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사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습니다.

회남 일대 원술이 셀프 즉위하여 개국할 수 있던 배경으로 후한서, 삼국지 모두 원술의 탐욕을 지목하나 황제는 자기가 한다고 해먹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므로 그 일대 세력가, 호족들의 확실한 지원과 지지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원소 역시 조금씩 꿈을 키웠는데 이때 연호가 초평初平이었으므로 원소는 자신의 자字가 초평初平이라, 하늘이 자신을 점지하여 업적을 이루리라 믿었습니다.

삼국지에서는 이런 원소, 원술의 탐욕과 오만함, 불충不忠에 주목하지만. 사실 한헌제漢獻帝가 정말 정통성이 완벽한 한나라 황제의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당할 수 없었다는 약점도 분명히 참작해봐야 합니다.



한나라 영제가 189년에 사망하고서 동태후는 한헌제(당시 진류왕 유협)를 지지했고 하태후, 하진, 그리고 원소와 원술은 한소제(유변)를 지지했습니다.

결국 이 파워 게임에서 동태후 세력이 밀려 동태후가 죽고 한소제漢少帝가 황제가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하니 8월에 환관 세력이 하진을 암살하고 동탁이 그 혼란을 틈타 낙양에 입성하여 한소제의 폐위와 한헌제 즉위를 강압했습니다.



동탁은 공식적으로 한소제가 멍청하고 한헌제가 영리하니 한헌제가 황제의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만.

황제의 자리는 능력보다 혈통이 중시되고 무엇보다 파워맨을 추구하는 동탁에게 영리한 황제는 상당한 리스크가 됩니다.


동탁이 한소제를 미워한 까닭은, 한소제가 하진과 원소를 비롯한 청류파의 지원으로 즉위에 성공했기에 그렇습니다.

청류파는 일찌감치 동탁의 야심을 간파했으므로, 만일 한소제가 장성한다면 황제와 청류파 세력이 규합해 동탁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힘의 균형을 깨기 위해서는, 지금 주도권을 잡은 동탁이 공포 분위기를 몰아 황제를 자기 사람으로 바꿔야 청류파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 그들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한소제를 지지하는 원소와 한헌제를 지지하는 동탁이 충돌하여, 결국 면전에서 협박과 폭언이 오갔지만 원소가 밀려 발해로 도주합니다.

동탁은 190년에 한소제, 하태후를 죽이고 한헌제를 세우니 우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한헌제는, 사실 역적 동탁이 세운 괴뢰, 꼭두각시로 만일 190년에 결성된 반동탁연맹이 동탁 토벌에 성공했다면 작게는 강제 퇴위, 크게는 역적과 협력한 죄로 참형을 받아 마땅한 죄인의 신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또 일이 묘하게 돌아갔으니, 만일 동탁의 영향력이 미치는 관서 일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정통 유씨劉氏가 있었다면, 군웅이나 충신이 모셔와 새로운 황제로 세워 동탁의 명분을 무너뜨릴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적통을 이을만한 유씨들이 없었고 다만 황건의 난 직후, 종실 유언劉焉이 덕과 명망을 갖춘 황족을 지방으로 보내 위기를 다스려야 한다는 간언이 채택되어 유언이 익주, 유표가 형주, 유우가 유주로 파견됐을 뿐이었습니다.



왕윤이 192년에 동탁을 제거했음에도 끝내 한헌제를 폐위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이었습니다. 정통성 문제를 두고 완벽하게 한헌제도 떳떳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대안으로 세울 떳떳한 유씨도 없었습니다. 다만 한헌제漢獻帝는 전임 황제의 아들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유씨들에 비해 매우 유리한 입장이었지요.



이렇게 되면 보통 방계이면서 능력과 인심을 갖춘 유씨劉氏가 주목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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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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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

2014.02.25
00:33:31
(*.177.100.154)
오..왕윤이 희대의 역적(?)같아 보이네요.
왕윤이 그당시의 한황실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건가요??
(자신이 권력을 쥐려고 한건가..뭐지)

망탁조의

2014.02.25
07:15:23
(*.155.148.94)
저는 왕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일부는 채옹을 죽였기 때문에, 왕윤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마치 연산군을 타도한 권신들처럼 생존과 사후 명예를 위한 이기적인 욕심에서 동탁을 죽였다고 하는데 이때 왕윤의 평가는 선비, 청류, 올곧음으로 통일됐고 속된 말로 이슬만 먹고 방귀도 안뀌는 정치인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꾸로하면 명예를 위해 동탁을 죽였다는 말도 되구요.

왕윤이 너무 빨리 죽어 본심을 평가하기 힘듭니다만 동탁은 제거되어야 할 인물이었고 왕윤은 그걸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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