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이릉대전에 대한 많은 토론이 있었고, 아마 많은 분들이 예전에 비해 시각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나 싶네요.

토론했던게 아깝기도 하고, 나중에 다시 돌고도는 이야기가 또 나오면 참고해도 좋을것 같아서 정리를 해보네요.

 

간단하게 정리하고 사료의 내용을 다 언급하기 보다는 짧게 언급하겠습니다.

 

1. 사료에서 묘사하는 유비의 모습은 이성적인 형태로 형주를 수복하는 모양새가 아닌, 감정이 앞선 보복성 전쟁으로 묘사된다.

   - 제갈근전의 화가나 외교를 거부하는 모습.

   - 유엽전(부자)에서 화가 났기 때문에 동오를 공격해도 같이 공격할거라고 장담하는 부분.

   - 법정전에서 제갈량이 탄식하면서 법정이였다면은 동쪽으로 가지 않게 했을 것이라고 하는 부분

   - 기간 : 관우가 죽은지 1년 8개월이 지난 후에 일어난 전쟁이지만 그동안 한의멸망, 상용습격 제위의 오르는 등의 여러가지 일이있었음

                전쟁이 일어난 것은 정확히 황제에 등극한지 3개월 후, 한중전에 여파도 있었던 만큼 충분한 준비기간이였다고 말하기 의심스럽다.

 

2. 왜그런지 정확히 사료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촉한내 여론이 반대하였다. 위나라 여론도 유엽을 빼곤 반대하였다.

   - 조운별전, 법정전, 화양국지 등등...(처사군님 블로그에 촉한내 여론이 반대였음을 나타내는 사료들이 있음)

   - 아쉽게도 찬성측의 의견이나 내용은 없다(찬성한 여론은 소수였을 것이라고 추측됨)

 

3. 관우의 복수를 위해 일으킨 전쟁이 맞다면, 명분에 위배되며 공과사를 구별 못한 것이다.

    - 당시에 조비가 헌제로부터 찬탈하였다. 그리고 유비는 제위에 올랐다. 만약 관우를 위해서(형주수복은 핑계일뿐이고) 동오를 공격한 것이라면

      개인의 감정으로 나라의 일을 판단한 것이기에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황제와 아우이자 상장군인 관우의 복수중에 한가지만 할수 있다면, 황제의 복수를 먼저하는것이 도리상 옳은 것.

  

4. 패배하더라도,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 결과론을 떠나서 나라의 국운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전쟁이였고, 여러가지 반대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비가 의지를 갖고 일으킨 전쟁이였다.

    - 전쟁의 고착화가 있었고(육손전에 7~8개월 정도라고 언급), 퇴각을 한다거나 협상을 맺을만한 시기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런움직임이 없었다.

    - 선봉을 나서겠다는 황권을 뿌리치고, 굳이 유비가 직접나섬(황제의 위치상 뒤쪽에서 전체적인 지시를 하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 육손이 유비의 병법에 넘어가지 않고, 잘한부분이 분명히 있으나 너무나도 많은 장수와 인재를 잃은 것을 육손의 공으로만 생각할수는 없다.

      유비의 고집과 전쟁에서의 이성적인 태도가 부족했고, 그와중에 여러가지 만회하기 힘든 실수를 저질른 것으로 보인다.

 

 

 

이릉대전은 손권과 틀어진다는 위험한 부담을 안고 있는 전쟁이였다. 또한 강한 세력을 적으로 둔상태에서, 약세력끼리 힘을 약화시키는 악수이기도 하였다.

신하들이 대부분 반대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았던 전쟁이다.

적어도 이릉대전이 국익을 상승시키고, 무리수를 둔 전쟁이 아니였다고 한다면 2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유비는 손권이 관우의 목숨을 빼앗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여야만 한다.

둘째, 손권과 관계가 회복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불가침조약과 같은 내용의 협상을 얻어내야만 융중대에서 말한 형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점이 충족되지 못한 전쟁은 무리하고, 국력을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였다는 비판을 피할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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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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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갤러

2014.03.05
16:43:51
(*.196.197.50)
솔직히 말하면 계속 되는 논쟁이 지겹기도 하고, 그냥 타협점이 없다면 이제까지 토론해온걸 정리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올렸네요. 망탁조의님이나 venne님의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또 돌고돌때 누가 참고자료로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망탁조의

2014.03.05
16:57:49
(*.155.148.94)
3번의 경우 사람들이 자꾸 리둥팡 교수의 주장을 크게 인정하지 않더군요.

손권이 한나라 주적 조조와 비밀 동맹을 맺고 조조와 전쟁중이던 관우를 치면서 대의명분을 잃게 됐다.
그럼 이릉대전을 공격하는 행위도 대의명분의 관점에서 크게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삼갤러

2014.03.05
17:02:08
(*.196.197.50)
본문에서의 내용은 유비가 관우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을 때를 언급한거에요. 한마디로 유비가 전쟁을 일으킨 의도가
형주수복은 다순히 핑계일 뿐이고, 관우를 위해서 군을 움직였을 경우를 말합니다.

리둥팡교수도 결국에는 황제에 오른이상, 명분상으로는 조비를 공격했어야 한다고 말했던 걸로압니다.

ㅇㅇ

2014.03.05
17:04:49
(*.7.58.66)
그 근거는요? 그래도 조비가 더 잘못했다는 조운이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죠.

그렇다면 이제 망탁조의님이 손권의 행위로 손권을 치는 것이 조비를 치는 것과 동급 혹은 더 낫다는 당대의 발언 하나만 찾아주시죠. 손권이 예전에도 유수에서도 항복하고 그 전에도 항복해서 장료전에서 여러 번 항복했다 배반했다를 반복했다고 말할 정도죠.

망탁조의

2014.03.05
17:22:34
(*.155.148.94)
어떤 주장을 할 때 전문가의 발언도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리둥팡 교수는 그 근거로 이후 오나라가 대의명분을 주장하는데 많이 꿀리게 됐다고 하더군요. 사실 형주 문제는 그 자체로 촉이나 오를, 체면 다 구기게 만든 측면이 있지요.

제가 익명게에서도 했던 말입니다만. 제 아무리 대의명분이 대단해도 그걸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이익이 없다면 그건 또 그건 나름대로 비판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조선의 인조가 청나라에게 적대한 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이 드문 거겠지요.

역적이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가볍게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직함이라고 생각하긴 어렵고, 만일 조비를 공격하는 것이 역적을 토벌하는 행위이며 손권을 토벌하는 행위가 그 역적에 부역한 사람을 토벌하는 행위라면 그럼 저는 이제 어느쪽이 더 촉나라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조비가 일단 한나라를 찬탈했다는 점에서 더 큰 역적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그럼 조비를 치는 행위가 얼마나 수지타산이 맞느냐는 문제가 남겠지요.

익주의 단독 전력으로 옹량주를 공격하는 행위와 손권이 익주 안보에 어떤 존재인지는 이미 다른 글에서 서술했으므로 링크를 겁니다.

http://rexhistoria.net/community_three/100355
http://rexhistoria.net/community_three/98645

ㅇㅇ

2014.03.05
17:35:23
(*.150.174.138)
아뇨. 근거가 아니라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에 불과하고요. 그게 그렇다고 사료가 되진 않습니다.

대의명분과 실질적 이익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인조에 대해서도 잘 못 알고 계시는데 이것도 논란이 많은 겁니다. 친명배금을 내세웠다고 하나 그가 인조반정 세력 내부에서 중용한 세력은 주화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거기다가 광해군 대에 있던 외교관런 대신들을 유임하고 후금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광해군의 외교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주장도 있죠. 이걸 그냥 단숨에 한 가지로 청나라에 적대했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 그리고 역적이란 타이틀이요? 당시 손권을 조비급 역적으로 여겼단 증거를 가지고 오시란 말입니다. 그게 없이 국익을 우선했다면 그건 대의명분이 더 약한거죠. 실익에 의해 대의명분의 강도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링크는 솔직히 if 놀음이라 읽을 가치가 없군요.

망탁조의

2014.03.05
17:37:22
(*.155.148.94)
제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시겠고 제 글이 그렇게 보이신다면 그건 제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망탁조의

2014.03.05
17:38:21
(*.155.148.94)
다만 링크의 글들은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을 근거로 썼는데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씀하시니 유감입니다.

ㅇㅇ

2014.03.05
17:44:11
(*.150.174.138)
익주에서 나온 것들 중 언급하신 것 중 맹획 관련은 교주 관련 코스입니다. 유파전에도 나오는 익주-교주 사이의 교역로로도 쓰이는 그곳이요.

아리에스님이 이 방면에 전문가시니 많이 들어보셨을텐데 저걸 형주와 엮은 것 부터가 잘못됐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병력을 강화시켰다인데 이건 주연하고 보즐이 말했듯 촉도 해왔던 일입니다. 형주를 먹었다 해도 달라진 것은 없죠.

그렇다면 나헌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40년 뒤의 일이죠? 40년에 한 번이라. 20년 안에 적어도 세 번을 문제를 일으킨 촉에 비하면 오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건 그냥 국경을 맞닿아 있어서 생기는 일이라고 보는게 합당합니다. 마치 제가 양주-한중 사이 전투를 보여주며 양주가 없으면 한중이 위험하다고 하면 동의하실 건가요?

망탁조의

2014.03.05
17:45:16
(*.155.148.94)
죄송한데 그 글은 관련 링크된 글에 덧글을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이 삼갤러님의 글하고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잖아요.

망탁조의

2014.03.05
17:53:01
(*.155.148.94)
오타를 수정합니다.


제가 링크한 글에 대한 지적이나 반박은 그 링크된 글의 덧글에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삼갤러님의 글하고는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라서 여기서 길게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군요.

망탁조의

2014.03.05
17:44:14
(*.155.148.94)
앞으로도 제가 쓴 덧글이나 토론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지금처럼 계속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venne

2014.03.05
17:00:50
(*.36.144.76)
다만 몇가지 여쭤보고 싶은건 법정을 회상하며 제갈량이 탄식한건 이릉전개전 자체를 못막은 한으로 해석되지만 이릉전의 패배를 한스럽게 여긴거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상용쪽은 익주에서 별다른 지원없이 유봉과 맹달이 치고받은 것이고, 황제즉위가 전쟁준비에 큰 방해나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합니다.

조위에서 대부분이 공격을 예상못한건 관우가 죽고 형주가 무너져 촉이 힘이 없다라는 이유였단것, 그러나 촉한내 반대의견들을 묵살하고 전쟁을 수행한 점은 확실합니다.

제 개인적으론 유비를 음흉한 정치가, 사기꾼으로 보는 촉까들이 왜 이럴땐 유비가 관우를 이용해먹었다고 안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보는 시각은 형주수복을 위해 관우복수를 명분으로 써먹었다로 보거든요.

주적을 치나 그 옆에 붙어먹은 놈을 치나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손오의 처세를 보면 진심이든 아니든 큰세력의 위협시 숙이고 화친하는 경우가 많았던건 사실이니까요.

물론 형주입구에서 수개월대치하다 대파당했으니 할말이 없는 전쟁.

venne

2014.03.05
17:02:19
(*.36.144.76)
이런 몇몇부분들만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깔끔한 정리라고 생각됩니다. 사료만 잔뜩 나열하며 계속되는것보다 낫습니다.

삼갤러

2014.03.05
17:07:34
(*.196.197.50)
그런점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더이상 논쟁은 하고 싶지 않아요. 좀 지치네요.
저는 사료상의 여러부분을 참고할 때 본문에 언급한 내용으로 보는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구요.

저는 오히려 유비를 인의를 추구했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백성을 생각했던 인물로 평가하고요.
후에 여러가지 실리나 상황따위로 그렇지 못한 선택을 했지만
유비 전반기의 인생을 후반기의 유장을 공격했다던가, 황제에 올랐다던가 하는 일 등으로 음흉한 정치가라 생각하지 않구요.

venne

2014.03.05
17:23:36
(*.36.144.76)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기에 평행이론이었고 그래서 더 뜨거운 감자인것같습니다. 좋은 정리 잘 봤습니다.

헐헐

2014.03.05
17:07:21
(*.76.158.100)
정리 잘 된 듯.

미백랑

2014.03.05
17:08:40
(*.233.63.81)
손권이 머리를 숙인 것은 유비가 쳐들어왔기 때문이지, 손권이 머리를 숙였기에 유비가 쳐들어간 건 아니죠. 만일 유비가 대의를 관철하여 북벌을 했으면 손권이 과연 조비에게 칭신했을까요? 얼마 전까지 양양까지 점령한 상태였는데?

미백랑

2014.03.05
17:10:58
(*.233.63.81)
조조와의 비밀동맹의 경우에도 조조 사후로 어느 정도 양 세력 간 유대가 희석된 상황이었습니다. 손권을 공격하는 것이 명분에 맞다고는 생각되지가 않네요. 그냥 실익과 국격을 위해 움직였다고 생각됩니다.

삼갤러

2014.03.05
17:11:50
(*.196.197.50)
결정적으로 유비는 관우와의 정을 저버릴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1. 평생을 자신과 함께 해온 충신.
2. 조조가 준다던 부귀와 명예를 다 버리고서라도, 끝내는 쥐뿔도 없는 유비에게 돌아온 충신.
3. 의리나 사람에 정에 많이 끌렸던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유비가 이런 관우를 대의를 위해 저버린다는 것이 싶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업이나 대의를 위해서, 사사로운 정을 끊어야만 할때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네요.
그런점에서 저는 유비를 이해하기는 하지만, 옹호해주지는 않습니다.

미백랑

2014.03.05
17:14:52
(*.233.63.81)
사서의 내용에 충실하면 유비가 이릉으로 간 것은 복수심이 주로서 대를 버리고 소를 택한 거죠.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의견이 대세였는데, 최근 커뮤니티에서는 촉옹호론자들 중심으로 유비를 변호하는 이론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변호하는 건 이해를 하는데(예를 들어서 국격 문제나 형주탈환에 따른 실익) 본질을 넘어가는 쉴드는 안 된다고 봅니다(이릉대전은 필연이었다, 사실 촉 내부에서도 공감된 전쟁이었다 등등).

가람

2014.03.11
14:42:31
(*.101.115.2)
명분에 대해서 말이 나와서 참고자료로 정천전에서 나온 내용을 올립니다.
(정천은)사자로서 촉(蜀)나라에 가게 되었다. 유비(劉備)가 물었다.

"오왕(吳王 ; 손권)은 어찌하여 내 글에 답하지 않는 것이오? 내가 정명(正名 ;칭제)한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오?"

정천이 말하였다.

"조조(曹操) 부자가 한실(漢室)을 능멸하더니, 끝내 (천자의) 지위를 빼앗기에 이르렀습니다. 전하(殿下 ; 유비)께서는 종실을 이어받아 적통의 책임이 있음에도 창을 쥐고 몽둥이를 들어 해내(海內)에서 솔선하지 않고 스스로 이름하였고(自名), 천하의 일이 아직 논의되지 않았으니 저희 임금이 아직 답신을 드리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본 삼국지 등장 부분

"오왕은 어찌하여 내 글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는가? 내가 명분을 바르게 한 것이 맞지 않다고 여기는가?"

"조조 부자가 한나라 황실을 멸시하다가 드디어 높은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전하께서는 종친의 몸으로 황실을 지킬 책임이 있는데, 무기를 들고 앞장서서 싸우지 않으시고 스스로 높은 칭호를 부르셨으니 천하 사람들의 의논과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주인께서는 답장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유비는 심히 부끄러워하였다.

가람

2014.03.11
14:56:53
(*.101.115.2)
상황 설명을 하자면, 유비가 크게 패한 후에 손권이 정천을 보내 동맹을 맺는 상황입니다.

유비가 자신의 칭제에 대해 물었고, 정천이 완곡하게나마 유비를 디스하는 장면입니다.

유비가 그것을 듣고 부끄러워하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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