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그리고 ‘냉혈한(冷血漢)’을 말할 때 떠오르는 인물은 누가 있는가?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자로는 주유나 관우, 후자로는 조조나 사마의를 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약간 다른 인물을 거론하고 싶다. 바로 조조의 참모로 활약했던 정욱이다.

 

조조가 거병했을 시절 군량보급에 어려움을 겪자 자기 고향을 약탈하여 식량을 충당했다는 일화(특히 여기에는 인육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나 비록 연의에서의 일이지만 서서 모친의 필적을 흉내 내어 서서를 유비에서 떼어놓는 장면 등으로 냉혈한(冷血漢)으로서의 정욱의 이미지는 강조가 되었으나 자존심이 강했다는 측면에서는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 굳이 꼽아보자면 ‘정욱은 성품이 강하고 굳세어 남들과 잘 맞지 않았다’라는 구절 정도가 있을까?

 

정욱은 조조 생전 한 번 은퇴를 선언하는데 이 장면을 보면 무언가 상당히 묘하다. 정욱전을 참고해보자.

 

[정욱전]

출처 : http://rexhistoria.net/2287

 

이 이후로 중하[中夏=중원(中原)]가 차츰 평정되니, 태조가 정욱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연주에서 패배하였을 때 그대의 말을 쓰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리오.”라 했다. 친족들이 소와 술을 가지고 큰 연회를 열었는데 정욱이 말하기를 “족함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으니 저는 이제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라 하여 이내 직접 표를 올리고 병사를 돌려보내어,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얼핏 보면 이상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문맥을 살펴보면 약간 이상하다. 정욱의 공을 기리는 훈훈한 자리에서 ‘족함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언사로 칩거한 것이다. 무언가 ‘당시 정욱에게 불만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 사건을 보며 삼갤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이 나온 적이 있다.

 

① 정욱은 매우 자존심이 강하고 냉혹한 인물.

② 정욱이 연주를 맡고 있었을 당시, 갑작스러운 여포의 급습으로 거의 모든 영토를 내어주고 순욱과 함께 간신히 3개의 성만 지켰을 뿐인데 정욱은 이를 두고 치욕이라 여기고 있었음.

③ 이런 와중에 조조는 ‘너 없었으면 모든 땅 빼앗기고 거지가 될 뻔 했다.’라고 말하니 자존심 강한 정욱 입장에서는 ‘다 막아야지 왜 3개의 성만 지켰어?’라는 식으로 곡해해서 이해한 것.

④ 열이 뻗친 정욱은 그날로 벼슬을 내려놓고 칩거함.

 

사서에 기록된 정욱의 발언을 살펴보면 거침없고 직선적이다. 원소의 위세에 눌려 가족을 보내려는 조조를 말리는 장면에서 그는 “장군께서는 일이 닥치자 두려워하신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깊이 생각지 않은 것입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오늘날의 말로 쉽게 풀어보면 “원소한테 겁먹은 것이냐? 아니면 생각이 모자란 것이냐?”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윗사람에게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잘못을 지적할 정도라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엄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연주를 다 지키지 못하고 일부분만 사수했던 것을 스스로에 대한 치욕이라 생각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된다.

 

과연 정욱은 무슨 이유로 은퇴를 선언한 것일까? 그냥 외형적인 표현대로 겸양의 의미에서 나온 행보일까? 아니면 일부의 추론대로 홧김에 저지른 무언의 시위였을까? 참고로 정욱은 그 후 은퇴를 번복하고 위위로 임명된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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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4105
등록일 :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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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rmania

2014.04.16
22:06:21
(*.76.87.114)
홧김에 했어도 재밌고 부끄러워서 그랬어도 재밌네요.ㅎ

미백랑

2014.04.17
02:12:07
(*.233.63.81)
하하, 홧김에 "때려쳐~" 이랬다가 나중에 뻘쭘해서 슬그머니 위위 관직으로 복직?

venne

2014.04.16
22:56:38
(*.186.21.9)
정욱이 표를 올려 관직을 내놓은건 적벽후-위왕즉위 사이이므로, 조조의 발언에 혹은 스스로 자존심이 상했다기에는 너무 멀리간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본다면, 조조는 위왕즉위 전, 점진적으로 반대세력을 숙청했었다는 쪽으로 가서 가후나 신비같은 처세술을 생각해보거나
위위로 복직된 후에도 정위와 다투고 면직된 점으로 접근하여 타인들과의 불화가 잦았다는 쪽으로 생각해 보는건 어떨까요?

물론 순욱과 연계하여 견성을 지키는 등 단순한 독불장군은 아닌것같긴 한데 본인만의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있는건 아닐런지..

미백랑

2014.04.17
02:13:01
(*.233.63.81)
그런 부분도 있겠고, 본문에서는 거론하지 않았으나 조조의 칭찬과 그 후의 연회자리가 이어진 것으로 단정하기에도 좀 무리가 있더라고요.

조조의 칭찬과 친족들의 연회는 시간선이 많이 다를 수도 있는 터라... 다만 문맥상으로는 미묘하긴 하지만요.

venne

2014.04.17
10:38:21
(*.111.4.237)
친족들과의 연회자리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라면 처세술로 연결지을 수 있고, 조조와의 대화라면 자존심상했거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듯해요.

워낙 똑똑하고 처세를 잘한 인물이다보니 뭔가 계산은 있었던듯 하고.

조조와 조비사이에서 잘 처신한 일화도 있고 문제가 상당히 신뢰하고 아껴 결국 복직하고 공까지 언급되는 인물이니까요.

사나이

2014.04.17
00:29:49
(*.103.140.13)
저는 이 일화에서 장량 스멜을 느꼈는데 흥미로운 해석이네요.
조조의 칭찬을 3성만 지켰네? 로 곡해해서 들었다는
삼갤 추론은 좀 오버네요.

미백랑

2014.04.17
02:13:48
(*.233.63.81)
네, 저도 오버 같기는 한데 마침 생각난 김에 짧게 적어봤습니다.
위와 비슷한 추론으로 순욱 도시락 착각설도 있지요 ㅋㅋ

아리에스

2014.04.17
12:14:17
(*.20.202.173)
정욱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늙은이 맘 상해서 홧김에 한거라고 볼 수는 없을까요. ㅎㅎ

미백랑

2014.04.17
15:41:25
(*.233.63.81)
확실히 문 닫고 나오지 않았다는 구절에서 꼬장꼬장한 영감님 이미지가 떠오르기는 합니다. 왠지 장소와 오버랩되는 느낌.

SameOldStory

2014.04.17
21:28:33
(*.227.174.152)
순욱을 부를 때 문약이라 하대 하는데서 이미 자존심 클라쓰 나오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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