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가 유비에게 신임을 얻었다고 볼 수도, 얻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우선 신임을 얻지 않았다고 보는 증거가 이릉대전 때 마초를 데려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미 마초는 심각한 지병에 걸려있었고 222년에 사망했던 만큼 그것은 증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임을 얻었다고 보기도 애매한게 마초는 유비의 자를 불렀으며 또한 제후 출신이었습니다. 제후 출신은 야망이 컸을 수 밖에 없죠. 또한 마초는 위명도 있던 만큼 충분히 신임을 주기에는 위험한 사람이었을 듯 합니다. 어쩌다 보니 뻘글이 되어버렸네요. 이상입니다.

 

참고로 저는 블로그,카페 등에서 '관평호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조회 수 :
5872
등록일 :
2014.04.16
20:37:15 (*.120.35.203)
엮인글 :
http://rexhistoria.net/community_three/124799/5d0/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rexhistoria.net/124799

출사표

2014.04.16
21:43:39
(*.177.232.97)
200에 달하는 자신의 가솔들이 모조리 다 몰살당한 뒤 생긴 스트레스도 한몫했을듯 합니다

beermania

2014.04.16
22:02:28
(*.76.87.114)
제후급 인물은 사람 잘쓰는 조조도 쓰지 않았죠. 신임을 얻었다 얻지 못했다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닌 듯 싶습니다.

venne

2014.04.16
22:31:15
(*.186.21.9)
아리에스님이 관련해서 쓰신 글이 있습니다.

http://rexhistoria.net/38346

아리에스

2014.04.17
12:18:56
(*.20.202.173)
베네님이 이미 링크를 올리셨네요. 저 글을 쓴 계기가 유비가 마초를 고의로 견제했다 라는 설에 반박하기 위함이었었죠.

어느 분인지는 몰라도 저 글 엠엘비파크에도 올라갔더군요.ㅋㅋ

관평호서

2014.04.19
19:11:09
(*.120.35.203)
안녕하세요. 삼도에서 뵈었는데 제대로 인사를 못드렸네요.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관평호서입니다. 반갑습니다.

촉한염흥

2018.05.25
03:56:15
(*.228.19.34)
마초의 딸이 안평왕 유리와 혼례를 올렸다는 기록으로 볼 때 저는 유비가 마초를 신뢰하고 말고를 떠나서 장기판의 말로 생각했다고 봅니다. 유비의 자식 중에 유선은 후계자이니 제외하고라도 마초의 항복시점에서 유봉도 있고 유영도 있는데 왜 막내인 유리가 마초의 딸과 혼인했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유봉과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맺어주는 것 자체가 유봉vs유선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유봉은 214년에 이미 위험권에 들어섰습니다. 나중에 관우 사태나 맹달 건수가 아니라도 입촉에서 어린 유선과 다르게 여러 공을 세우고 상용 일대를 점거하는데도 활약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선이 비록 서자이고 어리지만 유비의 친자식이라는 것은 정통성에 막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마스터키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고요. 고대에는 입양이 흔했고 친자식이 아니라도 가업을 잇는 경우가 수두룩했지만, 이게 헌제가 조조를 위왕에 봉한 뒤라는 시점이기에 식자라면 누구나 헌제의 선양을 점칠 수밖에 없고, 유비가 조조의 대항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후한의 재창업자로 발돋움하리라는 것은 범인이라면 몰라도 촉한의 대신들은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황제라는 자리는 그렇기에 정통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장자승계가 우선시되는데 양아들이라는 약점과 서자라는 불안감을 하나씩 가졌지만 유봉이 유일한 아들이면 모를까 서자임에도 유선이 있는 이상 유봉이 낙점되기는 애초에 조금더 불리했습니다.

유비의 입장에서는 입촉할 때 함께 한것은 사람이 없으니 유봉정도만 해도 매우 요긴한 인재로 써먹을 수 있기에 그러한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형주야 관우가 있으며 전임자인 유장이 남군으로 갔고 남중은 혼란스러우며 한중은 조조의 손아귀에 있었으니 결국 유봉에게 줄 선택지는 아무것도 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 뿐이었죠. 실제로 입촉이후 아무 기록이 없다가 219년에 맹달과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보면 조용히 두다가 유비가 한중으로 출진하니 유봉만 따로 떼둘겸 맹달도 도와줄겸해서 보낸 티가 납니다.

그럼 셋째인 유영은 왜 선택되지 않았는가? 간단합니다. 유영이 막내가 아니기 때문이죠. 조조나 손권 측에는 제후였다가 휘하로 들어온 이들이 제법 있었지만 유비의 경우는 안습하게 잠깐 나온 유기를 제외하면 마초가 거의 유일합니다. 유장은 들어온 게 아니라 복속 당한 입장이고요. 그만큼 마초는 독보적이고 요주의 인물입니다. 그러니 유비 측에서 정치적으로 좀 더 대우하는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서 갓난아기임에도 유영과 유리 중 하나를 마초의 딸과 혼인시키는 선택지를 고른것이죠. 의학이 미진했던 고대에 자식들을 여럿 둔 이유는 보험의 의미도 있음을 아실 겁니다. 그 예가 손권이죠. 손등과 손려가 죽었지만 손화라는 옵션이 태자가 될 수 있었죠. (손권이 바보짓했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지만 혹시 유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덜컥 유영이 태자가 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곧 마초가 외척이 됨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는 겁니다. 그걸 원하지 않기에 막내인 유리가 낙점된 것이고요.

결론은 유비가 마초를 대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황충과 마초의 죽은 후 대우를 보면 더 알 수 있습니다. 생전에 마초가 가절을 받고 표기장군까지 올라가기는 하지만, 시호가 위후(威侯)입니다. 이는 주령과 오질이 받은 시호인데 이 둘이 과연 마초와 동급인가 하면 조금 갸우뚱하죠. 반면에 황충의 시호는 강후(剛侯)인데, 이건 아주 훌륭하고 드문 추증입니다. 위나라에서도 장료가 거의 유일하게 받은 경우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신 게시판 관리 기준 운영진 2014-01-28 32346
공지 (필독공지) 삼국지 이야기 방입니다. 아리에스 2013-07-24 34937
853 황보숭이 좌장군이 된 시점은 언제인가? [1] venne 2014-04-21 2466
852 삼국지 주요포인트-적벽대전 [2] file beermania 2014-04-19 2301
851 [유요 가계도] [10] file 출사표 2014-04-18 2553
850 손책 암살 배후는 개인적으로. [1] SameOldStory 2014-04-17 2688
849 [법정 가계도] [3] file 출사표 2014-04-17 1979
848 모든건 상국의 창고로. venne 2014-04-17 2043
847 정욱이 은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10] 미백랑 2014-04-16 4106
» 마초는 유비에게 신임을 얻었는가? [6] jhh025jhh 2014-04-16 5872
845 원상의 대 조조 전략변화 [17] file beermania 2014-04-15 3075
844 유비는 왜 장판으로 갔을까?-사나이님 댓글에 대한 답변 [2] file beermania 2014-04-11 3770
843 유비는 왜 장판으로 갔을까? [7] file beermania 2014-04-11 2690
842 동탁의 미오성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1] venne 2014-04-07 2151
841 유비가 손권을 조금 달래보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13] 삼갤러 2014-04-07 3369
840 오소(烏巢)는 군량고인가? [9] venne 2014-04-04 4471
839 조조의 동탁공략 대전략에 대한 의문 [9] file beermania 2014-04-03 3432
838 조조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2] 포증 2014-04-02 2421
837 삼국지 주요 포인트-관도대전 [3] file beermania 2014-04-01 6807
836 삼국지 주요 포인트-오관참육장 [7] file beermania 2014-03-30 3434
835 삼국지 주요 포인트-가정(街亭) [10] file beermania 2014-03-28 4925
834 오장원 (五丈原) [2] file beermania 2014-03-26 4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