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년에 동탁의 복수를 명분으로 궐기한 이각, 곽사의 무리가 장안을 공격하여 여포를 중심으로 하는 병주 출신 군인들과 왕윤을 중심으로 하는 청류파 선비들은 모두 관서 일대에서 소탕됐습니다.


이때 이각과 곽사는 한헌제를 제거하지 않았는데 동탁이 세운 황제라는 정치 이력도 있었고 한영제漢靈帝의 적자가 없어 마땅히 세울 인물이 없었기도 했습니다만 결정적으로 한헌제漢獻帝는 왕윤의 동탁 제거에 그렇게 깊게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각과 곽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권력을 두고 내전內戰을 일으켰고, 이때 화살이 황궁으로 날아오고 이각이 한헌제를 자신의 진영으로 모시고 갈 정도로 형세가 다급했습니다. 보다못한 동탁의 장수 장제가 강제로 이각과 곽사를 화해시키고 한헌제는 195년에 장안을 떠나 동승, 양봉, 장양과 도적들의 호위를 받아 낙양으로 천도합니다. 이각과 곽사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무단 탈주였고, 이 결단은 어쩌면 한헌제가 즉위하고 최초로 내린, 다른 사람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제대로 된 황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헌제는 1년에 걸친 이각과 곽사의 추격, 배고픔, 날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옷이 망가지고, 몸에 끈을 묶어 절벽으로 내려가고, 도적들에게 벼슬을 내려 호위를 요청하고.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제왕을 존경하게 만드는 권위는 계속 마모되어 갔을 것입니다.


도중에 동승과 양봉이 활약하여 추격군을 격퇴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황제를 호송해야 할 장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한섬이 동승을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동승이란 인물을 조금 알아봅시다.

동탁이 한헌제를 지지했던 까닭은 한소제를 견제하기 위함이었지만 한헌제가 아직 진류왕이었을 때, 동태후가 한헌제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과거도 영향을 줬습니다.

동탁과 동태후는 거의 남남이었지만 성씨가 같았으므로, 동탁은 패륜 며느리 하태후에게 죽은 시어머니 동태후의 아우라를 빌려 한헌제를 지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동승은 동태후의 조카라는 주장도 있고. 일단 한헌제의 장인인데 동탁이 살아있을 때 동승은 동탁의 사위 우보의 부곡장이었습니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그럼 동승은 충신이 아니라 동탁의 사람이었다고 봐야 하며, 실제로 여포에게 접선했을 정도로 과감했던 왕윤도 끝내 동승에게 접선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여러모로 동탁 정권 밑에서 특혜를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탁이 죽고 난 후에도 한헌제는 동승을 신뢰하거나 최소한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믿은 것처럼 보이고. 동승은 위장군衛將軍이라는, 황제의 경호를 책임지는 고위직으로 출세했습니다.


사실 한헌제라는 인물 자체가 평생을 권신權臣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놓은 경우가 드물고 따라서 한헌제가 동탁이나 동승을 진심으로는 미워했을지도 모릅니다.


수없이 정권이 교체되는 위기의 순간마다 한헌제는 황제의 자리를 지켰으니,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전부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한헌제와 동씨董氏의 관계가 생각만큼 적대적이지 않았을 개연성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년, 동승은 한섬의 세력이 강해지자 당시 연주에서 성장하고 있던 군웅 조조를 영입합니다.

이때 조조는 물론 원소, 심지어 원술도 한헌제 옹립을 고민했는데 원술은 조조와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 현실적으로 도모할 수 없었고 원소는 도모할 수 있었으나 그냥 포기했습니다. 원소가 천자 봉대를 포기한 배경은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매우 재밌는 사실은 원소, 조조, 원술 모두 반동탁연맹에 가담했던 군웅들로 심지어 원소는 맹주였고 조조는 참모이자 추격대를 이끌었으며 원술이 군량을 담당한 전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190년에 결성된 반동탁연맹이 동탁을 체포했다면 이들은 한헌제를 계속 황제로 둘 생각이었을까요.

원소는 연맹이 결성되기 전에는 한소제를 적극 지지해 동태후와 십상시를 적대했고 한헌제는 절대로 안된다며 동탁과 면전에서 서로 막말을 주고 받던 매파이기도 했습니다.

조조, 원술 역시 원소만큼 첨병 역할을 하진 않았지만 하진 밑에서 있었다는 과거는 해명이 안됩니다.



이랬던 인물들이 뻔뻔하게도 한헌제 옹립을 시도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미 관동의 군웅들 사이에서는 대의명분이나 의리보다는 황제 역시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 여부를 먼저 계산할 정도로 한나라의 권위와 충성도가 떨어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재밌는 사실은, 이런 군웅들의 냉철한 잇속과는 반대로 여전히 한나라 부활을 꿈꾸는 선비들이 그 충성도 낮은 군웅들 밑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정황입니다.

원소가 이 사실을 간과하여 곤욕을 치루는데 이것도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196년, 조조는 참모진의 강력한 권고로 한헌제를 낙양에서 영접하고 수도를 자신의 세력권인 허창으로의 천도하고자 했습니다.


양봉이 천도 문제를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조조는 양봉을 군사력으로 제압하고, 한헌제는 한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될 허창으로 천도합니다. 이렇게 조조와 한헌제의 지긋지긋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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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5
08:12:01 (*.155.14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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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휘

2014.02.26
16:47:43
(*.234.26.150)
망탁조의님의 최근 漢시리즈를 읽다가 느낀 것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들이 입문자용으로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말이 불쾌하지 않으시고, 또한 입문자용으로 공유해도 좋다고 여기신다면, 입문자용 게시판으로 옮기거나 같은 글을 쓰시는 것은 어떠할까 싶습니다.

첨언.
漢시리즈 잘 읽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연재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도 기대하겠습니다.

망탁조의

2014.02.26
17:12:53
(*.155.148.94)
일단 저한테는 글을 옮길 권한이 없고, 그렇다고 썼던 글을 복사해서 다른 게시판에 올리는 것도 그렇고.

입문자 게시판은 제가 알기로 진짜 진짜 입문자. 삼국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이제 연의를 읽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고 지금 이 연제물은 역사서 삼국지를 기반으로 연재하는거라 맞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사마휘

2014.02.26
18:04:02
(*.234.26.150)
충분히 입문자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 만약 망탁조의님이 괜찮으시다면 건의 게시판에 올려서 이동시키면 되겠지요.

아, 물론 건의는 제가 하겠습니다. 허허.

망탁조의

2014.02.26
18:25:46
(*.155.148.94)
그리고 저는 사람들과 토론을 하고 싶기 때문에 기왕이면 사람들이 많이 오는 이 게시판에 남았으면 좋겠군요.

사마휘

2014.02.26
19:13:55
(*.234.26.150)
허허, 알겠습니다.

Longman

2014.02.26
23:32:55
(*.28.241.38)
동탁을 제거해도 다들 조정에서 말마디나 하는 자리 하나씩 꿰차고 작위나 영지를 갈라먹기 하며 아마 서로 이권싸움하며 갈래갈래 찢어졌을겁니다. 애초부터 모인이유가 언급하신대로 이익따라 뭐 먹을거 있나 싶어 모인거니까요. 그나마 조조가 그래도 개중에 좀 나았다고(아직까지는 말그대로 漢을 그리워하는) 할 수 있겠죠. 漢헌제는 딱히 대체할 사람도 없고 아마 허수아비황제로 계속 갔을것 같습니다. 원소가 조금 유력하긴해도 아직 다른 제후들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고 이때는 그야말로 춘추전국군웅할거의 시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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