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내망상으로 잡썰을 펴보자면, 유비의 정오에 찬성한 사람들은 신진인사들로 생각됩니다. 즉 공적이 별로 없었던 소장파들이었을 것이라는거죠.

 

 유비의 정오 - 형주수복전임과 동시에 관우복수전 - 에는 다수의 신하가 반대했다고 나옵니다. 조운은 뚜렷하게 반대했고 제갈량도 반대한듯 합니다. 또한 법정 역시 살아있었다면 반대했을 것이라는 뉘앙스로 탄식을 하죠.

 

 조운은 유비의 살아생전 중진이며 입촉 당시에는 원로에 가까웠습니다. 나이로 치자면야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짬밥'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죠. 장비, 조운과 몰년이 기록되지 않은 간옹을 제외하고는 탁군 임협출신과 서주인사들은 남아나질 않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제갈량은 형주인사이면서도 고굉이었습니다. 융중대를 헌책했으며 손유 동맹을 성사시켰고 - 노숙, 주유의 공로도 컸지만 - 형주와 익주에서 내치에 힘썼습니다. 여러모로 공이 많은 인물이었죠.

 

 법정 역시 익주 출신이었지만 반대를 했을거랍니다. 그 이유는 조운처럼 뚜렷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반대를 했겠죠. 법정이라면 그랬을겁니다. 유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거나 넙죽 업드려서 정 형주 가려거든 나 죽이고 가라고 했을지도 모르죠.

 

 이 이외에는 오로지 뇌내망상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유비는 장비, 황권, 왕보를 제외하고는 형주 출신 인사들을 데리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이러한 포진은 누가 전쟁에 찬성했는가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줍니다.

 

 장비는 당연히 찬성했을겁니다. 형이 죽었으니까요. 더군다나 1만을 이끌고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으니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을 것입니다.

 

 황권은 제 생각에는 유비의 강권으로 따라나섰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황권이 정오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나와있진 않지만 정오 당시 유비에게 계책을 내었는데, 그렇다면 정오 자체에 반대했다면 그 이유도 나왔을법한데 그렇지 않거든요. 제갈량과 조운을 필두로 하는 중진들은 반대하는데 중간에 낀 입장이라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법정이 죽은 마당에 제갈량까지 반대하니 황권만한 인재도 없었으니 유비가 데리고 간거라 생각됩니다. 

 

 마량은 좌장군연이었다가 시중이 됩니다. 시중은 황제를 보좌하는 측근이죠. 물론 황제가 있는 곳마다 항상 따라다녀야 하는건 아니었겠습니다만, 마량은 형주인사들 중 중진에 속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령순으로는 중간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직책상 고관이었거든요. 마량이 형주진군에 찬동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형주파의 중진으로써 그로써도 신진인사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했을겁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말이죠.

 

 왕보는 익주 출신이지만 형주의 관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유비로써는 '형주를 잃은 책임을 묻지 않을테니 대신 나와 같이 가자'라고 강권했겠죠. 유비 성격이라면 유언으로던 무언으로던 '관우가 죽었는데도 살아돌아온' 사람들을 문책했을테니 말입니다.

 

 이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익주 사람으로 공조였다가 효렴으로 천거되고 별가종사가 되었다가 정오에 참전합니다. 굳이 분류한다면 중진보다는 신진인사에 가깝죠.

 

 풍습은 남군 사람으로 형주 인사입니다. 유비를 따라 입촉했다가 정오 당시에는 영군이 됩니다. 유비의 안목으로 보자면야 풍습이 덜떨어지는 인물은 아니었겠습니다만 이 사람도 중진보다는 신진인사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장남도 형주 사람이고, 부융도 형주 사람이죠.

 

 전사한 정기는 익주 사람입니다만 이 사람도 유비가 기용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뭐가 되냐...

 

 관우와 형제 먹었던 장비 + 유비가 기용한 신진인재들이 정오에 참전한 셈이 됩니다.

 

 유비가 가자고 하면 갈 수밖에 없었을 뿐더러, 장비나 마량, 왕보 등을 제외하고는 공을 이루겠다는 목표도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풍습으로 대표되는데 적을 얕잡아 봤다고 하죠. 의욕이 넘쳤다는 말과도 대략 맞아 떨어질겁니다.

 

 의욕이라면야 위연도 둘째가라면 서러울테지만 유비가 '직접' 임명한 한중태수였으니 빠진 것 같긴 합니다.

 

 아무튼간에 다수의 신하가 반대하는 가운데 찬성한 신하가 누굴까 살펴본다면...

 

 복수라는 뚜렷한 명분이 있었던 장비는 적극적으로 찬성했을 것이며,

 황권과 마량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따라갔던 것으로 보이며,

 익주와 형주 신진인사들 중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 찬성한 이들도 있었으며 더욱이 유비 자신이 보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정오였다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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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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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ne

2014.03.05
19:24:21
(*.36.144.214)
포증님 오랜만에 뵈서 반갑습니다.

저는 본문에 말씀하신것처럼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형주출신 위주로 기용된건 물질에 익숙하며 전쟁 수행기간 동안엔 지리, 호응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형주 점령 후의 수습까지 내다본 기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너무 멀리까지 간 사견이기에 힘줘서 말할 순 없더라구요.

아리에스

2014.03.05
19:24:29
(*.223.16.187)
오나라 원정이 실질적으로는 군주의 의향이 가장 크게 반영된 거라고 봐도 될까요?

미백랑

2014.03.05
19:37:13
(*.233.63.81)
쉽게 말해 아리에스님처럼 군주가 여론 거스르고 일으켰다가 정답이지요. 물론 복수라는 이유 외에 국격 문제나 형주탈환에 따른 실익 같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신하들은 반대했고 유비가 그걸 뒤엎고 일으킨 군주 자신의 결단이라는 소리지요.

venne

2014.03.05
20:13:27
(*.36.144.214)
예, 그건 분명합니다. 제가 말한 준비를 하고 시작한 전쟁이든 명분이 어떻든간에 이릉전은 신하들 대다수의 반대여론을 묵살하고 유비가 결정하고 추진한 전쟁이라는건 변함이 없지요.

구라뱅뱅

2014.03.06
11:48:17
(*.49.168.253)
여론이고 뭐고 중요한건 없음.
타협형 군주였거나, 또는 힘없는 호족이나 신하에게 휘둘리는 군주도 아닌
"조폭" 유비 였기에 가능한 거임.

사실 반대한 신하들이 나중에 남아서 제대로 한게 뭐 있음?

크게 반대한 제갈량도 사실 제대로 위나라와 전쟁한 공로도 없는데, 로또 처럼
대박 이기거나 망하거나 하는 "유비" 처럼 살아야 황제도 하는 거임~~ ㅎㅎ

폭유비

2014.03.06
18:34:13
(*.114.243.84)
뉴비 조폭설 괜찮네
성도랜드 지어놓고 형제의 복수를 위해 야비한 뒷치기 감행..

(자식 버리고 행동대장 챙긴거나 처자식 바치고 도주하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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