는 응당 봉화(烽火)를 밝히고 척후(斥堠)를 멀리 세우는데 스스로 권도(權度)가 있었을 것이고, 오나라 군사가 반드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양호의 지모(智謀)가 없으면서 한갓 이 일을 본받으려 한다면 잠팽(岑彭)과 내흡(來歙)이 공손(公孫-공손술)에게 죽음을 당한 것처럼 되지 않을 자가 거의 드물 것이다.

 

조방(曺芳)이 폐위(廢位)되자, 태재(太宰)  범찬(范粲)은 병을 핑계하고 말을 하지 않았으며 침소(寢所)에서도 수레를 타고 발로 땅을 밟지 않았는데, 이렇게 36년 간 계속하다가 몸을 마쳤다. 그 성실, 확고함은 가히 천백 년을 통틀어서도 한 사람 뿐이라 하겠다.

 

진주(晉主-무제 사마염)는 조씨(曹氏)가 고립되던 것을 거울 삼아 종실(宗室)을 다량으로 봉()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서로 해치어서 거의 멸망할 지경에 이르다가 요행히 보존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실을 봉해야 하겠는가? 봉하지 않아야 하겠는가? 말하자면, 봉하여도 또한 가할 것이고, 봉하지 않아도 또한 가할 것이다. ()나라가 멸망하게 됨은 고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진나라가 혼란하게 됨은 종실에 연유함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덕을 잃지 않으면 종실을 봉하지 않아도 고립되지 않을 것이고, 봉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호위(護衛)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까닭은 생각하지 않고, 구구하게 봉하고 봉하지 않는 것만을 용심(用心)한다면 나는 동쪽에서 멸망하고 서쪽에서 생겨남을 볼 것이다.


양호(羊祜)는 항상 말하기를, “벼슬은 공조(公朝)에서 제배(除拜)받고 사은(謝恩)은 사문(私門)에서 하게 되는 일은 나로서는 감히 할 수 없다.” 하였다. 그런 까닭에 무릇 나아가 벼슬한 사람들은 모두 좇을 바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아! 후세에 전선(銓選 인선 관계))의 책임을 맡은 자 중에는 능히 이런 뜻을 아는 이가 있는가?

 

왕준(王濬)이 왕혼(王渾)의 절제를 받지 않았던 일은 비록 교만하고 뽐내는 듯하였지만, 또한 그 당시의 형편이 꼭 그렇게 해야만 되었던 것이니 반드시 그르다 할 수 없다.

 

제갈정(諸葛靚-제갈탄의 아들. 오나라 신하)이 장제(張悌)와 더불어 함께 죽지 않았으니, 난에 임해서 구차스럽게 모면했다 하겠다. 그러나 그는 종신토록 종적을 감추고 다시 진() 나라에 신하노릇을 아니하였으니, 역시 절의를 보전함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하겠다.

 

성공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전하는 일이 어렵다.’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왕준(王濬)이 촉() 나라 군사를 모조리 거느리고 장강(長江)의 험악한 곳에 당했을 때에 바람을 타고 배는 나는 듯이 천참(天塹)을 건넜다. 손씨(孫氏)가 무수한 싸움으로 보전해 오던 곳을 왕준은 하루아침에 얻었으니, 위엄은 삼오(三吳)에 떨치고 공훈은 한 시대를 덮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나라에서 내린 보상이 세운 공에 맞지 않다고 자주 울분을 언색(言色)에 나타냈으니, 그가 화를 모면한 것은 요행인 것이다. 또 수비를 엄격히 하여 왕혼(王渾)을 만났으니, 도량도 또한 매우 좁았다.

 

육희(陸喜)가 말하기를, “손호(孫皓), 무도한 사람인지라 (신하로서) 이럴 때는 침묵을 지키고 세상에 나서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높은 지위는 피하고 낮은 지위에 처하여 녹봉으로 농사를 대신하여 의식이나 해결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성의를 다하여 나라를 바로잡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이고, 시세를 참작하여 수시로 조그마한 이익을 나라에 이바지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온순하고 공손하며 조심하고 삼가서 아첨을 부리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인 것이다. 이 외의 일은 족히 말할 것 없다.” 하였으니, 이 말은 출처(出處)에 대한 의의를 깊이 깨달은 것이다. 어지러운 나라에 살거나 혼란한 세상에 처하는 자로서는 이런 의의를 몰라서는 안될 것이다.

 

진 무제(晉武帝)는 혜제(惠帝)의 혼약(昏弱)함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교체시키지 않았고, 가후(賈后-진 혜제(晉惠帝)의 계비)의 악함에 대해서는 몰라서 폐위시키지 못했으며, 양준(楊駿-무제의 장인)이 제 마음대로 정권을 뒤흔들었어도 물리치지 아니하였으니, 스스로 난을 끼친 것이라고 하겠다.

 

이특(李特)은 영웅심과 용맹력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으나 일찍 죽었고, 그의 아들 웅()이 그 뒤를 이어 한 지방을 점거했다. 그것은 마치 손책(孫策)이 죽자 오랑캐를 토벌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던 것과 같았다.

 

육기(陸機)화정(華亭)에서 학()이 운다.’고 한 말은 가소롭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다. 사람으로서 몸을 가벼이 여기고 행동을 함부로 하다가 스스로 재앙과 패배를 취하게 될 자는 경계할 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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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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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2014.03.24
16:00:06
(*.196.197.50)
홍대용이 생각한 인물들의 품평인가요? 대체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네요.
충에 대한 잣대가 상당히 엄격하다고 느껴지는데, 불충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비판하는 군요.
우리나라의 사가들이나 학자들은 한실에 대한 촉과 위의 이념적인 대립에 대해 중요성을 많이 둔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venne님이 올려주신 윤후의 글도 그런면이 좀 있는 것 같고.....
옛날 사람들이라 그런부분이 많은 걸까요? 좀 다르게 보는 사람들은 없을려나...유교적 가치관에서는 다 이런식으로 보는걸까요?

출사표

2014.03.24
16:07:57
(*.111.2.34)
흠..홍대용의 인물평을 보니 홍대용이 보기에는
충성=곧 죽음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죽는것만이 충성은 아닐텐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ㅎㅎ..

출사표

2014.03.24
16:11:52
(*.111.2.34)
갑자기 생각이 든건데
홍대용이 꽤 낭만(?)적이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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