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신이 모시던 황제를 주적(이념상 서로 원한이 깊어 화합하기 힘든 적국)에게 항복을 권하고, 실행하는 것이 유교적인 관념상 옳아보이지는 않 습니다.

초주가 어떤인물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기 힘든 부부이긴 한데, 전에 조금 생각해왔던게 있어서 그쪽으로 생각을 말해볼까 합니다.

 

조조가 漢왕실이 약할때를 이용 하여 권력을 잡고 황제를 핍박한 것을 명분으로, 유비가 대항세력을 모우고 이끌어가다가 세운것이 계한입니다. 옛날 사람들에게서

황제라는 것이 국가의 아버지이고, 종묘사직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유비의 명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유교적인 가치관이 많던 사람들에게

정의감에 불을 지피는 행동이였던 것 같습니다. 후세에 유비가 선한사람으로 부각되고, 조조가 악한사람으로 부각되어 이미지가 심어진것도 이런 사람들의 심리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조조의 학살과 같은 행동도 큰임팩트이긴 했지만요)

 

근데 유교적인 가치관에서 조금 벗어나서, 자연이나 역사의 흐름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자연스러운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연의에서 나오는 최주평의 말을 들어보면

알수있죠. 역사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이고, 나라에게도 수명이 있으니, 나라의 흥망성쇠는 당연한 이치라는 논리입니다. 저는 이말이 맞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사람도 흥하다가 나이가 먹고, 늙어서 죽는 것이고...

사물이나 물건도 세월이 오래 지나면 닳고 닳아서 버려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역사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漢이라는 나라를 부흥시키는 것은 정의롭고, 의로운 행동으로 인정 받지만 어쩌면, 이런 자연의 원리를 크게 벗어나는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해봅니다.

이미 후한 말에는 국가가 재구실을 한다고 보기도 힘들었고, 여러모로 국가의 틀만 유지하고 있었지 속은 썩어 있었구요. 

 

유비와 제갈량이 정권을 잡고 있을때야 이러한 명분이나, 이념적인 대립, 조조가 보여주었던 악행에 대한 원한등이 전국적으로 널리있었지만, 이런것도 세월이 지나면

희석되는 법이고 그명분도 약해지면서 사람이 나태해지는 법이죠. 계한말의 유선이 집권하고 강유가 북벌을 하던 시기가 그런 시기이기도 하구요.

 

초주가 천문(天文)에 밝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논리가 아니였을까 추측해봅니다. 변망론이라는 것도 이미 나태해지고, 한실부흥이라는 명분이 갖는 의미가 더이상 유요

하거나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나관중은 이런 초주가 보기 싫었던 면이 있는 것 같고, 진수는 초주의 제자였기 때문에 우호적인 평가를 했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맞다고 봅니다.

밑에 홍대용에 대한평을 듣고 조금 끄적거려보네요. 초주가 계한이 멸망한 뒤에 진나라에 벼슬을 하지 않은 것을 볼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유선을

항복시킨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이미 나태해질대로 나태해졌고, 북벌이라는 것도 형식적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한실부흥이라는 대의가 얼마나 의미있나 싶기도하네요.

 

 

 

 

 

조회 수 :
3197
등록일 :
2014.03.24
17:16:20 (*.196.197.50)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community_three/117957/ea0/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17957

dd

2014.03.24
17:56:30
(*.115.90.226)
음, 초주는 벼슬하지 않았던가요? 기록된 내용을 보면 말 그대로 핑계를 대던 것이 아니고 진짜 아파서 못갔던 것 같은데 말이죠. 후라는 작위까지 받았고요.

일반인

2014.03.24
18:21:18
(*.196.197.5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4394&cid=85&categoryId=2644

네이버 지식백과에 보면, 후작은 받았고 벼슬은 하지 않았다고 되있는데 잘은 모르겠네요.

출사표

2014.03.24
18:42:52
(*.111.13.226)
네. 옛~날에는 초주가 유선에게 항복하라 간했다 하여
부정적이었는데 요즈음은 백성들이 혼란에 휩싸여
제대로 맞서 싸울 수도 없고, 남만 등은 이미 오래전에
반심을 품은지 오래되어 그리로도 도망갈 수 없어서
그 방법밖에 없었다는 의견이 거의 지배적이죠.

그러나 초주가 내세웠던 '계한은 위나라에 멸망한다..'
등등은 옹호받을 수 없는것이라 생각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신 게시판 관리 기준 운영진 2014-01-28 31525
공지 (필독공지) 삼국지 이야기 방입니다. 아리에스 2013-07-24 34088
851 [유요 가계도] [10] file 출사표 2014-04-18 2386
850 손책 암살 배후는 개인적으로. [1] SameOldStory 2014-04-17 2619
849 [법정 가계도] [3] file 출사표 2014-04-17 1845
848 모든건 상국의 창고로. venne 2014-04-17 1979
847 정욱이 은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10] 미백랑 2014-04-16 3983
846 마초는 유비에게 신임을 얻었는가? [5] jhh025jhh 2014-04-16 5306
845 원상의 대 조조 전략변화 [17] file beermania 2014-04-15 2983
844 유비는 왜 장판으로 갔을까?-사나이님 댓글에 대한 답변 [2] file beermania 2014-04-11 3661
843 유비는 왜 장판으로 갔을까? [7] file beermania 2014-04-11 2595
842 동탁의 미오성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1] venne 2014-04-07 2027
841 유비가 손권을 조금 달래보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13] 삼갤러 2014-04-07 3261
840 오소(烏巢)는 군량고인가? [9] venne 2014-04-04 4298
839 조조의 동탁공략 대전략에 대한 의문 [9] file beermania 2014-04-03 3319
838 조조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2] 포증 2014-04-02 2349
837 삼국지 주요 포인트-관도대전 [3] file beermania 2014-04-01 6635
836 삼국지 주요 포인트-오관참육장 [7] file beermania 2014-03-30 3256
835 삼국지 주요 포인트-가정(街亭) [10] file beermania 2014-03-28 4685
834 오장원 (五丈原) [2] file beermania 2014-03-26 4390
» 초주에 대한 허접한 변론.... [3] 일반인 2014-03-24 3197
832 홍대용의 담헌서 사론(史論) 중에서 삼국지 인물 품평 [3] 살류쥬 2014-03-24 3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